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촌 노 김 성복이가 살아오면서 가장 즐거웠던 얘기
어저께 11 월 22 일 안동 대학교 국제 교류 관 홀에서 개최된, 제 3 회 안동 시 4-H 본부 전진 대회 및, 안동 대학 4-H 회원 출범식 행사를 개최하면서, 안동 시 4-H 본부 회원님들 지역 회원, 안동 대학 4-H 회원들과 농 생 고 학생 4-H 회원들과 지도 교사님들, 안동 부시장님, 안동 대학 총장 님과 도 의원 시 의원 분들과 각 개 기관장 님들과 내빈들 1 천 여분이 참석하신 가운데, 오후 1 시부터 시작하여 오후 4 시까지 각종 농산물 전시 품과 식전 식후 행사로 성대하게 개최하였습니다. 영광스럽게도 그날은 필명 안동 촌 노[安東村勞] 김 성복 이가 여 든이 된 나이에 그것도 수많은 후배들을 제쳐 놓고서, 경북 4-H 본부 회장님이시고
안동 시 4-H 본부 회장님이신, 탁 상훈 회장님께 한 달 전에 저가 부탁을 해서 나의 평생에 큰 행사에 두 번이나 4-H 서약을 하게 되는 크나큰 영광을 얻었습니다. 처음 행사는 저가 1969 년 안동 시 4-H 연합 회 부회장으로 역임할 당시에 그해 경진대회 행사장 개회 식에서 수백 명의 참관 인이 지켜보시는 가운데, 처음으로 4-H 서약을 낭독한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만 해도 행사장에서는 처음 해보는 것이라 많이 떨렸지만, 그래도 육십 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난 다음에 이번과 같은 큰 행사에서 4-H 서약을 해보기란 처음에 망 서려 졌지만, 이번에 하지 못하면 남은 인생 언제
한번 해 볼 것인가 하는 생각에 탁 회장님께 큰마음 먹고 부탁을 했습니다. 원래 4-H 행사에는 본부의 부회장이나 간부들이 하게 되었는데, 사실 저가 그분들께 미안한 마음이 들더군요. 저가 4-H 생활을 하기 전, 어릴 적에는 사실 다른 낯선 사람들 앞에서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새 가슴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4-H 활동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교우를 많이 하다가 보니 비위도 많이 늘고 수줍음도 사라지더란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사람이 많을수록 오히려 말하는 것이 편하게 되고 간이 많이 커진 것 같아 보입니다. 여러 사람들을 모아 놓고서 역학 강의도 해보고,
많은 스님들과 같이 강론도 해보고 하다가 보니, 이제는 오히려 사람이 없을 적 보다가 더 얘기하기가 쉬워지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여담이지만, 저가 노 무현 선거 운동을 했고, 노 현 정권 당시 서울 역에서 청와대 앞에서, 마로니에 공원에서 노 무현 일인 퇴진 시위를 하면서 부터, 생사를 초월한 집회를 하다가 보니 이제는 간 댕 이가 많이 부은 것 같아 보입니다. 노 무현 정권 당시 한미 에 프 티 결사반대 시위를 마로니에 공원 12 차선에서 35 만 명이 모인 집회 장에서 8 분간이나 기조연설을 하면서 느낀 점은 아무리 많이 배우거나 학식이 높아도 자기의 지식을 전달하는 것은 많이 모인 집회에서 여러 청중들에게
서슴없이 언변을 발표하는 것이 보통 강심장으로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저가 국가 기술 자격증을 여러 개 취득했는데, 처음에는 가슴이 떨려서 우황 청심환을 먹고서 시험을 보았는데, 이제는 그것도 필요 없고 왼 간한 연설문은 두어 번 보고 말하고 연습하면, 거의 나의 머릿속에 입력이 되고 그것을 어떤 모습으로 청중들에게 전달 할 가 하는 생각만 가지고서 사전 리허설을 집에서 두어 번 하고, 행사장이나 강의 장에 나가면 실타래 풀리듯이 자연스럽게 나의 몸에서 방출되더란 것입니다. 그것을 일컬어서 도인들이 하는 말은 도통을 했다 라고 하지요. 저가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전 광훈 목사 님과 손 상대 선생님입니다. 그분들은 보통 행사장에 수십 만이 아니라, 수백 만 명이 모여도 한결같이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들을 서슴없이 하는 것에 저는 존경합니다. 대학원을 나오고, 박사 학위를 수십 개 받았다고 해도 만인이 모이는 자리에서 원고 없이 수많은 청중들에게 거짓말을 하던, 쌍 소리를 하던 청중들에게 감화를 주고 귀에 쏙 속 들어오게 말을 하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말이란 쉽기도 하지만, 가장 어려운 것이 한번 입 밖으로 나오면 다시 주어 담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전 광훈 목사를 보고서 이단이니 사기꾼이 하지만 , 그의 언변에서 풍기는 카리스마와
청중들을 휘여 잡는 그의 카리스마가 넘치는 언변 술은 인정해야 합니다. 나의 성격은 직선적이기 때문에, 앞에 나서지도 못하면서 뒤에서 궁시렁 거리는 사람을 가장 싫어합니다. 저가 조선 닷 컴 토론 마당과 천자 토론에서 수많은 논객들과 얼굴을 보지 않고서 글로서 토론을 하면서, 어떤 대학 교수 분이 저 보고서는 초 졸 출신이고 안동 촌 놈인 주제에 건방 스럽다고 얘길 하기에, 저는 그 교수 분 보고서 그렇다면 나는 초 졸 출신이고 안동 촌 놈이니까, 선생님하고 영어와 수학만 빼고서 경제 정치 문학 역사 예술 체육 시사 등을 가지고서 저하고 며칠이라도 좋으니까, 토론을 하자고 저가 제의했더니 토론 방이 난리가 났습니다.
어떤 논객들은 저와 교수 분이 토론하는 것을 인터넷으로 생중계까지 하는 진풍경까지 벌어졌습니다. 시간은 토론 당 한 꼭지에 삼백 자가 [토론방 원칙] 넘지 않아야 하고, 한 개 당 올리고 난 다음에 5 분이 넘어서 까지 상대방의 토론 글이 올라오지 않으면 실격이 되는 것으로 룰을 정해 놓고서 시작했는데, 부산의 모 진보 좌파 교수란 분과 저와 같이 토론을 했는데, 아무래도 많이 배운 분이 유리할 것이고 저가 불리한 것은 명약 관화한 사실이지만, 결국 그 교수 분과 8 시간에 걸쳐서 토론한 결과 양쪽에서 토론의 글이 삼백 개가 오르내렸지만, 결국 그 교수 분이 경제와 역사에서 저에게 밀리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교수 분은 토론 방을 탈퇴하고, 그분과는 지금 것 한 번도 토론 방에서 만나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 인터넷 상에 올라오는 수많은 댓글들이 난무하지만, 실제 자기의 본명을 가리고 글을 쓰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쌍 욕을 하는 사람이 결국은 이기고 맙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에 실명으로 토론 방을 운영하는 곳이 조선 닷컴 토론 방이고, 이곳 논 객 넷 단 두 곳 뿐입니다. 이곳은 그 어떤 사람도 실명을 아니 가지고는 토론 방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저의 경우는 여기 논 장에 실명은 물론이고, 저의 집 주소와 저의 부모님의 이름 전화번호까지 다 실명으로 기록을 해두었기에, 어떤 분들도
저에게는 장난을 치지 못합니다. 토론 방의 활성화나 인권을 위해서도 토 론 방 댓글 만은 꼭 자기의 주소와 실명을 밝히도록 방 통 위와 신문사에서는 전면 개방을 해야만, 외국의 헤 커 들이나 북한 통 전부의 애들이 장난을 치지 못합니다. 이번에 국힘 당의 게시판에 올라온 댓글 중에 한 동훈의 가족들이 연류 되었다는 것도 사이버 수사대에서 수사하면, 단 몇 분이면 모두 밝혀집니다. 누가 조회 수를 어디에서 얼마나 조작을 했고, 누가 댓글을 달면서 대통령 부부에게 쌍 욕을 했는지 ? 모두 다, 밝혀집니다. 우리가 쓰는 글은 사이버 전자 팀에서 조사를 하면, 모두 전자 화면에서 장소와 시간
그 사람의 집까지 일목요연하게 밝혀집니다. 그것을 모른다고 하면, 우리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이번 안동 시 제 3 회 4-H 전진 대회와 안동 대학 4-H 출범 대회를 성대하게 치 루 어 내신, 탁 상훈 회장님과 엄 철용 수석 부회장님과 탁 호찬 교수님과 박 정숙 사무국장님 이하 모든 임원 진과 회원 여러분들과 행사에 참석하시어서 자리를 빛내주신 내외 귀빈 여러분들께 엎드려 감사드립니다. 안동 시의 이번 행사로 전국의 4-H 회원 여러분들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 드립니다. 이제 우리 4-H 회원들이 앞장서서 자유민주대한민국을 지켜내는 구국의 전사로서 솔선수범 합시다. 감사합니다.
-- 안동 촌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