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들의 핵심 중에서 핵심인 민노당과 참여 연대의 실체를 밝힌다.
필명 안동 촌 노[安東村勞] 김 성 복 이가 지금으로부터 19 년 전에 통 진 당의 전신인 민노당과 참여 연대에서 박 원 순과 다섯 차례, 참여 연대의 법무 팀장인 김 상 조와 여 러 번 만나서 공무원 당시에 어쩌다가 보험 설계사들의 권유로 들어 놓은 교통사고 보험 때문에 당연히 지급 받아야 할, 보험금을 지급 받지 못하고 어찌 할 줄 모르고 있었을 때, 삼성과 교 보 대한 생명 3 개 사의 대형 보험사와의 법정 시비에서 약 하 디 약한 말단 8 급 기능 직 공무원이 막강한 저들을 상대로 도저히 이길 수가 없어서 마지막 선택한 것이 바로 노 무 현 정권 당시 청와대와 금 감 원 국민 고충처리 위원회에 무려 수십 통의 진정서와 탄 원서를 제출했지만,
막상 서민들과 약자들을 위해서 일을 한다는 구 중 궁궐 청와대 안의 주인이신 노 무 현 대통령에게 다섯 통의 피 맺힌 절규의 탄 원서를 올렸지만, 일 년이 가고 이년이 지나도록 저에게 노 무 현 대통령은 저가 올린 탄 원서에 대한 일체의 답변도 없었고, 그래서 권 양 숙 영부인께 진정서를 한번 올렸지만 역시 함흥차사였고, 마지막으로 그 당시 청와대 민 정 수석으로 있다가 대통령 비서 실장으로 있었던 문 재인 비서 실장에게 마지막 탄 원서를 올렸으나, 역시 청와대에서는 묵 묵 부 답이고, 청와대에 총 일곱 건의 진정서와 탄 원서를 올리기 전에 금융 감독 원과 국민 고충 처리 위원회에 이미 수십 통의 사실적인 글을 올리면서 진정을 했었지만,
그 모두가 허사였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노 무 현 대통령의 청와대에 저는 일곱 통의 탄 원서를 보냈지만, 그 모두가 다시 금감원과 국민 고충 처리 위원회로 이 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국민 고충 처리 위원회의 위원장이 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서 한다는 말이 저희들로서도 해당 보험사들과 연락을 주고 받았고, 쌍방 간에 원활한 합의를 도출하여 해결하시길 부탁 드린다고 하면서, 그 당시 국민 고충 처리 위원회의 위원장이 저에게 애 걸 복 걸 하다 십이 저희들도 상부로부터 엄청난 마음의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도 도저히 해결 방법이 없다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마지막으로 법률 구조 공단에
서류를 접수 하였더니 담당자의 말인 즉, 이 사건은 단 석 달도 걸리지 않고 무난하게 해결 될 것입니다. 하면서 저에게 서류를 받아 놓고서 조금만 기다려 보라고 하던 것이 한 달 두 달 석 달 무려 일 년이 되어도 저가 접수한 내용에 대하여 해답이 없었고, 일 년 만에 결국 담당자가 저에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이 문제는 우리들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본인이 직접 민사 법정에 솟 장을 제출하여 심판을 받아 보라고 해서 저는 안동의 모 변호사에게 의뢰했더니, 저의 모든 서류를 세밀하게 살펴본 변호사가 말하길, 이 사건은 단 석 달이면 우리가 이깁니다. 라 고 하면서 저에게 수임 료를 요구하고, 정상적으로
민사 법정에 제출한 것입니다. 단 석 달 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재판이 무려 30 개월 동안 이리저리 굴리다가 결국은 1 심 재판에서 저는 패소를 하고 말았습니다. 저가 1 심에서 단 석 달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던 재판이 무려 30 개월 만에 원고 김 성 복 패소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안동 지방법원 민원 실에 저의 모든 1 심 재판 서류들을 복사 요청을 했더니, 1 심 재판 서류가 무려 에이 포 용지 2 천 장이 넘더군요. 그것을 집에 와서 일일이 체크해가면서 살펴 보았더니 저가 우리 변호사 측에 제출한 중요한 서류들이 살아지고 없더군요. 그래서 저는 우리 변호사 사무실 사무 장과 변호사에게 내가 접수한
서류들을 내어 놓으라고 했더니, 갑자기 두 사람의 얼굴 색이 붉어지면서 당황 하더군요. 없어진 서류를 안동 지 법 판사가 보았다면, 반듯이 1 심에서 저는 승소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요한 법정 서류를 우리 변호사가 상대방 변호사들과 손발 맞추어서 숨긴 것을 저는 그제서야 알았고, 동영상 카메라와 녹음기를 갖고서 변호사 사무실에 가서 사무 장과 변호사를 불러 앉혀 놓고서 내가 재판에 제출한 서류들을 내어 놓으라고 했더니, 처음에는 아예 그런 서류들을 모른다고 하면서 시침일 때 길 레, 그러면 지금부터 내가 동영상과 녹음 청취를 합법적으로 당신들의 입회 하에 할 것이니 당장 그 서류를 내어 놓으라고 했더니,
사무 장과 변호사가 사무실 서고를 뒤지더니, 결국 한쪽 구석에서 그 중요한 결정적인 서류들이 법정에 제출되지 않고 숨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들은 안동 촌 놈 이고 법에 대 하 여는 전혀 아무것도 모르는 맹 탕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저는 이미 법정에 필요한 서류들과 교통사고 처리 특례 법을 수 년 간 배우고 머릿속에 입력해둔 것을 저들은 몰랐던 것이지요. 그래서 저들을 변호사 법 위반으로 변호사 협회에 고발하기로 했지만, 저들의 눈물겨운 호소에 결국 저는 저들을 용서해 주었고, 2 심 항소는 서울 변호사를 구하기로 하고 그 당시 잘 나가던 한 문 철 변호사와 김 앤 장 변호사를 직접 만나서 얘기를 해본 결과
저들이 저에게 한 말은 바로 이것입니다. 분명히 말씀 드려서 이 사고 건은 승소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대형 보험사들은 거의 자기들의 보험사를 위해서 자기들만의 로펌 까지 운영하고 있고, 삼성 같은 경우는 124 명의 전담 변호사가 항상 대기하고 있고, 그것을 총 책임진 사람이 전라도 광주 출신의 김 용 철 변호사이고, 우리들은 재벌들과 소송이 걸리면 민사는 상대방이 지쳐 떨어질 때까지 재판을 연기나 기피 하기 때문에 수년 내지 수십 년 동안 재판을 끌어야 하기 때문에 저들은 대형 보험사와는 절대 재판을 기피 합니다. 라 고 하면서, 다른 변호사를 찾으시라는 얘기만 듣고서 마지막으로 저가 찾은 곳이 서 초 동 골목에
자리 잡은 조그마한 그야말로 변호사 한 사람과 사무 장 한 사람 경리 한 사람, 셋 이서 있는 조그마한 법률사무소였습니다. 저는 1 심 재판 서류들을 등산 가방에 짊어지고 간, 2 천장이 넘는 1 심 재판 서류들을 보면서 자기들은 어안이 벙벙해서 눈만 껌 벅 이고 있더군요. 그래서 저가 그분들에게 한 말인 즉, 저는 이미 죽을 각오로 여기까지 왔기에 이젠 생사의 미련도 없고, 마지막 소원이 있다면 힘없는 백성들을 사기 쳐서 보험을 하면서 회사를 꾸려가는 저들을 응 징 하는 것이 저의 소원이니 돈은 얼마가 들어도 괘념치 마시고, 항소 기간도 이제 며칠 없으니 제발 맡아 달라고 했더니 그분들도 밑져도 본전인 것이 소송 비용은
내가 지불할 것이고, 져도 그만 이고 김 앤 장과 한 문 철 이가 포기한 재판을 만약에 자기들이 승소를 한다면, 그야말로 그쪽 변호사 쪽에서는 밑져도 본전이겠지요. 다만 재판에 들어가는 서류는 당신들도 잘 모를 것이니 모든 재판 서류들은 내가 작성할 것이고, 변호사 분은 재판정에서 내가 기록한 법조 문만 낭독하시고, 중요한 법리에 대하여 만 그대로 참고 하시고 진행하라면서, 선금 일천 만원을 선불로 주고 만약 승소를 한다면 그에 따라서 보상은 충분히 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2 심에서 맡은 재판은 치열한 법리 논쟁을 거쳐서 피 터지는 재판으로 이어졌고, 결국 만 24 개 월 만에 저는 승소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감격은 이 루 말 할 수가 없었지요. 우리나라 대 재벌 사 세 군대를 동시에 피고로 해서 진행된 재판이 무려 5 년 만에 2 심에서 승소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상대방 측에서는 도저히 우리에게 이길 수가 없으니 저의 아내에 대한 병원의 감정 결과를 1 급에서 4 급으로 병원 측과 조작을 한 것이지요. 그래도 만 오 년 동안의 재판 결과가 1 심에서는 안동 지방 변호사가 중요한 서류들을 다 빼버린 것으로 결국 30 개월 만에 졌지만, 2 심에서는 24 개 월 만에 저들에게 이긴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변호사 측에서는 난리가 난 것입니다. 우리나라 법조계에서 최고의 거대 집단인 김 앤 장과 교통사고 재판의 신이라는
한 문 철도 포기한 재판을 우리가 이겼으니, 그야말로 야단 법석이 난 것이지요. 그것도 저쪽의 변호사는 삼성의 에이스 급 변호사로 고등법원의 부장 판 검사 출신들이 8 명이나 엉겨 붙었지만, 결국은 우리가 승리한 것입니다. 그런데 2 심 재판에서 이상하게 판결한 내용이 바로, 원고 김 성 복과 피고 삼성 대한 교 보 생명의 보험사 대표들은 모든 법정의 비용들은 각자가 부담하라고 판결문이 쓰여진 것을 보고서 저는 울화가 치밀어서 어떻게 승소한 쪽에 패소 한 쪽에서 모든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원칙임에도 결국은 차 띠고, 포 띠고 하면 저는 길거리에 나앉아야 한다는 결론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측 변호사가 좋아하던 말던
다시 대법원에서 판결을 받기로 하고, 대법원에 항소 솟 장을 넣은 것이고 대법원 재판은 12 개월 만에 역시 원고 측의 승소로 판결이 낳고, 재판에 들어간 비용은 피고 측의 보험사들이 전액 년 리 45% 복리로 계산하여 6 년 동안 재판 기간을 상정하여 모두 피고인 측이 부담하라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길고 지루한 법정 싸움이 결국은 저의 승리로 귀결 되었고, 그로 인해서 삼성의 보험사 대표는 물론이고, 모든 보험사 대표들도 모두 교체되었고, 3 개 회사가 입은 손해 역시 엄청날 것입니다. 그리고 거대한 124 명의 법무 법인을 운영하던 삼성의 김 용 철 역시 이 건 희 에게 모가지 잘렸고, 그 앙갚음으로 결국은 삼성 이 건 희 의 정치자금 부정 스캔들을 김 용 철은 터트리고,
이에 이 건 희는 삼성 법무 법인 단체를 해체하고, 이 명 박 정권에 속죄의 죄 값으로 내어 놓은 돈이 8,700 억인가 하는 돈을 가지고서 이 명 박 이가 미소 재단을 만들어서 그 재단 이사장에 자기의 사돈을 앉혔다는 소문도 들리지만, 정계와 제 계의 짝 짜 꿍 은 오랜 역사의 산물임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안동에서 빨갱이 소릴 듣고서 노 무 현을 사랑하는 모임인 외곽 노사를 만들어서 노 무 현을 지지했던 저가 결국은 노 무 현 정치 못한다고, 서울역과 마로 니에 공원 청와대 앞에서 한미 에 프 티 결사 반대 시위 현장에서 저가 스스로 자작한 사 행 시를 에이 쓰리 용지 에다가 전단지 2 만 장을 시위대에게 직접 내 손으로 나누어 준 사람이 저이고, 그로 인하여 노 무 현 정권 남은 임기 삼 년 동안 우리 집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었고, 노 사 모 애들이 밤과 낯을 가리지 않고 우리 집 전화 에다 가 우리 가족들을 몰살 한다고 공갈 협박을 하였고, 심지어는 술 먹은 놈을 사주하여 멀건 대 낯에 오토바이를 타고 안동 병원에 문 상 갔다 오는 저를 골목에서 갑자기 튀어 나와서 이미 정지 선에 정 차를 하고 있던 저를 들 이 박고, 안동 경찰서 교통사고 담당자와 검찰에게 지시하여 저의 사고 장소를 은폐하고, 그놈이 만취 음주 운전임에도 음주 측정도 하지 않고, 사고 현장을 지켜본 많은 증인들 조 차 없는 것으로 사고 처리를 종결 한 자들이 바로 젊은 세대 들이 미치게 환장하는 소위 진보를 표방하는 종 북 빨갱이들입니다. 그들은 겉은 그럴듯하게 정직 한 척
청렴한 척 하지만, 저들 빨 지산 후예들은 저들 끼 리는 죽고 못사는 족 속 들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사회 단체 관 변 단체들이 2,800 개가 넘지만, 저들이 운영하는 거머리들이 무려 2,700 개입니다. 거기다가 파월 장병 전우 횐 지, 광복 횐 지 새 마을 이 통 장 협의회까지 모두 저들의 수중에서 거머리처럼 달려 붙어서 선량한 국민들의 살에 붙어서 피를 빨고 있습니다. 저들은 민족이 어떻고 ? 극우가 어떻고 진보가 어떻고 하지만, 그것은 모두 거짓말입니다. 저들의 행사장에 대한민국을 상징 하는 태극기가 단 한 장이라도 펄럭입니까 ? 그리고 우리의 국가를 사랑하는 애국가 한 소 절 이라도 저들의 행사장에서
불러 지는 것을 보셨습니까 ? 이제 우리 젊은 엠 지 세 대 들은 저들의 감 언 이 설에 절대 속지 마십시요. 저는 팔십 년 세월 동안 오직 나의 가족과 우리 마을과 사회와 국가를 위해서 살아왔고, 자유민주대한민국의 법치대로 살아왔습니다. 더러운 전과가 10 범이 넘는 놈이 기관 단체장을 하고, 과거 더러운 전과 4 범 에다가 세계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추잡한 범죄로 지금도 열 한 개의 재판을 받는 놈이 대통령 출마를 해도 여러분들은 자기들 부모 보다가 더 좋아 미쳐 날뜁니다. 저들은 김일성 왕조를 좋아해도 막상 그곳에는 가서 살려 하지 않습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엄청난 재해를 여러분들은 보시고 계실 겁니다.
일본과 중국 러시아 미국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죄 없는 사람들이 천재지변으로 죽어 갑니다. 이것 또한 여러분 조상들과 우리들이 저지른 원 죄 때문입니다. 부디 역사에 좋은 이름으로 남겨지길 바랍니다. 긴 장문의 글을 보아주신 독자 님들 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안동 촌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