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보살은 인간보다 많은 부처와 보살을 만들어 염병지랄을 떨은 대승불교의 개구라를 상징한다. 관세음보살은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을 가지고 중생을 살피는 중생구제의 상징이다.
지장보살은 더욱 결연하다. 이미 부처의 경지에 오른 지장보살은 열반을 하지 않고 모든 중생의 구제를 하겠다고 서원한다.
그 의지는 결연하다.
“지옥 중생이 모두 구제되기 전에는, 나는 결코 열반에 들지 않으리라.”
불교 경전에는 세개의 시대로 정리되고 있으며, 정법시대(500년), 상법시대(1,000년) 후에 말법시대(末法時代)가 도래한다고 되어 있다. 이미 석가모니가 늙어 소화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나서 열반한 시점부터 정법과 상법시대 1,500년이 지났고 지금은 말법시대이다. 말법시대가 지나면 아미타불(미륵불)이 도솔천에서 내려와 세상의 모든 중생을 구제하고 마침내 불국정토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말법시대의 기간은 어느 정도일까?
불가에서는 겁(劫, kalpa)이라는 시간 단위를 쓴다. “장아함경(長阿含經)” 등에 따르면, 1겁(劫, kalpa)의 시간은 인간의 상상이 미치지 못하는 시간이다. 장아함경에서 규정한 1겁의 시간은 다음과 같다.
“하늘에서 천 년마다 천사가 내려와 비단옷 한 겹을 스쳐 산이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의 시간”
아함경은 소승불교를 대표하는 경전이다. 부처가 직접 설법한 것을 모아 엮어서 만들었기 때문에 전승된 말씀(또는 교범)”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부처시대 이미 1겁이라는 무량시간을 이야기 하고 있다.
대승불교에서는 이러한 추상적 시간을 소겁, 중겁, 대겁으로 구분하여 수치화하고 있다. 대략적으로 소겁은 1600만년으로, 소겁이 20개 모인 시간을 중겁으로 3억2천만년, 대겁은 중겁 4개가 모여 12억 8천만년으로 표현하고 있다.
미륵불이 모든 중생의 구원을 위해 도솔전에서 내려오는 것은 4.4대겁이 지난후라는 것이다. 이를 수치화하면 석가모니 부처가 배탈로 죽은 날로부터 56억 7천만년 후라는 것이다.
미륵불의 절대적 능력을 원력(願力)이라 하며 대승불교 타력구제를의 상징적 존재이다. 모든 중생이 구원받는 미륵불이 내려 오는 날 비로서 지장보살은 미뤄 두었던 부처가 되는 열반에 드는 날이 되는 것이다.
타력구제는 악인, 선인, 죄인, 호로새끼, 믿는자, 믿지 않는자 가리지 않고 모든 인류가 즉석에서 깨달음을 얻어 구제를 받는 전인류의 부처화와 전우주의 극락정토화가 이루어지게 된다. 형수 가랑이를 사시미칼로 쑤시겠다는 찢재명도 부처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믿는다고 천국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21).”
흔히 인과응보라는 말을 불교에서 나온 말이라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부처는 인과응보라는 말을 한적이 없다, 즉, 착하게 살면 복 받고, 악하게 살면 벌 받는다는 말을 한적이 없다, 그런식의 논리라면 인간 개백정 개정은 집구석이 아직도 건재하고, 개일성이나 개정은이 호의호식하며 살다 천수를 누리고 뒈진 것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 뿐이랴 이세상에 악한 놈은 차고 넘치는데 인과응보로 벼락 맞아 죽는 경우를 본 적도 없다.
기득권을 가진 악한 인간이 그것을 빼앗으려는 또 다른 악한 인간으로부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개구라인 것이다. 부처는 죄에 대한 단죄를 묻는 인과응보를 말하지 않았고 다만 존재의 법칙인 “연기(緣起)”를 가르쳤을 뿐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하므로 저것이 생한다.”
부처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재론에 대한 깊은 철학적 성찰을 남겼을 뿐이다. 그러한 철학자는 소크라테스부터 개똥철학자에 이르기까지 인류역사에 차고 넘친다,
부처의 존재론은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도, 독립된 존재도 없을 뿐이다. 모든 존재는 인연(원인+조건)의 결합으로 생겨나고, 그 인연이 흩어지면 사라지는 것이다 라는 삶의 존재의 구조(ontology)에 관한 진술이었다. 이것은 선하고 악한 도덕적 문제가 아니다. 즉 세상의 모든 현상은 조건적이므로 실체가 없을 뿐이며 이것이 무아(無我)이다. 이것이 석가모니의 깨달음이고 그 깨달음은 호랑이 담배피던 먼 옛날 한 인간이 불교철학의 출발을 알린 것이다.
그토록 자랑하는 고려의 팔만대장경은 불경을 집대성 한 것이다. 불교 철학의 모든 사유와 사변을 집대성한 것이기도 하다. 즉 시대와 시간 속에 축척 된 철학적 사유(思惟)와 사변(思辨)이 더해지고 재편집되며 집대성된 철학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렇게 석가모니가 고민했던 존재론적 고민을 모아 6,791권의 책과 5,200만자의 팔만대장경이 남게 된 것이다.
나는 불교가 모태신앙이었다. 이유도 모르고 부디스트로 태어났고 자랐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부디스트가 아니고 불교 철학자로 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불교 철학자가 된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2500년전 배탈 나서 죽은 늙은 철학자의 철학을 배웠으니 당연한 것이다.
그래도 수십년간 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살았던 것은 인생의 어떠한 지혜와 깨달음, 또는 복이 불교로부터 받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불가에는 줄탁동시 (啐啄同時)라는 말이 있다. 선문답(禪問答) 또는 공안(公案)의 하나이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려고 발버둥 칠때 어미 닭이 계란껍질을 쪼아 숨구멍을 내주어 병아리가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즉 불경, 고승 또는 도력이 높은 스승에게 이치를 깨닫게 어미 닭이 계란을 쪼듯 그런 기회가 있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졌다.
보통 불가에서 땡중이든 고승이든 또는 수행자이든 신도이든 깨달음을 얻게 되면 한소식 들었다라고 한다. 그러나 깨달음은 개소리이고 그딴 것 없다. 그 대단한 성철 스님이 세상에 도움 되는 것을 눈꼽만큼이라도 남겼는가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없다. 그저 높은 땡중으로 추앙 받다 갔을 뿐이다.
시장 난전 노점상 할머니는 나물이라도 팔아 가족의 생계를 도왔는데 성철 그 사람은 뭘했는지 모르겠다. 깨달음 그것은 신기루에 불과할 뿐이고 짱깨식 선불교가 남긴 또라이 새끼들의 개지랄일 뿐이다. 따라서 깨달음 그것은 영원한 개구라에 나이롱 뻥, 사기꾼의 염병육갑질이라는 것을 내가 너무 늦게 깨닫는 바람에 수십년 불자였었다, 수십년 세월이니 땡중 놈들에게 꽤 돈질도 했던 것 같다, 그저 절학에 불과한 불교를 신앙으로 생각했던 내가 등신인 것이다.
부처의 철학은 간단하다. 인간에게는 생-노-병-사의 인간사에 108가지 고민이 있다. 그 고민을 쌩까라 그러면 이것 저것 신경 쓸 것 없고 편한 삶을 살수 있다. 단지 그것뿐이다. 불가의 개구라는 그 한마디로 정리된다.
보리수 깨달음을 얻은 35세의 젊은 고다마 시타르타가 당장 부처가 되어 도솔천으로 가지 않고 왜 80세나 되어서 늙어 소화력도 없으면서 음식을 먹다 배탈나서 죽을때까지 인간세상에서 왜 살았느냐는 것이다. 열반한 것도 아니고 그냥 늙은 노친네의 죽음일 뿐이다. 따라서 33천도 도솔천도 개소리일뿐이다.
죽자 사자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이유가 저승의 영혼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불경에는 단 한마디도 “영혼”이라는 말이 없다.
부처는 전생과 윤회가 있는가에 대한 제자의 질문에 답한다
“나는 그가 전생에 무엇이었는지 묻지 않는다. 나는 그가 지금 무엇을 행하고 있는가를 본다.”
또한 사후세계의 존재에 대해 묻는 제자의 질문에도 답한다.
“그것은 너의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길과 무관하다. 나는 그 길만을 말한다”
존재론에 대한 부처의 형이상학적 철학이 용수보살(나가르 주나)에 의해 대승불교화 되고 종교성이 침투하게 되었고 대승불교가 다시 짱깨로 넘어가면서 부처의 존재론적 사유인 “연기(緣起)”를 도적질 하여 왜곡 날조한 후 비로서 미개하고 천박하며 무식한 짱깨에 의해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말이 탄생한다,
부처의 업(業, karma)은 원인(행위)이 결과(경험)를 낳는 인과의 연속성을 설명하는 것이다. 원인은 의도 있는 행위의 결과 또는 에너지를 뜻하는 것으로 불교에는 “신(神)의 심판”이나 “벌을 주는 존재”가 없다. 다시 말하면 연기와 업은 화를 내면, 마음이 괴로워지고 주변 관계가 파괴된다. 또는 남을 속이면, 불신과 두려움이 내 안에 남는다. 라는 원인과 결과의 존재론적 고민이었을 뿐이다.
이를 짱깨식으로 날조와 왜곡되며 인과응보식 벌주는 신이 만들어지고 짱깨의 도교식 염라대왕(閻羅大王)이 만들어진다.
석가모니는 영혼을 부정(soul)을 부정하며 영혼에 상응하는 것으로 의식의 연속(stream of consciousness)을 인정한다. 의식은 물결처럼 이어질 뿐, ‘나’라는 고정된 실체는 없으며, 의식이 이어질 뿐이다라며 바라문교의 핵심 교리인 윤회의 자리를 채웠다,
쉽게 말하자면 다 타서 꺼져 가려는 촛불이 새로운 초로 옮겨지고 이전의 촛불은 소멸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불은 옮겨 졌지만 초는 동일한 초가 아니라 새로운 초이며 이전의 초는 소멸 된 것이다. 그리고 불이라는 정체성은 불을 옮겨준 이전의 초라는 조건으로 다음으로 이어졌다는 존재의 연속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존재론적 고민과 사유는 희랍철학에서 흔하게 보는 철학적 사유였으며 영혼의 순환 같은 철학적 사유도 풍성했다. 하지만 종교화 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대승불교는 부처의 철학적 사유에 강력한 종교성의 옷을 입혀 수많은 부처와 나한, 보살을 만들고 스스로 깨우쳐 해탈하라는 부처의 가르침을 왜곡 날조하며 보살이나 나한, 부처와 같은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존재가 너를 구원할 것이라고 새빨갛게 개구라까며 종교화 된 것이다. 소승불교의 자력구제가 대승불교의 타력구제로 바뀐 것이다. 그 타력구제를 정당화 하기 위한 종교성은 부처의 연기라는 철학적 사유를 너 나뿐짓 하면 벌 받는다로 죄와 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둔갑 시킨 것이다.
짱깨의 역사를 들여다 보면 구라와 날조, 뻥과 허풍의 도가니이다. 저서 한권 없는 제갈량이 중국을 대표하는 위대한 인물로 또는 당대를 아우르는 인물로 묘사 되는 짱깨의 구라와 뻥은 가공할 수준이고 그 버르장머리를 이어 받은 개조선 개씹선비가 초등학생 노트 한권 분량도 되지 못하는 미개한 지식을 모아 하늘의 이치를 아는 양 천지인 어쩌고 개구라 깐 것이 개조선 개씹선비 그 더러운 새끼들이다.
따라서 인과응보라는 말은 저기 미개한 개짱깨가 부처의 연기를 도적질하여 만들어낸 개소리이며 뻥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인간 개백정 개정은이나 개일성이 살아서 죄를 받지 않고 죽어 다음생은 벌레로 기생충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인과응보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환생, 또는 윤회가 있을까?
내가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지금 세계 인구가 80억명이 넘어가는데 불과 100년전에는 10억명이 안되었을 것이다, 도대체 지금 80억명의 사람은 누가 윤회를 한 것인지 도무지 계산이 되지 않는다. 그간의 죽은 모든 인류가 지금 시대 떼거리로 환생한 것이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악이 본성인 인간은 두려움이 죄를 없애지는 못한다. 절대자의 뜻에 따라 살아야 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교회 다니며 또는 크리스찬이라며 죄를 짓는 일은 흔하다. 죄인도 많다. 다만 악이 본성인 악질 인간이 교회에서 “이 죄인을 회개 합니다. 죄인을 용서하소서” 하면 착하게 살려고 의지를 다질 수 있다. 하지만 감옥에 가면 죄지은 놈들 뿐인데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며 억울하다고 하는 놈들 뿐이다.
죄에서 벗어나는 길은 죄에 대한 각성, 죄인이라는 인식부터 시작한다. 교회는 그런 곳이다. 죄인에 대한 각성은 시작일 뿐이고 그다음은 하나님에 대한 스스로의 몫이 생길 뿐이다.
교회 다닐려면 십일조 열심히 하고 더 내야 한다. 성직자 월급도 주고 건물도 지어야 하고, 곧 겨울인데 난방도 해야 하고 그렇다고 건물주처럼 장사 안 되서 적자보는 소상공인 착취하며 짭짤한 임대료 받는 것도 아니다. 건물주도 한마디 할 것이다. 땅파서 건물 지은 것도 아니고 건물 짓느라고 건축비 대출이 얼마이고 은행 대출 이자가 얼마인데 개소리 하냐고 할 것이다. 그것이 세상인 것이다. 저마다 가지의(自己義)에 따라 살아갈 뿐이다
얼마전 저격 당한 찰리커크가 남긴말을 유튜브에서 들었다.
"컵이 스스로 물을 만들어 채울 수 없듯이 이성은 진리를 만들지 못하며, 하나님 아버지의 진리를 담는 것이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지방의 그럭저럭 규모 있는 교회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대형교회와는 비교 되지 않는 중소 교회이다. 해외 파송한 선교사가 15명 정도이고 선교사 생활비, 선교비 보내주려면 헌금도 많이 해야 한다. 복음의 전파는 크리스찬의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십일조는 생명을 위해 기뻐서 내는 것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기독교문명으로 문명사적 대전환을 이끈 구한말 선교사도 다니는 교회의 후원과 지원으로 대한민국을 저 악랄한 개조선 개씹선비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
나는 아프리카의 가난한 고아에게 월드비전을 통해 얼마 되지 않지만 내가 인생에서 가장 가난해진 그 때부터 후원하고 있다.
후원의 계기는 한국의 선교사를 정리하다 육이오사변 때 굶어 죽는 고아들 구제를 위해 미국 교회와 교단의 지원을 받아 먹을 것을 길거리에서 나누어 주던 밥피어스 선교사는 먹을 것을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다 고작 몇분을 참지 못하고 굶주림으로 그자리에서 쓰러져 죽은 전쟁고아에 충격 받고 한국 선명회를 만들어 미국 교회에 실상을 알려 대대적인 지원을 받아 수 많은 전쟁고아를 살렸다. 밥피어스 목사의 그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서 후원을 시작했다. 한국선명회는 월드비전으로 바뀌어 세계의 고아들을 후원하고 있다.
얼마전 나는 아노디에게 성탄절 카드를 보냈다. 예수님의 은혜로 대한민국이 있고 예수님의 은혜로 아노디를 만났고, 만나지는 못했지만 너는 가슴으로 낳은 아들이라고 썼다.
이런다고 천국갈까?
선한 일을 하였다고 천국 간다면 세상에 천국 못갈 사람은 없다. 선한일을 했다고 천국을 갈 수 있다면 천국 못갈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이상한 것이다. 살면서 좋은일 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살인자도 선한 일은 한다. 헌금했다고 천국가면 재벌들은 살판 난 세상이다.
헌금했다고 천국 간다면 못갈 사람이 어디 있을까. 까지껏 적선하는셈치고 담배값 좀 아껴 교회에 주면 된다.
교회에 헌금하는 것 너무 배아파 하지 말고 교회에 헌금 하겠다는데 왜 배 아파 하는지 이해가 안된다. 남 똥싸는데 본인 항문에 힘 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쓸데 없는 오지랖이다.
스룹바벨 성전에 임하신 예수님께서 지금돈 2천원 헌금하는 가난한 어느 과부를 보고 가장 많은 헌금을 했다고 말씀하셨다.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누가복음 21장 3절)”
돈 주고 영생을 살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영생이 이승에서 베름빡에 똥칠 할때까지 살다가 다시 회복해서 다시 벽에 똥칠할 때까지 또살고 그렇게 똥칠하며 회복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악한 것이 정체성인 인간으로서 죽어봐야 저승이 보이는데 저승도 모르는 악한 인간이 영생이 얼마인지 어떻게 압니까?
소음이 심해서 환풍기를 장식품으로 쓰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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