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1: 위화도 회군 그리고 최영과 이성계
고려 말, 국왕 우왕은 이름만 왕이었을 뿐 실권은 없었다. 나라의 병권과 국권은 최영과 이성계 같은 무장에게 집중되어 있었고, 백성의 삶은 그들의 판단에 달려 있었다.
최영은 강경한 반명 노선을 고수하며 요동 정벌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성계는 현실을 직시했다. 국력은 쇠약했고, 병사들은 지쳐 있었으며, 계절적 조건 또한 불리했다. 이성계가 내세운 ‘사불가론(四不可論)’은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라, 나라를 지키려는 냉철한 계산이었다.
결국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군을 돌려 개경으로 회군했다. 최영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한 그의 선택은 고려의 종말을 불러왔지만 동시에 새로운 나라, 조선의 시작을 열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당시 누구도 이성계를 ‘배신자’라 부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왕명을 거슬렀으나, 그것은 허수아비 왕의 명령을 거부한 것이었고, 무모한 전쟁을 막아 국가를 살린 결단이었다. 역사는 그를 배신자가 아니라 창업 군주로 기억한다.
.
. 사례 2: 삼국지의 탄생, 혼란 속의 권력 투쟁
漢제국 말기, 조정은 이미 십상시와 권신들의 농권으로 무너져 있었다. 황제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백성은 도탄에 빠졌다. 이 틈을 타서 지방의 제후와 토호들은 “나라를 바로 세우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군사를 일으켰다. 그러나 그 속내는 권력에 대한 욕망이었다.
결국 각지의 세력은 충돌했고, 상쟁은 끝없이 이어졌다. 그 결과 위·촉·오 삼국이 남아 다시 혈전을 거듭하는 정권 쟁탈전으로 이어졌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연속이었지만, 후세 사람 누구도 조조·유비·손권을 단순히 ‘배신자’라 부르지 않는다.
그들의 행위는 개인적 배신이 아니라, 무너진 제국의 틀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는 권력 투쟁이었다. 조조는 현실적 권력자로서 질서를 세우려 했고, 유비는 한실의 적통을 자처하며 명분을 붙들었으며, 손권은 강남의 기반을 바탕으로 독자적 세력을 구축했다.
역사는 그들을 배신자가 아니라, 혼란한 시대를 헤쳐 나가며 새로운 국가 질서를 만들어낸 주체로 기억한다. 삼국지의 탄생은 배신의 기록이 아니라, 권력의 공백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는 인간들의 치열한 투쟁의 기록이다.
사례 3: 국공합작은 배신이 아닌 대의의 선택
20세기 초 중국은 내외의 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군벌의 난립과 외세의 침탈 속에서 나라를 바로 세우려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국민당의 장개석과 공산당의 모택동은 손을 잡았다. 이른바 국공합작이다.
물론 두 세력은 본질적으로 다른 노선을 지녔다. 국민당은 중앙집권적 국가 건설을, 공산당은 혁명적 사회 변화를 지향했다. 그러나 외세의 압박과 내부 혼란이라는 대의 앞에서 두 지도자는 일시적으로 협력했다.
결국 국공합작은 오래가지 못하고 실패로 끝났다. 이후 국민당은 대만으로, 공산당은 중국 본토를 장악하며 오늘날의 분단 구조가 형성되었다. 하지만 후세 사람 누구도 장개석과 모택동을 단순히 ‘배신자’라 부르지 않는다. 그들의 합작은 권력욕만이 아니라, 나라를 바로 세우려는 대의적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즉, 혼란한 시대에 지도자가 내린 결단은 단순한 배신이 아니라 대의를 위한 선택으로 평가된다. 오늘날 한동훈을 두고 “이재명을 도왔다”는 이유로 배신자 프레임을 씌우려는 시각은 지나치게 협소하다. 역사의 사례가 보여주듯, 혼란한 나라를 바로 세우려는 선택은 배신이 아니라 대의적 결단으로 남는다. .
사례 4: 5·16과 박정희 대통령, 배신인가 혁명인가
1961년 5·16 혁명은 혼란기에 있던 민주당 정권을 뒤엎고 국가 재건의 길을 열었다. 당시 민주당은 분열과 무능으로 국정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했고, 사회는 혼란에 빠져 있었다. 박정희와 군부는 이를 혁명이라 칭하며 국가를 바로 세우려 했다.
좌익은 박정희를 쿠데타 세력, 배신자로 낙인찍는다. 그러나 보수 진영은 그를 국가를 재건한 지도자로 평가한다. 그렇다면 박정희는 배신자인가? 아니면 국가를 살린 혁명가인가?
역사는 여전히 논쟁 중이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결단이 단순한 배신이 아니라 국가적 위기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는 선택이었다는 점이다.
사례 마지막: 윤석열 배신과 한동훈 배신
윤석열이 대통령이 된 사실을 두고 본다면, 이는 문재인을 ‘배신’한 행위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란 본질적으로 권력의 이동이며,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는 투쟁이다. 만약 우리가 한동훈을 두고 “이재명을 도왔다”는 이유로 배신자라 낙인찍는다면, 윤석열은 배신을 해도 되고 한동훈은 하면 안 된다는 모순에 빠진다.
역사의 사례가 보여주듯, 혼란한 시대에 지도자가 내리는 결단은 단순한 배신이 아니라 대의를 위한 선택으로 평가된다. 이성계의 회군, 삼국지의 탄생, 국공합작, 5·16 혁명 모두가 그러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동훈을 향해 배신자라는 굴레를 씌우는 것은 협소한 시각일 뿐이다. 이상, 이렇게 주장하는 나를 향해 침을 뱉거나 짱돌 던지는 놈들은 나 같은 고딩 중퇴생 보다 무식하고 대가리를 악세사리로 달고 다니는 무뇌아들이다.내 말 틀리~!?
소음이 심해서 환풍기를 장식품으로 쓰시는 분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소음 없이 실내를 쾌적하게 만드는 환풍기로 변신하는 마술
게시물 삭제요청방법
Copyright(c) www.nongak.net
tapng97@hanmail.net
연락처 : 010-4696-7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