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댓글 단 분들...
나는 그리 생각 안 합니다. 이거 한마디로, 과거 찢명이 최측근들께서 극단적 선택을 하시며 생을 마감하셨잖아요? 나는 그런 맥락으로 보입니다.
즉 쇄신(刷新)하자는 게 아니라, 쇄신(碎身)하라~! 쇄신(碎身)은 분골쇄신(粉骨碎身)의 약자입니다. 다시 얘기하면 분골쇄신하라~! 지금 이 마당에 분골쇄신 하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뭐...굳이 극단적 선택을 하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정도로 니가 책임지라는 의미 아닐까요? 그런데 김용범 절마가 책임질 수 있는 게 뭐 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분골쇄신 할 것밖에 없는 거 같습니다.
이것이 나으 솔직한 생각입니다. (이상 아래 기사에 단 댓글)
[사설] 개각서 김용범 뺐다가, 다음날 경질, 희한한 쇄신 인사
이놈의 배탈민족 정치권은 지들 맘대로 안되면, 뻑하면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가 ‘쇄신(刷新)’이다. 본래 의미는 낡은 것을 새롭게 고쳐 국민 앞에 책임 있게 서겠다는 다짐인데, 그러나 최근의 맥락에서 이 단어는 다른 그림자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쇄신(刷新)’이 아니라 ‘쇄신(碎身)’, 즉 몸을 부서뜨려 책임을 지라는 압박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이 언어적 아이러니는 정치의 잔혹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개혁을 요구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특정 인물에게 분골쇄신(粉骨碎身)하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희생을 강요f하는 인상을 준다.
이따위 행태는 제도적 변화나 정책적 혁신이 아니라, 개인의 몰락을 통해 책임을 전가하는 더럽고 섬뜩한 방식이다. 결국 국민 앞에서 보여주는 것은 쇄신의 진정성이 아니라, 누군가를 소모품으로 삼아 면피하려는 정치적 계산인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목도 해 온 사실이 그러했다. 즉 6명인가 8명인가 하는 명색 찢명이 최측근이라는 인물들의 분골쇄신 말이다.
정치가 국민의 신뢰 위에 서야 한다면, ‘쇄신’은 희생을 강요하는 언어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국민이 원하는 쇄신은 누군가의 분골쇄신이 아니라, 제도의 투명성과 책임의 구조적 개선인데, ‘몸을 부서뜨려라’가 아니라 ‘제도를 바로 세워라’가 진정한 쇄신의 의미다.
정권이 언어(단어)를 어떻게 쓰느냐는 국민이 정치의 본질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직결되는 것이다. ‘쇄신’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희생의 은유가 아니라, 진정한 개혁의 약속으로 돌아올 때 비로소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기사의 주인공 절마가 그동안 해 왔던 꼬라지는 감정상 분골쇄신 하는 게 마땅하지만, 그래도 한 가정의 가장일 테고, 찢명이의 실정을 절마 한테만 지우는 건 무리다. 그나저나 절마가 쫓겨나면 찢명이 와인(맥주) 안주는 누가 챙겨 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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