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배달된 월간조선 3월호에서 「미국의 관심 속에 석방된 손현보 목사」라는 기사를 읽고, 이렇게 언감생심 자판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단순한 정치적 구호나 주장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제가 집필을 시작한 동기는 억울하게 수의를 입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을 밝은 세상으로 모시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었습니다. 미국의 손절, 트럼프 대통령의 체념, 좌파 정권의 아이러니한 도움까지 모두가 역사의 한 장면일 뿐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희망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살려내느냐에 있습니다.
아~!! 시간을 내셔서 일독하시고, 이 책이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유수한 참모들에게 읽힐 수 있도록 조치해 주십시오. 그것이야말로 윤석열 대통령의 구명과 동시에 한반도의 미래를 위한 길이 될 것입니다.
역사는 언제나 인간의 계산을 넘어 하늘의 뜻으로 귀결됩니다. 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 成事在天) — 사람이 일을 꾸미되, 성사는 하늘에 달려 있다는 진리를 담아낸 책입니다.
그러나 이 책을 트럼프 대통령이나 그 참모들에게 직접 전달할 길이 없어, 저는 페이스북에 세 차례에 걸쳐 그 정당성과 합리성을 알리기 위해 홍보문을 올린 바 있습니다. 그 글들을 취합하여 목사님께 함께 드리고자 합니다. 제발 일독하시고, 윤석열 대통령 구명 운동에 앞장서 주실 것을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본문은 1부, 2부, 3부로 나누어 정리한 글입니다.
<<<이제 윤석열을 본격적으로 구하자!~!!(1부)>>>
단도직입적으로 단언컨대 윤석열의 계엄과 자신감은 미국에 기댄 것이 착각에서 시작된 것이다.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한 그 순간, 많은 이들은 그의 자신감의 근원을 궁금해 했다. 국민의 지지였을까? 당내 세력이었을까?
바이든 대통령과의 관계는 단순한 외교적 의례를 넘어섰다. 미국 의회에서 ‘아메리칸 파이(American Pie)’를 함께 부르고, 포옹하며 어깨를 나란히 했던 장면은 한미 관계의 절정을 상징했다. 그 순간은 관포지교나 수어지교 이상의 관계처럼 보였다. 윤석열은 그 친밀함을 믿고, 미국이 자신을 끝까지 지켜줄 것이라 확신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믿음은 착각이었다. 미국은 언제나 원칙을 택한다. 민주 제도의 독립성과 법치주의 존중이라는 원칙 앞에서, 윤석열의 계엄은 단칼에 잘려나갔다. 미국은 특정 인물을 지켜주지 않는다. 오직 제도와 원칙만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것이 오늘의 미국을 지탱하는 원동력이자 힘인 것이다.
한국 대통령들은 당선 후 미국 대통령을 직접 찾아가 ‘인증’을 받는 것이 관행처럼 되어 있다. 마치 옛날 중국 황제에게 조공을 바치고 알현하던 것과 비슷한 구조다. 윤석열도 그 관행 속에서 미국에 기대어 계엄을 선포했지만,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윤석열의 자신감은 결국 미국에 대한 착각된 신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계엄은 그 착각의 산물이었고, 미국의 손절은 그 착각을 무너뜨린 냉혹한 현실이었다. 그 순간, 윤석열의 정치적 운명은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접어들었다.
윤석열은 미국을 믿었다. 바이든 대통령과의 포옹, 미국 의회에서 함께 부른 ‘아메리칸 파이’는 한미 관계의 절정을 상징했다. 그 순간은 마치 관포지교나 수어지교처럼 보였고, 윤석열은 그 친밀함을 정치적 방패로 삼았다. 계엄을 선포할 때 그는 확신했다. 미국은 자신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그러나 미국은 원칙을 택했다. 국무부는 “한국 민주 제도의 독립성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이는 곧 윤석열의 계엄을 단칼에 잘라낸 선언이었다. 미국은 특정 인물을 지켜주지 않는다. 오직 제도와 법치주의만을 존중한다. 윤석열이 기대했던 특별한 보호막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 순간 윤석열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믿었던 동맹이 원칙 앞에서 등을 돌린 순간, 계엄의 자신감은 허망한 착각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더 큰 충격을 받은 것은 국민이었다. 윤석열을 지지했던 이들은 “미국이 우리 편일 것”이라는 믿음을 공유했다. 그 믿음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국민들은 냉혹한 현실을 깨달았다. 국민들은 그것을 간과한 했다. 즉 미국은 언제나 원칙을 택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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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윤석열을 본격적으로 구하자!~!!(2부)>>>
윤석열은 미국에 손절당한 뒤 마지막 희망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걸었다. 트럼프라면 보수 진영의 목소리를 들어줄 것이라 믿었다. 그 믿음은 단순한 정치적 계산이 아니라, 인간적 교감과 ‘기브 앤 테이크’라는 거래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였다.
그러나 문제는 분명했다. 대한민국, 아니 윤석열이 트럼프에게 해 준 것이 무엇이 있었던가. 아무런 실질적 교환 없이, 오직 기대만 했던 것이다. ‘윤-again’이라는 구호가 난무했고, 백악관 앞에서 플랜카드를 흔드는 퍼포먼스가 이어졌지만, 그것은 법적 현실을 바꾸지 못했다.
트럼프가 전세기를 타고 와서 구해줄 줄 알았나? 그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퍼포먼스는 결국 허망한 웃음만 남겼다.
나는 그때 ‘두 국가론’을 서둘러 집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읽고 반드시 반응할 것이라는 기대감, 그 속에서 법외의 기대감을 품었다. 경주에서 열리는 APEC 회의 석 달 전쯤이었다. 만약 그 책이 빨리 출판되어 트럼프와 20여 개국 지도자들이 함께 읽었다면… 하는 소망을 가졌다.
그러나 국내 30여 출판사들은 민감한 사안이라는 이유로 외면했고, 결국 미국 출판사를 통해서만 국내에 들어온 것은 지난달이었다.
결국 윤석열의 마지막 기대는 트럼프였지만, 그마저도 체념하게 만들었다. 법치주의와 민주 제도의 원칙 앞에서, 트럼프 역시 움직일 수 없었다.
윤석열은 미국을 믿었지만 손절 당했고, 트럼프에게 기대했지만 그마저도 체념하게 만들었다. 남은 것은 허망한 기대와, 법외의 교감에 의존했던 보수 진영의 상실감뿐이었다.
그러나 아직 실망은 금물이다. 오히려 지금이 기회다. 내가 집필한 ‘두 국가론’의 겉표지는 세 사람이 실루엣 사진이다. 그 세 사람은 누가 보아도 트럼프, 이재명, 김정은 세 국가 원수다. 이쯤에서 왜 겉표지에 보수가 가장 싫어하는 이재명 대통령이 ‘두 국가론’ 책자의 겉표지 주인공의 한 사람으로 새겨져 있는가하며 의아해 할 것이다.
이 점이 바로 이 땅 한반도 하고도 대한민국의 비애다. 북한은 이념·사상이 다른 국민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그것들이 극명하게 갈리는 두 부류의 국민이 있다는 게 슬픈 것이다. 현실이 그렇다. ‘두 국가론’은 지금 당장이라도 좌파 정권과 그를 지지하는 국민은, 물론 일부의 반발도 있겠지만 거의가 찬성이다. 그런 반면 보수 측 국민은 95% 이상 반대를 할 것이다.
그러나 운명적인 게 있다. 나는 책 속에 미리 그런 점을 그려 두었다. 즉 “모사재인(謀事在人) 성사재천(成事在天)”이라는 문구를 넣어 두었던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면 ‘두 국가론’을 성사시킬 어떤 지도자도 없을 뿐더러, 북쪽의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의 중재만을 인정하려 들 것이 명백하다.
내 말은 이재명 정부가 아무리 서둘러도 김정은 북쪽은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운명적인 것은 트럼프 시절의 미국과 이재명 재임 시대의 연대가 맞아 떨어지는 운명이다. 만약 트럼프 시절에 보수 대통령이 집권했다면 어땠을까? ‘두 국가론’이라는 소리만 냈어도 나라는 뒤집혔을 것이다. 보수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한 그야말로 내란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만큼 보수에게는 금기어인 것이다. 오로지 “때려잡자 빨갱이”와 “쳐부수자 공산당”밖에 모르는 극단주의 보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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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윤석열을 본격적으로 구하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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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무능한 윤석열은 짓지도 않은 죄명으로 감옥에서 고생하게 생겼다. 그러나 실망은 하지 말자, 우리에겐 아직‘희망’이라는 단어가 남아 있다. 이 희망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에 대해 생각을 해 보자.
윤석열은 미국을 믿고 계엄을 선포했지만 손절당했다. 마지막 희망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걸었지만, 그마저도 법치주의와 민주 제도의 원칙 앞에서 체념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여기서 모든 희망을 접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지금이 기회다.
내 말은, 윤석열의 구명은 ‘윤-again’이라는 허망한 구호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두 국가론이라는 책을 트럼프 대통령이 읽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이 책은 단순한 정치적 주장이나 구호가 아니라, 한반도의 현실과 운명을 담아낸 제안이다. 법을 파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법치주의를 존중하면서도 인간적 교감 속에서 길을 찾자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공공연히 “내 임기 내에는 윤석열을 풀어주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윤석열이 정치와는 담을 쌓고 평민으로 돌아가겠다는 다짐을 한다면, 트럼프 대통령도 기꺼이 동참할 것이다. 그것은 따뜻한 부탁의 말, “이재명 대통령, 윤석열을 풀어주십시오”라는 인간적 요청일 뿐이다.
나는 이미 ‘두 국가론’을 집필했고, 그 책은 여민관을 통해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전달되었으며, 우체국으로부터 잘 전달되었다는 통보도 받았다. 이제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보내야 한다. 트럼프가 이 책을 읽는다면, 윤석열의 구명은 충분히 가능하다.
돌이켜 보면 나 자신이 ‘두 국가론’이라는 책자를 구상하고 출판을 시도한 것은 오히려 좌파 정권의 보이지 않는 도움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극우에 가까운 내가 ‘두 국가론’이라니. 그러나 책자의 내용은 통일이 없는 대신 영구평화를 가지며, 그런 연후 통일을 도모하자는, 결국은 통일론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만약 좌파들의 등살로 폐기된 반공법이나 수정된 국보법이 존재한다면‘두 국가론’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 것으로 나는 어쩌면 이 맑은 바깥 공기를 못 마시고 텁텁한 감방의 공기를 마시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비록 빨갱이들의 주장이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닌 것도 있다.
아~! 그러고 보니
얘기의 순서가 바뀐 것 같다. 그렇다면 이재명이 왜 그 자리에 있을까? 그것이 바로 하늘이 시키고 하늘이 메조지하는 현실이고 현상이다. 그와 그를 지지하는 소위 좌파들의 신념 아니면 소망이 대놓고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두 국가론’이었던 것이다. 이 또한 좌파 정권이 들어서 트럼프 시절이 전개되었기에 가능한 시나리오고 현실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아무리 일을 꾸며도 그 결과는 하늘의 손에 달려있는 ‘모사재인 성사재천’인 것이다.
좀 더 설명을 하자면, 이 책을 구상하고 원고를 써내려갈 때 ‘윤석열 대통령’에게 몇 차례 ‘두 국가론’을 제시했었지만 그 글을 읽어준 페친 마저도 몇 사람 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책에는 윤석열 대통령 대신 내가 ‘대통령’으로 의인화하여 책을 써 내려갔던 것이다.
결국 윤석열의 운명은 단순한 정치적 구호나 당권 다툼에 달려 있지 않다. 미국의 손절, 트럼프의 체념, 좌파 정권의 아이러니한 도움까지 모두가 역사의 한 장면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희망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살려내느냐에 있다.
윤석열이 스스로 모든 원죄를 인정하고 정치와 담을 쌓으며 평민으로 돌아가겠다는 다짐을 한다면, 이재명 대통령에게도 따뜻한 설득의 길이 열릴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그 길을 함께 걸어줄 수 있다. 그것은 법을 파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법치주의를 존중하면서 인간적 교감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자는 것이다.
‘두 국가론’은 이미 여민관을 통해 전달되었고, 이제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닿아야 한다. 그 책이 읽히는 순간, 윤석열의 구명은 허망한 기대가 아니라 현실적 가능성이 된다.
그러니 실망하지 말자. 역사는 언제나 인간의 계산을 넘어 하늘의 뜻으로 귀결된다. 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 成事在天) — 사람이 일을 꾸미되, 성사는 하늘에 달려 있다. 윤석열을 구하는 길도 결국 그 원리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