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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의 선택(4) - dogmatism과 주체사상 |
작성자: 정문 |
조회: 2621 등록일: 2024-08-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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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양명이 7일간 대나무를 처다 보다 몸살을 앓은 대학(大學)의 격물치지(格物致知)를 과연 서양철학(西洋哲學)의 인식론(認識論)에 대비 될 수 있는 가(可)에 개인적으로 “아니다”라는 생각이다, 그나마, 그것도 아주 일부분에 한하여 자연철학(自然哲學)의 인식론적 문제로 격물치지를 끼워 줄 수 있으나 - 엄밀히 말한다면 그것도 억지다 – 광의(廣義)의 자연철학을 논할 때 그것은 아니다.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공자의 지천명(知天命)처럼 경험(經驗)조차 할 수 없는 초월(超越)적 대상에서 철학(哲學)은 성장한다. 또한, 철학은 어느 것이든 탐구(探求)와 공부의 대상이 된다, 정치철학(政治哲學), 경제철학(經濟哲學), 인격철학(人格哲學), 사장철학(社長哲學), 식당철학(食堂哲學), 카센타철학 등 끝없는 확장(擴張)과 끊임없는 분화(分化)를 통해 지혜(智慧)를 찾는다. 따라서 철학적 지혜는 비이커에서 나오는 실험결과처럼 찾을 수 없다. 철학의 대상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모든 것!”이다. 좀 더 나아가 “근원적인 의미와 지혜가 필요한 모든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따라서 철학적 대상은 볼 수 없고 검증할 수 없는 추상(推想)적인 것, 현실초월(現實超越)적인 것, 형이상학(形而上學)적인 것도 모두 그 대상이 되어야 한다. 초월적인 것, 형이상학적인 것의 철학적 접근(接近)은 경험론적(經驗論的) 인식(認識)으로는 접근(接近)이 불가능하다. 거대담론(巨大談論)의 관념(觀念)과 초월적(超越的)인 세계(世界)와도 만난다. 경험(經驗)에 의존 할 수 없는 대상(代償)을 사유(思惟)로 인식(認識)을 넓히는 사변(思辨)적 숙고(熟考)는 서양철학을 풍성하게 했다. 서양철학의 발전은 사변철학(思辨哲學)과 함께 했다, 서양철학(西洋哲學)이 대세(大勢) 가 된 지금 시대이다. 동양철학(東洋哲學)이 서양철학으로부터 가장 많은 비판(批判) 받는 것 중 하나가 형이상학(形而上學), 존재론(存在論), 인식론(認識論)과 같은 경험하지 못한 추상적인 것에 대한 관념(觀念)을 철학적(哲學的) 탐구(探究)를 위한 구체화(具體化) 하는 사변철학(思辨哲學)이 존재하지 않거나 극단적으로 미비(未備)하다는 것이다. 사변철학의 부존재(不存在)라는 동양철학의 한계는 그것을 극복하려는 교조주의(敎條主義, dogmatism)가 대신(代身)하였다. 그리하여 WHY?는 없고 HOW!만 있어야 한다. WHY?가 허락되지 않는 교조화(敎條化)는 지적 호기심과 진리탐구 등의 학문적 동력(動力)을 만들지 못한다. 따라서 그것을 추동(推動)할 동력(動力)을 인위적(人爲的)으로 만들어야 한다. 검증할 수 없거나 또는 접근할 수 없는, 감각될 수 없는 성역(聖域)을 만들어 우상(偶像)을 만든다. 옹골차게 외부와 차단 된 플라톤의 동굴의 우상 같은 것 말이다. 공자(孔子)는 제사를 통해 교조화(敎條化)의 동력(動力)을 얻을 것을 역설(力說)하고 있다.
논어(論語)는 제사에 대한 공자가 남긴 말을 적고 있다. 인간이 초월적 세계의 신(神)에게 바치는 제물(祭物)에 대한 성심성의(性心誠意)를 고의(故意) 또는 억지심(抑止心)으로 즉, 위선(僞善)으로 바꾸라는 것이다. “조상을 제사 지낼 때는 조상이 있는 것처럼 하고, 신을 제사 지낼 때는 신이 있는 것처럼 한다(祭如在, 祭神如神在)” “귀신(鬼神)이 있는 것처럼, 신(神)이 있는 것처럼”은 무(無)를 유(有)를 가정(假定)하라는 것이다. 이는 귀신(鬼神) 또는 신(神)은 초월적(超越的) 대상(對象)과 신앙(信仰)의 대상이 아닌 인공적(人工的)으로 만들어낸 인위적(人爲的) 우상(偶像)의 권위(權威)를 의미하는 것이다.
공자(孔子)의 무신론적(無神論的) 내세관(來世觀)과 세계관(世界觀)은 너무나 잘 알려진 주지(周知)의 사실이며, 사후세계(死後世界)를 인정하지 않은 주지적(主知的)인 공자였다. “삶을 모르거늘,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未知生 焉知死)” 공자는 50세에 깨달은 초월적(超越的) 하늘을 공자 자신의 권위화(權威化)를 위해 사용하고 있다. 나이 오십에 하늘의 뜻을 깨달았다( 五十而知天命) 공자의 천명(天命)은 현실에서 공부(工夫)와 습득(習得)을 통해서 성취할 수 없는 초월적 지혜를 의미한다. 석가가 보리수 나무 아래서 깨달은 각성(覺性)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 천명(天命)은 단 한번도 구체화 된 적이 없다. 그냥 너는 알아서는 아니 되는 권위적 하늘이다. 공자의 하늘 권위는 논어의 술이편(論語 述而編)에도 나온다. "하늘이 내게 덕을 부여해 주셨으니, 환퇴 따위가 감히 나를 어쩌겠는가?"("天生德於予, 桓魋其如予何?") 대표적 제자백가(諸子百家)로서 사회적 권위를 가진 공자를 해하려는 환퇴는 당시 상당한 사회적 권력을 가진 유력가(有力家)였을 것이다, 그러한 유력가 정도 따위가 감히 하늘(天)로부터 초월적(超越的) 권위(權威)를 받은 나를 해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즉, 하늘(天)을 등에 업은 호가호위(狐假虎威)의 권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북한 각지에 세워진 수천개의 영생탑에는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고 새겨져 있고, 그 영생탑을 통한 권위(權威)의 통치(統治)를 하고 있다. 김일성은 죽어 화약약품에 절여져 유리관 속에 들어가 있다. 생물학적으로 죽은 김일성은 우상(偶像)이 되어 독한 화학약품에 절여진 고통(?)을 받고 있다. 인간 공자(孔子)가 필요했던 천명(天命)같은 초월적(超越的) 권위(權威)가 필요한 주체사상(主體思想)은 김일성을 “사회정치적 생명체(社會政治的 生命體)”의 수령(首領) 이라는 초월적(超越的) 존재로 만들었다. 영생(永生) 하려는 인민(人民)은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일원(一員)이 됨으로서 영생을 얻게 된다. 즉, “수령-당-인민의 통일체”로 구성 되는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뇌수(腦髓)는 수령(首領)이고 당(黨)은 중추(中樞), 인민은 당을 통해 조직사상적(組織思想的) 결합(結合)을 하며 공동체와 운명(運命)을 같이 함으로서 사회정치척 생명의 영생(永生)을 얻게 된다. 그리고 화약약품에 절여저 누워있는 우상(偶像)과 같이 영원(永遠)을 얻는다. 인민(人民)은 과연 사회정치적(社會政治的) 영생(永生)을 얻을 것이라 믿고 있을까 의문스럽겠지만 탈북자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그들은 주체사상을 신앙적(信仰的)으로 믿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朝鮮時代) 당쟁으로 조선을 붉게 물들인 송시열은 하다못해 옷 입는 것까지 시비(是非)를 걸어 조선을 당쟁(黨爭)의 도가니로 몰아 넣고 오랜 친구 윤휴까지 사문난적(斯文亂賊)과 역모(逆謀)의 죄(罪)로 몰아 죽였다. 남한산성의 영웅 최명길을 간신으로 만드는 광기(狂氣)를 부리며 성리학(性理學)의 교조화(敎條化)를 완성(完城)한다. 그 덕분에 주전파김상현 가문(家門) 안동 김씨는 세도정치(勢道政治)의 막강한 권력을 쥐고 조선을 망하게 만들었다. 소중화 우상은 덕치(德治)를 세치(勢治로 만드는 유교(儒敎)적 마술을 부린다. 성리학의 교조화 과정에 있어 유교 탈레반의 초월적(超越的) 권위(權威)는 소중화사상(小中華思想, Little Sinocentrism)이었다. 정작 중화(中華)에서는 그저 동쪽 변방의 오랑캐(東夷)로 여겼고, 영은문(迎恩門)으로 나와 칙사(勅使)에 큰절을 3번이나 올리는 조선왕(朝鮮王) 정도의 식민지(植民地)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북한의 미국 본토 점령(占領) 보다 희박한 확률의 북벌(北伐)을 앞세우며 명(明)나라를 계승(繼承)한 조선(朝鮮)은 만동묘(萬東廟)를 세우고 중국 역사상 최악의 황제 3명 중에 한명 으로 꼽히는 암군(暗君) 만력제(萬曆帝)에게 제사(祭祀)를 지냈다. 똥바가지에 밥을 담아 소중화(小中華)의 우상(偶像)을 만든 것이다. 공자의 하늘(天), 김일성의 사회정치적영생(社會政治的 永生), 조선의 소중화(小中華) 같은 가공(加工)된 권위를 가진 교조주의(敎條主義, dogmatism)는 자그마한 이견(異見)에도 깨져 버리는 치명적(致命的)인 한계(限界)를 가진다. 이를테면, 신성(神性) 없는 공자의 천명(天命)에 의문을 가진 제자(弟子), 약품에 절여진 김일성의 시체와 사회정치적영생에 대한 부정(否定), 서구세계(西歐世界)의 실체와 중화(中華)의 부인(否認) 등은 대처할 방법은 없다. 그래서 이단(異端)으로 몰아 제거하는 독선(獨善) 외에는 선택(選擇) 할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그 독선(獨善)은 전향(轉向)에 베풀 자비(慈悲)조차도 가지지 못하는 잔혹(殘酷)한 속성을 가져야 한다. 유교(儒敎) 경전(經典) 중 가장 많이 읽히는 논어(論語)는 조선건국의 헌법(憲法)이었다. 논어는 단 한 권의 저작(著作)도 없는 공자(孔子)의 어록(語錄)을 모아 제자들이 편집한 책이다. 이는 논어(論語)에 의해 공자의 권위에 절대성을 부여 하였지만 결과적으로 공자 철학은 단 한 줄도 진보 시킬 수 없는 족쇄(足鎖)가 되었다. 결국 족쇄는 논리적 사고만의 사변적(思辨的) 인식(認識)조차 허용할 수 없게 만드는 지독(至毒)하고 완고(完固)한 아집(我執)으로 스스로를 무인도(無人島)에 강금(疆禁)하여 외부(外部)와 단절(斷絶)하는 생존(生存) 방법을 선택한다. 본질(本質)을 지키기 위한 도그마가 아니라 도그마를 만들기 위한 본질이 되어 버리는 교조주의(敎條主義, dogmatism)에 철학적(哲學的) 사변(思辨, speculation)이 숨 쉴 공간은 없다.
조선(朝鮮)과 북한(北韓)의 그 지긋 지긋 한 “우리민족끼리” 고립주의(孤立主義)와 쇄국(鎖國)이 생겨난 이유는 열등(劣等)한 문명(文明)의 정신승리(情神勝利)의 자구책 이다. 지금 시대에도 북한의 쇄국(鎖國)과 고립주의(孤立主義)를 자주노선(自主路線)이라고 칭송하는 무리도 있다. 그들의 뇌구조(腦構造)를 만든 것은 쇄국(鎖國)과 폐쇄(閉鎖), 열등감(劣等感)과 독재(獨裁社會)라는 유교적 우상(偶像)이다.
유교(儒敎)와 주체사상(主體思想)은 메커니즘의 작동(作動) 즉, 전개(展開), 적용(適用), 수렴(收斂)이 놀라울 정도로 동일(同一)하다. 독선(獨善)과 폐쇄성(閉鎖性), 쇄국(鎖國), 우상주의(偶像主義), 독재주의(獨裁主義), 전체주의(全體主義), 계급주의(階級主義), 열등감(劣等感), 잔인성(殘忍性) 등 동일한 속성(屬性)을 가진다. 국부(國父)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을 독재자(獨裁者)라고 비판하는 어리석은 자들을 본다. 유교와 주체사상의 독재성(獨裁性)에서 보듯이 독재는 반드시 폐쇄성(閉鎖性)을 동반(同伴)한다. 그것은 현실의 독재국가를 보아도 어렵지 않게 방증(傍證)되는 보편적(普遍的) 독재의 속성(屬性)이다. 한반도 오천년 역사에서 우리민족이 문을 열고 세계와 호홉한 개방성(開放性)을 만들어준 위대한 선각자(先覺者), 성현(聖賢)이 이승만, 박정희 이고 그 개방성(開放性)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낳은 것이다. 논어와 같은 미개한 경전을 옆에 낀 조선의 딸깍발이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이었다. 좌파(左派) 대통령 집권기는 김정은의 쇄국정책(鎖國政策) “우리민족끼리”를 홍보하고 다니며 국제적인 비난과 조롱을 받았다. 이보다 더한 국가적 망신은 없었다. 식량자급률 30%를 넘기지 못하는 한반도에서 북한이 굶어 죽는 이유는 주제경제(主體經制)의 폐쇄성이 원인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만, 동양적 폐쇄성에 경도(傾度) 된 머리를 악세사리로 달고 다니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이미 박물관으로 들어가 백골(白骨)이 진토(眞土) 된 공산독재주의(共産獨裁主義)가 여전히 중화대륙과 북쪽 한반도에서만 번영하고 있는 것은 유교적(儒敎的) 도그마의 강도(强度)가 그대로 공산주의 도그마로 흡수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불과 반세기보다 좀 더 이전 수백만이 죽고 죽이는 전쟁의 살육전(殺戮戰)의 경험(經驗)은 여전히 생생(生生) 함에도 “우리민족끼리” 주체사상을 앙망(仰望) 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이 존재하고 있다. 유교의 수구반동(守舊反動) 잔재(殘在)를 벗어 버리지 못한 그들이기 때문이다.
칸트의 관념론철학(觀念論哲學)을 완성 시킨 헤겔은 춘추와 주역, 시경 같은 책을 일찍이 펴낼 수 있었던 것에 중국인의 지적수준(知的水尊)을 높이 평가하고 있지만 동양철학의 경서(經書)에 뼈아픈, 야멸찬 비판을 가하고 있다. “왕조만 바뀌어 왔을 뿐, 변화와 진전이 없는 지루한 산문” 상형문자(象形文字), 표의문자(表意文字)에 불과한 한문으로 쓰여진 지루한 유교경전(儒敎經典)의 산문(散文)에 헤겔은 2500년 동안 경서(經書)를 진보(進步)시킬 논리(論理) 한 줄 조차 없느냐의 비아냥 인 것이다. 서양(西洋)에서는 끊임없이 신을 증명하려는 철학자들의 노력이 이천년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중세시대(中世時代)에서 피조물(被造物)이 창조주(創造主)를 증명 하는 교부철학, 스콜라철학 등의 교회 철학자들은 1000년을 이어가며 신존재증명(神存在證明)을 시도 하고 있다. 신존재 증명이 얼마 만큼의 철학적(哲學的), 학문적(學問的)으로 현실성(現實性)이 있느냐를 떠나, 창조주에 대한 검증도 스스럼 없는 그들의 제한(制限) 받지 않는 철학적 사변(思辨)이 서양철학을 일구어 온 것이다. 신존재증명은 철학자들이 신(神)의 영광(榮光)을 보이려는 노력으로 이해 받을 수도 있겠지만, 한편 바벨탑의 오만(傲慢)처럼 피조물의 창조주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만일, 공자의 하늘을 증명하려는 조선시대 선비, 북한 당 간부가 증명하려는 사회정치적생명체(社會政治的 生命體), 북벌(北伐)의 가능성(可能性)을 따지는 송시열의 제자가 목숨 부지가 가능했을 것 같지는 않다, 공자(孔子)의 이성(理性)이 탐(貪)한 하늘(天)의 신성(神性), 그 탐욕(貪慾)은 사변(思辨)의 자유(自由)를 허락 할 수 없었다. 2500년이 지난 경서(經書)를 벗어나지 못하는 동양철학의 비극(悲劇)이다. 같은 동족의 피를 빨아 먹고 배를 불리고 정신착란(精神錯亂)에 불과한 소중화(小中華)가 최고의 학문으로 생각하며 서양인(西洋人)을 금수(禽獸)라고 불렀다. 그 멍청이들의 지적(知的) 수준(水尊)을 만들어 준 것이 2500년전 공자(孔子)의 넋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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