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장안의 화제는 영화“왕사남(왕과 사는 남자)”인가 보다. 헐리웃 블록버스터도 아니고 순전히 국뽕 영화로는 2년 만에 1000만 관객을 만들고 아직도 승승장구하고 있다며 자랑하고 있다. 이 영화가 세인의 이목을 집중하기 시작할 때 나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제목만 보아서는, 왕과 사는 남자이니 내시 또는 환관 아니면 그 보다는 상위 계급인 상선(尙膳), 그 중에 유명했던 김처선(세종대왕부터 연산군까지 무려 일곱 왕을 섬겼으며 최고위 내시였다.)의 얘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500만 600만이 넘어서며 이런 추세로 라면 천만을 넘길 것이라는 예측 뉴스를 보며 그때서야 관심을 가지고 본 결과‘세조의 찬탈과 단종’에 관한 영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이런 아류의 이야기는 이미 초등학교 때 마스트를 했었다. 초등 4년 때던가? 우리 반에‘엄(嚴)씨’성의 가진 아이가 있었는데, 지금은 어떤가 모르지만 그때는 오(吳)가인 나와 그 아이는 희성(稀姓)에 속했기에 때론 놀림감이 되기도 했었는데, 어느 날 무슨 일이었던지 그 아이가 또 놀림감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로는 희귀성은 무조건 상놈(천. 방. 지. 축. 마. 골. 피 하는 식의...)취급을 했기로 그 아이는 몹시 속이 상해 책상에 머리를 박고 울기만 했었고 담임선생께서 수업에 들어오셨건만 그 아이의 분함은 풀리지 않았던지 여전히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결국 자초지종을 들은 선생님, 일장 훈시조의 옛 고사를 들려주시는데, 엄씨는 결코 상놈이 아닌 충신이라는 얘기를 그때 이미 듣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약간 머리가 굵어진 다음 60~70년대 명우 반열에 오른 여배우 중‘엄앵란’이라는 배우를 알면서 초등학교 당시의 엄홍도가 잠시 내 머릿속에 유영하는 경험을 했고, 아마도 중학교 2~3년 저간에 소설책 1권을 집어 들었는데 춘원 이광수 선생의“단종애사(端宗哀史)”였던 것이다. 이쯤 했으면 나는‘왕사남’을 일찍이 섭렵(涉獵)했기로 굳이 이 영화를 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뭐 솔직히 영화라는 게 아무리 역사적인 사실일지라도 관객들의 흥미를 자아내고 돋우기 위해 있는 감정 없는 사실을 얼마든지 연출해 냈을 것이기에 오히려 역사 왜곡도 자행했을 것이라는 지레짐작마저 든다. 그런데 어제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 얼핏‘왕과 사는 남자’의 핵심은 세조 찬탈과 의인(충신) 엄홍도의 얘기가 골간일 것 같은 생각과 그것을 다시 현대적 감각으로 나름 재해석을 이부자리 속에서 하게 되었는데, 즉 세조가 역사적으로 현군(賢君)이나 명군(名君)의 반열에 오른 인물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어린 조카를 강제로 몰아낸 불충(不忠)한 삼촌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점은, 오늘날 죄 없는 윤석열을(가장 민주적이지 못한..)법이라는 굴레를 씌워 수의(囚衣)를 입히고 결국 대통령 자리에 오른 그 모양이 찬탈(簒奪) 그것이다.
단종이 삼촌에게 그 지위를 빼앗겼을 때 그를 모시던 신하들 중에 그를 복위시키기 위해 많은 인물이 등장을 한다. 소위 계유정란과 세조반정으로 역사에 기록되지만, 그 정란과 반정 속에 희생양이 무수히 발생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게“사육신 생육신”이야기다.
영화를 보지 못해서 모르지만, “사육신 생육신”을 빼면 엄홍도 얘기는 단종이 죽임을 당하고 난 후의 정사에 기록되지 못한 야사(野史)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기 때문에 좀은 각색이 됐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이상 영화평을 하자는 게 아니다.
단종 복위 운동은 수많은 충신들의 희생과 처절한 몸부림 속에서도 끝내 실패로 돌아갔다. 역사가 증명하듯, 한 번 몰락한 권력은 단순한 의지나 충성으로 되살아나지 않는다. 오늘날의 ‘윤-again’ 역시 마찬가지다.
현대 정치에서 권력의 복원은 단순한 충성이나 희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51:49라는 냉정한 다수결의 원칙이 작동한다. 대갈빡 숫자가 모자라면 그 어떤 복원도 불가능하다. 아무리 충성스러운 무리가 모여도, 표가 부족하면 권력은 돌아오지 않는다.
따라서 ‘윤-again’이라는 허황된 꿈은 단종 복위 운동처럼 끝내 실패할 수밖에 없다. 현대판 엄홍도를 만들려면 ‘윤-again’이 아니라, 윤이 정치적으로 완전히 소멸해야만 이야기가 성립된다. 그렇지 않다면 그저 허망한 꿈에 불과하다.
보수의 길은 허황된 복원 운동이 아니다. 차라리 얼마 남지 않은 지자체 선거에 몰입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길이다. 지방 권력을 확보하고, 풀뿌리에서부터 세력을 다져야만 보수의 미래가 열린다.
역사는 반복된다. 단종 복위가 실패로 끝났듯, ‘윤-again’도 실패할 것이다. 허망한 꿈을 좇지 말고, 현실의 정치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보수의 생존이고, 국민 앞에 책임을 다하는 길이다.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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