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영원회귀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영원회귀’(永遠回歸, ewige Wiederkunft)는 일명 ‘영겁회귀’(永劫回歸)라고도 불리며, 그의 사변적 사유 속에서 발생한 공상적 개념이다. 니체에 따르면 생(生)은 원형(圓形)의 구조를 따라 영원히 반복되며, 항상 동일한 것이 되풀이된다고 한다.
동양의 윤회(輪廻) 사상은 하나의 존재가 다른 존재로 재생한다고 보지만, 니체는 그것과는 다르다. 그는 다른 것으로 태어나는 환생이나 다음 생의 존재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다. 단지, 동일한 것의 반복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동양의 윤회는 업(業) 또는 카르마에 따라 전생과 내생이 연결된다고 믿으며, 그 반복을 벗어나 해탈을 추구한다. 그러나 니체는 천국과 지옥조차도 노예도덕의 산물이라고 보며, 영혼의 윤회나 부활 같은 개념을 모두 부정한다. 그에 따르면 우주 전체가 이전과 동일하게 반복될 뿐이다. 개인은 사라지지만 존재는 반복된다. 죽으면 끝이지만, 의식 없는 채로 세계 속에서 존재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의식을 부정하면서도 개체의 반복을 말하는 니체의 사상은, 개체의 정체성이 우주에 흡수되어, 곧 영혼이나 인격적 자아는 사라지되, 그 자아가 겪었던 사건들과 감정의 형상은 세계 속에서 반복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즉, 나의 의식은 소멸되지만, 내가 겪었던 고통과 기쁨, 사건들은 동일한 방식으로 세계 안에서 반복된다는 서사이다.
이 말은, 내가 가졌던 육체, 환경, 그리고 삶의 상황 전체가 세계 안에서 반복 재현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가 수천 년, 아니 영원토록 반복된다는 것이 니체의 주장이며, 실로 딱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유물론적 형이상학이며, 실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채 도출된 무책임하고 자기파괴적인 사변이다. 그런데 니체는 오히려 이 운명을 긍정하고 사랑하라고 하며, 이를 극복해 내는 존재를 ‘초인(超人)’이라 명명한다.
니체의 이 사상은 고대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의 “모든 것은 흐른다”(panta rhei)는 사상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기원전 540–480년경의 이 철학자는, 만물은 끊임없이 변화·생성·소멸하며, 이러한 생성과 변화 자체가 세계의 본질이라고 보았다. 고정된 사물은 잠시 드러나는 임시적 형상일 뿐이라는 관점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진다.
니체가 이러한 영향을 받아 주장한 ‘영원회귀’는, 신앙과 교회를 떠나 유랑하며 얻은 쥐엄열매와 같은 것이었다. 누가복음 15장에 등장하는 탕자가 아버지 집을 떠나 방황하다가 돼지 먹는 쥐엄열매로 허기를 면했던 것처럼, 니체도 아버지 집인 교회 신앙을 떠나 방황하다가 영원회귀라는 쥐엄열매를 입에 댄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독생자를 보내사 구원하신 은혜를 저버리고, 죄인들이 만든 무책임한 사변적 지식을 먹고 내놓은 이론이 바로 이 영원회귀 사상이다. 이는 아무런 소망도 구원도 담지 못한, 쓸모없는 망상에 불과한 형이상학이다.
죄인들은 심판이 두려워, 유물론, 윤회론, 영원회귀 등 허탄한 이론을 만들어 세상을 현혹시킨다. 그러나 성경에 영원회귀는 없다. 윤회도 없다. 모두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니체는 불쌍한 영혼이었다.
인간과 세계를 바르게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형이상학은 성경이며,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복음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세계의 기원도, 존재의 지속과 질서도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 달려 있다.
다른 길은 없다. 다른 길로 가면 쥐엄열매를 먹고 고통을 당할 뿐이다.
니체가 그 생생한 사례다.
세상의 허탄한 유명세에 속지 않아야 할 것이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이사야 40:7–8)
안티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