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종교는 인간들이 힘들 때에 의존하는 것 뿐이다.
여기 논장에 글을 올리고 있는 필명 안동 촌 노 김 성복이라는 무식쟁이가 아까운 세월을 팔십 년을 넘게 살면서도 수많은 종교를 믿고 의지했지만, 종교에 대한 사실적인 덕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나의 나이가 아홉 살 적에 안동 시내에 자리 잡은 천주교에 형님들의 손을 잡고 배가 고파서 성당을 찾으면서, 빵 한 조각 얻어먹으려고 하나님이 무언지 ? 예수님이 무언지 ? 성모마리아 동정녀가 무언지도 모르고서, 성당을 찾아가서 하나님과 예수님 성모마리아를 찾으면서, 간절히 기도 올리면서 밥 한 끼라도 배부르게 먹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올리면서, 처음 성당의 울타리 안에서 신부님에게 “요한” 이라는
세례까지 받으면서, 나는 철없는 아홉살 시절 요한이라는 세례명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나는 받아드렸고, 사실 요한은 사도 요한이라고 부르지만 원래는 개신교에서 많이 세례명으로 쓰곤 하지만, 나는 천주교에서 요한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도 기이하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12 제자 중의 한 사람이고, 성인 반열에 오른 분이시고 요한 계시록을 저술한 분이시다.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 나에게 요한이라는 세례명을 주신 신부님께서 무언가 도통을 하신 분으로 보이신다. 이미 그분도 수십 년 전에 천국에 가신 분이시지만, 나는 지금도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천주교를 아홉 살에 배가 고파서
빵 한 조각과 가루 우유 한 봉지를 얻어먹기 위해서, 처음 성당이란 곳을 갔었고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모마리아를 나의 마음속에 색여 두었지만,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 신부님들이나 수녀님들은 진짜로 하나님을 믿으신 분들이고, 지금의 신부님들이나 수녀님들은 거의 정치에 그것도 종 북 주사파 사상에 도취된 이단자들로 나는 점찍는다. 그래서 나는 천주교를 이제는 지극히 싫어한다. 다만, 예수님 성모마리아는 실존 인물들로 그분들 제자들이 만드신 종교에 대하여는 진정으로 사랑한다. 그런데, 지금 개신교 쪽에 파생된 수많은 종파들에 대하여는 절대로 신임 하지 않는다. 목사들이나 강도사들, 전도사들
장로들의 말은 절대로 믿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렇다. 나는 한때 안동시청 말단 공무원 재직 시에 2002 년 12 월 17 일에 발생한 나의 아내 교통사고 장애 보상금 때문에 우리나라 최대 재벌 사인 에스 보험사. 디 보험사. 케이 보험사와 6 년이란 기나긴 세월 동안 민사 재판을 이어오면서, 만 6 년 만에 대법원에서 결국 원고인 우리 측이 승소를 했지만, 그것도 내가 삼년 동안 교통사고 보험 법을 공부해 가면서, 내가 직접 법정 서류 문서를 우리 측 변호사에게 가르쳐 주면서, 사무장이 대필 하고 변호사가 법정에 나가서 변론을 하면서, 끌어간 시간이 무려 6 년이었다. 내가 목사들과 종교인들을 믿지 않는 이유가 있다.
나의 아내가 교통사고 당할 적만 해도, 우리 내외는 개신교 장로교 고신 쪽의 교회에서 열심히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었다. 나의 아내는 고신 쪽 교회를 다니게 된, 이유도 안동에 주둔했던 모 사단 모 대대 수색 대대장이었던, 그 당시 중령의 계급장을 단 인품이 온화한 령관급 사람이 겨울철 동 한기 훈련을 우연히 우리 마을에서 일 주일 간 동계 훈련을 하던 차, 우리 집에 식수를 가지러 왔다가 이런 저런 나와 얘길 하다가 그가 나 한태, 저는 형님이 안 계셔서 선생님을 형님으로 불러도 되겠습니까 ? 하면서 결국 의형제를 맺었는데, 그 사람의 고향은 경남 거창이고,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고
안동 모 사단의 충성교회에 장로님으로 고신 쪽의 모태 신앙이고, 자기 동생들 두 사람이 교회 담임목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도 군대 제대하면, 신학 대학을 가서 목사의 길을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교회를 설립하면, 형님께서 저에게 세례를 받고 집사 장로를 거쳐서 같이 교회를 운영하자고 했고, 나는 그냥 하는 소리겠지 하고 그 당시 그에 말을 농담으로 넘겨 버렸고, 그 사람은 계급 정년으로 중령으로 예편을 하면서, 안동 사단에서 만 삼 년 만에 자기 고향으로 갔었고, 가면서 자기의 종파인 안동 고신 쪽의 교회에 저희들을 소개하였고, 저희들은 그곳 교회에서 13 년 동안 열심히 하나님을 믿었고,
그 교회의 목사님은 전라도 순천 분이셨습니다. 저희 아내는 교통사고 나기 전까지 그곳 교회에서 삼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 기도를 다닌 사람입니다. 그리고, 2002 년 12 월 17 일 오후 3 시에 자기가 몰던 차를 가지고, 교회 사모님을 장 보는데 모시러 간다고 가다가 길에서 개를 피한다는 것이 엉겁결에 브레이크를 잡지 않고, 액스레이다를 밟으면서 공중으로 날아서, 일곱 바퀴나 도로를 굴러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머리를 다쳐서, 기억력 상실과 조울증으로 병원에 삼년 동안 입원을 했고, 그로 인해 법정 다툼으로 간 것이고, 법정 서류에 필요한 사고 전의 결과에 대한 증인 서류를 우리 교회 목사님께 부탁했더니,
목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우리 목회자는 절대 법원에 대한 서류를 하지 못합니다. 라 고, 일거에 반대를 하자 ... 저는 저의 지인들과 집사람의 친구 분들께 사고 전의 일상생활에는 전혀 이상이 없었다는 내용의 증인 서류를 받았고, 그래도 많으면 좋을 것 같아서 저가 잘 아는 다른 교회 목사님과 장로님들께 부탁했더니, 저의 아내에 대한 실상을 잘 아시는 분들 수백 명이 증인 서류에 싸 인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의 변호사가 그 서류를 사무장과 같이 법원에 제출하는 서류에서 빼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결정적인 서류가 빠지면서, 우리는 1 심에서 패소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1 심에서 패소하고,
1 심 법원의 서류를 모두 복사 확인해 보니, 265 명의 증인 서류가 모두 빠진 것을 알고 변호사와 사무장을 족쳤더니, 실토를 하더군요. 죽을 죄를 지었다고요. 그래도 저들이 괘심 하지만, 저는 그들을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서울의 이름 없는 변호사를 다시 재 선임해서 2 심은 이겼지만, 판결문이 엉터리여서 다시 대법원에 상 고해서 결국 일 년 만에 3 심에서 원고 김 성복 승소란 판결과 대법원에 교통사고 시, 상처가 없어도 정신 이상이 올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문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사와 변호사는 절대 믿지 않습니다. 13 년 동안 자기 교회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열심히 봉사하면서
수천 만원의 헌금과 물품을 헌신한 우리들에게 증인을 서지 말라는 것과, 같은 교인들 한태도 절대 증인을 서지 말라는 교회 목사가 진정 목사입니까 ? 세속의 잡상인입니까 ? 어느 성경 구절에 불쌍한 양들의 아픔을 멀리하고, 고통 받을 시에 도와주지 말란 성경 구절이 있습니까 ? 자기들은 정작 광화문 광장에 코 때기도 보이지 않고, 전 광훈을 욕하고 전 한길을 욕하는 목사들이 진정 목사입니까. 어디 그뿐입니까 ? 자기 할 애비가 조선 정 판사 위조 범이고, 자기 애비와 자기 삼촌 고모가 육이오 사변 당시 빨갱이었고, 수많은 우파 백성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박쥐 색귀도 국회의원을 하고, 국정 원장을 하였는 대도
목사들은 그놈에 대하여 주둥이 쳐 닫고 있고, 그놈의 지휘 아래 북한에 가서 김일성에게 충성 명세를 하고, 기쁨 조에게 아랫도리를 휘두르고, 저들의 새끼까지 까놓고서 그 짓에 목줄이 감겨서, 지금도 북한을 추종하는 대형 교회 목사 색귀들과 언론사 사주들이 전 광훈이를 욕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 솔직히 말해서 김 씨 왕족에 나라가 전복 되면, 3 만 오천 명 현직 목사들과 2 만 오천의 원로 목사들과 1,200 만 신자들은 그놈들의 죽창 아래, 난도 질 당할 것입니다. 제발 정신들 차리세요. 나는 미국의 카 터 빨갱이를 원망 합니다. 그놈만 아니었으면 벌서 남북 통일이 되었을 것인데, 미국의 트럼프는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목회자 종교인 80% 가 진 성 빨갱이란 것을 안다면,
-- 안동 촌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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