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종교 이야기 (6) - 멸치국수
나는 고래처럼 술을 마셔본 기억이 없다. 숙취가 오래가고 심했던 것으로 보아 술이 내 체질에 잘 맞지도 않았거니와, 우리 형제 중에는 술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인생이 고달펐던 형제가 둘이나 있어서 술에는 애정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소싯적에는 좀 마시는 척했지만 나이 들면서 술과는 친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대신에 빵과 면 종류는 좋아했다. 특히 국수는 더 좋아했다.
딸과 아내는 교회에 가버리고 혼자 쓸쓸했던 일요일 낮에 딸네미에게서 걸려 온 전화는 솔깃하게 만들었다. 교회에 국수 먹으러 오라고? 햐 교회에서 국수도 나오는구나, 게다가 멸치국수라니, 머릿속에서 회로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신자도 아닌데 교회에서 국수를 얻어먹어도 될까, 게다가 일요일 아침 예배에 참석한 것도 아닌데, 가서 먹기만 하면 눈치가 보이겠지. 딸네미의 강권이 이어졌다. 와서 그냥 먹어도 아무도 몰라, 사람이 많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같이 먹자.
가지 말라는 양심과 좋아하는 멸치국수를 향한 욕망 사이에 결투가 벌어졌다. 결국 욕망이 승리했다. 교회는 집에서 몇 발짝 근처에 있었고 교회 마당으로 들어서는 나를 보며 아내와 딸이 깔깔거렸다. 멸치국수가 아빠와 남편을 교회로 이끌 것이라는 딸과 아내의 예언이 틀리지 않고 적중했기 때문이었다. 아내와 딸은 멸치국수라는 미끼로 아빠를 낚은 것이었다. 아서라, 멸치국수를 먹을 수 있다면, 어둠의 골짜기를 지나 고난의 가시밭길을 넘어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를 건너 어디인들 가지 못하랴.
교회 구내식당은 오일장처럼 사람들이 바글거렸지만, 군대처럼 질서정연했다. 오늘도 일용할 멸치국수를 주심에 감사하면서 기독교도들의 틈에 끼어 줄을 서고, 기독교도인 것처럼 국수를 먹었다. 멸치국수의 멸치 우린 국물이 일품이었다.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이 우러나는, 간만에 먹어 보는 맛있는 멸치국수였다. 딸네미가 양념을 뿌렸다. 아빠, 여기서는 일요일마다 멸치국수가 나온 데. 즐거운 일요일에 식구들끼리 외식하는 것도 즐거운데 거기에 멸치국수는 덤이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일요일이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양심에 거슬리지 않게 아예 주일예배부터 참석했다. 그리고 헌금 봉투에 오천 원짜리 한 장을 넣고 헌금함에 넣었다. 한 그릇의 멸치국수를 위하여 교회 예배당 장의자에 앉아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국수 값에 보태십사 헌금까지 했으니, 이번에는 눈치 보지 않고 떳떳하게 먹을 수 있었다. 아, 한 그릇의 멸치국수를 위하여 월요일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멸치국수를 접견하기 위하여 집 앞 교회에 세 번째로 출근했을 때였던 같다. 두어 번 교회에 국수 먹으러 가다 보니 아내랑 딸과 같이 줄을 서야 했기에 아내와 딸이 인사를 나누게 되면 나도 덩달아 인사를 했다. 그러다 보니 낯이 익어갔다. 글쎄 쇠똥이 아빠래요, 어머 쇠똥이 아빠라구요, 집 앞 교회에서 딸네미는 유명 인사가 되어 있던 덕분에 나도 덩달아 입에 오르내렸다. 딸네미가 교회에서 유명인사가 된 것은 다름 아닌 이것 때문이었다.
(계속)
비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