국정원의 대공정보관인 권모 과장이 자살을 시도했다. 그는 25년간 대공수사국에서 근무를 하며 ‘국정원 창설 이래 최고의 정보관’으로 평가를 받았다. 1996년 깐느사건, 2006년 일심회 사건, 2011년 간첩사건인 ‘왕재산 사건’도 그의 작품이라고 한다. 권 과장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보국훈장을 받기도 했다.
20년이 넘게 국가를 위해 몸 바친 권 과장의 입장에서 검찰 수사는 참기 힘든 모욕이었을 것이다. 국가관과 애국심도 없는 풋내기 검사에게 끌려가 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갖은 고초를 당했을 테니 말이다. 그는 자신의 차량 문을 닫고 번개탄을 피워 자살을 시도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뇌와 폐가 심하게 손상되어 완치가 힘든 상태로 보인다.
검찰이 국정원에 본격적으로 손을 댄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 이후다. 국정원에 대한 비난여론이 높아지자 박근혜 대통령은 검찰에 철저히 수사하여 국민적 의혹을 해소시키라고 주문을 했다. 여론에 대통령의 지지까지 등에 업은 검찰이 기세등등했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결국 그러한 검찰의 태도는 20여년을 국가를 위해 몸 바친 권 과장을 자살로 몰아갔다.
검찰은 그렇다 치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마인드다. 물론 국정원이 잘못을 했다면 합당한 처벌을 해야 한다는 점엔 나 역시 이견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사용해서는 안 되는 방법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검찰을 통해 국정원을 압수수색하도록 했고 그 수사내역이 언론을 통해 일일이 공개되도록 했다.
야당의 공세에 국정원이 국민으로부터 비판을 받다보니 박근혜 대통령의 그런 행위는 국민들로부터 공감을 샀을지 모른다. 그로인해 지지율도 올라갔고 본인도 기뻤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그렇게 인기를 즐기는 동안 대한민국의 한 축은 무너져 내렸다. 국정원의 정보기능이 마비되며 대한민국의 정보력은 지대한 타격을 입었다.
국정원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진 것은 둘째 문제다. 글로벌화 된 국제사회에서 한 국가의 정보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는 우방국과의 정보교류 수준이다. 대한민국 역시 국정원이 미국을 비롯한 우방 국가들의 정보기관과 끊임없는 정보교류를 하면서 안보를 튼튼히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검찰이 국정원을 압수수색하면서 문제는 달라졌다. 도대체 어느 나라 정보기관이 검찰에 압수수색을 당하는 국정원을 믿고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까? 결국 검찰에 국정원 수사를 맡긴 박근혜 대통령의 방법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 격이다. 국정원의 작은 잘못을 고치겠다며 국가의 정보기능을 마비시킨 일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제대로 된 국가관과 리더십을 가진 대통령이었다면 이런 판단은 있을 수가 없다. 아무리 여론의 뭇매를 맞더라도 국정원의 문제는 국정원 자체조사를 통해 해결해야 했다. 국정원 문제는 인기에 영합해 정무적 판단을 내릴 성질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살을 시도한 권 과장의 입장이 백분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권 과장에게는 검찰에 대한 분노보다는 대한민국에 대한 실망과 허탈감이 더 큰 절망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대통령의 인기를 위해 정보기관으로서 기능을 잃는 국정원을 보며 “이런 나라를 위해 내가 20년이 넘게 사선을 넘나들며 충성을 다 했나”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나라를 위해 몸 바친 자신의 인생이 헛되이 느껴졌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이해를 못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애국과 안보, 원칙의 대통령이라는 말을 말이다. 국정원 사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50% 지지율을 위해 희생된 국익이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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