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면, 보수의 역할은 단순히 특정 인물을 맹목적으로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데 있지 않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SNS를 보면, 우리가 주장하는 인물을 조금만 성토해도 곧바로 역적으로 몰리고, 우리가 지지하는 인물만이 최선이라며 목청을 높이며 개gr하는 꼬라지가 난무한다.
이 따위 행태는 보수의 본질을 망각한 것이다. 윤석열은 결국 탄핵을 당했고, 구치소까지 가지 않을 수 있었지만, 한동훈이라는 배신자 때문에 곤욕을 치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냉정히 돌아보면, 그 당시 한동훈과 그를 추종하는 의원들이 아니었다면 민주당의 작태로 보아 당 해산까지 당했을지도 모른다. 역설적이게도, 보수의 존립은 내부의 균형과 절제 덕분에 유지된 것이다.
나는 지금도 한동훈을 저주한다. 그러나 지선을 앞둔 오늘의 현실은 냉정하다. 장동혁이 한동훈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참패는 100% 아니 그 이상으로 명약관화하다. 보수의 길은 감정적 배척이 아니라, 현실적 선택과 전략적 연대에 있다.
보수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것은 국가의 균형을 지키는 일이다. 특정 인물의 흥망에 매달려 집단적 광신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제도와 원칙을 지키며 국민의 삶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지금처럼 내부에서 서로를 역적으로 몰아붙이고, 아군끼리 싸움에만 몰두한다면 보수는 스스로 무너질 뿐이다.
보수는 감정의 정치가 아니라 책임의 정치여야 한다. 인물 숭배가 아니라 제도 존중, 배척이 아니라 수용, 분열이 아니라 연대가 보수의 본질이다. 그렇지 않다면, 보수는 더 이상 보수가 아니라 단순한 패거리 정치에 불과하다.
솔직히 한동훈을 수용한다고 해서 승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수용하지 않는다면 완패, 참패를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나는 그것을 저어하여 한동훈을 수용하자고 말하는 것이지, 다른 뜻은 없다.
정치에서 패배는 언제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해가 가는 분패는 다음을 기약하는 처방이 된다. 국민은 납득할 수 있는 패배 앞에서는 다시 기회를 주고, 보수는 그 실패를 교훈 삼아 재도약할 수 있다. 문제는 납득할 수 없는 참패다. 그것은 단순한 선거 패배가 아니라, 보수라는 이름 자체를 역사 속에서 지워버릴 수 있는 치명적 결과다.
만약 보수가 내부 분열과 감정적 배척으로 스스로를 무너뜨린다면, 그 순간부터 이 나라는 사회주의 국가로 기울어질 것이다. 보수의 존재 이유는 균형을 지키는 데 있다. 그러나 균형을 잃고 완패한다면, 그때는 더 이상 보수라는 이름조차 남지 않는다.
보수는 허망한 완패를 피하고, 국민 앞에 책임을 다하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보수의 마지막 역할이며, 미래를 위한 최소한의 처방이다. 야이~! 등신들아~!!
소음이 심해서 환풍기를 장식품으로 쓰시는 분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소음 없이 실내를 쾌적하게 만드는 환풍기로 변신하는 마술
게시물 삭제요청방법
Copyright(c) www.nongak.net
tapng97@hanmail.net
연락처 : 010-4696-7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