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종교 이야기 (3)
나는 제주도 동북쪽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마을 사람들 더러는 바다를 바라보며 살았고 더러는 한라산을 쳐다보며 살아가는 반농반어의 바닷가 마을이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5.16혁명은 있었지만, 내가 막 태어났을 때는 아직 박정희 혁명의 은총이 마을에 당도하기 전이었다. 전기도 수도도 없는 마을의 바다와 들판을 뛰어다니며 나는 유년 시절을 보냈다.
동네 전부가 초가집이던 마을에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두세 채 있었다. 하나는 동네 부잣집이었고, 하나는 절간이었고, 하나는 심방집(무당집)이었다. 절간은 마을과는 동떨어져 있었고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어서 그랬는지, 어디든 쏘다니던 우리들은 동네 절간에는 자주 가보지 못했다.
심방집은 동네 안에 있었고 그집 아들이 세 살 위 형님 친구라 자주 어울려서 그런지 무당집 법당 안은 자주 구경할 수 있었다. 절간 법당 분위기와 별반 다르지 않아 제단에는 불상이 모셔져 있었고 배경에는 휘황한 탱화들이 걸려있던 것이 기억난다. 어릴 적에 놀랬거나, 어디가 심하게 아플 경우는 무당이 푸닥거리를 해주는 것은 다반사였다.
어릴 적 아버지는 불교에 심취하셨던 것 같다. 집에서는 목탁을 두드리며 불경을 읊으셨고, 동네 사람들이 합동으로 변두리 초가집을 얻어 매일 저녁 합동으로 불경을 읊기도 했다. 가끔 충북 단양의 구인사에 불공을 드리러 가시고, 내가 나이가 들어 아버지가 시내에 살게 될 때는 삼양 문강사에 다니셨다.
내가 사십대 중반쯤이었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를 모시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며느리에게 뜬금없는 말을 꺼내셨다.
"개똥이 어멈아, 이거 누구 줄 사람 있거들랑 주거라"
아내의 눈동자가 휘둥그래졌다. 아버지가 내놓은 물건은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는 보물 1호, 바로 목탁이었다.
"아부지, 왜요? 왜 그러시는데요?"
"부처님 끗발이 약한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교회를 다녀볼라고 한다"
'부처님 끗발이 약한 것 같다.' 아마도 아버지는 이런 생각을 하신 것 같았다. 우리 집안은 유교적 가풍이 조금 있었다. 관혼상제를 중시하고 장남을 중시했다. 장남 사업이 조금 되는 것 같아 보이자, 아버지는 장남이 잘되어야 집안이 잘된다고 하시면서 장남의 사업에 온 재산을 쏟아부었다. 그러다가 IMF를 만나 사업이 쓰러지자 집안도 쓰러졌다. 장남에 올인했던 아버지의 꿈도 무너졌다.
아버지는 평생 독실한 불교 신자셨다. 거의 매일 목탁을 두드리며 불경을 외셧고, 집안의 행복과 무사 안녕을 부처님께 기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아버지의 염원을 외면했고, 고난의 가시밭길을 내려주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부처님 끗발이 약한 것 같다고 하신 것이다. 물론 아버지 기도 끗발이 약했거나 예수님 끗발도 우리 집과는 인연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평생 시골에서 농사만 짓던 아버지는 전 재산을 잃고 시내로 오셨다. 시내에는 파산의 여파로 빚만 물려받고 신용불량자가 된 작은 아들들이 있었다. 아버지는 며느리들의 눈치를 보며 아들 집들을 떠돌다가 우리 집에 정착했다. 다행히 아내와 아버지는 코드가 잘 맞았다. 옷 몇 가지만 들고 온 아버지에게 목탁은 재산 1호였다.
농사만 짓던 시골 노인이 시내의 아파트로 오자 할 일이 없어졌다. 유일한 위안거리는 근처에 동네 노인당이 있다는 것뿐이었다. 아버지는 노인당에 부지런히 나가시면서 아마도 노인당 할머니들의 세뇌에 넘어가신 것 같았다. 그래서 아버지는 평생 의지하던 부처님을 버리고 예수님을 믿기로 했던 모양이다. 아마도 예수님 끗발보다도 노인당의 할머니 외모가 끗발이 더 있어서 아버지 결정에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어느 날은 아버지가 계단에서 내려오시다 마지막 계단이 약간 깊었는지 발을 헛디디며 쓰러지는 낙상 사고가 있었다. 얼굴과 앞니에 부상을 입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사고였다. 이 사고가 또 아버지에게는 어떤 영감을 주었던 모양이다. 다시 아버지는 며느리를 불렀다.
"개똥이 어멈아, 그때 목탁 다시 구해줄 수 없겠니"
"아부지 왜요? 무슨 일 계신 거예요?"
"내가 자빠진 것을 보니 아무래도 부처님이 노하신 모양이다."
아버지 외도(?)는 오래가지 못했다. 아버지 성격을 아는 며느리는 다행히도 목탁을 버리지 않고 고이 모셔두고 있었다. 다시 아파트에 목탁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시 예전처럼 층간 소음을 걱정해서 저녁 8시 이후에는 목탁을 두드려서는 안 된다는 며느리의 규제도 다시 부활했다. 부처님과 예수님이 낮 가리지 않고 교대로 자유롭게 드나드는 우리 집이었다.
(계속)
비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