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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의 선택 (1) - 동양과 서양 |
작성자: 정문 |
조회: 2732 등록일: 2024-08-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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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하든 하지 않든 현재 우리 삶은 서양문명과 서양식 가치에 지배 당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사실이 싫다거나 자존심 상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체득 된 익숙한 현실에 대한 생각이다. 여하튼 도덕과 가치, 정치, 법률, 교육, 제도, 미디어 콘텐츠, 자동차, 스마트폰, 인터넷, 음식, 가전집기와 생활용품, 주택 및 건축, 생산과 소비, 전기 등 수 많은 제품과 물질, 삶의 양식까지 모두 서구세계에서 만들어져 한반도에 이식 된 서양인 삶의 방식이며 양태이다. 이러한 삶의 방식과 양태가 그리 오래 된 것 같지는 않다. 관습이 바뀌는 것은 수십년이사 수백년에 걸쳐 형성 되는 것이 보통이다. 30년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상주로서 지팡이를 들고 베옷 상복을 입고 곡을 하며 문상객을 맞이 했었다. 상주는 잠을 잘 수 없다는 이유로 쏟아지는 졸음을 참아야만 했고, 장례식장 한켠에서는 술판이 벌어지고 화투판이 한창이었다. 때론 언성 높여 싸우기도 하고 술주정 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20년 전부터 아니 그 이전일지도 모르겠다. 베옷의 상복을 입은 상주는 사라졌고 말끔하게 검은양복에 입은 상주가 쾌적한 장례식장에서 문상객을 맞이하고 금기였던 여성 상주도 문상객을 받기도 한다, 화투판도 사라지고 술자리도 없다. 문상객은 부조금 내고 장례식장 빠져 나오기 바쁘다. 이미 정형화 되다시피 익숙해진 장례식장의 풍경이다, 인간 삶을 상징적으로 표현 되는 관혼상제는 결코 쉽게 변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우리에게서 그 변화가 일어나는데 고작 30년이 걸리지 않은 것이다. 수백년에 걸쳐 형성된 한국인의 다양하고 많은 삶의 영역을 지배하는 관습이 불과 20~30년 사이에 급변한 것 같다. 30년이라고 하여 보아야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돌아보면 정말 많은 것이 변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으로 공식적으로 분류 되었고, 작년 1인당 GDP는 일본을 추월했고 올해는 무역 총액이 일본을 앞설 것이라 전망이라고 한다, 또한, 작년 우리나라 국가 GDP가 세계 14위였다. 국부 이승만의 건국 후 짧은 세월에 천지가 개벽했다. 그러나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30년전 1994년의 자료를 찾아 보고 깜짝 놀랐다. 1992년 노태우 대통령 때 우리나라 국가 GDP 순위가 세계 14위였다. 전두환 대통령 때는 18위이다. 이미 30년전 우리나라 경제는 선진국 수준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는 경제 파이를 키운 공은 인정할 있어도 전두환, 노태우 두 대통령의 재임 시 이루어진 업적이라 말할 수 는 없을 것이다. 국부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 시대를 거치면서 불과 두 대통령의 재임기간 30여년만에 경제규모는 선진국 수준으로 역량을 키워 놓은 것이다. 뒤집어 말한다면 노태우 대통령 이후 집권 대통령들이 경제를 키워 놓은 것이 없다는 의미이다. 세월에 따라 지구촌의 경제발전에 떠밀려 간 것 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국부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의 건국기틀과 산업화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지금까지 나온 대통령들 모두 모아도 두분의 발가락에나 미칠까 궁금하다. 국부 이승만이 목숨을 걸고 깔아 놓은 철로 위를 박정희는 투혼을 담아 기관차를 달려 기적을 창조한 것이다. 선진국을 평가하는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먼저 크게 보는 것은 경제이다. 선진국이 되는 가장 큰 조건이 건국시대와 산업화 시대에 이미 만들어진 것이다. 전쟁의 참화와 혼란을 극복한 두 분의 대통령은 전쟁의 잿더미에서 불과 30년만에 선진국 경제의 역량을 갖추어 놓았다는 것이 다시 나오지 못할 영웅이다.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두 분의 업적을 부인하고 싶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입이 백개라도 천개라도 궁색한 변명과 날조 밖에는 쏟아낼 것이 없을 것이다. 지구상에 우리처럼 급격한 변혁의 시대를 창출하고 경험한 민족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외부적인 것이 바뀌는 만큼 정신세계나 가치관은 변화 즉, 세계관의 변화는 늦은 걸음이며 심각하게 뒤틀린 가치관 속에 대한민국은 멍청해졌고 갈 길을 찾지 못해 허둥 거리고 있다. 이를테면 박근혜 대통령은 죄를 찾지 못하였음에도 탄핵을 시킨 후 죄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너도 나도 쉬쉬하며 여전히 죄인의 영역에 두고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문재인, 이재명, 조국과 같은 범죄자가 활개 치는 것에서 오는 괴리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는양심의 문제로서 개인의 양심과 집단 윤리와 연결 된 자성의 영역이다. 박근혜에게 그토록 엄격한 잣대를 요구하였음에도 이재명에게는 한 없는 비겁한 관용으로 사회가 죄악에 질질 끌려 다니며 슬푼 군상의 비명소리는 귀전을 때린다. 한줌 밖에 되지 못하는 반도에 갇혀 당쟁과 사화, 모함으로 죽고 죽였던 조선시대와 지금이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이러한 혼란은 우리 뿐만은 아니다. 개신교에서 12사도와 바울 시대 이후 가장 큰 영향력 있는 종교인으로 꼽히는 칼빈의 고향 프랑스에서, 올림픽 개막식에 최후의 만찬을 조롱하는 퍼포먼스를 보면서 신앙인으로서 분노가 올라왔다. 최후의 만찬은 대속의 죽음을 위해 예수님의 피와 살을 뜯어주는 개신교의 정체성이다. 이슬람, 불교 등 타종교의 정체성을 최후의 만찬을 조롱하듯 그들의 정체성을 걸고 조롱했다면 어떠한 사태가 벌어졌을까?
프랑스에서는 수업 시간에 무함마드를 다룬 만화를 보여 주었다는 이유로 그 교사는 14세~15세 이슬람 소년 6명에게 끌려가 학교 인근에서 칼로 참수를 당했다. 그 소년들에게 프랑스 법원은 전원에게 집행유예 처분을 내렸다. 그 소식을 접하고 혼돈(混沌)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최후의 만찬을 조롱하듯 이슬람의 무엇인가를 조롱했다면 피바다가 이는 올림픽이 되었을 것이다. 올림픽 개막식 사태를 보면서 세상은 거대한 세계관끼리 충돌하고 있다. 종교개혁의 고장 유럽의 양심과 용기는 실종 되었고, 뒤틀린 세계관 상실에서 오는 허탈감과 무력감, 알 수 없는 심술을 보았다. 장사가 되지 않는 심술궂은 노파가 앉아 있는 뒷골목 퇴폐 유흥업소를 보는듯하다. 우리는 세계관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이해한다. 회복 될 것 같지 않은 금이가고 상처 난 프랑스의 프리즘이다. 프랑스를 좌파의 고향이라 부를 정도로 공산주의 출발에 지대한 공헌 좌익적 계몽주의와 철학의 본고장이다. 공산주의를 동경하고 흠모하는 조선에는 딸깍발이 성리학이 있다면 프랑스 성리학 좌익 대중주의가 있다. 대항해시대와 산업혁명을 거쳐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한 영국은 동양을 압박하며 세계는 서세동점의 시대를 맞이한다. 아편전쟁으로 벌어진 동양과 서양의 충돌은 싱거운 영국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두차례 전쟁에서 중국은 10배의 병력을 동원하면서 대항하였지만 500배가 넘는 아니 그 이상의 전사자를 내며 허무하게 무너졌다. 2차 아편전쟁에서 중국은 음양(陰陽)의 이치를 따져 영국군의 붉은색 군복과 방출하는 힘을 가진 함포는 양(陽)의 기운이 극에 달해 있어 이를 제압한다며 음(陰)의 기운을 가진 여자 오줌을 모아 성벽에 바르고, 오강을 성벽에 달아 놓았다. 2차 아편전쟁에 연합하여 참전한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은 육전에 브라운베스 머스킷총 등으로 무장 했다. 청나라는 기마대를 몰고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하며 군왕의 작위를 받은 몽골출신 보르지키트 셍게린첸에게 지휘를 맡겼다. 기마병으로 구성 된 팔기군을 이끌고 영-프 연합군과 맞선 셍게린첸은 기마대 외에도 화포와 화승총으로 무장한 부대를 편성하여 전투에 임한다.
셍게린첸은 영-프 연합군의 보병대가 자신의 팔기군 기병대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냉병기를 가진 보병과의 전투에서의 점할 수 있는 우위 일 뿐 화기(火器) 브라운베스 머스킷총으로 무장한 연합군에는 다른 문제였다. 최정예 팔기군 1만2천명의 기병대는 영–프 연합군을 향해 돌격해 들어갔지만 전장식 머스킷총으로 진영을 연합군의 가공할 화력에 순식간에 3000명의 기병대가 사라지며 퇴각 했다. 대오를 갖춰 직진으로 달려드는 기병대는 제 아무리 기동력을 살려본들 마하의 속도로 총탄을 날리는 전장식 머스킷소총의 적절한 사격 연습용 타켓에 불과할 뿐이었다. 퇴각하는 팔기군을 쫓은 연합군은 팔기군을 무참하게 도륙했고 그 자리서 1만명이 또 사라졌다. 병자호란을 통해 조선을 벌벌 떨게 만들었던 팔기군은 허무하게 무너졌고 연합군이 북경에 들어서자 함풍제는 피서산장으로 도망갔다. 안방에서 2만명의 팔기군이 사라졌다. 연합군의 전사자는 13명에 불과했다. 거대하고 장중한 궁궐 원명원은 불탔고 함풍제는 도망간 피서산장에서 죽었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세계관을 고수하며 세계를 지탱한 동양과 서양의 두 세계관의 충돌은 너무나 허망하게 결론이 났다. 어떠한 명분을 붙이든 아편전쟁은 도덕, 윤리적인 문제에 있어 서양의 변명은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국가의 이익이 걸린 충돌은 국가의 이익이 우선한다. 영국이 중국에 아편을 팔아 중국인들이 아편에 중독 된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막대한 무역적자로 인해 중국에 팔 것을 찾던 영국은 값싸고 질좋은 인도 벵골산 아편을 가져다 판매했다.
명나라 때 아편이 들어 온 후 아편은 황실과 상류층에 널리 퍼져 부와 권력을 상징했다. 명나라 만력제의 유골에서 아편의 주성분인 몰핀이 다량 검출 되기도 했다. 청나라에 들어서서 아편은 더욱 널리 퍼졌다. 16세기 중국에 담배가 보급되면서 중국 노동자까지 담배를 피웠다. 청나라 자체적으로 아편이 재배 되면서 아편은 더욱 널리 퍼졌다. 널리 보급 된 담배에 아편을 섞어 손쉽게 즐기게 되면서 신분을 가리지 않고 돈만 있으면 중국 전역에서 각계각층이 아편을 즐겼다. 1720년대 당시 황제였던 옹정제는 아편의 폐해를 막고자 중국 전역에 금연령을 내리기도 했다. 중국 국내에서 재배되는 아편이 부족해지면서 동남아산 아편이 대량으로 수입 되어 중국 전역으로 팔렸다. 이를 본 영국은 동남아산 보다 품질이 뛰어나고 가격까지 싼 인도 벵골산 아편을 가져다 팔았던 것이다. 미국도 아편무역에 뛰어든다. 미국은 인도 벵골산 보다 품질이 좋은 터키산 아편을 가져다 영국과 경쟁했다. 그 당시 조선과 일본은 아편문제가 심각하지 않았다. 물론 워낙 가난해서 영국의 아편을 구매할 능력도 부족 했고 아편에 대한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 들이고 있었다. 만주에 거점을 두고 독립투쟁을 벌린 많은 독립단체, 둑립운동가는 아편 밀매로 자금을 마련하기도 했고, 만주를 떠돌던 조선인들은 아편판매로 돈을 벌기도 했다.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이 아편 밀매로 큰 돈을 벌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최현 등과 같이 소규모 비적(匪賊)떼를 이끌던 김일성의 비적단은 마약 재배와 마약 운반 판매에 손을 대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었을 정도로 중국에서 마약은 시대를 아랑곳 하지 않고 횡행했다. 아편전쟁 발발 원인에 중국의 일부 책임도 있다. 세계의 은이 중국으로 흘러들어 갔음에도 세계 패권국을 자처하며 과거에 그러했듯 조공무역으로 상대를 찍어누르며 폐쇄적인 교역으로 은을 빨아 들이며 중국은 세계 은의 무덤이 된다. 청나라를 건국한 누르하치는 직업이 심마니였고 명나라에 산삼을 팔아 막대한 은을 긁어 모아 그 재력으로 건국한 나라 임에도 너가 죽든 말든 나의 배만 불리면 된다는 이기적인 대외정책도 아편전쟁을 초래한 면이 크다. 세계 4대 발명품 중 하나인 화약을 발명한 중국은 그 화약을 가져다 머스킷을 만든 서양에 무너졌다. 활을 몰아낸 머스킷은 전장을 지배 했다. 화승총으로 무장한 왜구에 전국토가 유린 당할 때 기마대로 화승총으로 돌격한 탄금대의 신립도 아편전쟁의 중국처럼 아집과 무지에 사로 잡혀 있었다. 직사화기에 돌진하는 기마대 같은 우매함이 아편전쟁 이전에 조선에도 있었던 것이다. 서양으로부터 도입한 왜구의 뎃뽀(조총)에 “데뽀가 뭐 쏘면 쏘는 족족 맞는답니까?”의 무대뽀 정신과 최강의 활 편전으로 무장한 신립의 팔천 기마대는 탄금대에서 고작 4명만 살아 남았다. 전장의 지배는 냉병기가 화기에 말려 나고 있음을 신립은 깨닫지 못했다. 뻘밭에 빠져 직사화기 조총의 훌륭한 사격 표적지가 된 아픈 역사는 용맹한 신립장군으로만 남아 있을 뿐 쓰라린 기억은 새김질을 하지 않으며 정신승리의 역사만 쓰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중국 처럼 아편전쟁처럼 조총의 양기를 꺽을 여자 오줌이 담긴 오강 단지를 품고 출정하지 않은 것에 스스로를 위로 해야 할 것 같다. 분명 아편전쟁을 일으킨 영국은 부도덕하고 비난받아 마땅한 국가범죄이다. 하지만 아편전쟁이 일어난 중국의 내부의 국가 이기주의와 방치한 만연한 아편중독 등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쟁을 일으킨 일본 또한 비난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 중간에 끼여 입장이 곤란했던 대마도주가 전쟁의 경각심을 주기 위해 가져 준 최첨단 무기 조총을 창고에 버려두고 쏘면 다 명중하냐고 따진 신립의 교만과 무지도 있는 것이다. 국가의 첫 번째 의무는 자위권 행사임에도 풍신수길을 만나 전쟁의지를 확인하고 풍신수길의 군대와 무장능력을 보고 온 통신사가 있음에도 이를 소홀히 한 책임도 중한 것이다.
한일합방이 벌어질 때 당시의 고종은 몸서리를 칠 정도로 무능했으며 탐욕스러웠다. 조선에서 압도적으로 가장 많은 보상금을 받아 천황가 다음으로 부자가 되었고, 국가안보에 대한 일말의 노력조차 없었다. 두 마리의 맹수가 군침을 흘리고 있을 때 즉, 러시아의 식민지가 되느냐 일본의 식민지가 되느냐의 기로에서 고종은 일본을 선택한 것 뿐이었다.
아편전쟁에서 영국은 철갑을 두른 증기선 군함 네메시스호에 작열탄 함포를 탑재하고 전력의 우세를 앞세워 전선으로 나왔고 중국은 그 존재를 실증할 수 없는 양의 기운을 꺽을 수 있는 여자오줌이 들은 오강단지를 들고 전쟁에 임했다.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서 시작 되었을까? 한 때 오랜 세월 동안 중국은 세계 경제와 과학기술을 주도한 영원할 것 같은 강대국이었다. 따라서 국가와 민족이 가진 능력의 차이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분명 동양과 서양의 세계관은 다르다. 부도덕한 전쟁일지라도 영국은 그들의 세계관에서 최선을 다했고, 중국은 자신의 세계관을 통해 전쟁에 임했다. 전쟁의 결과는 승패는 갈렸지만 전쟁에 임하는 세계관도 승패의 문제로 접근할 수 있는가는 어려운 문제가 되어 버린다. 패권을 두고 동, 서양이 총칼을 들은 아편전쟁은 선과 악의 문제로 접근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내재 되어 있다. 또한, 사물과 현상, 사건을 바라보는 각기 다른 세계관 속에 선과 악을 판단하는 기준이나 원인, 요건을 규정하는 것에 합의 될 수 있는가의 각론도 쉬운 문제는 아닐 것이다. 여하튼 끊임없이 역사 속에서 현실에서 충돌을 거듭하는 세계관에 대한 접근은 아무리 신중해도 결론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다만, 우리가 이 시대에 겪고 있는 세계관의 혼란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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