事實과 史實을 왜곡한
《太白山脈》
李羲範 본지 편집실
한국논단 1994년 8월호
조정래 씨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런데 조정래 씨와 같이 온 여인이 조정래 씨를 대신하여 “저는 이분의 아내 되는 사람 김초혜라고 합니다. 저도 문인입니다. 그리고 저의 아버님도 군인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문제는 없는 것으로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며 자신들의 잘못을 고백하며 사죄를 요청했다.
1994년 4월 11일 고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인 李仁秀 박사를 비롯한 9인의 인사들이 소설 《太白山脈》의 저자 趙廷來 씨와 이 작품을 출판한 한길사 대표 金彦鎬 씨를 국가보안법 위반 및 명예훼손죄로 고소·고발했다. 이들은 고소·고발장에서 “소설 《太白山脈》은 한국 현대사를 왜곡, 대한민국 건국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거나 기여한 인사들의 명예를 손상시킴과 동시에 대한민국의 정통성마저 훼손시켰다. 뿐만 아니라 북한 김일성 정권에 정통성을 부여하며 공산주의 혁명 사상을 조장하였고, 반미감정을 고취시켜 대한민국을 미국 식민지로 인식시켰기에 피고발인 등을 민족과 역사의 이름으로 고발한다.”고 했다.

심판대에 오른 《太白山脈》
이처럼 趙廷來 씨에 대한 고소·고발 관련기사들이 각 일간신문을 통해 보도되자 각계의 반응은 두 갈래로 나뉘어졌다. 한편에서는 “출판된 지(1986년 초판 발행)가 언젠데 이제 와서 야단이냐? 국가보안법 위반 건을 추궁하려면 시판 전에 추궁하던지....그리고 이러한 고소·고발 사건이 빈번하면 작가의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저해하게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또 한편에서는 “그동안 《太白山脈》이 운동권 학생들을 비롯한 좌익계층들에게 교과서로서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는데도 큰 역할을 했기 때문에 당연히 단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 사건은 공안당국에서 명쾌히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80년 이전처럼 우격다짐으로 문제를 해결하던 시대는 지났고 이제 우리는 언론 출판의 자유를 만끽하는 민주주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쩌면 공안당국도 이 사건을 골치 아픈 사건 중의 하나로 여기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소설이 아무리 허구요 가공의 이야기라 해도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實在의 인물들을 實名으로 쓴 논픽션 형식의 소설 《太白山脈》은 事實과 史實에 충실했어야 했다. 事實을 왜곡하고 史實을 위장하므로 써 그 독자를 오도하는 행위는 당연히 범죄이며 마땅히 고발되어야 한다. 더구나 《太白山脈》의 저자 조정래 씨는 현대문학상과 대한민국문학상을 받은 책임 막중한 이 나라의 대표적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소설의 형식을 빌어서 정치적 이대올로기의 데마고그로 전락했다면 슬픈 이야기다. 이것은 그 소설을 읽는 독자 대중, 영화화되어 보다 많은 대중이 보게 될 사회가 고발하고 바로잡아야 할 사안이 아닐 수 없다.
趙廷來 씨와의 만남
80년대 말 우리 사회는 중심을 잃고 표류하고 있었다. 더 이상 사상 논쟁도 전개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우익은 침묵하고 뷹은 깃발들이 대학가와 산업계를 비롯한 우리 사회를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세력화된 다수의 논리가 절대 善으로 여겨졌으며 정부를 비롯한 체제옹호, 보수진영은 惡의 표본으로 통칭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대학, 노동운동권 뿐만 아니라 문화계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역사의 敵으로 규정되었던 빨치산을 소재로 한 책 《南部軍》이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됨과 동시, 대형 스크린을 타고 영화로 상영되기도 했다. 영화관의 관객들은 학생들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관객들은 빨치산들이 경찰과 군인을 공격할 때는 박수를 아끼지 않았으며 빨치산들이 죽어갈 때는 아쉬움을 맘껏 표현했다. 사회가 이렇게 변해가자 당시 빨치산들을 직접 토벌했던 경찰서장 金斗云 씨가 《지리산 호랑이》라는 책을 출판하여 빨치산의 죄악상을 고발하였으나 그의 작품은 날개를 잃은 외로운 노인의 몸짓에 불과하지 않았다. 변화해가는 시대의 물결이 그의 작품과 그 작품의 내용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 시기에 돈과 명성을 얻고 영웅이 되는 길은 체제를 부정하고 세력화된 다수의 논리에 동조하면 틀림없는 것이었다. 국가기관에서도 이런 상황을 좌시할 수 없어 논리의 대응을 연구해봤지만 관료주의에 익숙한 그들의 체질이 이처럼 예리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南部軍》의 열기가 차츰 식어갈 무렵 이번에는 수소폭탄에 비교될 만한 《太白山脈》이라는 소설이 점차 세인들의 입에 회자되기 시작했다. 이 무렵 필자는 시대의 조류를 틈타 출간된 수십 종의 소설 및 출판물들을 수집하여 이들의 문제점과 또 우리 사회에 우익이라 불리는 계층들의 문제점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표류하고 있는 이 시대의 이정표를 발견하기 위하여 많은 출판물을 다독하고 있었다.
조정래 씨의 《太白山脈》도 90년 초부터 일기 시작하였다. 《太白山脈》 역시 시대의 조류를 최대한 활용코자 적당한 시기에 출간되어 화제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여순반란을 주제로 한 《太白山脈》은 해방 이후 터부시된 영역이었던 빨치산 및 좌익의 활동상을 역사의 주체로 부각시켜 작가의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마음껏 표현하였다.
필자는 4권 56쪽을 읽는 순간 화제의 변화가 전개되는 것에 관심을 갖고 더욱 세심하게 읽어나갔다. 19열의 “그나저나 제주도 일언 어처크롬 되야가고 있는 심판이가? 소문 들어먼 사람들은 무지막지하게 죅인다는디, 그 사람들 섬에 갇혀 뺑뺑이치다가 싹 다 죽는 거 아니까?” (중략) “근디 말이오, 사우자고 나슨 사람덜만 쥑이는 것이 아니라 아그덜이고 여자고 노인네고, 양민들얼 닥치는 대로 떼몰이럴혀서 죽이고, 동네도 지멋대로 불질러댄다는 소문이 끝도 읍시 퍼져오고 있는디, 고것이 참말일께라?” (중략) 57쪽 30열의 “‘니미 씨펄, 아무 죄도 읍는 아그덜까지 죽이라고 명령허는 놈들이고 싹 다 오살육시럴헐 것들이여. 거 머시냐, 문 머시기 것인디. 나가 제주도 못가는 것이 철천지한이다.’ 마삼수가 무릎을 쳤다. 그가 말하는 문 머시기는 다름 아닌 박진경 대령을 암살하고 사형당한 문상길 중위였다.” (중략) 이러한 내용이 56쪽에서 60쪽까지 4쪽에 걸쳐 간략하게 전개되었다.
필자는 여순반란사건을 주제로 전개되던 내용이 여기에 와서 제주도 4·3사건으로 전개되는 것을 읽으며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더불어 내용 중 아기와 여인, 노인네 그리고 죄 없는 양민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라고 명령했다는 박진경 대령의 내용에 대해 의문점을 갖게 되었다. 하물며 인간인데 어찌 아기들까지 무참히 살상할 수 있었을까.
필자는 즉시 고 박진경 대령의 아들 朴翊柱(12대 국회의원)씨에게 전화를 걸어 “박 의원의 선친에 대한 글이 《太白山脈》이라는 소설에 실려있는데 박진경 대령이 아주 잔학한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이 사실입니까?”라고 하자 박익주 씨는 매우 놀라는 어조로 “어디 그런 소설이 있습니까? 당장 봅시다.” 그리하여 필자는 박 씨에게 책을 전달하였고 며칠 후 박 씨는 조정래 씨에게 전화를 하여 그 내용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만날 것을 요구했다. 이에 조정래 씨는 동의했던 모양이다.
“잘못했습니다. 다음 판에 삭제하겠습니다.”
90년 초 박 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조정래 씨를 만나기로 했으니 종로 내자호텔 뒤 ‘연백’이라는 한식집으로 나오라는 것이었다. 필자가 녹음기를 준비하여 ‘연백’이라는 식당으로 찾아갔더니 박 씨와 林富澤(48년 당시 제11연대 작전참모, 현 한국전쟁참전총연맹 회장)씨, 崔甲中(48년 당시 제11연대 정보참모, 현 중앙일본어학원 원장)씨가 나왔고, 잠시 후 조정래 씨가 나타났다. 방으로 들어가 박익주 씨가 우리 측의 소개를 먼저 했다. 조정래 씨는 그저 간단한 목례로 답하였다. 먼저 박익주 씨는 책을 펼치며 “어떤 근거로 이런 내용을 썼습니까? 자세한 설명을 바랍니다.” 박 씨의 말에 대해 조정래 씨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런데 조정래 씨와 같이 온 여인이 조정래 씨를 대신하여 “저는 이분의 아내 되는 사람 김초혜라고 합니다. 저도 문인입니다. 그리고 저의 아버님도 군인이셨습니다. 그러니 이 문제는 없는 것으로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며 자신들의 잘못을 고백하며 사죄를 요청했다. 동시에 녹음을 하고 있던 필자에게 제발 녹음을 말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조정래 씨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잠들지 않는 남도》 보고 베꼈습니다.”
이에 임부택 씨와 최갑중 씨가 48년 당시 제주도의 상황과 또 자신들의 군사작전 등의 내용을 조 씨에게 차례로 설명을 하였다. 이 설명을 하고 난 후 박익주 씨가 재차 “이제 말해보시오. 무엇을 근거로 이러한 내용을 쓰게 되었습니까?” 이 다그침에 마침내 조 씨가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그 내용은 《잠들지 않는 남도》라는 책을 보고 베껴 썼습니다.
다음 판에는 그 내용을 삭제하겠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필자는 ‘그래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인 중의 한 사람으로 알려지고 있는 조 씨의 입에서 저런 무책임한 말이 나올 수 있는가?라는 환멸이 생기면서 이제 조 씨는 나의 관념 속에서 생각하기도 역겨운 저급의 인간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조 씨가 베껴 썼다는 《잠들지 않는 남도》는 1961년 생 노민영 씨가 1988년 연세대 정외과 재학 시에 ’4·3항쟁의 기록‘이라는 부제로 당시까지 알려져 있던 4·3제주도 사건 관련 기존 사료를 전면 부인하는 내용들을 엮어서 출판한 것이다.
그 후 이 책은 운동권 학생들의 교양서가 되었고 지금까지 운동권 학생들의 운동가로도 널리 애창되고 있다. 조 씨가 베껴 썼다는 내용은 이 책의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 책 216쪽 15줄 ”마을들을 불태우고 노인에서 어린애까지 또한 닭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물을 죽여라.“ 232쪽 ”여자, 어린이, 연로자는 학교 내의 밭에서 준비되어진 기관총에 의해 사살되었다.“ 등 많은 곳에서 국군들이 죄 없는 양민들을 무참히 학살하고 그것도 모자라 어린이와 부녀자, 노인들의 생명을 앗아갔다는 내용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물론 이 책의 내용 중에는 좌익의 잘못이나 또 국군과 경찰의 선량했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의 작가 조정래 씨는 이 책을 충실히 탐독한 후 ”그 중요한 시기를 소설에 담으면서 역사의 망원경과 현미경을 동시에 가지려고 내 나름대로 애는 썼지만 그 결과가 어떨 것인지는 그저 두렵기만 하고 능력의 부족을 느낄 뿐이다.“라고 자신의 이러한 일련의 창작활동이 역사의 진실에 충실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역사의 왜곡에는 역사의 심판이 따른다
조 씨는 분명 대한민국에서 정리된 현대사보다 북한 측과 또 그들을 추종하는 세력들의 역사관에 충실한 창작활동을 하였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작가의 말을 통해 “민족분단사의 베짜기를 함에 있어서 소수인의 치장을 위한 비단이 아니라 다수인의 실을 감싸는 ‘삼베나 광목’을 짜려고 했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과연 다수는 누구고 소수는 누구인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오늘날이 있기 까지 피와 땀과 생명을 바쳐 나라를 지켰던 살인마들이 소수이고 빨치산 투쟁을 하며 북한 김일성 체제를 신봉하며 살아왔던 사람들과 또 주체사상을 신봉하며 오늘도 열심히 투쟁의 대열에 앞장서 있는 어린 학생들이 다수인지 조 씨는 분명한 대답을 하여야 할 것이다.
시대의 조류는 순간순간 변해가지만 역사의 정의를 불변하는 것이다. 시대의 조류에 편승해 지켜야 할 양심을 저버린 자들은 역사의 심판을 분명히 받을 것이다. 역사는 절대 그들을 용서하지 않는 것이 역사의 철학인 것이다.
조 씨와 조 씨의 《太白山脈》은 어쩌면 시대의 조류에 충실했다는 평가를 받기에 필요충분조건을 갖추고 있다. 당시 많은 문학평론가들은 이 작품에 대하여 온갖 미사여귀로 극찬을 아끼지 않았었다. 특히 李東夏(서울시립대 교수 문학평론가)씨는 《太白山脈》을 “우리 시대가 이룩할 수 있는 소설적 총체성의 가장 높은 자리에 도달한 것이며, 그런 점에서 80년대 문학의 한 장관을 보여주고 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시대의 조류가 또 다시 변하면서 조정래 씨가 역사의 심판대에 오르자 이제 그들의 평가도 또 다시 변하고 있다. 이동하 교수도 “내용 자체가 균형성의 상실이라든가 극단화된 부분이 많다. 90년대 시각으로 보면 과거 내가 했던 평가에 동의하기 힘들다고 본다.”고 밝혔다.(월간조선 5월호)
약속 지키지 않은 작가의 양심
필자가 심판대에 오른 조정래 씨에 대해 필자 나름의 평가를 하려 했던 것은 지난 90년 봄 그가 했던 약속을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행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임이 그 첫째 이유이며, 지금까지 그가 양심을 저버린 점에 대한 사죄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는 점이 두 번째 이유이다.
그는 90년 봄 그 순간만 모면하고 사라졌고, 필자를 포함한 참석자들은 더 이상 조 씨의 소설을 읽을 가치가 없는 작품으로 치부하고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런데 이 글을 쓰기 위해 서점에 가서 확인했더니 아직도 그 내용은 삭제되지 않고 버젓이 진열대에 올려 있었던 것이다. 조 씨의 약속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이제 순간만 모면하며 살아왔던 자신의 과거사와 역사의 왜곡으로 점철됐다는 《太白山脈》에 대한 법적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참고자료:『태백산맥』
『태백산맥』은 1983년 《현대문학》 9월호부터 연재를 시작하고 6년 만인 1989년에 드디어 완성을 보기에 이른다. 하지만 글쓰기의 과정은 고투와 다름없었다. 작가는 나중에 그 어려움에 대해 “5공의 짙은 어둠과 서릿발 같은 상황 속에서 역사바로잡기를 하겠다고 나서고 보니 얼굴 없는 전화는 거의 매일 밤 걸려오지, 입 다문 사람들을 상대로 취재는 어렵지, 소설을 쓰고 사무실을 나가면 어김없이 형사의 문안은 받아야지, 나를 방송에 출연시킨 스태프진 모두가 한직으로 몰렸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여기저기서 충고성 경고는 날아들지, 소설을 쓰는 일의 힘겨움을 압도하는 그런 일들 때문에 피가 바작바작 타들 지경이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작품을 쓰는 내내 매일 밤 협박 전화들로 순간순간 생명의 위험을 느끼면서도 작가는 소설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1990년 9월에는 대검찰청에 의해 이적표현물로 분류되어 아직 해제되지 않았으며, 1994년 봄엔 한 극우반공단체는 작가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소하기에 이른다. 무엇보다 작가를 곤경에 빠뜨렸던 것은 당시를 증언해줄 많은 사람이 아직도 증언을 꺼린다는 점이었다.
그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간신히 하는 한마디는 ‘다 잊어버렸다’는 것이었다. 늙은 그들은 거의가 얼굴에 표정이 없었고, 헛것을 바라보는 것처럼 초점 없이 흐리게 마련이었다. …… 그들은 자신들의 보장 없는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오랜 세월에 걸쳐 ‘인위적인 망각’을 연습하다 보니 정말 그렇게 멍한 망각증에 빠져버린 것이었다. 그것이야말로 비감한 인간의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조정래, 「‘태백산맥’ 창작보고서」, 《작가세계》(1995, 가을)
이 모든 첩첩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1989년 11월, 1만6천5백 매 분량의 『태백산맥』이 전 10권의 소설로 완간된다. 『태백산맥』 이전의 조정래에 대한 문단의 평가는 평범한 작가 이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태백산맥』은 완간되자마자 신문사 문학담당 기자와 문학평론가들에 의해 ‘1980년대 최고의 작품’, ‘1980년대 최대의 문제작’으로 꼽힌다.『태백산맥』의 시간은 해방과 민족분단,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민족사의 격동기를 통과하며, 그것이 펼쳐지는 무대는 남도의 벌교를 기점으로 해서 지리산 일대로 동심원을 퍼져나간다. 작가는 ‘여순사건’으로 알려진 공산당 반란사건을 그리면서 군경의 토벌작전에 밀려 지리산 빨치산으로 쫓기는 공산당원들의 행적을 추적한다.
한국전쟁까지 이야기는 확장되는데, 작가는 이런 일련의 사건을 통해 분단 현실과 그 상황전개가 갖는 역사적 의미를 꼼꼼하게 짚어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소설로서의 『태백산맥』이 뛰어난 점은 이념이나 분단 문제들을 추상이나 관념으로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들의 구체적 경험 속에 녹여냈다는 점에 있다. 다시 말해 작가는 역사를 하나의 전체로서 조망하며 개별적 인물들의 생동하는 삶으로 그 세부를 묘사함으로써, 크고 작은 개개의 사건과 삽화를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그것을 하나의 거대한 사회·역사적 흐름 속에 융합했다는 사실이다.
『태백산맥』에서 개별적 인물들은 살아 움직이며 그 하나하나가 모두 역사 상황성의 의미를 구현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심적인 인물은 염상진이다. 그는 노비 집안 출신으로 분단 상황과 전쟁에 이르게 된 우리 민족사에 대해 확고하고 명료한 역사의식을 갖고 좌익운동에 뛰어든 공산주의자다. 그의 주위로 몰려든 농민 출신 빨치산들은 그를 무결점의 완전한 인간으로 떠받들고, 그는 민중주의 혹은 완전한 평등의 세상을 이뤄내기 위해 자신의 생을 기꺼이 바친다. 염상진에 대립하는 인물로 지주 집안의 아들이며 진보주의자인 김범우가 있다.
염상진이 식민지 현실 속에서 중첩된 계급적·민족적 모순을 뛰어넘기 위해 좌익운동에 투신했다면, 김범우는 중간자적인 지식인의 입장에서 출렁이는 역사의 격동기에 민족 전체가 살 길을 찾아 고뇌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김범우의 중도적 입장은 좌우익 모두로부터 배척당하고 그는 극단적인 두 세력 사이에 낀 힘없는 이상주의자로 낙인찍힌다.『태백산맥』은 여순사건과 빨치산 활동 등으로 이어지는 좌익운동의 실상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철저히 파헤치고, 한국전쟁의 비극성과 분단 상황의 문제성과 우리 민족 내부에 도사린 모순을 비판적 시각으로 그려내 보인다.
이처럼 『태백산맥』은 오랫동안 금기시되며 은폐된 역사적 사실을 복원하고 그 객관적인 제시에 일정한 성과를 보였다는 점에서 우리 소설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높이 끌어올린다. 『태백산맥』의 주제는 정호웅이 말하고 있듯이 “언제 도래할지 모르는 궁극의 세상, 절대평등의 인내천세상을 지향하는 열망을 이끄는 것은 개개인의 이기적 욕망의 제어와 자기희생의 정신”이다.1)
염상진이나 지리산의 골짜기에서 숨을 거두는 빨치산들은 말할 것도 없고, 기독교 사회주의자인 서민영이나 민족주의자인 김범우까지 그들의 삶을 이끌어가는 것은 바로 그 “이기적 욕망의 제어와 자기희생의 정신”이다. 조정래의 한 걸음 앞서간 역사의식은 1980년대 젊은이들의 열광적인 공감을 이끌어내며 유례없는 판매 부수를 기록하는 결과를 낳는다.조정래는 『태백산맥』을 끝내고는 다시 약 1년간의 취재와 자료정리 기간을 거쳐 1990년 12월 『아리랑』의 집필에 착수해 1995년 7월에 탈고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조정래 [趙廷來] - 소설로 구현된 민족정신의 백두대간 (나는 문학이다, 2009.9.9, 나무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