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때 국군와 유엔군은 1m라도 땅을 더 차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는데. 이재명은 이런 고귀한 땅을 그냥 이북에게 내준 것인가? 북한이 군사분계선 침범 때 우리 군사지도와 유엔군 기준선 가운데 더 남쪽선을 채택해 대응하라니 이게 군통수권자라는 자가 할 소리인가?
이재명 정부 출범 후인 2025년 9월 합동참모본부는 이런 지침을 전방 부대에 공식 문서로 하달합니다.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침범할 때는 우리 군사지도와 유엔군사령부의 기준선 가운데 더 남쪽에 있는 선을 채택해 대응하라’.
우리 군의 군사지도와 유엔군사령부의 기준선은 60% 정도가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두 기준선 사이에는 최대 수십 미터의 차이가 납니다. 그런데 우리 군이 수십 미터를 김정은 정권에 알아서 양보해 버린 것입니다. 유엔사령부와는 아무 협의도 없었습니다.
최근 북한군은 철책을 쌓고 지뢰를 심기 위해 군사분계선을 수시로 넘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군은 이에 대응하는 대신, 군사분계선을 남쪽으로 후퇴해서라도 그냥 못 본 척하겠다는 것입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내어준 그 수십 미터를 전진하기 위해 지금부터 70년 전 우리 선조들은 목숨을 바쳤습니다. 오늘은 이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1950년 6월 25일 김일성의 불법 남침이 시작됩니다.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는 인민군의 공세에 한반도는 공산화 직전이었습니다. 그러나 낙동강 전선을 지킨 혈투를 바탕으로 9월 15일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합니다. 국군과 유엔군은 10월 압록강까지 진격해 꿈에도 그리던 통일을 눈앞에 둡니다.
그러나 10월 25일 중공군이 개입하며 다시 후퇴해 1951년 1월 4일에는 수도 서울을 다시 내주는 1·4 후퇴를 맞게 됩니다.
중공군은 2월 공세로 한반도 공산화를 달성하려 했습니다. 국군과 유엔군은 미군과 프랑스군이 사투를 벌인 지평리 전투 승리를 통해 이를 막아냅니다. 3월 15일 서울이 수복됐고 3월 말에는 38선 부근까지 다시 밀고 올라갑니다.
중공군은 압도적인 병력으로 인해전술을 구사했지만 우마차와 인력에 의존하는 보급 지원 체제의 취약성으로 공격 작전을 5, 6일밖에 지속하지 못하는 치명적 약점을 드러냈습니다.
38선을 회복하자 미국은 휴전 협상을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3월 24일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이 중공과의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독자 성명을 발표하자 트루먼 대통령은 맥아더를 해임합니다. 이러는 사이 중공군은 ‘서울을 다시 점령해 노동절 선물로 마오쩌둥에게 바치겠다’며 4월 공세를 시작합니다.
4월 22일 서부전선에 30개 사단, 중부전선에 15개 사단이 투입돼 총공세를 벌입니다. 그러나 글로스터 대대를 필두로 한 영국군 29여단의 분전으로 유엔군은 가까스로 이를 막아냅니다.
중공군의 공세는 집요했습니다. 21개 사단과 북한군 9개 사단이 동원된 5월 공세가 이어졌습니다. 국군은 현리 전투의 참패로 위기에 처했지만 용문산 전투의 기록적 대승과 오색-고성-양양 진격전 승리로 기적적인 반격에 성공합니다. 전선은 현재의 휴전선 일대로 고착되기 시작했습니다. 4, 5월 공세에서 18만3000명의 엄청난 병력이 사상을 입거나 실종된 중공군은 더 이상의 공격의지를 상실했습니다.
1951년 6월 23일 소련의 말리크 유엔 대사가 휴전회담을 제의하고 7월 10일 첫 휴전회담이 개최됩니다. 이로부터 휴전협정이 조인되는 1953년 7월 27일까지 무려 2년 동안 국군과 유엔군, 그리고 북한과 중공군은 휴전선 부근에서 일진일퇴의 치열한 공방을 계속합니다.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한 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수많은 대한민국 젊은이과 유엔군이 목숨을 바쳐 고지 쟁탈전을 벌였습니다. 그중에서도 1952년 10월 백마고지 전투는 가장 유명합니다. 이름 없는 산봉우리가 격전의 현장이 됐고 고지 하나를 점령하기 위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강원도 철원 북방의 백마고지 전투는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국군 9사단이 중공군 38군의 3개 사단을 궤멸시킨, 6·25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진지전이었습니다. 김종오 9사단장은 “이 일전은 우리 한국군 전체의 명예와 전투 능력에 대한 평가가 달려 있다. 나를 비롯해 우리 사단 장병 전원의 뼈를 저 백마의 산정에 묻기로 하자”고 독려했습니다.
중공군은 술을 마시고 취한 상태로 맨몸에 수류탄만 들고 10열 종대로 새까맣게 개활지로 몰려들었습니다. 뒤에서는 꽹과리를 치고 북을 울리고 피리를 불며 취한 병사들의 흥을 돋웠습니다. 국군 전차 중대의 포격이 쏟아졌지만 중공군은 무수한 시신을 방패 삼아 계속 전진했습니다.
9사단 장병들은 대피호를 파고 1m 전진한 뒤 또 대피호를 파면서 고지 정상에 접근했습니다. 30만 발에 이르는 상호 포격으로 온 산은 불에 타고 바위도 깨져 모래밭으로 변했습니다. 쓰고 있던 철모로 파헤쳐도 대피호를 팔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포탄에 벗겨진 고지의 모습이 백마가 누워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이 고지는 백마고지로 불리게 됐습니다.
https://www.chosun.com/culture-life/2026/01/18/455XDK4NX5DRHAMRU32VVCBW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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