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오다 노부나가를 가장 두려움에 떨게 만든 인물은 다카다 신겐이었다. 바람과 같이 달리며 신출귀몰하는 다카다 신겐의 기마부대는 공포 그 자체였다. 이에 오다 노부나가는 조총의 3단사격을 창안하여 나가시노 전투를 통해 다카다 가문을 멸망시키며 천하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1582년 곤경에 처한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지원하기 위하여 교토에 있는 절간 혼노지(本能寺ほんのうじ)로 갔다. 본능사에서는 최측근이며 가장 아낀 아케치 미츠히데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다 노부나가는 변변한 경호원도 없이 본능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1만 3천명명의 병력을 동원한 아케치 미츠히데는 제대로 뒤통수를 치며 오다 노부나가를 암살했다. 그래서 사무라이의 배신과 암살을 상징하는 말이 생겨났다.
“적은 혼노지에 있다(敵は本能寺にあり)”
1930년대 초반 일본 육군내 급진파벌인 하급장교들의 모임인 황도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그들은 언제든 천황을 위해 쿠테타를 일으킬 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미국에서 불어닥친 대공황의 여파는 그대로 흡수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으로 수출하는 섬유산업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었다. 시중의 수많은 은행이 파산했다. 1930년경부터 미국 대공황의 여파 한가운데 들어서며 쇼와 대공황이 본격화되었다.
이 시기 일본은 디플레이션, 대량 실업, 기업 도산, 무역 위축 등 심각한 경제불황에 진입하면서 도탄에 빠진 국민경제는 회복 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불만은 사무라이 역사가 그러하듯 격변기의 암살이 예고 되고 있음이기도 했다.
피가 끓는 젊은 장교들이 모인 황도파(皇道派)는 그들만의 리그인 정당정치를 불신했고, 대공황으로 인해 고통 받는 국민의 아픔이 곧 자신의 아픔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살아 있는 신이며 전지전능한 천황 숭배가 정치화가 되지 못함에 울분이 넘쳤고 군의 정치개입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황군 즉 살아 있는 신의 군대로서 천황의 친정(親政)과 뜻을 제대로 실행하여야 하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젊은 장교의 묻지마 신앙은 천황에 대한 절대적 복종과 굴절 된 신념을 만들었고 결국 당시 총리였던 이누카야 쓰요시가 황도파에 의해 암살 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1932년 5.15 사건으로 불리는 현직 수상 암살 사건은 황도파에 벌어졌다. 암살 직전 이루어진 암살범과 수상의 대화는 황도파의 정체성과 급진성을 대변하고 있다.
이누카이 쓰요시 수상 : “이야기를 들어보자(話せばわかる)”
암살자 : “말로는 안 된다”
쇼와 대공황 시기의 어려움과 불안한 심리는 집단적 사회적으로 미쳐가게 만들고 있었다. 천황이 세워진 후 메이지 유신이 이루어지고 일본 사회는 급격한 발전을 이루었고 중국과 러시아와의 전쟁에서도 모두 승리하며 자존감은 한 없이 높아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살아 있는 신 천황의 능력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 삐뚤어진 믿음 즉, 전지전능한 천황을 섬겨 잘 살아 보자는 집단 최면에 걸리고 있음이었다. 현직 수상을 암살한 암살범은 천황을 위해 암살을 저질렀다고 자신의 범죄를 정당화 했다.
암살범에 대한 사회적 동정 여론이 들끓었다. 그것은 집단적 광기였다. 그 광기는 암살범은 “나라를 걱정한 청년들” “부패 정치에 대한 의로운 분노”로 포장 되었다. 체포 기소 된 암살범들은 가벼운 유기 징역과 집행유예를 받았고 얼마 후 모두 감형 또는 사면 되었다.
미국의 대공황으로 초래 된 쇼와 대공황은 부득이한 경제 현상이다. 현실과 이상을 구분할 능력을 상실한 집단적 히스테리는 모든 죄를 살아 있는 신을 외면한 부패한 정치인에게 뒤집어 씌웠다. 집단적 광기와 히스테리는 도덕적 확신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집단적 광기로 인해 본격적인 신정 군국주의 드라이브가 걸리고 있었다.
우리는 오늘날 주사파 빨갱이라는 집단적 광기와 히스테리를 겪고 있다. 인간 개백정 개정은 집구석의 사회적 영생을 추앙하며 화염병 던져 경찰을 불태워 죽인 빨갱이가 민주투사로 둔갑하였다. 그 미친 새끼들이 화염병 던질 때 곁에서 지켜보며 나도 정의롭다고 박수 친 또라이새끼들이 부화뇌동하며 똥구멍으로 나이를 처먹고 주사파 빨갱이에 동조하며 대한민국을 망치고 있다.
밥먹고 똥 싸는 천황이 살아 있는 신으로 믿었던 일본의 그 시대 사람이나 화염병 던진 것이 민주투쟁이라고 믿는 현실의 대한민국 등신들이나 다를 것이 없다, 그 미친 광기에 도덕과 사회적 가치는 필요 없었다. 미쳐서 날 뛰지 않으면 불의(不義)가 되는 새로운 시대적 정의(正義)를 만들어 내고 있을뿐이다.
황도파의 현직 수상의 암살을 계기로 나날이 미쳐 돌아가는 광기는 끊임 없이 증폭 되었고 급기야 1936년 2·26 사건(二二六事件)으로 불리는 쿠테타로 이어졌다. 황도파 청년장교 1,400명이 모여 도쿄 중심부를 점거, 습격하고, 정부 핵심 인물을 암살하며 천황 중심의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쇼와 유신” 불린 쿠테타가 일어난 것이다.
총리와 장관, 군 장성까지 암살 된 황도파 쿠테타는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수십명의 하급장교가 군사재판을 받고 처형 되었다. 천황까지 나서 쿠테타는 반란으로 규정하며 수습에 나섰지만 오히려 군의 정치개입이 합법화 되는 결과를 불러왔다.
쿠테타 저지하며 황도파를 제거하고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한 통제파(統制派)는 오히려 신성 군국주의에 기름을 부었다.
“군을 정치에서 배제하면 반란이 난다. 그렇다면 군을 ‘합법적으로’ 정치의 중심에 두자”
결국 군의 정치적 개입을 합법화 되었고 천황을 조종하는 가장 강력한 통치세력으로 부상했다. 명목 상 천황은 정치 위에 존재하는 신성불가침이 되었고 군이 통치를 정당화 시켜 주는 장치가 되었다. 통제파의 장악은 신성(神聖) 군국주의(軍國主義) 완성을 천하에 공포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듬해 중일전쟁이 일어나 대륙정벌이 시작 되었다.
칼로 상징 되는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는 암살을 통해 갈등을 제거하는 수단의 역사이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제거하고 권력을 얻은 도쿠가와 막무는 260년을 이어가며 권력에 대한 배신과 암살을 막는데 모든 동력을 쏟아 부었다.
사무라이 암살은 참으로 깊고 넓다. 도쿠가와 막부시대를 끝장내고 문명개화의 시대를 열었던 이념적 사상적 설계는 사쿠마 쇼잔의 시작으로 요시다 쇼인으로 이어지고 사카모토 료마에 의해 건설되고 후쿠자와 유키치에 의해 화려한 꽃을 피웠다.
그 이념적 설계자들의 위상은 조선시대 퇴계 이황과 같았으며 국부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 같은 새로운 시대 이념적 설계자 또는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과 같이 국가 정체성을 세웠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쿠마 쇼잔, 요시다 쇼인, 사카모토 료마는 모두 칼에 의해 제거 되거나 암살을 당했다.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킨 3대 영웅 오쿠보 도시미치, 사이고 다카모리는 칼에 의해 제거되었고 암살을 당했다. 기도 다카요시는 동료들이 칼에 의해 제거 되고 암살 되는 것을 보고 43세에 요절 했다.
17살의 청년이 사무라이 칼로 아사누마 이네지로 수상을 담구는 사진
이러한 사무라이 암살은 현대 국가로 발전하며 사라진것 같지만 최근 아베 수상이 암살 되며 여전히 사무라이의 암살 문화는 진행 중이다. 1960년 아사누마 이네지로 수상은 연설장에 뛰어든 17살의 극우 청년에게 칼에 찔려 암살 당하는 등 일본 역사에서 국가 수반으로서 수상이 암살 당한 경우가 8명에 이른다.
이러한 사무라이의 암살 문화는 국내 인사에 그치지 않았다. 일청전쟁 이후 패전국으로서 전쟁 배상금을 협상 하기 위하여 이홍장은 일본을 방문했다. 시모노세키에서 우익청년이 쏜 총알이 이홍장의 얼굴에 박혔다. 이홍장은 얼굴에 총알이 박힌채 붕대를 칭칭 감고 협상장에 나타났다.
일러전쟁 직전 러시아의 황태자 니콜라이2세가 일본을 방문했다. 이에 격분한 경찰관이 쏜 총에 니콜라이 황태자는 머리 부상을 당했다.
암살로 얼룩진 일본의 역사를 들여다 보면 칼의 문화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역사의 주요 현장에는 언제나 암살이 있었다. 그 어느 역사에도 찾아 볼 수 없는 화려한 암살 퍼포먼스는 일본의 역사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은 국제적으로 국가가 저지른 암살로 기록 되고 있다. 서구세계에서 국가 간의 전쟁은 최소한의 규칙이 있었다. 선전포고와 외교단절, 전쟁상태의 공지라는 3가지 룰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일종의 국가간의 관례이며 계율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진주만 공습은 미국과 협상을 하는 척 외교관계를 유지하며 뒤통수를 치며 기습한 전형적인 사무라이 암살이다. 다만 사무라이가 아니라 국가가 나서 저지른 암살이며 미국은 가장 비겁한 행위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미국의 일본에 대한 인식으로 태평양 전쟁이 둘 중의 하나는 반드시 죽어야 하는 가장 잔인한 전쟁으로 기록 되고 있다.
미국은 등 뒤에서 총을 쏘는 행위를 가장 비겁한 행동으로 생각한다. 개신교 가치에 프론티어 개척 정신으로 총을 들고 서부개척을 통해 만들어진 미국식 카우보이 정신은 총은 정면에서 쏜다는 룰이 만들어졌다.
등 뒤에서 몰래 총을 쏘는 암살 행위는 가장 혐오하는 비겁함의 상징이었다. 진주만 공습은 외교적 협상 중에 등 뒤에서 몰래 총을 쏜 가장 비겁한 행위로 미국 사회는 받아 들였고 이러한 분노는 그 어떤 협상도 허락 될 수 없었고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어야 하는 전쟁이 된 것이디. 사무라이 칼이 선전포고도 없이 몰래가서 진주만을 공습한 것은 전쟁사에 비겁한 전쟁으로 일본에게는 치욕의 역사이고 비겁했다.
당초 진주만 공습 후 협상을 하려던 사무라이의 전략은 암살을 통해 문제를 제거하려는 사무라이식 문제 해결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참을 수 없는 카우보이의 분노를 일으켰고 그 결과 아직 까지는 일본은 인류사에 유일하게 원자폭탄을 맞은 국가로 남았다.
일본은 칼로 사람을 죽였지만 개조선 개씹선비는 말과 모함으로 사람을 죽였다. 조선시대 더러운 개씹선비의 수 많은 사화는 서푼어치 지식도 되지 못하는 미개한 성리학으로 세치 혀를 놀리며 말로 사람을 죽였다. 개조선 군왕 중 내가 가장 야비하고 더러운 놈으로 생각하는 천하의 등신 선조는 임진왜린이 일어나기 3년전 기축옥사를 일으켜 수천명을 잡아 죽였다.
정여립이 모반을 계획 했다는 이유로 일으킨 기축옥사는 개씹선비들의 세치혀가 사람을 어떻게 죽이는가를 확실하게 보여준 개조선 개씹선비와 성리학의 수준을 보여준 전형적인 사건이다.
벼슬도 없는 촌구석 일개 개씹선비에 불과한 정여립이 군주를 때려 잡고 정권을 뒤 엎으려 했다는 것은 지나가는 개도 웃을 개소리에 불과하다, 정치적 후원 세력도 없었던 촌구석 개씹선비가 두려워 최소한 수천명을 잡아다 죽인 명분이 성리학이었다.
군주의 권력욕, 동인 서인의 개밥그릇 싸움이 정여립을 역모의 얼굴로 만들고, 꼴리면 누구나 잡아다 죽이는 살육잔치를 벌린 것이다. 더구나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3년전 살육잔치를 벌린 개조선과 성리학 보다는 사무라이의 암살문화가 이성적이라 할 것이다.
더럽고 미개한 개조선 개씹선비의 야비한 성리학 주둥아리 문화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태에서 드러난다. 뇌물 주었다는 이재용은 무죄고 뇌물 받았다는 박근혜 대통령은 22년형을 받았다. 5천만 조센징은 국가적 쪽팔림에 자지 잘라 지나가는 개아가리에 물려주어야 할 정도로 국가적 개망신이다. 그러나 더러운 개조선 개씹선비의 성리학에 절여진 조센징은 그러한 개쪽팔림은 천성적으로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빨갱이 인민재판질이 진행 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 몰이는 전형적인 개조선 개씹선비의 더러운 세치혀의 아가리질이 만들고 있다. 여하튼 조센징은 쪽랄리다.
죄가 있든 없는 따지지 않고 자신의 판단으로 또는 독선으로 한놈을 죽여 사회적 제물로 바치머 문제를 덮는 사무라이 문화를 화(和)의 문화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를 덮기 위해 몰래 칼을 들고 암살하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일본 특유의 가면적 국민성을 만들기도 했다. 상호존중과 평화, 부드러운 인간관계로 미화 되기도 하지만 이면은 책임을지지 않겠다는 이기적인 계산이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일본인은 책임을 지는 것에 소극적이다. 공손한 말씨로 애매모호한 답변만 하는 일본인의 모습을 예의 바르다 라고 말할 수 있지만 철저하게 문제를 회피하려는 무책임한 국민성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책임지지 않으려는 이러한 국민성은 도전을 회피하는 문화로 이어져 오늘날 일본은 아날로그 사회에 묻혀버린 2등국가로 추락하게 만든 원인이 되고 있다.
암살을 비겁한 행위로 볼 것은 아니다. 칼날이 춤을 추고 죽이는 것이 내가 살아야 하는 칼의 문화에서 최소한의 희생으로 갈등과 문제를 막으려는 지혜로 보아도 될 것이다.
사무라이의 칼이 카메라 렌즈를 깍는 도구가 되었을 때 최고의 카메라가 세계를 석권하는 축복이 되었지만 밥먹고 똥사는 살아 있는 신 천황과 만나며 신성 군국주의 망령이라는 걷 잡을 수 없는 죄악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개조선 개씹선비의 더러운 성리학 보다는 사무라이 칼이 그나마 사회적으로 낫다는 생각이다. 사무라이의 칼과 암살을 통해 일본을 비하하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다. 사무라이의 칼과 암살은 일본을 분석하는 중요한 코드이며 이를 설명하기 위해 쓴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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