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음식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영양과잉의 시대로 인해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 등 성인병이 창궐하는 시대를 살아가며 절제된 식생활을 통해 질병을 극복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형수 가랭이 연장질 하겠다는 찢재명이 나라를 절단내고 있어 과거 보릿고개가 다시 와서 의도적으로 절제 된 식생활을 하지 않아도 외부적, 환경적, 강제적 절제 된 식생활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애비나 자식이나 여자 가랑이만 보면 환장하는 찢재명 집구석이 대한민국에 절제된 식생활을 할 수 있도록 축복을 줄지도 모를 일이다.
식탐으로 인하여 30세 이상의 국민 40%가 당료병 전단계이고 16% 정도가 당뇨병을 앓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가속화 되어 향후 절반 이상 수천만명이 당뇨병을 앓게 될 것이라는 어두운 부자가 된 대한민국의 그늘이다.
나 또한 당뇨병 전단계라고 의사 선생님에게 강력한 경고를 받아 전면적으로 쌀밥과 한식을 버리고 지중해식 식단으로 식생활을 전면적으로 바꿀 예정이다. 식생활을 개선하느라 음식에 대한 공부도 많이 하고 식재료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고 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7년째 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식단으로 선정 된 지중해식 식단으로 전환하는 것이 한식을 먹는 것보다 비용이나 시간 등 가성비가 뛰어 나다는 것에 놀랐다. 염분 덩어리에 설탕 범벅인 한식을 먹는 것은 상당한 코스트를 요구하는 것 같다. 듀럼밀로 만드는 이탈리아 스파게티를 직접 조리해 먹으면 2,000~3,000원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라면에 계란 하나만 넣어도 그 정도 비용은 들어갈 것 같다.
더욱이 듀럼밀로 만든 스파게티는 혈당지수가 흰쌀밥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현미밥 보다도 훨씬 낮아 당뇨 혈당 관리에 최적의 음식이다, 더욱이 쌀밥을 먹으려면 소금을 들이 부어야 하는데 저염식에 최적화 된 음식이 스파게티이다.
그도 그럴 것이 천하의 등신새끼 문재앙의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김밥 한줄에도 5~6천원 하는 고물가 시대가 도래했고, 가처분 소득의 추락을 체감하며 살고 있다, 가처분 소득이 줄어 구매력이 박살난 고물가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제2의 삶을 살아갈 공간을 만드느라 야간 근무하고 퇴근하고 요즘 노가다에 지쳐 있다. 몸에 병은 얻었지만 영성훈련의 시간과 콘텐츠 크리에이터로의 변신을 계획하고 있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위기 속에서 새로운 직업을 찾아 좋아하는 글쓰기도 하고 공부하고 연구하게 되어 차라리 잘 된 것 같다. 결과는 하나님이 정하는 것 무엇을 하든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살 생각이다.
요리 또는 음식에 대해 공부하며 김밥에 대해 알아 보았다. 참 재밌는 것은 구라까는 것으로 세계 1등인 조센징들이 김밥이 한국 전통음식이라고 지랄발광하는 것에 놀랐다.
일본식 김밥인 노리마키가 일제시대 한국에 들어 오면서 상류층에 유행하며 김밥이 된 것인데 구라도 적당히 치고 사기도 적당히 쳐야지 이놈의 조센징은 아가리만 벌리면 구라가 자동으로 술술 나온다.
내가 노리마키를 처음 본 것은 30여년전 일본에 가서 먹어본 것이 처음이다. 당시 새우깡, 맛동산, 박카스 디자인까지 널로 도둑질하여 베낀 것에 충격 받았던 기억이 새록하다.
노리마키(のり巻き, Norimaki)의 노리(海苔)는 김을 뜻하며 마키(巻き)는 말다(roll)라는 뜻의 동사 마쿠(巻く)에서 유래한 말이다. 즉 김으로 말은 음식이라는 뜻이다.
일본에서 김을 먹기 시작한 것은 150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일본의 공식 문헌 중 가장 오래된 기록은 “続日本紀(속일본기, 797년 편찬)” 이미 노리(海苔, 김)이 등장한다. 김은 당시 천황에게 바치는 귀한 진상품이자 상류층 식재료였다. 에도시대까지 지금의 종이처럼 가공한 김이 아니라 채취한 채 그대로 말려 끓여 먹는 형태였다.
불교국가였던 일본은 육식을 금하는 전통 때문에 단백질은 바다 생선이나 해조류를 통해 섭취했다. 그러한 전통으로 인해 스시 등 생선 요리에 있어서는 일본을 따라갈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
채취한 그대로 말려 먹던 김이 종이처럼 얇게 가공 된 것은 에도시대에 이르러 가능해진다. 에도시대의 수도인 에도는 인구 100만이 넘어가는 당시 세계 최대의 도시였다. 조선의 한양이 고작 10만~20만 정도였을 때 열배에서 다섯배는 큰 도시가 에도였다. 그 당시 일본의 농업 생산성은 조선의 2배가 넘게 개처발랐고 학문, 문화, 문명은 일본에 비해 조선은 아프리카 미개국 수준이었다.
단위 면적당 쌀이나 농산물 생산성은 두배가 넘었고, 한양 길가에서 조선인이 바지까고 똥싸지를 때 에도는 상하수도 시스템을 갖추고 수세식 화장실이 사용 되고 있었다. 이런 일본에 조센징은 미개한 일본에 짱깨 문자 전해 주었다고 염병육갑을 떤다. 그러나 문자를 전해 주었다는 기록도 없고, 우리 문자도 아닌 세계에서 가장 미개한 문자인 짱깨 문자 전해 준 것이 뭔 대단한 자랑이라도 염병육갑질인지 이해가 안된다.
여튼, 에도의 인구가 백만을 넘어갈 때 짱깨 베이징은 70만 정도, 파리가 50만 정도였다, 짱깨 베이징이 인구 백만을 넘긴 것은 에도보다 100년이 늦었다. 이러한 거대한 도시화는 도시에 즉석식품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길거리 포장마차에서는 즉석 메밀국수인 메밀 소바가 팔리고, 종이처럼 얇게 가공 된 김에 밥을 싸서 각종 속을 넣어 먹는 김밥이 유행했다. 그것이 노리마키의 시작이다. 즉석식품으로 김밥이 팔릴 정도면 이전부터 일본에서 김을 양식하고 종이처럼 얇게 가공하는 방식이 완성 되었다. 이후 대나무 발(簾)을 바다에 설치해 김을 인공적으로 배양하는 방법으로 발전 된다.
우리나라도 김은 먹어왔다. 하지만 김을 먹은 기록이 신라시대였다고 하지만 1차 사료는 없고 삼국유사에 전해진다. 다만 19세기 편찬 된 열양세시기 등에 정월대보름날 복쌈이라고 하여 배춧잎에 김과 밥을 넣어 배추쌈을 먹었고 이를 “복쌈”으로 불렀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이는 김밥을 싸는 종이처럼 가공 된 김이 아니라 채취한 상태의 말린 김을 배추쌈에 넣어 먹었다는 기록이다. 따라서 김밥과는 눈꼽 만큼도 연관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김 양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는 17세기경(조선 중기)으로 알려져 있다. 예컨대, 전남 광양현 인호(현 태인도)에서 김여익이 1640년경 김을 인공 부착 방식으로 양식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조선의 김양식은 바다에 나무나 섶을 박아 김포자가 붙도록 하는 섶꽂이(一本篊)방식이었다. 겨울철 바닷가에 나무, 대나무를 박아 바다에 떠돌아 다니는 김포자가 붙어 자란 것을 채취하는 방식으로 생산성이 낮았다.
개화 후 일본은 김포자와 생태연구, 김종묘배양 등을 연구하여 대량생산의 길을 열었다. 일제시대 들어서 조선총독부는 김양식 기술을 조선에 이전하여 김양식에 지리적 조건이 좋은 조선에 대량생산의 길을 열어 주었다. 조선총독부는 조선에 대나무 발식(떼발식) 양식, 김 건조용 건조장, 저장창고 신설, 품종 선정, 양식장 구획제도를 도입하여 김의 대량생산길을 열었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김양식으로 인해 김은 조선의 최고 수출품이었고 일본으로 90%가 수출되고 만주 등지에도 팔렸다. 최고의 수출 효자상품이 된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김수출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는 시작을 조선총독부가 열어 준것이다.
이런 사실을 놓고 반일 정신병자들이 염병떨게 생겼다. 일본으로 쌀을 수출한 것을 수탈했다고 지랄염병인데 김도 수탈 했다고 지랄염병 떨까 걱정 된다.
일제 시대 마침내 조선식 김밥이 생겨난다. 당시 일본으로 배편이 떠나는 부산항과 충무항(지금의 통영항)은 일본으로 취업하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이었다. 지금 동남아나 또는 중앙 아시아 노동자들이 우리나라에 취업하려고 몰려드는 것과 같았다. 개조선 개씹선비의 무능한 문명에 기대어 사느니 선진국 일본으로 가서 몇년 일하면 땅뙈기라도 마련할 수 있었다.
김의 대량생산과 종이처럼 얇게 가공이 가능하게 되면서 김이 대중에게 퍼지고 일본으로 가는 배편 안에서 도시락 대용으로 김밥을 지참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김밥 형태가 아닌 김에 밥을 둥굴게 말아 반찬은 깍뚜기, 해물 무침, 일본을 통해 배운 오뎅 등을 따로 싸서 밥과 함께 먹는 형태였다. 즉 지금 먹고 있는 초기의 김밥이 생겨난 것이다. 지금도 이런 형태의 충무김밥이 분식집에서 팔리며 대중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사정이 이러한데 김밥이 일본 노리마키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발악 발악 염병지랄 떨어 봐야 민족적 개망신일 뿐이다.
야 조센징들아!!
김밥은 다꽝이고 다꽝은 김밥이다 조센진들아!!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날조하는 조센진 등신새끼들에게 미래가 없는 것이다.
역사는 역사로, 팩트는 팩트로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개구라 민족 조센진으로 살고 싶냐 등신 씨발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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