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생사 왔다 가면 별 것이 더냐 !
이곳 논장에서 고물 故物 [고문] 소릴 들어가면서 내가 태어난 곳을 알리기 위해서 안동 촌노[安東 村勞]란 닉까지 쓰면서, 오직 가정과 사회와 우리나라를 위해서 일편단심 오직 직진만 하면서 살아오다가 보니, 어 언 세월이 팔십 년이 흘러갔다. 지금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내가 살아온 길이 정말 인간 답게 살면서 올바르게 살아온 것인지 조차 모르게 세월은 나를 잊은 채 하염없이 팔십 년이란 세월을 속절없이 살아지게 만든 것이 한편으로는 서글프고,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면 비록 정규 교육은 육 년이란 초등학교도 간신히 나온 무식하고 보 잘 것 없는 남들이 보기에는 민망할 정도의 인생을 살아오면서도 그래도 보람이 있다면,
부모님 유산인 땅 한 평 받지 못하고, 일원 한장 부모님의 재산을 물려받지 못해도 나름대로 열심히 못 배운 학문을 나 혼자서 독학으로 그래도 한글이라도 깨우칠 수 있었고, 오늘날 기 라성 같은 대 논객들이 모이신 이곳 논장에서 그나마 고물일망정 사람 대접을 받고 사는 것이 일견, 남들이 보기로는 성공한 삶이라 추론 해 보지만, 아직도 철이 덜든 것은 사실이다. 다만, 사람의 생명은 무한[無限]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삶의 수명이 다하면 우리가 왔던 곳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어쩌면 숙명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삶은 과거 우리가 어린 시절 같으면, 나 역시 삼십 년 전에 이미 땅에 들어 누워 황토 흙으로 변했을 것이지만,
지금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과학과 의료 기술로 인간의 수명이 과거 오십 년 전 보다가는 삼십 년을 덤으로 살아가는 영예도 누릴 수 있다는 것에 나 역시 어쩌면 삶의 무게를 더한 층 고마워하고 있다. 인간의 수명은 이미 태어날 적부터 타고 난다 지만, 그것은 이미 옛말일 뿐이다. 지금 미국의 어떤 백만장자 갑부는 죽으면서 자기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자기의 육신을 급속 냉동 하여 장기가 보존되게 하면서 70 도의 얼음 냉동고 캡슐에 보관되어 자기가 죽을 당시 어떤 병에 걸려 죽었는데, 미래의 과학으로 자기의 육신을 다시 개봉하여 영원히 죽지 않을 생노 병사의 길을 택하였다는 얘기가 있고 보면,
그것 또한 우스운 얘기이다. 인간인 육신의 집에 동거했던 영혼이 자기의 본체인 육신이 죽어지면, 영혼 또한 그 육신에서 떠난 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인간의 육신을 지배하는 것은 인간의 형상을 하면서, 육신이 멍들고 부서 지고 더럽고 보수가 불가능하면, 그곳에 거처 했던 영혼은 그 헌 집을 버리고 다른 육신으로 새집을 마련하여 옮겨 간다는 이치를 모르는 사람이다. 내가 젊을 적에 어떤 소설을 읽은 적이 있는데, 지금은 그 책의 이름은 모르지만 이런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어떤 젊은 사람이 산골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길을 잃어버려서 길을 찾아다니다가 우연히 어떤 늙은 노인 둘 이서,
널 직한 바위 위에서 바둑을 뜨고 있길 레, 그 젊은이가 반가워서 그 노인들께 자기는 어디에 살고 있는 아무갠데, 오늘 새벽에 나무를 하러 왔다가 길을 잃어 버렸다고 하면서, 그 노인들께 어디로 가면 저의 집을 찾아 갈 수 있습니까 ? 하고, 노인 분들께 물으니까, 노인들 두 분이 하시는 말씀이 “이 사람 아 ! 자네가 길을 잘못 들었 다니까 우리가 알려 줌 세” 하시면서, 노인들이 어떤 길로 가면 자네가 왔던 곳으로 찾아갈 것이니 라 고 말하면서, 두 분 노인들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면서 "젊은이 잘 가게” 하는 소리를 듣고서 급하게 노인들이 알려주는 길을 찾아 내려오니까,
길은 분명히 자기가 산에 나무 하러 올 적에 길이 틀림없이 맞는데, 자기가 살던 마을 집이 오늘 새벽만 해도 그야말로 산골 초가 지붕이었는데, 자기가 지금 왔던 집은 오늘 새벽에 떠날 때의 초가집이 아니고, 기와집에 왼 젊은 내외가 둘 이서 “어떻게 저의 집을 찾아 오셨습니까 ?”하고 반문하길 레, 나무꾼이 이러 저러하고 내가 오늘 새벽에 집을 나서서 산에 올랐다가 길을 잃어버려서 헤매다가 어떤 노인 분들을 산골에서 만나서 내가 왔던 길을 가르쳐 주시길 레 찾아왔는데, 어째서 분명히 내가 새벽에 나설 적에 우리 집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자기와 많이 닮은 젊은 사람이 그러면 혹시 ? 아무개 어르신이 아니 십니까 ?
하면서, 자기의 이름을 부르면서 통곡을 하길 레, 젊은 나무꾼은 이상해서 자기와 닮은 젊은 사람에게 그 연유를 물었더니 그 젊은이가 하는 말이 자기 조부님이 모년 모 월 모 일에 산에 나무를 하러 가신다면서 나가셨는데, 지금 것 연락이 없고 행방불명이 되셨다고 하시면서 둘 젊은 내외가 대성 통곡을 하면서 하는 말이 저의 조부님이 산에 나무 하러 가시고 난 후에 행방이 묘 연 하여 저의 조모님과 저의 아버님이 백 방으로 조부님의 행방을 찾았지만, 결국 찾지 못하셨고 들짐승이나 산적에게 화를 입으셔서 돌아가신 줄 알고서, 그날을 저의 조부님 기일로 삼고 지금 것 삼대가 제사를 올린다고 하길 레,
나는 오늘 새벽에 나무 하러 산에 갔다가 길을 잃어 버려서 겨우 집을 찾아 왔는데, 하루도 되기 전에 세월이 삼대가 흘렀단 말인가 ? 하면서,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 하면서, 자기의 생 살을 꼬집어보아도 사실인 것을 어 쩌 랴 ! 자기가 산에 나무 하러 간 것도 사실이고, 산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도 ~ , 산에서 노인 두 분이 바둑을 뜨는 것도 모두 사실이다. 다만 젊은 나무꾼이 산에 들어간 그곳이 바로 별유 천지[別有天地]였다는 것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4 차원이고, 신선들이 말하는 별유 천지인 것이다. 안동 촌 노도 젊을 적에 도[道] 공부한다면서, 계룡산 토굴에서 몇 달 간 공부하러 갔다가
신선 한 분을 우연히 만난 적이 있는데, 그분은 자기가 언제 태어 난지도 모른 체 이미 생사 해탈을 하신 분이셨다. 지난 글에도 이곳 논 장에 올렸지만, 그분의 연세가 삼백 년이 넘은 것으로 나는 추정을 한다. 우리가 사는 곳은 그야말로 별유 천지에 살고 있다. 근심과 걱정을 하지 않고 낙천적으로 살다가 보면, 세월도 비켜간다는 것이다. 과천 대의 이사장님은 여성 분인데 그분은 성형 술도 하지 않았지만, 지금 93 세의 연세임에도 얼굴 모습과 몸매는 삼십 대의 미인이다. 그분은 미혼이고, 젊게 사는 법은 걱정도 하지 말고 남을 위해서 봉사를 하면서 근심 걱정을 잊어버리면, 세월이 우리를 비켜간다는 것이다.
안동 촌 노 역시 지금 팔십의 나이지만, 머리는 백발이라도 남들이 나를 보고서는 한 이십 년은 젊게 동안[童顔]으로 본다는 것이다. 정신병 환자 분들은 절대 모발과 얼굴이 일직 늙지 않는다. 그 이유는 ? 바로 그분들은 자기의 인생에 대한 근심 걱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안동 촌노가 정신병 환자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모든 것을 낙천적으로 생각하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나의 아내가 22 년 전, 교통사고로 머리를 심하게 다쳐서 정신 지체 1 급 장애인이다. 그런 대도 나는 우리 집 사람과 같이 걱정하지 않고 살아서 인지는 모르지만, 인생은 그야말로 일장춘몽일 뿐이다.
젊은 나무꾼에 하루의 일과처럼 마음을 비우면 그것이 곧 신선의 경지이고,
생 노 병사를 건너뛰는 해탈의 길인 것이다.
-- 안동 촌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