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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의 선택(23) - The Constitution Designed by the Bible |
작성자: 정문 |
조회: 697 등록일: 2025-06-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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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든 교회를 떠난 청교도 분리주의자(성공회와 분리)들이 신천지에 안착하고 그들의 신앙을 지키게 되면서 청교도(성공회 개혁주의자), 프랑스 위그노, 네덜란드 칼뱅주의, 모라비안 형제단(얀 후스 운동 후계자들), 독일의 재세례파, 퀘이커, 독일 개혁교회, 루터파 등 수많은 개혁교회 신앙인이 종교적 자유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들은 정착지마다 신앙의 자유를 지키며 12개의 주(state)를 건설하고 미국이 영국에서 독립할 때까지 120년간을 자치를 누리던 주(state) 공동체 시대였다. 미국의 지배국인 영국의 총독은 물리적으로 13개주를 통제할 정치력과 물리적 힘이 없었다. 수만리 영국에서 군사력과 치안력을 투사할 능력이 되지 못했고, 북미 대륙 전체에 상시 주둔군을 둘 수 있는 재정적·군사적 여력이 부족했다. 따라서 자치를 보장 될 수 밖에 없었다. 좋게 말하면 자치권이 생긴 것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힘센자가 살아 남는 치안부재의 무법천지의 땅이 된 것이다. 출애굽한 유대인은 걸어서 10일이면 도착 할 수 있는 가나안을 40년을 걸으며 도착해야 했다. 그들은 끊임 없이 하나님에게 반역했고 불평과 불만 속에 살았다. 금송아지를 세워 우상숭배를 했고, 모세와 아론을 제거하려 쿠테타가 일으켰고, 가데스 바네아에서 하나님을 버리고 노예로 살던 애굽으로 돌아가겠다며 정면으로 하나님에게 맞섰다.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너희 중에서 스무 살 이상으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결단코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민수기 14:29) 그들은 40년간 물이 쓴 것 까지 사사건건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평불만을 했고, 우상숭배, 반란, 서로가 물어 뜯고 싸우며 광야에서 죽어야 했다. 그 처참한 상황을 지켜 여호수아와 갈렙 밖에는 살아남지 못하였고 가나안은 광야에서 태어난 2세대만 들어갈 수 있었다. 아브라함의 자손, 시온의 딸, 선택받은 민족, 하나님의 백성 유대인들은 광야에서 방황했다. 열흘이면 도착할 땅을 40년을 걸어 광야에서 모두 죽었다. 그러나 신대륙으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떠난 그들은 광야의 유대인과 달랐다. 그들의 소명은 명확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신대륙으로 옮기셨다. 이 땅에서 우리는 ‘새로운 예루살렘’을 세울 것이다.”
1630 신대륙으로 향하는 엑소더스길에 오른 청교도에게 존 윈스럽 목사는 선상 설교를 통해 ”산 위의 도시(City upon a Hill)를 선포했다. “우리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다. 우리가 이 언약을 지키면 축복을 받고, 어기면 저주를 받는다.” “우리는 산 위의 도시가 될 것이다. 온 세상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계약을 맺었으며, 그분의 뜻대로 살아간다면 주께서 우리를 이 땅의 축복으로 삼으실 것이다. 그러나 불순종하면 우리는 온 세상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 예수님의 공생애 최초의 대중설교인 산상수훈에서 언급 된 산위의 동네는 시온의 땅이 아닌 신대륙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마태복음 5:14 - 13개의 자치주가 건설 된 신대륙은 성경 속 사사시대를 그대로 재현했다. 피난민들이 세운 각 주는 자치정부 기능을 하며 헌법을 제정하고, 자치 의회를 만들고, 법률을 만들고 민병대를 구성하여 치안까지 자율적으로 해결 하였다. 탐욕의 인간이 모인 신대륙이 무법천지가 되지 않은 것은 신앙에 기초한 질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들이 미국으로 건너와 정착하며 스스로 자치정부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신앙에 기초한 도덕적 신념, ‘산 위의 도시(City upon a Hill)’를 건설하려는 소명에 기반했고 무엇보다도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온갖 박해 속에 유럽을 떠돌며 피난민교회를 통해 공동체 훈련을 받으며 단련 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힘들고 고된 피난민 생활과 탄압과 핍박 속에 피난민 교회를 통한 공동체로 살아가는 지혜를 찾아야 했다. 그들은 신앙의 정체성을 지키며 교회 공동체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했다. 성경을 따르는 공동체로서 교회규칙을 만들어 실험했고, 공동체로서 살아가는 지혜를 훈련했다. 칼뱅 신학에 따른 인간의 본직 즉, 전적 타락(Total Depravity)의 인간으로서 어느 누구든 교회와 공동체의 절대권력을 가지지 못하게 하였고, 피난민 교회와 공동체의 권력집중을 막는 견제장치를 만들었다. 성경 속 장로제도를 부활시켰고, 중요 결정은 전체 교인이 모여 투표를 통해 결정하였으며 직분을 분리하여 견제 하게 하였다. 상호 견제 속에 모든 권력은 회중으로부터 위임 받은 것을 명문화 하였다. 그들은 인류 최초로 권력 분산 실험을 하였다. 피난민 교회를 통해 공동체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끊임없이 시험했고 시행착오를 통해 개선했다. 전적으로 부패한 인간은 갈등과 선택, 시련과 고난 속에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죄악의 본성을 드러낸다. 피난민이라는 고난의 시간 속에 가난과 굶주림, 멸시와 핍박 속에서 공동체의 가치를 끊임없이 찾은 노력의 결과였다. 그들의 노력이 빛나는 것은 시련과 고난 속에 공동체의 가치를 발견한 것이었다. 그 가치가 신대륙에 그대로 녹아 들은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통제자나 지도자가 없음에도 그들은 스스로 자치정부를 세우고 아무런 문제 없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다. 범죄율을 극히 낮았고, 영국 본토보다 치안이 훌륭했다. 그들은 단지 신앙의 자유와 피난민 공동체를 통해 훈련 받은 규범이 전부였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는 국가의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전적타락한 인간이 어떠한 길을 가야 하는지 그들은 성경을 통해 깨달은 것이었다. 그것이 권력분산이고, 권력자에게는 임기를 두었고, 모든 권력은 회중으로부터 나왔다. 그것은 그대로 미국의 헌법이 되었고 여전한 미국의 헌법이다. 종교개혁의 시작이었던 위클리프의 영어성경번역과 위클리프를 따르던 롤라드(Lollards)는 영국 전역을 떠돌며 영어번역 쪽본 성경을 보급하며 비밀설교를 했다. 윌리엄 틴들에 의해 성경번역은 이어졌고 그들은 숨어 성경을 읽으며 지하에서 신앙을 지켰다. 마침내 그들은 칼뱅주의와 만나 청교도라는 청체성을 형성했다. 그러나 청교도들은 의견은 갈렸다. 성공회와는 신앙의 가치를 같이 할 수 없다는 분리주의자와 영국에 남아 성공회를 개혁하려는 비분리주의자로 나뉘었다. 분리주의자들은 영국을 떠나 피난민교회를 세웠고, 성공회를 개혁하려는 비분리주의자가 올리버 크롬웰은 영국에 남았다. 비분리주의자 목사였던 존 데이븐포트는 성공회 개혁을 위해 노력했으나 탄압을 받고 결국 네덜란드로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네덜란드에서 피난민교회를 접한 데이븐포트는 귀국 한 후 영국에서의 신앙의 자유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동료인 시어도어 이튼과 함께 신대륙으로 이주하여 하나님의 법과 언약에 따라 통치되는 새로운 예루살렘 건설을 결심했다.
존 데이븐포트 (John Davenport)는 코네티컷주의 해안에 도착하여 선포했다. “이곳 뉴헤븐은 ‘새로운 예루살렘’의 기초를 놓는 곳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통치되는 공동체를 세울 것이다.” 데이븐포트는 성경을 기준으로 삼고 칼뱅의 구약에 기반한 시민사회를 건설한 제노바를 모델로 하여 모세오경에 기초한 공동체를 세웠다. 그것은 “뉴헤이븐 운동(New Haven Movement)이 되었다. 시민권은 반드시 교회 회원(정회원) 자격 있어야만 부여했고, 모세오경 기반의 질서와 윤리가 세워졌고, 광장에는 재판소가 들어섰으며 모든 지도자는 회중의 선거를 통해 선출했다. 그리고 교육을 통해 신앙을 가르쳤다. 수많은 학교를 세워 성경을 가르쳤고, 신학을 연구했다. 그렇게 세워진 것이 현존하는 세계 최고이 명문대 중의 하나인 예일 대학교 이다. 1638년 뉴헤븐을 건설한 그들은 "신앙에 기반한 자치 규약"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음해 그 자치규약은 코네티컷주의 하트퍼트 지역 3개 도시가 모여 코네티컷 기본법으로 작성 되었다. 이 사건은 인류에게 최초의 헌법(憲法, Constitution)을 선물하는 순간이었다. 국가와 왕, 통치가 없는 순수한 대중에 의해 만들어진 법 즉, 헌법이 만들어졌다. 미국 건국의 정체성 3C 즉, 기독교(Christianity), 헌법(Constitution), 자본주의(Capitalism)가 완성 되고 있었다.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에 따라, “평화롭고 질서 있는 정부를 세우기 위해” 주민들이 스스로 정치 공동체를 구성하는 법률 위의 성경적 가치를 두었다. 2. 입법기구인 총회(General Court)를 설립하고, 각 도시에서 대표자들(Deputies) 선거로 선출하며, 일정 수의 행정 지도자 집행관(Magistrates)선출하여 권력 분산의 삼권분립을 시켰다. 3. 매년 5월 두 번째 목요일 정기 총회에서 자유민(freemen)이 집행관 및 대표자를 투표로 선출하며 시민권(freeman status)을 갖기 위해서는 신앙과 도덕 기준이 필요로 한다. 4. 공직자는 정해진 임기만 재직 가능하며, 권력순환을 위해 집행관 중 1명은 반드시 교체되어야 하며, 법률 제정 및 공공 결정은 총회에서만 가능하며, 독단적인 결정은 금지한다. 5. 어떤 지도자도 총회가 만든 법 위에 있을 수 없으며 공공의 권한은 공동체로부터 유래하며, 이는 신앙과 도덕 위에 뿌리내린 법 아래의 통치 (Rule of Law)를 한다. 6.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정부”이며 하나님의 영광과 공동체의 복지를 헌정 체계의 목표로 한다. 오늘 우리의 민주주의 원리를 가져다 준 주권재민, 보통선거, 삼권분립, 권력 견제, 임기제 통치자 등 민주주의 원형이 이 때 만들어졌고, 더하여 칼뱅의 법의 통치가 계승 되며 법치가 보장 된 보통선거와 권력분산이 완성 된 것이다. 성경의 사사시대 즉, 12지파가 이스라엘에 흩어져 살던 그 시대를 성경은 말씀으로 남기고 있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사사기 21:25) 소국으로 분열하한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는 주권을 가진 각 나라가 천하쟁패를 위해 전쟁으로 해가 뜨고 해가지는 시대였다. 미국건국기 권력과 통치가 없었음에도 전쟁 없이 질서가 유지되고 자치가 가능했던 것은 그들은 성경을 가지고 있었고, 신앙의 공동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 앞에서 질서를 지키는 것이 공동체 전체의 생존과 구원에 연결된다” 식민지배국인 영국은 감히 신앙에 기반한 자치질서를 간섭하고 통제할 수 없었다. 그들의 자치에 영국의 개입은 신앙적 저항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국을 향해 경고했다. “영국 왕은 교황처럼 우리 위에 군림하려 한다” 북미대륙에 펼쳐진 사사시대 그들의 세계관은 확고했다. 미국으로 향하는 선상에서 설교에 나선 목사 존 윈스럽은 선언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이다. 이 언약을 지키면 복을 받고, 어기면 저주를 받는다.” 그들에게 성경은 삶이었고 모두에게는 법이 되었으며 양심과 하나님 앞의 책임감에 두려워 했다. 마을공동체는 교회였고 법정이었으며 장로는 마을의 지도자이며 판사였고 목자였다. 폭력범죄는 찾아보기 힘들었고, 살인과 강도는 극히 드물었고 범죄는 외부 유입세력에 의해 저질러졌다. 질서유지는 곧 신앙의 책무였으며 질서의 주체는 대중이었으며 외부로부터 침략을 지키기 위해 민병대가 존재했다. 통지자 없는 시대, 권력자가 없는 그 시대를 신정 질서로 설명하려 한다. 그렇다면 그토록 부패하고 잔인한 이슬람 사회 신정질서 중동의 현실은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코넷티컷 기본법은 매사추세스, 펜실베니아 등으로 퍼져가며 독립적인 자치 헌장과 공동체 치리 원리로 자리 잡았다. 신앙에 기반한 청교도의 공화적 자치 정치는 철저히 대중에 의해 주도 되었다. 왕족과 귀족은 사라졌고 절대권력도 사라졌다. 임기가 끝난 권력자는 돌아 갈 곳은 대중의 한명이 되는 것 밖에는 없었다.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각자의 자유는 서로가 침범할 수 없고, 서로가 지켜 주어야 했다. 그 질서는 이웃과 다툴 분쟁을 만들지 않았고, 전쟁을 벌릴 필요가 없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천부인권이기 때문이다.
독립한 그들은 코네티컷에 모여 연방정부 구성을 위해 타협했고 그 타협(코네티컷 타협, Connecticut Compromise)은 연방헌법이 되었다. 신대륙의 사사시대는 연방헌법이 만들어지며 새로운 사사시대가 열렸고, 사사는 대통령제가 되었으며, 대통령은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선택에 따라 임기제 사사(대통령)로 임명 되었다. 사사의 임기는 성경에 기반한 미국의 헌법에 의해 보장 되었다. 미국이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것은 제정 이후 한번도 폐지 되지 않고 지금까지 미국의 정체성을 대변하고 있는 헌법이다. 미국의 헌법은 민주국가를 지향하는 모든 나라의 헌법 토대가 되었고 미국의 헌법은 일부 수정 외에는 여전히 헌법으로서 기능하며 미국을 대표하고 있고 수백년간 헌법이 폐지 되지 않은 유일한 헌법으로 미국의 자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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