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과 부정성에 관한 생각
야곱 뵈메(Jakob Böhme, 1575-1624)는 독일 루터교의 신비가인데, 神內의 어두움(Dunkelheit in Gott)’**이라는 급진적 개념의 창시자이다. 그는 신 안에 빛과 어두움, 사랑과 분노, 긍정과 부정의 근원이 공존한다고 주장한다. 악은 신의 현현(顯現)이나 발현(發顯)의 필수적 어둠이라고 한다. 선과 악은 신의 자기 표현 과정에서 변증법적 대립항으로 작용한다. 악은 신의 본성 중 어두운 근원(dunkler Grund)에서 비롯된다. 어둠이 없다면 빛도 없다. 악은 신적 자기 계시의 긴장 구조 속에서 필연적 역할을 한다. 인간의 악은 자유의 오용이지만, 동시에 신의 드라마의 일부이다. 악은 결핍이 아닌 신 안의 필요한 부정성이며, 변증법적 운동의 원인자로 작용한다. 이러한 뵈메의 주장은 신 안에 어둠이 있다고 말한 최초의 경우가 된다. 그의 사유에 따르면 악은 역사 발전의 내적 동력이 된다.한편 19세기에 와서 헤겔(Hegel, 1770-1831)은 뵈메와 에크하르트(Eckhart, 1260-1327)의 영향을 받아, 절대정신(헤겔의 ‘신’)의 자기 전개 속에서 악을 이해하게 된다. 절대정신은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 부정의 과정을 거친다. 이 ‘절대정신이 자기를 알기 위해’라는 표현은 헤겔 철학의 핵심인 절대정신의 속성을 보여주는 말로, 매우 낯선 개념이다.
절대정신은 자기를 인식하지 못하다가 자연과 인간정신으로 자기 운동을 하면서(이를 절대정신의 外化라고 한다) 자기를 인식해 나간다는 이론인데, 그 절정이 절대지(絶對知)이다. 이 운동의 과정에서 부정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여기서 악은 정신(절대정신)이 자유를 자각하기 위한 부정적 운동으로 필연성을 갖게 된다.이 부정성을 극복하면서 역사가 전개되는데, 이것을 지양(Aufheben)이라고 한다. 악은 지양되면서 더 높은 자유의 단계로 상승한다. 이렇게 악은 절대정신이 역사를 전개하고 자기를 자각하는 데 필수적 요소가 된다. 악은 절대정신이 자기의 부정적 힘을 통해 더 높은 자유를 자각하도록 만드는 도구이다. 앞서 말한 지양(Aufheben)은 절대정신이 변증법적 운동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더 높은 차원에서 통합되도록 하는 단계로서 부정성을 극복하는 운동인 것이다.야곱 뵈메가 신 안에 악과 부정성의 근원이 있다고 말한 데서 출발해, 헤겔이 이를 이어받아 역사 발전 과정에서 악과 부정성의 필연을 말하며, 변증법의 동력으로서 부정성을 인정하는 논리로 나아가지만, 내용이 다소 건조해지기도 한다. 아무튼 헤겔에게서 악과 부정성은 역사의 동력이자 절대정신의 자기 전개에서 필연으로 나타나게 된다.
사실 헤겔에게서 악이나 부정성은 필연이며, 우리가 일상에서 말하는 악과는 다른 의미가 된다.헤겔에게 모든 생명과 자연, 그리고 인간정신은 절대정신의 자기 전개에서 나오는 것이고, 이 전개 과정에서 악과 부정성은 필연이기에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악의 개념이 그에게는 성립하지 않는다. 즉, 우리 인식 안에서만 악이지, 헤겔에게서는 모든 것이 필연이며, 부정성은 오히려 역사 전개의 필수 동력이 된다. 뵈메가 神안에 어둠과 악의 근원이 있다고 말하고, 헤겔이 이를 이어받아 역사 동력의 한 편 주체로서 악과 부정성을 필연으로 논한 과정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그러나 뵈메의 그러한 신관은 기독교 신학 내에서는 수용될 수 없는 것으로, 그의 당대에도 핍박을 받았다. 헤겔의 절대정신 개념 또한 성경과 신학상 받아들일 수 없는 논리이다. 다만 참고할 따름이다.이 세계는 창조의 주체이신 성삼위 여호와 하나님의 작품이며, 만유는 그분의 섭리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존재의 제일 원인자이시며 궁극적 절대자이시기에,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그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세계의 실상임을 어찌하랴(롬 11:36).
2026.1.8.안티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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