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惡은 어디에서 오는가
전에도 소개 한 적 있지만 야곱뵈메Jakob Böhme1575-1642는 악이나 모순 등이 신적 본질에서 나온다고 본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음미해 보는 것인데 그는 독일의 괴를리츠의 서민 가정에서 태어났고 제화공으로 생활했다. 그는 한번 들은 것에 관해 끊임없이 성찰하는 습관을 가졌다고 알려진다. 제도권 교육은 초등학교 정도일 뿐인데 지적 역량이 탁월했다고 한다. 그의 사상은 다소 범신汎神pantheism적이며 신비주의적이다. 그는 모든 것이 신神이며 모든 것이 신 안에 있다는 주의다. 사람은 신에게서 비롯되었고 신 안에 살고 있는 피조물이다. 자연과 피조물의 심연은 바로 神 자체라는 게 뵈메의 생각이다. 이렇게 모든 게 신에게서 비롯됐다면 우리 삶에 고통을 주는 악惡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이점에서 뵈메는 신적이든 악마적이든 간에 모든 사물이란 긍정과 부정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면서 긍정은 힘이자 생명이며 신의 진리이거나 신 자체의 발현일 수 있다. 그러나 부정이 없다면 이러한 긍정도 그 자체로 인지될 수 없을 것이며 그 안에 기쁨이나 고양된 감정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현상으로 나타나려면 그 안에 반대물이 깃들여야 한다는 논지다.
여기서 뵈메는 <모든 존재에 스며있으며 결코 지양할 수 없는 모순이 바로 세계의 가장 내밀한 추동력>이라는 명제를 선언하고 있다. 개개의 모든 형상은 다른 형상들과 적대관계에 있다. 이는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에 해당되는 사실이다. 모든 것에는 독소와 악이 깃들여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생명도 활동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색채와 도덕, 두꺼움과 얇음, 그 밖의 다른 모든 감각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오로지 무無만 있게 될 것이다. 이런 뵈메의 생각에는 惡은 신적 근거 안에 이미 깃들여 있다는 전제이다. 천국과 지옥도 모두 神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악은 인간 영혼 안에서도 현실성을 갖는다. 영혼은 선과 악 ,사랑과 노여움 사이에서 선택하며 살게 된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갖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한다. 자유의지는 신적 힘을 지니고 있으며 신의 사랑과 노여움에서 비롯된 인간의 고유한 원초 상태의 활동이다. 인간의 영혼은 신성에 근접해 있으며 영혼의 내적 근거는 신적 본성에 있다. 영혼이 신의 거처이며 따라서 영혼은 신의 고유한 본질을 이어 받았다.
이렇게 뵈메를 비롯한 신비가들은 영혼과 신의 본질적 동일성에 집착하며 이는 심지어 심인神人간 구별이 없어지려는 위험을 초래한다. 이런 뵈메의 사상은 자연과학자 뉴턴이나 라이프니츠 헤겔과 셸링 등에 영향을 줬고 특히 변증법 이론에도 기여했다고 연구되고 있다. 물론 이런 이론은 기독교신학과 마찰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범신론은 성경 도그마에서 수용될 수 없다. 피조물과 인간은 섞일 수 없으며 하나님은 만유를 창조하셨고 자연만유에 계시하기도 하셨으나 만유를 초월하신 절대 타자이시고 피조물 어느 것도 그분을 모방하거나 대신할 수 없다. 신과 인간 영혼 간의 공유共有적 속성이 있다 거나 인간의 영혼이 신비하다 해도 신 자체일 수는 없다. 신학에서 악을 신의 창조물이 아닌 자유의지의 결과물로 이해하거나 악이나 사탄을 신의 계획과 목적을 달성키 위해 허용된 요소로 해석하지만 시원한 답일 수 없는 인식론상 아쉬움이 있다.
암튼 뵈메의 악이 신적본질 안에 포함됐다는 구상은 돌발적으로 느껴지지만 악의 문제를 숙고 하면서 존재세계의 궁극적 원인을 탐구하느라면 다다를 수 있는 생각이기도 하다. 이 존재세계의 궁극적 원인자, 즉 제일 원인자가 神이라면 악이나 사탄 고통 또한 궁극적 원인자에게서 기원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게 인식의 속성이다. 특히 헤겔의 경우는 악의 실재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악은 우리의 인식 안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긴 헤겔의 역사철학이야말로 세계만상이 절대정신의 자기 전개이기 때문에 악도 그 절대정신의 산물이 되므로 악도 필요한 것이고 악이 악일 수 없다는 논리가 가능해진다. 즉 우리 인식에서만 악일 뿐 악 또한 역사 전개에서 필연이 된다.
뵈메의 경우 세계는 현상과 신의 계시로 이뤄졌으며 죄와 악도 부정적인 요소가 아니고 창조물의 타락도 창조물 밖에서 생긴 것이 아니고 바로 그 창조물 안에서 형성된 것이다.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으로부터 기원된 것이어서 하나님은 인간의 본 고향이고 인간의 진원지이다.
인간이 육체라는 외적 베일을 벗어나면 바로 자신의 본고향으로 들어가서 하늘나라와 지옥을 자신 안에서 만나게 된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바로 인간 자신의 영혼이다. 뵈메에게서의 특징은 궁극적 원인자인 신에게 악과 모순이 내포됐고 세계는 그 창조자의 의지가 발현된 것이며 그에 따라 현실에서의 악과 고통이 긍정과 함께 운동하고 있는 것이고 인간은 운명적으로 이 고통을 지니고 살게 됐고 이 고통과 악 모순은 창조자의 세계경영 원리에 속한 것이므로 피조물인 인간으로서는 악과 더불어 사는 숙명을 지니게 된다.
인간이 선악과를 먹은 존재로 규정되는 것도 이미 존재자체가 선악의 대립구조를 숙명으로 간직된 존재란 뜻일 것이다. 이 글을 한스 요하킴 스퇴리히 《세계철학사》의 뵈메 관련 항목과 전 건국대학교 교수 임희완의 논문 <야곱 뵈메의 신비주의 철학사상>을 일부 참고했는데 악과 고난의 문제는 우리 인식 구조 안에서 해명하기 어려운 주제이다. 욥의 고난을 어떻게 이성으로 설명해 낼 것인가? 인간은 그져 피조물이다. 유한자다. 죄성으로 가득한 실존이다. 삶은 미스테리이다. 고통이다.성경 구원의 복음과 하나님의 언약이 없다면 그져 비극일 뿐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하나님이시라
사망에서 벗어남은 주 여호와로 말미암음이라
(시68:20)
안티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