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을 대표하는 것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김치이다. 그 어떤 음식도 김치의 대표성을 부인하거나 또는 대신할 수 없을 것이다. 김치의 정체성은 고추가루와 젓갈이다. 콜럼버스의 교환을 통해 아메리카 대륙의 고추가 세계적으로 퍼졌고 조선에 들어와 김치에 들어가게 된 것은 아무리 길게 잡아 주어도 300년 정도이고 대중화 된 것은 200년 정도 되었다면 넉넉하게 후하게 쳐준 것이다.
김치의 감칠맛을 내게 하는 가장 큰 재료는 젓갈이다. 생선이나 해물의 아미노산이 숙성 된 감칠맛이 김치 맛을 결정하게 된다. 그 젓갈이 대중화 된 것은 일제시대에서나 가능해졌다. 즉 도로와 신작로가 정비 되며 교통혁명이 일게 되고 냉장고도 없는 시절 해안가에서 내륙으로 수송 됨으로서 비로서 김치에 새우젓을 비롯한 젓갈이 대중화 되기 시작했다.
특히 고춧가루의 보급과 고추의 항균작용으로 인해 젓갈이 김치에 들어가도 안전하게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지금 먹는 김치가 완성 된 것은 고작 100년 정도로 보면 넉넉하다.
강원도는 생선이나 젓갈을 수송할 수 없어 젓갈 들어간 김치가 없었다. 기껏해야 겨울철 나오는 동태살을 넣는 것이 전부였다. 동태살이나 또는 젓갈이 들어가지 않은 담백한 김치에 길들여진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한참 동안이나 젓갈이 많이 들어간 김치에 대해 거부감이 들어 꽤 오랫동안 젓갈이 많이 들어간 전라도 김치를 먹지 않았었다. 입에 길들여진 담백한 김치가 좋았고 감칠맛이 좋지만 무엇인가 전라도 김치는 꺼림찍해서 잘 먹지 않았다.
더하여 군대있을 때 전라도 동료의 결혼식에 참석하여 고약한 냄새 펄펄 나는 홍어에 호되게 혼나고 난 후 선입감이 되었고, 전라도의 젓갈범벅 김치나 홍어, 생선요리는 한동안 먹지 않았었다.
그러고 보면 빨간 고추가루와 해산물로 대표 되는 김치맛이 정착한 것은 100년 정도 밖에 안되는 것을 생각하면 그토록 국뽕으로 절여진 김치 자랑은 별 것도 없는 것 같다. 물론 세계적으로 김치가 독보적인 발효음식이고 우수한 식품이라는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촐싹 거리는 것 만큼 한식을 대변하는 시간의 무게나 또는 민족성까지 들먹이는 역사성은 없다.
한뚝빼기 하십시다로 대표되는 순대국밥이나 돼지 국밥의 역사도 그리 오래 된 것 같지는 않다. 순대라는 음식은 함경도에서 피난 온 피난민이 속초에 정착하면서 대중화의 길을 걸었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속초에 내려온 실향민들이 순대를 만들어 “아바이 순대”로 불렀다. 6.25 사변 전 후에 퍼진 순대나 순대국 또한 역사성은 자랑질 할 정도는 아닌것 같다.
부산 돼지 국밥 또한 6.25 사변 후 부산으로 피난 온 피난민들이 먹을 것이 없어 돼지뼈를 구해 고아 먹으며 생존하면서 생겨났다. 즉 부산 보리문댕이들이 창조한 오랜 역사를 자랑질할 음식은 아니다. 즉 먹을 것이 없어 버려진 돼지뼈를 가져다 고아 먹다 살만해지면서 머릿고기도 넣고 살고기도 넣으면서 생겨난 음식이다. 따라서 민족의 정체성이네 국밥민족이네 하는 자랑질도 돼지 국밥 태생에 비추어 보면 구라와 뻥이 가미 된 조센징의 아가리질이다.
불고기 또한 백성이 먹던 음식이 아니다. 농사 밑천인 소를 잡아 먹는 것은 조선시대 관아에서 잡아다 족쳤다. 즉 소고기를 먹는 것은 국법으로 금했다. 개조선 개씹선비 나부랑이들이 농민의 눈을 피해 질긴 일소를 몰래 자기들끼리 잡아 먹었다. 일소로 혹사 당한 소고기가 너무 질겨 얇게 썰어 짜거운 조선간장을 발라 구워 먹었다. 이것을 너비아니라 불렀다. 지금 먹고 있는 불고기와는 전혀 다른 음식이다. 질긴 소고기에 먹기 위해 짠 조선간장을 찍어 먹거나 발라 구워 먹었다고 보면 정확하다.
일제 시대 일본을 통해 양조간장이 보급되고 설탕이 보급 되면서 지금 먹고 있는 불고기가 탄생했다. 즉 일본 찌게인 스끼야키가 보급되면서 양조간장과 설탕 등을 넣어 전골식으로 소고기를 먹으면서 불고기가 비로서 탄생한다. 즉 질길 일소를 먹기 위해 일본의 스끼야끼를 조선식으로 해석 한 것이 불고기의 탄생인 것이다. 일제시대 또한 일반인이 소고기를 먹을 수 없었고, 지금의 불고기는 박정희 대통령 시대 고도성장기를 거치며 왜간장과 설탕이 들어가 진화하며 완성 된 것이다.
얼마 전 고향인 정선 고라뎅이 촌구석을 다녀왔다. 반세기 만에 가보는 고향은 모두 변해 집터조차 찾을 수 없게 변해 있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발전하였다는 의미이다. 재밌는 것은 가는 길에 향토음식 “곤드레 밥“이라는 간판을 걸고 장사하는 곳이 많았다.
그 간판을 보고 한참을 웃었다. 곤드레는 어릴 때 보릿고개 기간 중 가장 일찍 올라오는 들풀이었다. 곤드레를 뜯어다 된장을 풀어 묵은 감자를 빚어 넣고, 보리살 한주먹 넣고 죽을 끓여 먹던 가난을 상징하는 나물이다. 지금은 웰빙으로 비싸게 팔리지만 그 당시 겨울을 견디고 죽지 않기 위하여 일찍 올라온 곤드레를 뜯어 먹던 일종의 들풀이다. 그런데 그 귀한 쌀에 곤드레를 넣고 밥을 해먹었다고 구라치는 것이 두손 두발 다 들었다. 곤드레 밥을 해먹을 만큼 쌀이 있다면 밥을 해먹었을 것이다. 묵은 감자도 귀한 강원도 깡촌 고라뎅이에 쌀밥에 곤드레를 넣고 밥을 해먹는 만행(?)을 저질렀다는데 웃음이 나왔던 것이다. 게다가 가난함과 배고픔을 넘기기 위해 해먹던 밥이라고 구라를 치며 토속음식이라고 팔고 있는 것에 웃음이 안나올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우리 사회는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고도 성장기를 거쳐 지금 먹고 있는 한식의 원형이 만들어진 것 같다.
미개하며 추악하고 천한 개조선 개씹선비 시대를 팔며 날구라로 한식을 민족의 정체성으로 구라치는 조센진의 정신적 날구라와 허영이 불쌍하게 보일 뿐이다.
워낙 개좆 같은 조센진 민족성이고 구라와 거짓이 염색체인 조센진이 구라 치고 역사를 날조하는 것은 이해를 하겠는데 이런 것까지 날구라 치며 국뽕질하는 것을 보면서 조센진의 정신병은 언제나 치료가 될지 의문이다.
우리가 자랑할 것은 더럽고 추악하며 천박한 개조선 개씹선비의 문화와 개같이 미개한 개씹짱께 문명을 파괴하고 극복하며 오늘을 만들었다는 자부심이지 그 더럽고 추악한 개조선 개씹선비와 개씹짱깨 문명이 아닌 것이다.
여하튼 개조선 개씹선비 문명과 개씹 짱깨 문명은 더럽고 추악하다. 그 더러운 문명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현대의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싸운 투혼을 자랑하고 자부심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아직도 미개하며 천하고 추악하며 사악한 개조선 개씹선비와 개씹 짱깨 한자 문명을 자랑질 하는 것을 보면서 영원히 조센진은 미개할 것 같기도 하다. 여하튼 내가 공부한 지금 먹는 한식의 역사성은 고작 50년 정도 밖에 안된다는 것이 공부한 결과이다.
소음이 심해서 환풍기를 장식품으로 쓰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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