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살리기’나 ‘윤석열 대통령 죽이기’는 단지 명분일 뿐인가?’
“정치는 이념의 헤게모니 싸움이다.” 그렇다면 이념에 중도가 설 자리가 있을까. 머릿속에 맴돌고 있는 “좌(左)도 우(右)도 내 진정성을 몰라주고 있다”라고 했던 이명박 정부 중도 정책의 바탕에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의《제3의 길》과 맞물려져 있다. ‘제3의 길’이란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좌파와, 자본주의를 표방하는 우파 이념을 넘어서는 실용주의 중도 신좌파 노선을 의미한다. 기든스의 사상체계 핵심은 ‘단순한 좌우의 타협이 아니라 중도 좌파의 핵심적 가치를 끌어내 사회 경제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키는 것, 즉 실용주의적 사회민주주의의 복원’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기든스의 논리라면 우파의 설 자리는 모호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은 첨예한 이념 대립으로 체제 전쟁의 중심에 서 있다.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무시하는 종북 좌파 세력과 그 체제를 지키려는 자유 민주 세력이 대치 국면에 있다. 그런데 지난 좌파 정부의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중도의 기치를 걸고 우파 정부 행세하고, 우파 정부라고 자임했던 김영삼·이명박 정부는 우측 깜빡이를 켜고 상황에 따라 좌회전하면서 이념을 희석하는 우를 범했다.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휴전선으로 적과 대치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좌우 이념 대립을 넘어선 ‘제3의 길’ 선택은 존재할 수 있을까.
기든스는 “이상이 없는 정치적 삶은 의미가 없고, 유토피아의 꿈은 현실의 가능성과 결부되지 않으면 공허하다. 우리는 어떤 종류의 사회를 창조하기를 원하며 그것을 향해 나가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이 무엇인지는 알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동양적인 가치에서 보면 좌파가 부르짖는 이상향의 수단으로 접목하고 있는 사회 복지론과 그 성격이 중첩된다. 이론대로라면 무릉도원으로 귀착되는 만백성의 꿈이다. 하지만 ‘하늘과 땅은 나와 같이 생기고, 만물은 나와 함께 하나가 되어 있다’라고 했던 장자(莊子)의 자유로움을 추구한 ‘호접몽’의 꿈도 전쟁터에서는 말짱 도루묵일 뿐이다.
흔히 우리는 한국형 특수상황을 말한다. 천안함 폭침, 연평도 피폭을 거슬러 가 보자. 6·25남침 전쟁이 주는 제1 교훈은 체제 전쟁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 간의 싸움이다. 지면 죽고, 이기면 사는 적자생존의 정글 법칙이 작동하고 있는 ‘죽느냐 사느냐?’ 사생결단 싸움이다. 대한민국 체제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세력들이 판치고 있다. 중도를 표방한 기든스의 ‘제3의 길' 속에 남북의 체제 전쟁이 있고, ‘죽창’ 있었다는 주장은 없다. 6·25 남침 전쟁만 봐도 전쟁터는 삶과 죽음의 현실적인 경계선이다. 여기에 무슨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는 형이상학적인 넋두리가 필요하겠는가?
결국, 검찰이 윤석열 대통령을 구속 상태에서 기소했다. 비상식적인 일이 총체적으로 계속 벌어지고 있다. 민주당의 탄핵을 기정사실로 하는 조직적인 프로파간다 정치 때문이다. 헌법재판소, 선거관리위원회,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일부의 일사불란한 반헌법적인 불법과 억지, 편파보도 하는 일부 언론도 그 중심에 있다. 마치 체제 전쟁 같다. 작게 윤석열 정부를, 크게 국가 체제 뒤집기를 노렸다면 ‘이재명 대표 살리기’나 ‘윤석열 대통령 죽이기’는 단지 미끼일 수도 있다. 민주당은 무소불위 입법 독재로 헌법과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체제 틀짓기 목표가 아니라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