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17일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온 ‘통계 조작’ 사건을 비롯해 문재인 정부의 핵심 인사와 고위 공직자들이 연루된 중대 범죄는 10여 건에 이른다. 대부분이 아직까지 감사와 수사, 재판이 진행 중이고, 대법원에서 확정된 사건은 하나도 없다.

윤석열 정부 3년 내내 수사를 진행해 기소했지만, 법원에선 재판만 몇 년씩 걸리기도 한다. 일부 사건은 무죄나 선고유예가 나와 검찰의 부실 수사 논란도 불렀다. 법조계에서는 “감사든 수사든 재판이든 때를 놓치면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이 어렵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반응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 시절 불거진 대형 사건으로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기밀 유출, 북한의 감시초소(GP) 철수 부실 검증 사건, 문 전 대통령의 전 사위 서모씨의 항공사 특혜 채용 사건 등이 있다.

그래픽=김성규
그래픽=김성규

◇감사원은 내홍... 검찰은 정권 눈치

문재인 정부의 국가 통계 조작은 2022년 9월 감사에 착수해 2년 7개월이 지나서야 결과가 나왔다. 감사원은 “통계 조작의 규모가 방대하고 조사해야 할 대상자가 많아 결과 확정에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고 했다. 감사원이 이날 공개한 감사 보고서는 903쪽 분량, 관련 증거 서류는 3만 쪽이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감사원은 내홍으로 감사 결과 발표가 늦어진 일도 있다. 2023년 6월 근무 태만 의혹 등이 제기된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 감사 보고서가 나올 때 야권 성향 감사위원들이 공개를 지연시키려 한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이 임명한 조은석 감사위원은 결과가 발표된 뒤에도 자신의 최종 검수를 거치지 않고 보고서가 공개됐다며 재차 문제를 삼기도 했다.

현재 2심 재판이 진행 중인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은 정권이 바뀐 뒤 수사가 시작돼 늦은 경우다. 문재인 정부 검찰은 2021년 11월 시민단체가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 등을 고발했을 땐 각하 처분했다. 정권이 교체된 뒤 2022년 7월 국가정보원이 서훈 전 ​국정원장 등을 고발한 뒤에야 검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1심 재판부는 지난 2월 피고인 전원에게 선고유예를 판결하며 “중앙지검 검사가 한 차례 수사 필요성이 없다고 각하한 사건을 대통령이 바뀌고 검찰과 국정원의 지휘부가 교체되면서 수사가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차장검사 출신 김종민 변호사는 “감사원이나 검찰 모두 정치적 고려 없이 사실관계를 규명해야 할 책임이 있는데 스스로 눈치를 보는 것 아닌가 우려스럽다”며 “확실한 기준 없이 수사를 하면, 공직 사회에 정치적 상황에 따라 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신호를 줄 수 있다”고 했다.

◇재판도 하세월...“정치 상황 눈치 보나”

재판 지연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은 2020년 1월 기소하고 3년 10개월 만인 2023년 11월 1심 선고가 나왔다.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소속 김미리 부장판사가 1심 재판장이었는데, 쟁점을 정리하는 공판 준비 기일을 여섯 차례나 열면서 정식 재판을 여는 데만 1년 3개월이 걸렸다. 1심 결과가 나오는 사이 피고인인 송철호 전 울산시장은 임기를 마쳤고 황운하 조국혁신당 의원은 재선에 성공했다. 이 사건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이 진행 중이던 지난 2월 항소심에서 무죄로 뒤집혔고,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월성 원전 1호기의 경제성 평가 결과를 조작해 2018년 6월 원전 가동을 조기에 중단시킨 사건도 2021년 6월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 관련자를 처음 기소한 지 4년이 다 됐지만, 아직 1심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 대전지법에서 진행 중인 이 사건은 검찰이 신청한 증인만 120여 명에 달하는 등 심리가 길어지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판결이 달라지는 ‘사법의 정치화’가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사와 재판은 신속하게 해야 하는 게 원칙인데, 정치적 혼란기이다 보니 정권이 정해질 때까지 판단을 미루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이런 태도는 사법에 대한 국민 신뢰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