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과 말브랑슈의 동거
헤겔(Hegel)은 유명하니 설명이 따로 필요 없겠지만, 말브랑슈는 조금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니콜라 말브랑슈(Nicolas Malebranche, 1638-1715)는 프랑스인이자 가톨릭 신부였으며 철학자였다. 그는 출생 시부터 척추와 가슴뼈에 심한 장애가 있어 평생을 고생한 은둔자형 인물이었다. 매우 경건했던 그는 데카르트(Descartes)의 저서 《인간론》을 읽다가 심장이 뛸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본래 데카르트는 영혼과 육체를 완전히 나누는 이원론자였다. 그런데 이렇게 나누어 놓으면 정신(작용)이 어떻게 발생하는가에 대해, 데카르트는 인간 뇌 속의 송과선(松果腺)에서 정신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말브랑슈는 이러한 데카르트의 이분법을 해소하기 위해 기회원인론(Occasionalism)을 주장하게 된다. 이를 쉽게 풀이하자면 '사건원인론'이 된다. 즉,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신(神)이 일으키는 사건이라는 말이다.
피조물끼리는 서로 아무런 영향력을 주고받을 수 없으며, 모든 사건은 오직 신이 실행하는 것이다. 그의 구호는 "신 안에서 만물을 본다"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 자체로 진짜 원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예를 들어 불이 나무에 붙었다면, 불이나 나무는 원인이 아니라 '기회'일 뿐이고, 실재로는 신이 나무를 태우기로 작정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중력 때문에 사과가 떨어지는 것도 신이 아래로 당기기 때문에 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사건을 신이 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기회원인론이고, 그 주창자가 말브랑슈이다. 내가 팔을 올리려 할 때, 올리려는 '의지'는 내가 갖지만 나는 의지할 뿐이며 팔을 올리는 실질적인 '주체'는 신이다. 인간은 사건을 일으킬 능력이 없다. 오직 신만이 사건을 일어나게 하는 유일한 동력이다.
이렇게 보면 세상의 모든 사건은 신이라는 엔진으로 돌아가는 기계장치일 뿐이라는 얘기가 된다. 이와 동거할 수 있는 철학이 헤겔의 절대정신론이다. 헤겔에 의하면 모든 사건들, 심지어 악이나 파괴성, 고통, 부정성까지도 모두 헤겔식의 신인 '절대정신'이 하는 일이다. 그에게 악과 고통은 절대정신이 완성되기 위한 필연적 과정이다. 그에게 우연이란 없다. 우연의 옷을 입고 나타난 필연일 뿐이며, 악 또한 우리 인식에서만 악일 뿐, 모두 절대정신의 역사 전개에 필연적인 요소이다. 그리고 이를 전개해 나가는 방식이 변증법(정·반·합)이다. 그런 점에서 기회원인론과 절대정신은 한통속이며 동거하기에 알맞다. 두 이론 모두 세상만사가 신의 자기전개이며, 인간의 삶은 그저 기계적 부품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이론 모두 개인의 책임이나 죄, 윤리 같은 주제들이 불필요해진다.
여기에 결정론(Determinism)까지 합쳐지면 이 '3형제'가 동숙 가능한 구조가 된다. 과연 인간과 세계가 이토록 결정적일까? 그런데 앞서 말했듯 기회원인론에서는 인간의 의지가 별도로 구별되지만, 헤겔에게 인간의 의지는 절대정신의 자기실현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인간의 욕망, 자유의지, 야망 모두를 사용해 역사를 전개해 나간다. 이때 사용되는 개념이 이성의 간지(List der Vernunft)이다. 여기서 이성은 절대정신을 말하고, 간지(奸智)는 '속임수'를 뜻한다. 이들의 이론에는 죄와 십자가 대속, 구원의 복음이 없다. 개인의 책임도 윤리도 무의미해진다. 천국과 지옥이라는 내세관도 없다. 그저 철학적 추론일 뿐이다. 이 기회원인론이 주류는 아니지만, 현대에 와서 분석철학의 심신 문제나 양자역학, 컴퓨터공학 등에서 응용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2026.2.12.안티다원
소음이 심해서 환풍기를 장식품으로 쓰시는 분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소음 없이 실내를 쾌적하게 만드는 환풍기로 변신하는 마술
게시물 삭제요청방법
Copyright(c) www.nongak.net
tapng97@hanmail.net
연락처 : 010-4696-7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