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니츠의 명암
라이프니츠Leibniz 1716는계몽철학의 서장을 연 철학자이며 백과사전적 박식가이고 수학에서 뉴턴과는별도로 미적분학 방법을 창안했으며 물리학에서 에너지 보존 법칙을 예견하기도 했다. 그의 《변신론變神論》과 <단자론單子論Monad>은 유명하다. 그는 세계가 신神의 예정조화이며 최선의 질서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낙관주의optimism적이다. 악惡의 존재도 세계 전체의 선한 질서를 위해 필요하다는 전제를 한다. 그는 변증법을 준비한 것으로도 평가 받는다.
그는 세계가 무수히 많은 단일하고 불가분의 실체,즉 능동적인 힘의 단위로서의, 자신 속에 전 우주를 표상하는 우주의 거울인 모나드로 구성 되어 있다고 본다. 이 모든 모나드는 서로 다른 시점에서 전체 우주를 반영하는데 이 반영은 의식의 흐름,즉 지각의 연속으로 드러나며 이는 세계 전체의 내적 표현이라고 한다. 예로 나의 모나드는 내가 의식하든 말든 우주의 모든 사건을 어떤 방식으로든 지각한다는 얘기이다. 의식의 흐름, 이것이 세계 전체의 내적 표현이며 이런 모든 모나드는 서로 다른 시점에서 우주 전체를 반영하는 영혼의 거울이 된다.
이 모나드는 라이프니츠의 매우 주관적 관찰과 인식의 산물이어서 객관화 해서 이해하기 어렵다. 그져 쉽게 이해 하자면 영혼이나 의식 전반을 말한다고 봐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모나드가 물질은 아니다. 영혼에 가까운 실체이고 이 모나드의 정점이 하나님God이고 하나님이 모나드를 창조하고 세계 구성의 원리로 삼으셨다고 본다.
모나드를 이해하려는 사람들 중 일부는 모나드가 천사나 귀신과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과 유사한 비물질적 실체라고도 말한다. 몸이 없는 존재지만 자기 내면에서 지각하고 표현하는 주체인 것이다.이런 점에서 귀신과 천사 같은 것들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는 얘기이다. 식물이나 돌맹이 같은 것에도 아주 낮은 수준의 혼미한 지각을 가진 모나드가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우주 전체를 반영한다고 한다. 반면 천사와 같은 존재는 매우 고등한 모나드이고 그런 점에서 인간의 영혼이야말로 고등한 모나드인 것이다. 즉 우리가 의식 하는 게 모나드의 작용이 된다. 나의 영혼은 나의 고유한 모나드인 것이다. 영혼은 영적 모나드이고 초월적 요소(하나님의 형상)를 지닌 존재이다. 우리 구원 받은 성도 내면의 모나드야말로 성령의 성령의 거처이며 성령은 이 모나드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서 펼치신다.
앞선 글에서 보았듯이 라이프니츠는 통합을 중요시 한다. 아마 모나드로 온 세계가 하나인 것을 보았을까? 중국의 공자사상이나 주역에 매료되고 동서양을 지적으로 통합시켜보려 하거나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를 화해,통합 해보려는 등 무모함을 보이고 있다. 자신은 루터교 집안 출신인데도 말이다.
공자교에나 주역에는 죄사함 받고 구원 받을 복음이 없다. 그들에겐 신이라고 해 봐야 자연질서를 경배하는 정도일 것이다. 구원 받고 영생 얻을 복음이라고는 없으며 하나님의 계시도 아닌 것인데 거기에 그렇게 경탄하고 매료된 것은, 그의 영혼이 재능면에서는 우수할지라도 구원 받고 성령이 내주,감동하시는 영혼이었는지를 의문케 한다. 점술서인 주역에 무슨 복음이 있거나 하나님을 만날 메시지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를 화해시키고 통합해보려는 시도 또한 무모하고 부질 없는 욕망이었다. 천주교는 천주일 뿐 성경적 프로테스탄트와 동질적 DNA일 수 없다. 이런 라이프니츠의 통합주의적 지향점은 종말기 글로벌 바벨론 혼합종교를 만들어갈 이론인 종교다원주의나 자유주의 신학의 인본적 도모를 도와주는 이론일 수 있다. 예수그리스도의 대속하신 은혜를 믿고 구원 받은 영혼인지 여부는 세계관이나 존재론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구원 받은 성도는 내주하시는 성령의 감동하심과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에 뿌리 박힌 실존들이다. 그리스도의 대속하신 보혈의 은혜가 라이프니츠에게 있었는지, 그가 과연 구원 받고 영생 얻은 복음의 사람이었는지는 의문이다. 프로테스탄트의 시각으로 보자면 라이프니츠의 이런 통합적 사고가 구원 받지 못한 영혼의 이성적 사고의 결과물이 아닌가라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그가 자신의 죄를 위해 그리스도가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구주이심을 믿고 주로 영접해 구원받고 성령의 감동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는 영혼이었다면 이런 무분별한 통합주의는 없었을 것이다. 신앙의 신실성 면에서 보자면 라이프니츠는 파스칼의 *팡세*를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학자들의 주장들에서 취할 것과 버릴 것 경계할 것 등을 분별하는 지혜를 길러야 하겠다 매사 그렇듯 유명한 이론이나 거대한 세력들에 대해서도 명明은 취하고 암暗은 버려 마땅 할 것이다.
안티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