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퀴나스와 아리스토의 협업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에 대해 마르틴 루터는 철저 레지스탄스이다.토마스의 신학을 오류의 온상인 것 마냥 비판했고 프로테스탄트교회도 그를 거들떠 보지 않는다. 하지만 가톨릭교에서의 토마스 지위는 절대적이라고 할 만큼이다. 토마스는 교회박사이고 가톨릭의 신학은 바로 이 토마스의 신학인 것이다. 프로테스탄트가 토마스의 신학을 취할 것은 없지만 사적인 면에서 그의 학문적 집대성은 참고하고 비판할 수 있어야겠다. 여기서 오늘 알아보려는 점은 그의 신학이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가지고 신학과 협업한 부분이다. 순수 성경에 의존하는 프로테스탄트와 다른 점이다.
토마스 사상은 중세 스콜라 철학의 종합이 거나 정점이라고 해야할 정도인데 , 그 사상의 핵심은 " 은총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완성한다"라는 명제로 집약할 수 있다. 그는 아리스토(약칭)의 형상과 질료개념을 받아들여, 만물은 현상(본질)과 질료(가능성)의 결합체로 이뤄졌다고 본다. 그 대신 하나님은 질료와 형상의 결합이 없는 순수형상Pure Form으로서, 자기 안에 존재와 본질이 일치하는 유일한 존재이다. 모든 피조물은 존재와 본질이 구분되며 존재는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된다. 그의 인식론은 인간의 이성은 감각에서 출발하여 추론을 통해 보편 진리에 도달할 수있다고 본다. 이는 아리스토의 지성이론Agent Intellect을 따른 것이다. 토마스는 신앙이 은혜에 의해 부여되는 계시이지만 , 이성이 모순되지 않는다. " 철학은 신학의 시녀"라는 중세의 모토를 수용하면서도 철학의 자율성을 인정하는 편이었다. 토마스는 아리스토의 제일원인인 부동의 원동자 Unmoved Mover개념을 토대로 해 신존재 5가지 증명을 전개 한다. 이는 이성적 추론에 근거한 존재론인데,신은 만물의 원인이며 목적이다.
1.
운동으로부터의 증명--모든 것은 운동(변화)하고 있으며 움직이는 것은 다른 것에 의해 움직인다. 이 운동을 거슬려 올라가면 결국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다른 모든 것을 움직이는 제1원인First Mover,즉 부동의원동자가 있다. 이 부동의 원동자가 아리스토와 토마스에게서 신神인 것이다.
2.
인과로부터의 증명--세계의 모든 현상은 원인과 결과의 사슬로이루어져 있다. 이를 거슬려 올라가면 결국 자신은 원인을 갖지 않으면서 모든 것의 원안이 되는 제1원인,즉 神이 존재해야 한다.
3.
필연성과 우연성으로부터의 증명--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존재하지 않게 되는 우연적 존재이다. 모든 것이 우연적 존재라면 언젠가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게 되는 때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존재 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즉 필연적 존재 가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 필연적 존재가 神 하나님이다.
4.
존재의 등급으로부터의 증명--세상에는 더 크거나 더 선하거나 더 참된 것의 등급이 존재한다.이러한 등급은 절대적 기준이 있어야 한다 예로 '더 선하다'는 판단은 절대선Good itself을 기준으로 가능하다. 즉 최고존재, 즉 절대선 절대진 절대미가 존재해야 하며 그것이 하나님인 것이다.
5.
목적론적 증명--자연계의 무생물조차도 목적을 향해 움직인다. 목적에 따라질서 있게 움직인다는 것은 어떤 지성적 존재가 설계하고 인도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왜냐하면 무생물 자체는 목적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지성적 설계자가 바로 하나님인 것이다.
이 다섯가지 논증은 아리스토의 부동의 원동자,즉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지않으면서 모든 것을 근원적으로 존재하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존재 개념에서 출발한 건데 이로써 神은 존재의 근거,원인의 근거,목적의 근거,가치의 근거로 이해되게 된다. 우리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이런 이성적 추론에 의한 신앙을 권장하지 않고 오히려 경계한다. 이런 류는 사물의 질서나 본질을 학습하는 데 보조자료는 될지언정 하나님을 만나는 복음의 직접성은 아니다. 토마스가 자연의 자율성과 선한을 강조하지만 프로테탄트는 자연도 죄로 인해 타락했기에 자연을 통한 구원이나 하나님께 나아갈 길이 없고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통한 구원만이 유일한 복음이고 믿는다.
루터가 " 자연과 이성은 하나님 앞에 어두움일 뿐이다" 한 것처럼 말이다. 또 이성과 신앙을 조화시키려는 것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토마스는 이성이 계시와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보았으나 루터와 칼빈은 이성이 전적으로 부패했기 때문에 이성은 계시,즉 믿음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바르게 알 수 없다고 교훈한다. 또 위의 5가지 증명도 비판 받는다. 하나님은 논증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을 계시하신 분이다. 존재론적 증명이 아닌 계시중심의 신앙과 인식인 것이다. 프로테스탄트는 이신칭의,즉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기 때문에 행위나 덕을 쌓는 건 상급,즉 보상의 조건은 될지언정 구원의 조건은 될 수 없다. 참고하기 위해 토마스의 신학이 아리스토의 철학을 빌린 계시와 이성 은총과 자연을 통합시키려는 집대성인 것을 살펴봤지만 참고용일 뿐,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프로테스탄트 5원리야말로 토마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반성경적 협업을 극복할 무기일 것이다.
안티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