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하는 자연
폭염과 폭우로 인해 많은 분들이 희생되고 고난을 겪고 있다. 해마다 반복되는 이러한 자연재해를 마주할 때마다 우리는 인간이 자연을 파괴한 대가로 이 재난을 겪는다고 생각하며, 물리적인 대책이나 자연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물론 이러한 대책도 필요하지만, 자연 자체의 속성에서 비롯되는 측면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셸링(Schelling, 1775-1854)은 독일 출신으로, 헤겔과 거의 같은 시대를 살았던 철학자이자 루터교 목사의 아들이었다. 그는 매우 영특해서 15세에 튀빙겐 대학 신학과에 입학하여 5년간 신학을 공부했고, 이후 신학보다 철학 특히 자연 문제에 몰두하며 자연철학을 추구했다.
칸트가 인간의 정신(이성)과 자연을 분리하는 데 비해, 셸링은 자연과 정신의 통일성을 강조했다. 자연은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목적을 지닌 능동적인 주체이며, 스스로를 조직하고 발전시키는 ‘유기체’라고 하며 인간의 정신도 그 속에 포함시킨다. 그는 ‘자연의 찢김(Rapture of Nature)’이라는 논지를 펼쳤다. 즉, 자연과 정신(이성)이 동일한 근원에서 비롯되며, 자연 자체가 끊임없이 분열하고 대립하며 파괴와 재창조의 운동을 반복하는 것이 자연의 근본 속성이라는 주장이다. 자연은 통일성을 이루되, 내부에는 늘 투쟁적 양상과 갈등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찢김’이 바로 변화와 발전의 동력이며, 자연재해 역시 이러한 찢김의 한 형태로 드러난다. 자연은 무한히 확장하려는 힘과 이를 제약하려는 힘이 공존하며, 이 힘들의 변증법적 운동이 때로는 재해로, 때로는 새로운 질서로 나타난다. 인간에게는 재앙이지만, 자연 스스로에게는 존재 운동의 한 과정인 셈이다.
이처럼 셸링은 자연 속내에 대립과 갈등, 파괴와 조화 등 다양한 운동을 보고, 이는 자연 자신이 자신을 조직하고 발전시키는 필연적 과정임을 강조했다. 셸링의 이러한 입장은 범신론(모든 존재가 하나의 신에 속한다는 사상)과 비슷하며, 범신론의 원조격인 스피노자를 닮았다고 평가받는다. 즉, 자연은 스스로의 내적 원리에 따라 움직이며, 자연과 정신(이성)은 동일하고, 신(神)이 곧 자연이며 자연이 곧 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셸링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차 인격신의 개념을 도입하게 된다. 그는 인간의 자유와 악의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초월적인 인격적 신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자연만으로는 인간의 자유와 악을 설명하는 데 한계를 느낀 것이다. 이후 셸링은 신이 자연으로부터 완전히 초월된 존재는 아니지만, 동시에 자연 안에 자신을 계시하며 인간의 자유의지와도 연관되는 존재라고 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셸링은 17세기 말 신비 철학자 야곱 뵈메(Jakob Böhme, 1575-1624)의 영향을 받는다.
뵈메는 공식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구두장이였지만, 깊은 신비 체험을 통해 특유의 신비철학을 전개한 인물이다. 그는 신 안에 선과 악, 빛과 어둠이라는 대립적 요소가 내재되어 있고, 이러한 본원적 이원성이 상호작용하면서 세계가 형성된다고 보았다. “예와 아니요 안에 모든 것이 존재한다.”는 그의 말은 이런 대립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뵈메는 신적 존재 안에도 무의식적이고 맹목적인 의지가 있는데, 이를 ‘운그룬트(Ungrund, 무근거)’라고 부르며, 이 운그룬트에서 빛과 어둠, 선과 악, 조화와 대립이 발생한다. 신 역시 이 내적 투쟁을 통해 스스로를 완성해 나간다고 보았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악 역시, 이 운그룬트에서 비롯된 충동과 연결되어 발생하는 것으로 본다. 인간의 내면에도 어둠의 원리와 빛의 원리가 작동하고, 그 중 어둠의 원리가 자유의지를 통해 표출될 때 악이 나타나게 된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악 역시 자연의 찢김(분열)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선과 악의 가능성은 운그룬트라는 ‘근거 없음’에서 나오며, 자연의 분열과 찢김이 인간 악의 존재론적 배경이 되고, 자유의지로 악이 구체화되는 셈이다. 뵈메의 사상은 이해하기 쉽지 않으나, 그의 시대에도 교회 등에 의해 이단의 경계에 놓였을 만큼 파격적이었다.
결국 셸링의 ‘자연의 찢김’과 뵈메의 ‘운그룬트’ 개념은, 자연재해나 인간의 고통과 악 모두가 자연이 가진 속성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 세계의 역사는 이러한 변증법적 찢김 속에서 완성과 통합으로 나아간다는 주장을 기반으로 한다.
성경 로마서 8장 22절에는,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받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모든 피조물, 곧 자연 역시 고통받고 있음을 성경에서도 강조한다.
고통받는 자연과 인간, 그 속의 악과 변화는 우리로 하여금 자연에 대한 겸허함과 동시에 자기 성찰을 요구한다. 자연의 찢김과 인간 내면의 찢김, 그것은 파괴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성숙과 새로운 질서를 위한 움직임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가 마주한 자연재해의 현실을 접하며, 그 이면에 숨겨진 더 깊은 자연과 존재의 원리를 성찰해보자는 뜻에서!
2025.7.25.안티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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