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중산간 산록도로 구석 한켠에 있는 박진경대령 추모비 양쪽에 이번에 제주특별자치도와 4.3단체 공동 이름으로 설치한 '바로 세운 진실'이라는 제목의 안내문. 그 내용 가운데 ‘박진경 연대장이 조선 민족 전체를 위해서는 30만 도민을 희생시켜도 좋다. 양민 여부를 막론하고 도피하는 자에 대해 3회 정지명령에 불응자를 총살하라고 명령했다’ 등의 내용도 안내판에 담겨있다.
박진경, “공산 폭도 100명을 놓치더라도 무고한 주민이 한 명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김달삼, “30만 도민을 위하여 박(진경) 대령을 살해했으면 좋겠다.”
제주4·3사건을 한마디로 정의하거나 규정하기엔 너무나 엄청난 사건이다. 역사가 존재의 기록이라면 사실과 허위는 구별되어야 한다. 로마 시대 정치가 키케로는 “歷史家의 제1계명은 결코 거짓을 적어서도, 편견과 아집이 가미되어서도 안 된다”라고 했다.
4·3사건의 시작은 남로당 핵심 세력과 그 추종자들이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하기 위하여 그해 5·10 제헌 선거를 못 하게 1948년 4월 3일 새벽 도내 24개 경찰지서 가운데 12개 지서를 일시에 무장 습격했다. 정치권력에 의한 4·3사건 역사 왜곡이 점입가경이다. 살아가는데 가장 어색한 것은 정치 권력으로 어색한 법을 만들고 어색하게 폼 잡는 일이다. 어색한 특별법으로 어색하게 성역을 만들고 어색하게 국민을 파는 것처럼 어색한 일은 없다.
끼리끼리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면서 일반화하여 섞이려고 애쓰지만, 삶의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섞이는 것이 있고 섞이지 않은 것이 있다. 4·3특별법처럼 법 위에 법으로 아무리 포장지를 바꿔 성역화하면서 정치권력으로 역사를 왜곡해도 4·3사건은 남조선노동당 공산당이 일으킨 폭동·반란 사건이다.
최근 박진경 대령 국가유공자 취소 문제와 관련하여 일부 언론과 좌익 4·3 단체는 박진경 대령이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30만 명을 희생시켜도 무방하다”라고 선동하고 있다. 특정한 사상, 이념, 주장을 대중에게 전파하여 여론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고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을 조작하는 전형적인 프로파간다(Propaganda)이다.
4·3사건은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중앙당과 남로당 전남道당의 지령받은 남로당 제주島당 공산주의자들이 대한민국 건국을 저지하고 북한 김일성 정권의 노선에 따라 공산 통일을 위하여 일으킨 폭동·반란 사건으로 진압 과정에서 쌍방에 의해 무고한 민간인이 다수 피해를 보았다. 진압 과정에서 나타난 일부 반인권적인 사례 때문에 자유민주주의의 국가 건설을 거부하려는 그 반란의 목적을 정당화할 수 없다.
폭동 반란을 진압하기 위하여 부임한 제9연대장 박진경 대령이 같은 부대원 남로당 프락치 문상길 중위와 그 일당에 의하여 살해당했다. 그들은 박진경 대령의 강경 진압 방침에 반발 때문이었다고 한다. 박진경 대령은 “공산 폭도 100명을 놓치더라도 무고한 주민이 한 명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라는 선무(宣撫) 작전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좌익 4·3 단체와 일부 언론은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30만 명을 희생시켜도 무방하다”라는 주장을 보도하고 있다. 이 주장에 관하여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 왜 나왔을까.
다음은 제민일보 4·3 취재반이 출판한 「4·3은 말한다」에서 언급된 내용이다. 참고로 이 언론 매체는 제주4·3사건이 오늘에 이르는 방향 전환의 일등 공신이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는 좌익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는 언론이다.
① 문상길의 진술 내용
전라도 출신의 문상길(文相吉, 당시 23세) 중위는 모슬포 9연대 창설 요원으로 소대장을 거쳐 중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육사 3기인 그는 초창기 9연대 모병의 실무 장교로 활동했으며 제식훈련을 잘 시키기로 유명했다. 9연대 출신인 한 병사는 “문상길 중위는 미남형으로 제식훈련도 잘 시켰고, 절도 있는 태도 때문에 부하들도 잘 따랐다”라고 회고했다. 그는 그 무렵 서귀포 처녀와 열애에 빠졌다. 그의 애인은 제주고녀를 나온 고양숙(高良淑, 18세)이었다. 그의 연애 소식은 부대 안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중략〉…
박(진경) 대령 암살 사건 수사대는 즉각 문 중위와 문제의 하사관을 체포, 수사에 박차를 가했다. 당시 문 중위는 병이 있다는 핑계로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중략〉…
…〈중략〉… 암살 사건의 혐의자들이 속속 체포됐다. M-1 소총으로 직접 박 대령을 쏜 범인은 부산 5연대에서 파견됐던 손선호(孫善鎬, 당시 22세) 하사로 밝혀졌다. 이 밖에도 암살 동조자들로 양회천(梁會千, 25) 이등 상사, 신상우(申尙雨, 20) 일등 중사, 강자규(姜子奎, 22) 중사, 배경용(裵敬用, 19) 하사 등이 체포됐다. (제민일보 4·3 취재반이 출판한 「4·3은 말한다」 204~205쪽) 전예원 1995. 3. 20.)
② 문상길 기소 이유
…〈중략〉… 이 군법 회의는 군인들과 그 관계자들만 참관할 수 있는 군법회의였으나 사건이 워낙 컸고 정치적인 성격도 띠어 연일 초만원을 이루었다. 이 재판정에는 참고인 자격으로 김익렬 중령과 문상길 중위의 애인인 고양숙도 출석, 눈길을 끌었다. 검찰관이 밝힌 기소 이유 골자는 다음과 같다.
문상길 중위는 4월 20일 경 동 연대 근무 고승옥(高承玉)의 연락으로 제주도 폭도대 대장 김달삼과 만나 경비대원 40명을 도주케 하고, 5월 중순 경에는 제2차로 박 대령을 살해하라는 지령을 받았다. 6월 17일 밤 박 대령이 중령에서 대령으로 진급한 것을 축하하고자 제주 읍내 옥석정이라는 요릿집에서 잔치를 벌였을 때 죽이려다가, 술이 취하여 잠든 그를 동 18일 새벽에 같은 대원 손선호는 사수가 되고 배경용은 전지를 켜 들고 신상우·강자규·양회천 등은 현장 주위를 지키는 가운데 거침없이 박 대령을 향하여 M-1 라이플 총알을 발사하여, 그는 마침내 28세를 일기로 하여 대령으로 승진한 지 몇 날 안 되어 젊은 아내를 서울에 두고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하수(살해)한 문 중위 이하는 법의 심리를 받게 된 것이다.
박 대령 암살 사건 군법회의에서 피고인들은 김달삼의 지령설을 부인했다. 그들은 범행동기에 관하여 “우리들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며 다른 정치적 목적도 없었고 국가와 민족을 수호하는 군인으로서 국가와 민족을 해치는 민족 반역자를 총살한 것은 당연한 일이며 그것이 군인의 임무‘라고 주장했다. (김익렬 주장 내용 「4·3은 말한다」② 351쪽)
문(상길) 중위는 8월 12일 검사의 심문에 2차례 김달삼과 만난 것을 인정하면서도 지령설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김달삼이 대정중 교사로 근무할 때, 대정중과 문상길의 9연대는 같은 구내에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구면이었다.) 제민일보 4·3 취재반이 출판한 「4·3은 말한다」 210~211쪽) 전예원 1995. 3. 20.
③ 문상길의 진술 내용
…〈중략〉… “4월 3일 제주도 소요가 봉기한 이후 전 연대장 김(익렬) 중령 재임 시에는 경찰의 폭도와 도민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에 대하여 경비대는 도민을 선무하기 위하여 노력하여 그들의 신뢰를 받았으나 박 중령 부임 후로는 경찰과 협력하여 소요 부대에 무조건 공격 명령을 내렸으며, 도민도 탄압하기 시작했으므로 도민들의 신뢰를 잃게 되고 경비대 내부 공기도 동요하였다. 나는 김(익렬) 중령의 동족상잔을 피하는 해결 방침에 찬동하였으며 처음으로 김달삼과 만난 이유는 김(익렬) 중령과 회견시키기 위해서였다.
두 번째 만났을 때는 박 대령 부임 후였는데 그때 김(달삼)은 “30만 도민을 위하여 박 대령을 살해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였을 뿐 아무런 지령을 받지 않았고 김(달삼)과 두 번이나 만난 것은 30만 도민을 동족상잔으로부터 건지기 위하여 경비대의 근본이념 ‘국가지상’ ‘민족지상’의 정신으로 원만 해결책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서울신문』1948. 8. 13. - (제민일보 4·3 취재반이 출판한 「4·3은 말한다」 212쪽) 전예원 1995. 3. 20.)
4·3사건 당시 남로당은 이미 소대, 중대, 인민유격대, 자위대, 연대, 지대 등 군단과 훈련소, 특공대, 특경대, 작전 교육부, 총사령관, 군사부 총책, 인민군 사령관이란 군대 조직과 부대 명칭을 갖추고 무장 훈련을 했다. 도당(島黨) 및 12개 면당(面黨) 사령부를 두고 대한민국을 '괴뢰정부', '적', '원쑤'로, 이를 진압한 경찰을 '검은 개', 대한민국 국군을 '노랑 개'라 부르면서 자신들이 인명 살상한 실적을 전과(戰果)라 칭할 정도로 군대 조직을 갖추고 있었다.
어느 나라 역사에 군대 조직을 갖추고 국가 공권력에 맞서는 민중봉기 역사가 있었는가? 4·3폭동·반란을 국가 공권력이 진압한 것을 두고 국가 폭력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당시 폭동·반란을 정당화하려는 남로당의 反대한민국적인 이념과 같다. 국가 공권력은 법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합법성(合法性)을 갖는다. 또한 이런 정당한 이유를 갖는다는 점에서 정당성(正當性)도 부여된다. 국가 공권력을 암살하고도 모자라 누가 박진경 대령을 부관참시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