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커피의 유럽 진출
16세기 말엽부터 17세기 초반까지 커피는 베네치아의 무역 항로를 따라 이탈리아와 유럽 일대로 퍼져 나갔다. 중세 시대 술에 취해 있던 유럽인들이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며 술에서 깨어나 르네상스를 성취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슬람권에서 기독교권으로 커피가 옮겨간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1683년 오스만제국은 오스트리아의 빈을 공격했다. 제2차 빈 공방전이었다. 오스만제국은 빈을 포위했지만 결국 패전했다. 오스만군이 퇴각한 자리에는 정체 모를 수많은 마대가 널려 있었다.
마대에 들어있는 것은 커피콩이었다. 이 콩의 진가를 아는 사람이 빈에 있었다. 프란츠 콜쉬츠키, 그는 빈이 포위당했을 때 포위망을 뚫고 폴란드에 구원병을 요청했고 성공했다. 연합군이 온다는 소식에 오스트리아는 항복을 보류했고, 전투에서 승리했다. 일설에 의하면 콜쉬츠키는 이 공로에 대한 부상으로 커피콩을 요구했다. 그리고 빈에 커피하우스를 열었다.
이 시기 즈음에 오스만제국에서는 술탄이 두 차례에 걸쳐 커피 금지령을 내렸다. 커피하우스에서 담소 주제는 대부분 정치였고, 정치의 대부분은 술탄을 비난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카페의 본고장이었던 이스탄불에서는 커피가 금지되었고, 대량의 커피콩을 확보한 빈에서는 커피 유행이 일었다. 그러나 오스만 군대가 남기고 간 커피는 매우 썼다. 그래서 커피에 우유나 꿀을 넣어 부드럽게 만들어 마셨다. 이것이 오늘날 ‘비엔나커피’의 시초였다. ]
빈의 영어 발음은 비엔나. 비엔나커피는 뜨거운 아메리카노에 휘핑크림을 듬뿍 얹은 커피다. 비엔나에서는 비엔나커피를 ‘아인슈페너’라고 부른다. 문재인이 원자력을 금지했던 것처럼, 오스만제국 무라트 4세와 메흐메트 4세의 황당한 커피 금지는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카페 문화가 이스탄불에서 유럽으로 옮겨가는 계기가 되었다. 이스탄불의 커피하우스는 현재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5. 신대륙의 커피
17세기가 끝나갈 즈음 커피는 유럽을 점령했다. 이 세기에 커피는 유럽의 식민지가 된 신세계로 건너갔고 세계로 퍼져 나갔다. 1616년에는 네덜란드가 모카에서 훔쳐낸 커피나무 10그루를 자바에 심었다. 그리고 커피가 신대륙으로 유입된 일화는 여러 가지 버전이 존재하지만, 1720년의 프랑스 귀족 가브리엘 드 클리외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문익점 이야기처럼 유명하다.
드 클리외는 영국에서 태어난 프랑스 해군 장교 출신으로, 과들루프 총독을 지냈다. 그는 1720년 프랑스 왕립 식물원의 온실에 있는 커피나무 두 그루를 루이 15세에게 얻었다. 이 커피나무는 자바섬에 심어진 커피나무의 후손이었다. 드 클리외는 서인도 제도의 마르티니크섬으로 커피나무를 옮기기 위해 항구 도시에서 바닷바람에 적응 훈련을 했고, 커피나무는 유리 온실에 담겨 배에 실었다.
당시 커피는 지금의 반도체와 비슷해서, 드 클리외의 커피나무를 파괴하려는 네덜란드의 스파이가 배에 동승하고 있었다. 그래서 커피나무는 특수상자에 넣고 항상 문은 잠가야 했다. 그리고 햇볕을 쐬어줘야 했고, 식수가 모자라 갈증에 시달렸지만, 드 클리외는 커피나무와 식수를 나누어 마셔야 했다. 열대 폭풍을 만나 배가 가라앉았지만, 다행히 한 그루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한 그루의 커피나무는 5년 뒤에 2천 그루가 되었고, 50년 안에 1,800만 그루가 되었고, 현재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커피 생산이 늘어나면서 아프리카 흑인 노예도 많이 늘어나야 했으니, 아프리카 흑인들은 자기들이 발견한 커피 때문에 노예로 전락하게 되는 역사가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6. 대한민국에도 커피가 있다
미국에 아메리카노가 있다면 유럽은 에스프레소를 선호한다. 특히 이탈리아는 에스프레소의 본고장이다. 에스프레소는 자리에 앉지 않고 바에 선 채로 식기 전에 빠르게 마신다. 이탈리아에서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예비 사위가 찾아왔을 때 예비 장모는 에스프레소를 낸다. 이때 예비 사위가 뜨겁고 쓰디쓴 에스프레소를 한방에 원샷할 수 있다면 그 결혼 승낙은 따 놓은 당상이 된다.
에스프레소에 대한 이탈리아의 자부심은 물에 타서 마시는 아메리카노에 대해 아예 커피 취급을 안 해준다. 그래서 이탈리아에는 스타벅스가 들어설 여지가 좁다. 외국인들은 눈보라 몰아치는 겨울에 한국에서 ‘아아’를 마시는 것을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뉴욕에서는 아메리카노, 로마에서는 에스프레소, 빈에서는 비엔나커피, 커피는 지역과 민족에 따라 여러 가지 얼굴로 나타나지만, 우리에게도 자랑스러운 커피가 있다.
미국에 아메리카노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믹스커피’가 있다. 믹스커피는 우리와는 떨어질 수 없는 커피였다. 점심을 먹은 식당이나 거래처 어디를 방문해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손쉽게 한 잔 마실 수 있고, 심지어 믹스커피는 어디를 가더라도 무료다. 게다가 커피, 설탕, 프리마의 3요소가 황금비율로 배합되어 있어, 맛있기까지 하다. 어찌 이런 커피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리.
스타벅스 로고의 주인공은 신화에 등장하는 ‘사이렌’이다. 두 개로 갈라진 지느러미가 긴 머리를 한 사이렌의 양옆으로 치켜진 모습이다. 그러나 겁먹을 필요는 없다. 믹스커피에도 ‘여신’이 등장한다. 동서식품의 맥심 화이트골드에는 전 피겨 선수 김연아, 남양유업의 프렌치카페는 영화배우 김태희가, 맥심 모카골드에는 영화배우 박보영, 등 이만하면 우리도 여신 사이렌이 부럽지 않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처음 들어온 것은, 1860년 3월 6일 프랑스 천주교 신부 베르뇌가 홍콩에 있는 신부에게 커피를 보내달라고 부탁한 것이 최초의 커피 기록이다. 이 커피는 1861년 4월 초에 인편으로 베르뇌 주교에게 전달되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커피전문점이 10만 개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 가히 대한민국은 커피의 왕국이다.
일설에는 믹스커피를 마시면 건강에 해롭다고 한다. 모든 음식은 과해도 건강에 해롭고 부족해도 건강에 해롭다. 커피는 건강해지자고 먹는 보약이 아니다. 그저 한 잔을 즐기면 될 뿐, 커피 이야기를 쓰다 보니 역사 이야기로 흐른 것 같다. 밧데리가 떨어져서 그런 모양이다. 믹스커피 한 잔 마시고 분발해야겠다.
비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