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 엘리 라마 사박 다니
<엘리 엘리 라마 사박 다니>는 주예수의 십자가상 4번째 부르짖음이었다. 뜻은 <하나님 하나님 어찌하려 나를 버리셨나이까>이다. 여기에 대해 주예수께서 실제로 버림받으셨는가 하는 의문이 발생한다. 여기에 대해 고전적 정통신학,즉 초대교회에서 개혁주의까지는 삼위일체의 불가분성을 주장하면서 성자와 성부는 본질적으로 분리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주예수의 절규는 시편22편 1절의 외침이었을 뿐이다. 예수님은 죄 없으시되 죄 있는자로 간주되셨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셨지만 삼위일체의 내적 단절은 없었다는 주장이다. 이런 입장은 아타나시우스 아우구스티누스 칼빈 등으로 이어진다. 칼빈은 "하나님의 진노를 실제로 받으셨으나 , 삼위의 본질은 분리되지 않는다 " 고 하였다. 마르틴루터Luter는 십자가의 예수를 단지 고통받은 자로 보지 않고 '신적 버림을 당하신 자'로 규정하며 '하나님께 버림 받은 하나님Gott von Gott verlassen'이란 표현을 한다. 그는 이것을 신앙의 신비이자 인간 절망의 가장 깊은 곳에까지 다가오신 하나님이란 해석을 한다.. 하지만 루터 역시 삼위일체의 파괴로는 보지 않으면서 '신적 자기 숨김'이라고 한다. 이 '신적 자기 숨김'이란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자기 임재나 능력, 사랑을 감추심으로써 인간이 하나님을 부재(안 계심)로 느끼는 상태를 말한다. 이렇게 루터는 십자가를 '하나님의 자기 계시이자 동시에 자기 숨김'이라고 보았다. " 십자가의 하나님은 자신을 감추신 하나님이시다" 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이 절규는 하나님이 안 계신 게 아니라 하나님이 숨으신 상태,즉 자기 자신을 감추심으로 함께 하시는 방식인 것이다.
위르겐 몰트만Moltmann의 경우는 한걸음 더 나아가 신적 자기 숨김을 넘어 실제로 '버림'까지 주장한다. 하지만 이 또한 "하나님이 하나님 안에서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으로 해석하는 점에서 루터의 이해에 더한 급진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사야 45:15는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 하였고 시편10:1은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계시며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하신다. 이는 하나님이 죄나 고난 현장에서 침묵하시는 듯한 모습이지만 실제로는 구속과 사랑을 위한 깊은 계획 속에서 잠시 숨어 계시고 침묵하시는 것임을 암시한다. 우리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의 부재처럼 느껴지는 순간에도 신뢰하는 행위이다. 하나님께는 숨으시거나 침묵하시는 방식으로 우리를 연단하시 거나 더 깊은 은혜로 인도하시는 신비가 있다. 이는 고난을 통한 동행인 것이며 이런 점에서 주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의 절규는 '하나님의 자기 숨김과 침묵의 절정'이다. 이렇게 루터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감추신다고 보면서, 그러나 이 숨김은 진짜 부재가 아니라 신비한 임재의 방식임을 말한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은 고통받는 자의 모습으로 오셨지만, 그 모습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신 것이다. 인간의 이성은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느끼지만 '그 감춰진 곳에서 하나님을 붙잡는' 것이 신앙 행위인 것이다. 루터는 말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절망 속에서 숨어계신 사랑으로 일하신다" " 십자가는 하나님의 가장 깊은 자기 계시이자 동시에 자기 숨김이다."
한편 몰트만Moltmann은 앞서 말했듯이 '버림받은 하나님Der verassene Gott'을 말한다. 예수는 실제 버림받았으며,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실제적인 분리가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그는 말한다. "예수는 하나님께 실제로 버림받았다. 십자가는 성부 하나님이 성자 하나님을 내어버린 사건이다" " 하나님은 자기 자신 안에서 분열을 겪으셨다" 과연 과격한 주장이다. 그는 이 '버림'을 '고통받는 자에대한 하나님의 연대'로 해석하면서 십자가는 '하나님이 고통속에 있는 인간과 완전히 하나되신 자리'라는 해석이다. 이렇게 두사람의 해석차가 큰데 루터는 "믿음은 숨겨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몰트만은 " 하나님이 실제로 고통을 감내하시며, 버림받은 인간과 동일한 처지에 서셨음을 강조한다. 사순절 고난주간에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에 대한 교화사적 해석들을 스쳐봤는데 아타나시우스 아우구스티누스 칼빈 등으로 이어지는 정통주의 해석을 존중하면서 루터와 몰트만의 해석을 참고하면 좋을 것 같고 특히 루터의 '숨어계신 하나님'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보여진다.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 고난 받으신 주예수의 구원의 은혜와 삼위일체 하나님의 섭리는 이성의 한계를 초월하는 신비일 수밖에 없다.
제 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 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마27:46)
2025.고난주간에
안티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