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은 어떻게 세계를 섭리 하는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천지만유를 다 주관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도 모두 주관하시는 것을 믿고 고백한다. 하지만 우리의 이성은 이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거나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신앙은 과학이 거나 물리적 법칙성 안에 있는 게 아니고 이를 초월한 차원이기에 이해가 안 되어도 믿는 것이다. 하지만 이성적 존재자인 인간의 질문과 탐구는 상존하기 마련이다. 나는 전에도 종종 <기회원인론機會原因論occasinalism>이란 걸 글로 써낸 적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이 세계와 관계하시는 것을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탐구해 내려 했던 자취를 음미해보는 의미에서였다. 이 기회원인론은 우인론偶因論이라고도 하는데 데카르트Descartes의 경우 <물物과 심心을 서로 독립적인 것>으로 간주해 <물심이원론>을 주장했었다. 그런데 이 <물物과 심心 양자가 어떻게 관계하는가> 하는 어려운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시도가 <기회원인론>이었다. 이 이론에 의하면 물도 심도 서로 따로 작용하는 원인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매개하고 추동하는 신神만이 유일하고 참된 동력이 된다. 신체의 자극이 정신적 의지 작용을 일으키는 게 아니고 정신적 의지가 신체의 운동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다. 이것들은 계기에 지나지 않으며 이들을 통해 진정한 원인인 <신神이 작용>해서야 가능해진다는 견해이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무엇을 하는 것처럼 여기지만 神의 작용을 통해 의지를 사용케 된다는 것이고 신의 작용이 없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 기회원인론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강조하는 기독교신학에 부합하지만 이 이론대로 하면 자연세계는 자체적인 작용이 없고 신이 매순간 직접 개입하고 기회를 줘야만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기계론적 결론이 나온다. 이런 주장은 다소 극단적 형태를 보이기 때문에 예로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inas의 경우는 神이 <1차 원인primary cause>이지만 피조물에게도 <2차 원인>의 역할을 부여했다고 생각했다. 예로 불이 물을 데우는 것은 신의 직접 개입이 아니고 신이 창조한 질서 안에서 불이 열을 전달하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논리이다. 이러한 관점은 프로테스탄트 신학에서도 수용하면서 <신의 섭리Provedence>와 <인간의 자유의지>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룰을 시도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 안에서 늘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말하면서 동시에 그분의 섭리를 말한다. 섭리攝理라는 한자도 다스릴 섭 다스릴 리인데 영어 providence도 신의神意 등의 뜻을 가지고 있어서 어떤 절대성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칼빈주의 전통에서도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하는 점에서 기회원인론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칼빈주의적 개혁신학에서는 자연계에서의 2차 원인 개념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피조물을 통해 일하심을 아울러 강조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지만 인간의 행동과 자연의 법칙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작용한다고 본다.
하나님이 자연법칙과 자연법(이성 양심 등)을 창조하셨으며 그 질서 안에서 피조물들이 작동하는 방식을 인정하는 정도의 형태인데 신의 절대주권과 피조물의 생태를 조화시키려는 시도들이다. 예로 결정론決定論Determinism 같은 경우는 앞선 원인에 의해 모든 게 결정된다는 극단적 주장으로(물론 결정론 중에도 변증법적 결정론은 유연하다.) 기회원인론에 가깝다. 아우구스티누스Augustlnus도 의지에 관한 한 결정론에 가까워 우리의 자유의지는 심리적 자유일 뿐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에 불과한 것이란 입장을 보인다. 물론 어거스틴의 자유의지론을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쉽지 않아 결정론과 비결정론 사이에 위치한다고들 하는데 안티다원이 추측하게엔 결정론 쪽으로 기울지 않나 싶다. 여하간 쉽지 않은 문제이고 인간이성이 도식 화 해서 설명하기엔 한계가 있는 주제이다. 바울도 결정론적 증언을 하면서도 (롬11:33-36) 자유의지 사용의 책임을 강하게 묻고 있다. 어쩌면 우리인식의 한계를 넘어선 주제일 수 있다.
안티다원은 기회원인론과 결정론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편이지만 우리는 피조물이고 유한자이며 죄罪적 경향성을 항시 내포한 자이다. 인식능력의 한계는 두말할 것도 없다. 어쩌면 칸트Kant의 말대로 <물자체物自體,즉 본질>은 모른 채 현상現像에만 급급하다 일생을 마치고 말 유한자일 수 있다. 인식능력 자체가 범주範疇category적 한계를 지녔으니 말해 무었하랴! 기회원인론은 모든 존재의 생존과 활동 그리고 운행은 하나님이 허용하시는(기회 주시는 )한도 내에서만 존재나 생성이 가능하다는 전제이다. 인간이 자유의지로 모든 걸 하고 있는듯 하지만 그 의지 욕망 감정 인격현상 모두가 우리가 만들어 가지고 나온 것 아니다. 모두가 하나님에 의해 제작됐으며 우리는 그것을 부여받아 행하고 있을 뿐이므로 그 자유의지도 내가 인식하는 자유일 뿐 그 의지를 만드신 분의 의지를 따라 움직이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 아닐까?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롬11:33)
안티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