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남자들은 이 진 숙 에게 고개 숙이고 절해야 한다.
나는 이곳 논 장 이나 다른 논 장에서 과거나 지금이나 그 어떤 개인을 위주로 칭찬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더욱이 신문에 칼럼을 십 년이 넘도록 써 오면서 수많은 논객들과 때로는 몇 날 며칠을 낯 과 밤을 세워 가면서 어떤 하나의 주제를 놓고서 토론을 하면서도 그 어떤 석학들과 어떤 주제를 놓고서 수학 영어만 빼고서 댓글로 단 한번도 상대방에게 밀려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의 책을 출판했던 모 출판사에서 나의 소개를 하는 가장 윗 머리 글에 다가 조선 닷 컴 최고의 인기 논객이란 별칭까지 붙였지만, 그것은 출판사가 무엇인가 오해를 한 모양이다. 초등학교 육 학년의 공교육이 전부인 나이고,
검정고시 공부를 했다 곤 해도 난 아직도 검정고시 출신이란 말 한마디 입 밖에 내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나를 보고서 입지 적인 인물이고, 노력파이고 댓글에는 누구라도 당할 사람이 없는 사람이라고 추 켜 새우기는 하지만, 그것은 내가 보기론 모두가 뻥 이다. 다만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조선 닷 컴에서 12 년 전에 부산의 모 대학 교수와 오일 팔과 공산 사회주의에 대한 논쟁을 하면서 무려 300 자 댓글 한 꼭 지 당 양쪽이 무려 63 개나 장문의 글을 올리면서 그분과 흉 금을 털어놓고서 사실 용호상박의 개 싸움이 벌어진 이유도 ? 그분이 나에게 먼저 시비를 걸면서 하는 말인 즉,
안동 촌 놈이 어떻고, 초 졸인 주제에 하면서 나에게 인신공격을 하길 레 나도 한 성깔 하는 지라, 그분에게 이렇게 대꾸를 했다. 당신이 나를 보고서 안동 촌 놈이 어떻고, 초 졸인 주제에 까 부지 말라는 투로 먼저 시비를 했으니 그렇다면 이 시각부터 당신은 교수이고, 나는 안동 촌 놈이고 초 졸 출신이고 보 잘 것 없는 사람이니 그렇다면 영어와 수학만 빼고, 사회 경제 정치 스포츠 종교 예술 문학 역사 역학 인문 철학 등을 가지고서 나와 격의 없이 토론을 합시다. 다만, 당신과 나와 토론을 하면서 서로가 욕설은 하지 말고 주재에 벗어나는 질문과 답은 피해주고, 댓글 올리는 시간은 300 자 댓글을
오 분이 넘도록 올리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지는 것으로 합시다. 라 고 저가 요청을 했고, 그 교수는 저를 무식한 놈으로 보고서 오케이 싸 인이 남과 동시에 첫 주재는 광주 오일 팔이 민주화인지 ? 폭동 인지를 토론을 했는데, 처음에는 어느 정도 진행이 되었지만 서로 열 꼭지를 주고받으면서 이미 그분의 댓글 속도가 늦어지는 것을 보니, 네 이 버 지식 백과를 찾아서 글을 쓰는 모양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진보 쪽에서는 이름난 교수이고, 저는 보수 우파도 아닌 그냥 얼치기임에도 그분의 전문적인 용어가 점점 딸리면서, 글 쓰는 속도가 늦어졌고 그다음에 주재가 박 정 희 대통령이 정치할 적에
우리나라 물가에 대하여 1971 년도 쌀 값이 얼마이고 ? 보리 쌀 좁쌀 콩이 얼마냐 로 토론이 진행되자, 그 교수 분은 이미 저에게 손발을 들고 말더군요. 그리고 저에게 안동 촌 놈이 어떻고, 초 졸이 어떻고 한 말에 대하여 저에게 잘못했다고 용서해 달라고 하더군요. 그리고는 수많은 논객들과 수 없는 댓글 논쟁을 해보았고, 노 무현 정권 시절에 세 종 시 이전 안에 대한 찬반 토론에 이미 저의 책자에도 그 내용이 나와 있지만, 그 당시 저와 토론을 한 분 들이 진보 보수를 합해서 20 명이 넘었고, 장문의 댓글 숫자가 무려 63 꼭지나 올랐다는 것입니다. 저는 댓글을 주고받으면서 상대방이 저에 대하여
그 어떤 쌍 욕을 하거나 시비를 걸어도 저는 초지일관 정 론 직 필로 성 심 것 토론을 하여 줍니다. 상대방이 이해가 가 겟 끔 성 의 것 댓글을 달아 줍니다. 그래서 프레 시안 경향 오 마 이 한겨레에서도 저에 대한 댓글에는 종 북 들이 달려들지 못하고, 그냥 욕이나 두어 번 하고 살아집니다. 종 북 주사 파들은 사실 입만 살아있지 ~ 머리에 입력된 실력은 개 차 반 입니다. 그래서 사실 저는 저들의 농 간에 진보 좌 파들의 논 장에서 영구 재명을 당하고 만 것입니다. 논리적으로는 저에게 안 될 것 같으니까, 약 3 억 자의 글을 올린 조선 닷 컴 천자 토론과 토론 마당에서 저들의 조작으로
결국 글을 올리지 못하고, 지금은 이곳 안방에서 심심풀이로 글 몇 자 올리고 있습니다. 글 쟁 이라면 더욱이 토론 방이라 면 상대방과 격의 없이 토론을 주고받는 것이 글 쟁이들의 바램 일진 데, 그렇지 못하다면 이미 글 쟁이는 죽은 시체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오늘 윤 석 열 대통령이 이 진숙 씨를 방통 위원장으로 임명을 하였고, 이 진 숙 방통 위원장은 방통 위원장으로 취임 첫날을 맞으면서 의미심장한 축사를 했는데, 비록 여자이지만 그는 지금의 똥 별 들 수백 명을 다 합해도 이 진 숙 신임 방통 위원장 만한 인재는 드물 것입니다. 그래서 저가 이제 방금 네 이 버
지식 백 과를 들어가서 이 진 숙의 프로필을 잠시 살펴보았더니 본인에 대한 상세한 이력은 나오지 않았고, 그의 고향은 경북 성주 이고 성산 이 씨이며 나이는 [호적상] 1961 년 7 월 4 일생으로 만 63 세이고, 서 강 대학교 대학원을 나왔고 1986 년 문화 방송국 보도 국에 첫 입사를 했고, 1989 년 문화 방송 다큐멘터리 “북극 탐험” 북극 사람들이란 다 큐를 제작했고, 1990 년 걸 프 전 전쟁 취재와 2003 년 이라크 전쟁 종군 기자로서 남성들도 가기 싫어하는 전쟁터를 여자의 몸으로 포탄과 총알이 빗발치는 생사를 건, 전쟁터를 갸 냘 픈 여성으로서 전쟁터를 누비고 다녔다면, 이미 이 진 숙은 사람이 아니라, 생사를 초월한
신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다. 남자가 되려면 군대를 갔다 와야 한다. 라 고 했 듯이 내가 알기로는 종군 기자로 가는 기자들은 거의 몇 주간 훈련소에 가서 실전 훈련 경험을 쌓고서 종군 기자로 가는 줄 알고 있다. 여자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이 진 숙 신임 방통 위원장은 그 당시 걸 프 전에 종군 기자로 나갈 때가 벌서 34 년 전 일이다. 그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여군들이 극소수이고, 거의 간호사이거나 행 정 병 수준이다. 그런데 민간인이 전쟁터를 그것도 앵커로서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를 겁 없이 달리면서 우리 국민들에게 실시간으로 전쟁터의 생생한 화면을 방송해 주는 것을 나도 그 당시
이 진 숙 앵커를 보았고, 실제 화면을 시디 에다가 수십 장을 스 크 렙 해 놓았다. 그리고 그는 남자로서도 감당하지 못할 전쟁터를 누비면서 우리 국민들에게 전쟁터의 살벌함을 직접 목숨 걸고 전해준 사람이다. 그런데 소위 군대 훈련소 문 앞에도 가보지 못한 국회의원들이 감히 이 진 숙 방통 위원장에게 삿 대 질을 하면서 부 랄 자랑을 하는 것을 보니 차라리 미친 개에 게나 잘라 주어라 ! 못난 놈들 ! 정 청 래 이놈은 군대 가기 싫어서 가 짜 사재 폭탄 만들어서 미 대사 관저에 투척 했다가 형무소 2 년 살고 군대도 가지 못하고 지금은 국회에서 지랄 발광을 떨고 있다.
더불어 메 친 당 애들 70% 가 군 미필 자란다. 총 한번 잡아 보지 못한 개 쇅귀들이 감히 전쟁터를 종 횡 무진 하면서 목숨을 걸 고 국민들에게 전쟁의 참상을 보도한 이 진 숙 방통 위원장에게 고 두 사 배를 올리고, 전부 너희들 고향으로 낙 향 하라. 지금 민 노 총 개 잡 놈들도 90% 가 병역 미필자이고, 전과가 수십 범이 되는 놈도 있 단다. 이런 놈들은 이 진 숙 방통 위원장의 발가락에 때, 만큼 만도 못한 잡 쓰레기이다. 이런 놈들은 화력 발전소에도 쓰지 못할 잡 쓰레기 오물들이다. 이 진 숙 방통 위원장의 건 승과 건투를 빈다. 이 진 숙 파이팅 ! 윤 석 열 파이팅 !
-- 안동 촌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