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 박사는 운명론자인가?
어제 수감생활을 시작한 지만원 박사는 인사말에서
“나는 팔자와 운명을 믿는 사람입니다. 누가 정해진 팔자를 거역하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2년 여 전 쯤 안티다원이 지박사께 잠간 질문을 드렸었다.
“ 518연구에 평생을 바치다시피 하셨는데 후회하지 않으십니까 그 시간과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쓰셨으면 또 다른 업적이 나지 않았겠습니까?”
하는 요지였다.
이 때 지박사님은
“ 후회하지 않아요. 이게 나에게 맡겨진 운명입니다”
라는 요지의 답을 하셨다.
그래서 나는
“운명이라면 그럼 결정론을 믿으십니까?”
라고 다시 질문했더니
“그렇습니다. 다 운명으로 결정됐어요.”
하시기에
“그럼 그 결정론을 믿으시게 된 동기가 무엇입니까 인문적 독서와 사색에서 얻으셨습니까?”
했더니
“인생 살아보니까 그래요 다 운명이고 결정 된 대로 갑니다”
라는 요지의 답을 하셨다. 평소 이미지와는 다르게 숙명론적으로 여겨질 말씀을 하셔서 예상 밖이었다.
결정론決定論determinism 運命論fatalism 宿命論fatalism은 혼용되기도 하고 약간씩 강조점에서 다르기도 하지만 인간의 행위를 포함한 모든 사상事象phenomenon은 필연적인 법칙에 지배된다고 하는 입장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진행은 미리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인간의 의지와 지력知力은 이에 대해 무력함으로 그것을 어찌할 수 없다는 체념이 깔려있는 설이다.
이런 결정론에 반대하는 비결정론非決定論indeterminism이 있는데 인간의 의지가 선행된 원인에 제약당하지 않고 셀프로 因果cause and effect, Karma를 만들어 낸다는 설이며 역사의 필연성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비결정론은 <의지의 자유>에 방점이 있는 이론이다. 강한 결정론이나 운명론에서는 <의지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건 단지 착각일 뿐이고 만사는 결정 되어 있는데 의지에게 자유가 있는 것처럼 속고 있다는 얘기다.
교부 어거스틴Augustinus도 우리의 자유의지란 단지 심리적으로 느끼는 자유일 뿐 신神God이 사용하는 도구일 뿐이라고 해서 결정론에 준하는 주장을 한다. 한편 Kant는 이러한 난점을 극복하기 위해 인과관계의 지배를 현상계現象界에 한정시키고 본체로서의 자아自我는 현상계를 넘어서는 셀프 因果를 만든다고 보았다.
즉 현상의 세계에서는 인과관계의 지배를 받지만 실천이성實踐理性에서는 자아로부터 인과관계가 시작된다는 얘기인데 어렵기만 한 난제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의지의 자유>를 인정하느냐 여부로 귀착된다.
이러한 결정론에도 <기계적 결정론>과 <변증법적 결정론>이 있어 서로 대립한다. 기계적 결정론은 우연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필연성을 절대화하여 그야말로 세계가 기계처럼 설계된 대로 간다는 것이고 변증법적 결정론은 우연의 객관적 존재를 인정하고 우연과 필연, 필연과 자유의 변증법적 상호관계를 통해 사회나 개인이 목적의식을 가지고 변혁할 수 있다고 본다. 유연한 결정론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기계적 결정론은 모든 게 결정됐다고 보는 점에서 숙명론의 또 다른 이름일 수밖에 없다.
지박사께서 어떤 의미의 결정론을 가졌는지 알 수 없으나 말씀으로 봐 자유의지를 중요시하지 않으면서 개인이든 사회든 설계된 플랜을 따라 움직여지고 결말 되고 있다는 의식을 가지신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에 고생길인 518연구나 그 투쟁 모두를 자신에게 부과된 사명으로 여겨 싸우고 계실 것이다.
지박사님은 과거 오랜 기간을 교회생활 하였었고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면 기도한다고 하시는 점으로 봐 그 결정론 형성에 교회신앙이 영향하지 않았을까 여겨 본다. 애국의 큰 스타이신 지박사님께서 빨리 자유의 몸이 되셔서 더욱 힘차게 싸워주시기를!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11:36)
2023.1.17.안티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