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논장에 비록 잡설일망정, 며칠에 한 번식 글 한 쪼가리를 간신히 퍼즐 맞추듯이 무식한 글 하나 올리는 필명, 안동 촌 노 김성복이란 여든이 넘은 늙은놈이 진심으로 안동 시민들에게 드리는 글이고, 어쩌면 귀하들에게 드리는 글로서는 마지막이 될 것이다. 이미 이곳 논장에서 수 십번 나의 가계에 대한 글과 나의 조 부모의 실명까지 다 밝히고, 나의 웃대 조상님들의 족보까지 다 까 발긴 저 가 무엇을 더 숨길 것이 있으며, 감출 것이 있겠습니까 ? 저의 조 부님은 수 만평의 문전 옥답을 팔고, 수십 만 평의 조상님들이 물려주신, 선산까지 팔아서 독립 군자금으로 희사 하시고, 숨은 독립 운동을 하시다가,
결국은 나라의 독립도 보지 못하시고, 결국은 해방되기 전 13 년 전에 쉰 여섯의 연세로 운명을 하시면서, 2 대 독자이신 저의 부친께 유언으로 남기신 말씀이 내가 숨어서 독립 운동을 한 것은 너도 잘 알 것이다. 그러나 나는 조상님들께서 물려주신 문전 옥답과 선산 까지 팔아서 독립 운동을 하면서,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 일생을 바쳤지만, 너는 절대로 자식들에게 내가 독립 운동을 했다. 라 는 것을 알리지 말고 함구 하라고 말씀하셨고, 저의 부친께서는 저 가 장성하고 장가를 간 다음에 저에게 조 부님께서 독립 운동을 하신 모든 경위를 말씀 드리면서, 지금 나라에서 독립 유공자 후손들에게 국가에서
국가 보훈 대상자로 선정을 하는 모양인데, 나는 너의 조부님의 간곡한 유훈에 따라서, 너의 조부님의 독립 운동 사를 나라에 상신 하지 못한다. 그러니, 너도 절대 앞 으로 너의 조부님에 대한 독립 유공자 자료들을 수집하지 말 것이며, 너희 형님 들에게도 절대 말하지 말라고 엄명을 하셨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독립 유공자 후손들에게는 엄청난 특혜가 있었지만, 저는 부친의 말씀에 따라서 국가 보훈처에 조부님의 독립 유공자 신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버님 모르게, 조부님의 제자들과 조부님과 친하신 분들께, 조부님에 대한 독립 운동사 자료들을 수집했고, 각종 서류들과
조부님의 친지 분들의 사실적인 육성까지 담아둔 자료들을 정리했지만, 저의 큰 형수님께서 자기가 종손이고 종부라고 해서, 저 가 수십 년 동안 모은 모든 자료들을 자기 집으로 저 모르게 가져 가셨습니다. 그리고는 이미 세월이 흘러서 40 년이 넘었지만, 그 자료들이 형님 집에 있는지 조 차 모르겠고, 이미 큰집과는 왕래가 끊어 진지 30 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조부님은 독립 군자금을 되시고, 안동 지역의 독립군으로서 맹활약을 떨치셨던, 서암 대종사님의 부친과 저의 조부님과는 절친이셨고, 같은 독립군의 지사였습니다. 그리고 저의 부친과 서암 대종사님과는 1 년에 한 번식
서암 대종사님의 맏 형님이 계시는 우리 마을에 하안 거와 동 안거 들어 가기 전에 꼭 백씨 집에 들리시면서, 우리 집에 오셔서 사랑방에서 저의 부친과 담소를 나누셨고, 저를 불러서는 반드시 서암 스님께 인사를 드리게 했습니다. 아마 65년 전의 얘기입니다. 이제 독립 운동을 하신 서암 스님의 부친과 저의 조부님과 서암스님과 저의 부친도 돌아가신지 벌서 수십 년이 되었습니다. 다만, 이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서암 스님의 장 조카이신, 저의 후배인 송 왕의 선생과 저와 만 이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서암 대종사님의 부친께서도 돌아 가시기 전에 유언을 하시길, 해방이 되더라도 절대로
내가 독립 운동 했다고, 나라에 덕 볼 생각은 하지 말고 한 백성으로서 나라를 구하길 위해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에, 한 것이므로 독립 유공자 신청을 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고, 저의 조부님과 그 당시 안동의 이름 있는 문벌의 종손들이 독립 운동을 하기 위해서, 숨은 연락 장소가 바로 안동 제비원 연미사였고, 그분들이 만든 조직 체가 바로, 등축계[燈祝契]란 것입니다. 이제는 그 등축계가 살아지고 없었지만, 50년 전까지만 해도 계원 중에 한 사람이 돌아가시면, 반듯이 직계 종손 중에 맏아들만이 참석하게 되었고, 저도 그곳을 취재하기 위해서 몇 번인가 시도를 해 보았지만, 직계 맏 종손 이외에는
단 한 사람도 참석을 허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안동은 옛날부터 유림의 고장이고, 고조선부터 내려온 무속의 발상지였고, 신라 때 불교가 들어오면서 토 속화 되었고, 지금은 유교. 카톨릭. 기독교와 같은 유 불 선의 다 종교가 성행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고려 말기 동양 성리학의 시조이신, 우 탁 선생님의 제 2 고향이시고, 퇴계 이황과 하회 마을의 신앙이신, 서애 류성룡 영의정 같은 유명한 분들이 태어나셨고, 수많은 전란으로 나라가 위급 할 시에 가장 먼저 안동의 유림들과 승려들이 들고 일어나서, 침략군과 맞서 싸우신 충의의 고장이고 선비의 고장이고, 양반의 고장인데 자기의 고향도 아닌,
영양 일 월산 천 년 묵은 불여우인 낮 도깨비가 한 마리 난데없이 자기의 고향이 안동이라고 지랄 용천을 떨고 있는 대도, 충의의 고장이고 안동 양반의 고장이라고 하는 성리학의 본고장인 안동 인들이 아직도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자기의 친형과 친 형수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는 개 쌍 놈의 색 귀를 좋아라, 하는 안동 인들이 무려 40% 나 된다고 하니, 안동인 들이여 ! 이제는 어디를 가도 안동이 당신들 고향이라고 입 밖에도 씨 부리지 말라 ! 나는 매일 시내에 가슴이 답답해서 바람도 쏘일 겸, 스쿠터를 타고 몇 시간 동안 뜻 맡는 동지들과 잡담을 하고 하지만, 이제는 안동은 양반의 도시도 아니고,
충의 열사의 도시도 인의 예지를 입에 달고 살던 충신 열사의 고장도 아니고, 전과 4 범도 아니고, 앞으로 10 범이 될지 ? 20 범이 될지도 모르는 경주 이씨 양반의 가문에 태어난 개 잡놈의 고장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15 만 안동 인들이여 ! 이제는 안동을 충효열사의 고장 충의의 고장, 양반의 고장이라고 주둥이에도 담지도 말라 ! 이재명 권영세 권성동 김형동 같은 개 쌍놈들을 배출한 고장이고, 더러운 개 잡놈들이 살고 있는 곳이라고 소리쳐 외쳐라 ! 안동 김 가, 안동 권 가. 경주 이 가들이 망쳐 놓은“더럽고 냄새나는 쓰레기 집단들이 사는 고장이라고”이제는 널리 널리 소리쳐라 !
이 개 잡놈들아 ! 지금 것 알량한 拾 선비의 고장을 자기들의 양심을 팔고, 자기들의 권력을 누리기 위해서 너희들 조상님들의 심장에 칼을 꽂은 놈들이 나라를 위해서 한 일이 무엇이더냐 ! 전국의 모든 백성들이 모두 길거리에 나와서, 이재명 개 쌍놈을 규탄하고, 윤석열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서 영하 20 도를 오르내리는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드러누워서 울부짖는 저 ~ 소리가 너희 놈들 귀에는 들리지 않는가 말이다. 선거 때만 되면, 안동 김 가 안동 권 가 놈들이 국회의원 시장 도 의원 시의원 을 다 해 먹는 이 개 잡놈들아 ! 이재명이 대통령 되면, 안동이 잘 살 것 같더냐 !
너희 놈들부터 모조리 지옥 행이 될 것이다. 그 개 잡놈에게 얼마를 받아 쳐 묵었는지는 모르지만, 조상 님들을 욕보이는 개 젖 같은 짖은 이제 그만 멈추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