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북 좌 빨들은 가열 차게 진행할 것이다.
저들은 자기들이 죽여 놓고서, 그 시신을 가지고서 몇십 년 동안 시체 장사를 하는 놈들이다.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학자들과 인류를 위해서 열심히 공헌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상이 바로 스웨덴의 노벨상이다. 그런데 영광스럽게도 금년에는 우리나라 광주의 시민 작가인 한강인지, 대동 강인지 하는 여성이 탔다. 그런데 나 역시 여러 번 국내에서 상을 타 보았지만, 사실상 상이란 것은 여러 사람들을 대상으로 엄정하게 공 훈을 실사하여 이 사람에게 이런 상을 주어도 되는 지를, 상을 주는 기관에서 포상에 대한 현지 실사와 엄정한 심사를 하여서 주고 나중에 그 상이 공정하게 그 사람에게
주어 졌는 지를 철저하게 조사를 하고, 만약에 그 상이 잘못 시상 되었을 적에는 상을 준 기관에서 그 사람에게 주어진 상을 회수하거나 박탈하는 것이 지금 것 있어온 관례이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나라 광주 출신인 시인 겸, 작가인 한강이란 여성이 영광스러운 노벨 문학 상을 동양에서는 여성으로서는 처음 수상한 모양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노벨상을 받게 된 내용은 광주 오일 팔에 대한 한강이란 작가가 리얼하게 사실적인 팩트로 ?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고, 이미 광주 사태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만큼, 이번에 한강이란 작가가 그 상을 받은 것으로 항간에 말들이 오고 간다.
나는 한강이란 작가에 대한 인적 사항이나, 그의 고향이 어디고 어느 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는 지에 대 하 여는 잘 모른다. 허지만, 한강이란 작가가 쓴 소설에는 광주 오일 팔 당시에 광주 폭도들을 진압 하러 간 공수 특전사 군인들이 어린 아이들이나 임산부의 배를 갈라서 참혹하게 죽이는 장면을 연상하는 내용이 소설에 그대로 쓰여 졌다는 것이다. 내가 알기론, 광주 오일 팔의 광주 폭동이 사실상 1980 년 5 월 17 일에 발생했지만, 실제 광주 오일 팔을 추모하는 날은 5,18 인 것으로 알고 있고, 광주 오일 팔이 최 규하 정부 군에 진압이 되고 난 후에 민 관 군의 합동 조사 반들이
광주 사태에 대한 사실적인 현장 조사와 사상자에 대한 실체를 정확하게 조사한 것이 수십 만 쪽에 달하는 그 당시의 수사 기록과 민 관 군 합동 수사 반의 정확한 조사가 기록된 문건들만 해도 정부 기록관에 비치 된 기록물만 해도 수백 만 쪽의 자료들이 국가 기록 원에 그대로 멸실 되지 않고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노령의 연세임에도 광주 사태 당시 희생된 유가족들의 고소 고발로 지 만원 박사께서는 2 년의 징역형을 받고서, 감옥을 살고 있는 대도 판사가 판결한 형량의 80% 를 넘게 감옥에 계시지만, 윤 석열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은 지 만원 박사 쪽의 변호사들에
보석 신청에도 눈도 깜작 하지 않고 있다. 사실 지 만원 박사가 잘못하신 얘기는 없다고 본다. 광주 사태 당시의 사고 기록들을 이미 여러 번 일일이 사건 내용에 대한 것을 달 달 외울 정도로 기록들을 머릿속에 입력하신 분이시다. 그리고 지 만원 박사께서는 이미 오일 팔 내란 폭동에 대한 기록을 열람하시면서, 광주 오일 팔의 진상을 잘 아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그분은 공개된 장소에서 광주 오일 팔 역사에 대한 실체를 밝히기 위해서 광주 오일 팔 유공자 회와 오일 팔 부상 회와 미망인 회에 대하여 방송에서 막장 토론까지 그들에게 제의를 했지만, 저들은 전라도와 광주 국회의원들이
입법 한 광주 오일 팔에 대한 진실의 입을 막기 위해서 광주 오일 팔을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엄중한 사법 처리로 전 국민들의 입을 봉해 놓은 악법까지 만들었고, 사실 광주 사태 당시에, 김 대중의 입으로 자기가 광주 오일 팔을 선동했다고 자백하였고, 그 당시 전 두환 대통령에게 자기가 잘못했다. 라 고 사죄를 하고 모든 정치에서 사퇴하고 미국으로 가서 일생을 보내겠다. 라 고 자기의 진정서를 쓴 것을 우리는 이미 그 당시 김 대중이가 옥중 에서 전 두환 대통령께 보낸 진정서와 잘못을 인정한 것을 방송과 신문을 통해서 나 역시 직접 눈으로 본 사람이다. 그리고 김 영삼이가
정권을 잡고서 광주 오일 팔을 다시 재 조사하면서, 광주 폭동과 내란을 민주화는 낯 부끄럽고 해서 인지 광주 민주 항쟁으로 이름조차 개명을 해버린 것이다. 노 태우 정권까지 광주 민주화는 사실 광주 사태나 광주 내란 또는 폭동으로 언론들은 기록했다. 그런데 김 영 삼 역적 놈이 광주 사태와 폭동을, 광주 민주 항쟁으로 소급 입법하고, 전 두환과 노 태우 전직 대통령들을 국회에 불러내어서 거짓 자백을 받으려 했지만, 그것이 무산되자 저들은 전 두환을 오히려 내란 죄로 사형 언도 까지 내리고, 노 태우는 무기징역까지 저들 맘대로 작란을 친 것이다. 광주 오일 팔 당시 민간인들이 군 경의 무기고를 털어서 폭동을 일으킨 것은
내란의 죄 명이 맡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고한 민간인들을 칼 빈 총으로 사살한 폭도들이나 경찰과 군인들을 살 상케 한 자들은 모두 광주 민주 항쟁 유공자로 삼대가 연금을 받고, 보상을 받고 거기다가 그들의 자녀와 손자들까지 공무원 시험에 10 점이란 가산 점까지 주고 있다는 것이다. 공무원 시험에 사실상 가산점이 10 점이면, 대굴 박의 아이큐가 소대 가리 처럼 백치에 가까워도 거의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는 것은 따 놓은 당상이다. 그래서 지금 전남 도청이나 광주 시청 구청, 같은 곳에는 거의 광주 오일 팔 유공자들의 자녀들이 또 아 리 틀고 있고, 자유 민주 대한민국의 신성한 주권을
행사하는 투 개표 기관인 중앙 선관위조차 전라도 인들이 80 %가 저들만의 신성 불가침의 영역으로 변했다는 것이고, 소위 검 판사 중에도 광주 오일 팔 사돈의 팔 촌 까지 전라도 사람들이 차지하고, 사실상 말이 대한민국이지 전라 민국 이란 말은 헛 말이 아닐 것이다. 저들이 그렇게 신성시하는 광주 민주 항쟁의 유공자들이라면, 국가 보훈 부에서 조 차 저들의 위대한 업적에 대한 기록과 저들의 위대한 명부조차 꼭꼭 숨기는 이유가 무엇인가 ? 그리고 이번에 노벨상을 받았다는 영광스런 한강이란 작가는 오일 팔 당시에 일곱 살의 어린 나이인데, 어떻게 그렇게 사건 현장을 낱낱이 신랄하게 리얼하게 글로서 표현 하였다는 것인지 ?
나로서는 경의로 울 뿐이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사실적으로 글을 써야 하고, 우리들이 쓰는 글 한자 한자가 후일 우리의 후손들이 보기에 정확하게 진실하게 기록하여야 한다. 무식한 안동 촌 노의 닉을 쓰는 안동의 시골 촌 놈인 김 성 복 이는 팔십 평생을 살아오면서 누가 카 더 라, 보았더라, 하는 글은 절대로 쓰지 않는다. 내가 직접 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현장을 본 것만 기록하여 둔 세월이 어 언 63 년 만이다. 60 년의 현대사와 근대사를 기록한 나의 모든 기록들이 이번에 국가 기록 원과 경북 문화 기록 원에 수백 점이 이미 전시되어 있다. 그것도
아무런 보상도 없이 그냥 기증한 것이다. 내가 죽고 난 후에 나를 알고 있던 분들과 나의 후손들은 분명히 사실적인 나의 기록을 살아 있는 역사로 알고 볼 것이다. 한강의 작가인지 ? 정확한 이름은 나도 모른다. 글 쓰는 사람이라면, 광주 사태에 대한 진실에 벗어난 오류의 글에 대하여 국민들께 고개 숙여 사죄하고, 당신이 받은 노벨상을 지금이라도 반납하라 ! 그것이 올바른 역사에 대한 내용은 당신이 책임져야 할 몫인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넓은 시야로 바라보고 글 쟁이로서 긍지를 지켜 달라 ! 우리의 지난 오 욕의 역사는 힘 있는 권력에 의하여 변질되었음을 깊이 인식하라 !
-- 안동 촌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