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측엔-두-국가-못-박고-미국에-모호성-유지할-듯
[앵커]
북한은 이달 하순으로 예고한 9차 당 대회에서,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못 박기 위한 당 규약 개정에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대미 노선 역시 큰 변화를 주진 않을 거란 관측이 많은데, 대화 가능성은 열어놓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할 거란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종원 기자입니다.
[기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처음 공식 언급한 건 지난 2023년 말 노동당 전원회의 직후입니다.
[조선중앙TV(2023년 12월) : 북남 관계는 더 이상 동족 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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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의 짧은 시각>
북한의 ‘두 국가론’ 선언을 두고 많은 전문가들이 단순히 “적대적 관계의 표명”으로만 해석한다. 그러나 이는 너무 짧은 시각이다. 김정은의 선택은 단순한 적대가 아니라, 새로운 평화체제를 향한 전략적 전환이다.
<두 형제 이야기>
한 울타리 안에서 자라난 두 형제가 있었다. 형은 성실하고 부지런하여 가족을 잘 돌보고, 이웃과도 화목하게 지내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일궜다. 그러나 동생은 달랐다. 그는 가족을 돌보지 않고 술과 싸움에 빠져 살며, 온갖 행패로 이웃을 괴롭혔다. 결국 공권력은 그의 집에 가택 연금과 같은 제재를 가했다.
제재 속에서도 동생은 반성하지 않았다. 오히려 형을 원망하며 흉기를 모으고, 단 한 방이면 형네 가족을 몰살할 수 있는 무기까지 갖추었다. 그는 형을 협박하며 끊임없이 불안을 조성했다.
그럼에도 형은 끝까지 아우를 버리지 않았다. 몰래 식량을 보내고, 아이들을 챙기며 “언젠가는 변하겠지”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동생은 만족하지 못했다. 그의 마음은 늘 형을 향한 원망과 파괴의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결국 동생은 선언했다. “형님, 이제 살림을 나누겠습니다. 따로 살겠습니다.” 형은 놀라며 붙들었다. “무슨 소리냐! 우리는 한 가족이다. 그래선 안 된다.” 형은 가족애를 내세워 동생을 붙들어 앉히려 했지만, 협박과 불안은 끝이 없었다.
가족회의가 열렸다. “살림을 나누어 줄 것인가, 아니면 가족애에 함몰되어 계속 협박을 받을 것인가.” 고심 끝에 형은 결단했다. “그래, 네 뜻대로 해라. 살림을 내주마.”
처음에 동생은 해방된 듯 기뻐했다. 자유를 얻은 듯 열심히 살아보려 했다. 그러나 평생을 공갈과 협박으로 살아온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노력은 오래가지 못했고, 삶은 다시 무너졌다.
불과 몇 해가 지나지 않아, 동생은 울타리 앞에 무릎을 꿇었다. “형님…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제 힘으로는 살 수가 없습니다. 다시 받아 주십시오.”형은 말없이 동생을 바라보았다. 눈빛에는 분노와 연민, 그리고 오래된 가족애가 뒤섞여 있었다. 동생의 목소리는 떨리고, 눈물은 땅에 떨어졌다. “형님, 이제야 알았습니다. 제가 가진 무기는 저를 지켜주지 못했고, 제 삶은 제 욕망에 무너졌습니다. 다시 형님 곁에서 배우고 싶습니다.”
형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우야, 네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네가 진정으로 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울타리 안은 다시 무너진다.”그날 밤, 울타리 안에는 오랜만에 두 형제의 목소리가 함께 울려 퍼졌다. 애절한 회한과 희망이 뒤섞인 목소리였다. 이것이 두 국가론과 통일론이다.
<두 국가론의 본질>
‘적대적 관계’라는 표현은 단순한 부정적 의미가 아니다. 이는 통일이라는 무망론 대신, 영원한 평화를 위한 제도적 틀을 마련하는 출발점이다.
통일을 정치·이념·사상적으로만 접근하면 결코 성사될 수 없다. 서로 다른 체제와 가치관 속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남북을 억지로 하나로 묶으려는 시도는 갈등만 증폭시킨다. 따라서 두 국가론은 통일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인정하고 그 위에서 평화를 제도화하려는 전략적 선택이다.
이러한 접근은 국제사회가 받아들이기에도 훨씬 현실적이다. 두 국가가 서로를 인정하고 불가침을 약속하며, 핵 문제를 국제적 틀 속에서 해결한다면, 한반도는 더 이상 전쟁 위험지대가 아니라 안정된 평화지대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트럼프가 이를 성사시킨다면 단순히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을 넘어, 세계사적 평화의 전환점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래서 노벨상 수상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것이다. 이는 과장이 아니라, 냉전 이후 가장 큰 평화적 합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현실적인 전망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그러나 역사를 읽는 자는 반복을 끊을 수 있다. ‘두 국가론’을 적대의 선언으로만 보는 시각은 역사의 반복을 허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평화의 설계도로 읽는다면, 한반도는 새로운 길을 열 수 있다.
<두 형제 이야기>가 보여주듯, 갈등과 협박, 불안이 아무리 길게 이어져도 결국 형제는 가족애로 다시 울타리 안에 모였다. 통일과 평화는 정치·이념·사상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가족애와 인간적 연민이 제도적 틀과 결합될 때, 비로소 영원한 평화가 가능하다. 오늘날 지도자에게 필요한 것은 희생양을 찾는 정치가 아니라, 가족애를 승화시키는 책임과 용기의 정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