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 만 국군 예비역들과 60 만 현역 군인들께 고함,
이 글을 올리는 필명 안동 촌 노[安東 村勞] 김 성 복은 자유 민주 대한민국 경상북도 안동시 매화길 81 - 3 의 주소에 살고 있는 호 적 상 1947 년 12 월 28 일생인 이제는 육신이 만신창이가 된, 무식한 시골 촌 놈입니다. 저가 여기 올린 1 억 오천 만 자의 글을 독자 님 들이나 군대에 갔다 오신 예비역 군인들과 현역 군인들께서 보시면, 안동 촌 노의 닉을 쓰면서 글을 올리고 있는 김 성 복에 대한 모든 궁금증을 잘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김 성 복의 사상과 이념은 좌 도 우 도 아닌 민족주의자이고, 우리 집과 마을과 지역과 사회와 국가를 위해서 봉사하는 지 덕 노 체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 팔순이 된, 평생 4-H 회원으로서
젊은 시절, 박 정 희 대통령의 시절에 4-H 지도자로 새 마을 지도자로 영농 기술자 회원으로서 오직 마을과 지역과 사회와 국가 만을 위해서 평생을 봉사 만으로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리고 남을 헤치면서 거짓말을 하고, 사기를 치고 하는 사회의 부랑 자들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가난한 집안에 육 형제의 막내 둥이로 태어나서 병드신 노 부모님을 47 년 간 땅 한 평 물려받지 않고, 일원 동전 한 개 부모님으로 부 터 유산으로 물려받지 않고 부모님을 초가삼간에 모시고서 살아왔고, 누구의 도움도 없이 초가삼간 오두막의 지붕을 벗겨내고, 스 레 트 지붕으로 새 마을 사업을 하였고, 팔 십 년 동안 나의 손으로 예전에
초가삼간 기둥과 썩은 석 가 레는 해체하고, 지금은 현대 식 철제 기와 지붕으로 개량을 하여 우리 노 부부가 비바람을 막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지금 것, 팔순이 된 나이에 이제는 육신도 병들어 잘 가누지 못하지만, 그래도 과거의 봉사 활동 정신이 있어서 우리 집을 오고 가시는 길 손 들 께는 다 믄, 차 한 잔이라도 대접을 해드리고 푸 성 귀 한 봉지라도 들려드리고서 다음에 이곳을 오시면 반드시 다시 들르시라고 인사 드리고 배웅해 드립니다. 저는 팔순이 된 나이에도 아직 운전 면허증은 30 년 전에 취득했지만, 승용차나 승합 차도 없이 오직 조그마한 125 스쿠터 한 대가 재산이고, 저의 유일한 발이고 동반자입니다.
안동 시내를 오고 갈 적에는 스쿠터를 타고서, 대로나 좁은 길을 구석구석 다니면서 저가 가고 싶은 곳을 다닙니다. 다만, 과속 차량과 음주운전을 하는 차량들 때문에 사고가 날 가 바 항상 걱정이 되지만, 저는 교통 법규를 준수하면서 방어 운전을 하면서 조심을 합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조심을 하고 교통사고 예방을 준수해도 상대방이 들어 박는 대는 어쩔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18 년 전, 저는 차량 정지 선에 오토바이를 세워 놓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술에 만취한 젊은이가 나의 오토바이를 들이박고, 저는 오토바이와 함께 팅 글 려서 약 5 미터를 날아가서 결국 왼쪽 무릎 연 골이 파괴되고,
십자 인대가 끊어지는 12 주의 중상을 입고서 병원에서 삼 년 동안 고생한 적이 있고, 그 이후 4 년 후에 또다시 뺑 소니 차에 당해서 결국 왼쪽 무릎 아래를 절단해야 한다는 의사 분의 얘길 듣고서, 뼈대신 쇠를 넣어서 의족처럼 수술해서 지금은 그나마 지팡이 없이 50 미터는 걸을 수 있지만, 두 번의 교통사고로 인한 후유증으로 복합 부위 통증 증후군이란 희귀 병명으로 만신창이가 되었으나, 서울대의 주치의 선생님께서 저에게 처방한 것이 바로 통증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정신 일도 하사 불 성의 마음으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보라고 해서 컴 맹 이었던 저가 독학으로 지금까지 15 년 간 수많은 인터넷 신문에
글을 올렸고, 글자 숫자로는 아마 3 억 자가 넘고 공동 집필한 책과 저 혼자서 출간한 책이 모두 열 여섯 권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글쓰기도 싫증이 나서 요즈음에는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면서 우리 집 외벽에 남들이 보기에는 징그럽고 미숙하지만, 벽화를 수십 미터 그려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가 팔순이 되도록 봉사 활동한 현장 기록 사진들과 우리 마을의 변천 사의 기록 사진들을 67 년 간 촬영한 사진들을 20 미터의 외벽에 비가 맞지 않게 정성 드려서 에이 포 용지 수백 장의 사진을 전시해 놓았습니다. 이제는 죽어도 여 한이 없습니다. 시골 촌구석에서 가난한 집안에 육 형제의 막내로 태어나서 온갖 궂은 일을 다 해 보았고,
식량을 구하지 못해서 초 근 목 피로 연 명을 하면서 남이 어려울 적에는 우리 집안 일을 제쳐 놓고 서도 최선을 다해 봉사를 했고, 아버님이 8 대 종 손 이라서 아버님 대신 저 혼자서 60 년 동안 조상 님 들의 묘소 수십 기를 관리하면서 술 한 잔 과일 한 접시라도 조상 님 들께 대접을 했고, 250 년 동안 잘못된 집안의 족보를 20 년 간 각 고 끝에 문중 어른들의 허락을 받고 바로 잡았고, 효자 상 두 번에 청백리 상 한번, 모범 공무원 상과 장관 상 도지사 표창장 두 번, 시 장님 표창장과 상장 25 회, 각 기관장 님 감사 장과 지금까지 받은 상이 백 여 장이고, 국가 기술 자격증 4 개와 민간 기술 자격증 일곱 개를 받았다면,
이제 죽어도 여 한이 없습니다. 누구는 더러운 전과를 4 개나 가지고 있고, 자기 부모와 형제에게 몹쓸 쌍 욕을 하고, 지금까지 검찰과 법원에 기소된 것 만해도 수십 개의 범죄 자격증을 가지고 서도 성남 시장과 경기도 지사 대통령 출마까지 하고 있다면, 그의 삶과 김 성 복의 삶이 대 별 될 것이고, 저의 삶이 결코 헛되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다만 걱정이 되는 것은 군대 훈련소 정문 앞에도 가보지 않은 병역 미필자가 해병대 삼성 장군과 국방부 장관을 국회 청문회 장에 세워 놓고서, 호통 치는 것을 보니 예비역 350 만과 현역 60 만 대군의 사기는 천길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고 미치광이 김 정은 이는
자기 할 애 비가 한 것처럼, 러시아와 군사 동맹을 맺고 그것도 부족하여 수십 개의 가공할 핵무기로 남한을 불바다 운운하는 자와 같이 종 북 주사 파들은 의기양양해서 신성한 국민의 대표 기구인 국회의사당을 똥칠하는 것을 볼 적에 이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같은 늙은 이들이야, 지금 죽은들 무슨 여 한이 있겠습니까 ? 만은 아직 피어보지도 못한 어린 세대 들과 젊은 중 장년 층들이 앞으로 겪을 고통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합니다. 존경하는 윤 석 열 대통령 님, 이 땅의 지존은 아무나 될 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에 정해진 운명이고 하늘이 내리신 천 명입니다. 부디 자 중 자애 하시어서
위급한 국 난을 슬기롭게 대처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대통령 님의 주변부터 잘 살펴서 옥석을 가리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 오천만 국민들의 바램이고, 우리의 소원입니다. 하늘은 기회를 여러 번 주지 않으십니다. 그것을 긴히 즐겁게 받아 드리시고, 이 땅에 널 부러진 사이비 정치꾼 잡 쓰레기들을 정리 정돈 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잘 알고 있고, 성군으로 추 앙 하는 세종대왕도 충 신과 역적들을 구별하여 가차 없이 처단했습니다. 군주의 가는 길은 외롭고 고단하지만, 역사에 기록으로 남을 성군이 되는 것 또한 쉬운 것은 아닙니다. 대통령 님의 강 녕 하심과 안목[眼目]을 지켜보겠습니다.
-- 안동 촌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