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직접 성육신한 예수님을 선의 본체로 이해하는 것이 개혁교회의 교리이다.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주권이 있음이 곧 성경인 것이다. 그것을 카톨릭은 인정하지만 실천에 있어 일개 인간이 교황이 되어 무오류의 권능으로 온갖 죄악을 저질러 왔다.
교황의 존재가치도 웃기는 짬뽕수준이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주인으로 고백하는 베드로의 믿음에 예수님은 그 믿음을 추춧돌로 삼아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베드로를 1대교황으로 세우고 인간이 무오류의 권능을 가지고 하나님과 인간의 소통을 차단하고 하나님이 가져야 할 모든 권능을 교황이 날로 빨아 먹게 된다. 그것이 카톨릭과 교황의 정체성이다.
인간은 빨가벗고 아무리 날뛰어도 신의 권능을 가질 수 없고, 하다 못해 천년을 도 닦고 수련해도 손바닥에서 백지 한 장 움직일 수 있는 장풍도 날리지 못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본성은 얼마나 악질인가. 많지 않은 삶을 살아왔지만 내가 개새끼로 취급하는 인간 부류가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짖어 되는 놈과 내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지나보면 안다고 개구라 까는 놈이다. 이 세상에 인간의 선은 없다.
인간은 존재 그 자체가 악이다. 단언한다. 선한 인간은 없다. 자신을 창조한 신의 권능을 도둑질 하기 위해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 먹었듯 그것이 악질 인간을 표상하고 있는 것이다.
선악과를 따먹고 아담과 이브가 신의 권능을 가지게 되었다면 아마도 하나님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아담과 이브가 꿰찼을 것이고 결국에는 아담과 이브가 서로 권력 다툼을 하다 하나는 죽었을 것이다. 그것이 인간 수준이고 악의 본성인 것이다.
인류사도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인간이 선하다는 성선설에서 출발한 공산주의 빨갱이가 결국 악의 세상을 만들고 피의 바다를 만들어 살을 뜯어 먹고 피를 빨아 마신 것을 명확하게 증명하고 있다.
공산주의보다 더 지독한 성선설이 개조선 개씹선비의 성리학이다. 인간은 선한데 그 선함을 가진 것은 개씹선비의 지식 즉, 초등학생 노트정리 한 것 몇권 정도 지식을 가진 개조선 개씹선비만 가지고 있다고 똥건방을 떨었다.
오직 개조선 개씹선비만이 만물을 관통하는 원리, 하늘의 도(天理)를 알고, 즉 옳고 바른 질서의 불변의 도덕적 근거를 개씹선비가 가지고 있다는 개 똥구멍에 들러붙은 기생충 같은 개소리를 싸질렀다. 그 개똥구멍에 들러붙은 세상의 이치를 아는 개똥구멍의 기생충이 백성을 교화하겠다는 것이 개씹선비의 성리학이다.
예수님의 열두제자 중 요한과 야고보는 하나님의 권능을 달라고 한다. 즉, 하늘나라 우의정과 좌의정을 시켜 달라고 한다. 그뿐이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인간의 죄를 십자가의 피로서 대속하시려는 예수님에게 베드로는 인간적 욕망을 앞세워 만류하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라며 질타하셨다.
예수님은 악질 인간을 위해 죄악에서 벗어날 것을 선포하신다.
“만일 네 손이 너로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버리라. 두 손을 가지고 꺼지지 않는 불 속에, 곧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나으니라. 만일 네 발이 너로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버리라.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로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버리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나으니라(마가복음 9:43–47)”
예수님은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맹목적인 사랑을 말씀하시지 않았다. 원수를 사랑하라 하심은 미움을 가지지 말라는 것이지 악인을 사랑하고 도우라고 하지 않으셨다. 다만 악인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선해질 것을 기도하라고 하셨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태복음 5:44)”
이는 원수를 갚고자 또 다른 죄를 짓지 말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악한 인간들끼리 공존할 수 있는 사랑의 기준을 남기셨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복음 13:34)”
서로가 사랑하는 너와 나의 노력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무조건 적인 용서를 말씀하시지 않았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누가복음 17:3–4)”
회개한 죄인을 용서 할 것을 가르친 것이다. 회개와 참회는 다른 것이다. 참회(懺悔, contrition / remorse)는 죄를 깨닫는 것일 뿐이다. 즉 죄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회개(悔改, repentance / metanoia)는 죄를 뉘우칠 뿐 아니라, 죄에서 벗어남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삶의 방향을 바꾸어 하나님께 돌아서는 것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선함을 쫓아 사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선함으로 되돌리는 자를 용서하라고 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용서는 연장질 사시미칼 찢재명을 용서하라는 것이 아니라 죄를 뉘우지치고 스스로 깜빵에 들어갈 때 용서하라는 뜻이다.
회개 없는 죄는 지적하고 경계할 것이며, 회개하는 죄는 즉 하나님의 선함에 따라 살으려 하면 그것을 몇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뜻이다. 용서 그것은 누구나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선물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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