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는 누가 움직이는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만유의 주로 믿으며 천지만물이 그분에 의해 경영되고 있음을 고백하면서도 막상 어떻게 하나님이 만유를 주관하고 계신가에 대한 지성적 설명은 어렵게 느껴진다. 전에도 이 주제를 다룬 적이 있지만 기회원인론機會原因論occasionalism, Okkasionalismus이란 학설이 있다. 이 설을 우인론偶因論神이라고도 하는데 인간의 의지를 움직이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증거 하는 데 사용되는 이론 중 하나이다. 데카르트Descartes는 서로 독립적인 물物과 심心의 이원론을 주장했는데 이들 양자 간의 관계가 어떠한가라는 어려운 문제에 봉착한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시도가 기회원인론인 것이다. 기회원인론에 의하면 物도 心도 서로 달리 작용하는 원인이 될 수 없고 신神만이 유일한 참된 동력이다. 신체의 자극이 정신의 감각을 발생시키는 원인도 아니고 정신적 의지 작용이 신체의 운동을 일으키는 원인이 아니다. 이것들은 도구요 계기일 뿐, 즉 기회의 원인으로 될 뿐이고 이들을 통하여 진정한 원인인 神의 작용이 존재한다는 이론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신의 작용을 기다리고 따라야 한다는 논리다.
神의 피조물인 물체에 있어서나 정신 모두 할 것 없이 스스로의 작용으로 되는 게 아니고 그것들은 모두 神의 의사에 따라서 운동하고 변화하는 기회가 주어진다. 따라서 우리의 신체에서도 마음과 육체가 자기들 대로 상호작용한다는 것이 아니며 의지에 의해 손 같은 신체가 움직여지는 것도 아니다. 의지는 神이 손을 움직이도록 기회를 준 것에 불과한 것이다. 이것은 17세기 후반에 번성한 데카르트 학파의 한 이론으로 정신과 육체 사이의 모든 상호 작용을 神이 매개媒介(관계 맺어줌)한다고 본다. 연장을 갖지 않는 정신과 연장延長(extension,넓이)을 가진 육체는 직접 상호작용 하지 않으며 직접 상호 작용하는 듯 보이는 것은 신에 의해 나타난 현상일 뿐이다. 神은 정신의 의지가 작용하는 것을 기회로 육체를 움직이고 육체가 다른 물질 대상과 부딪치는 것을 기회로 정신에 생각을 불어 넣는다.
예로 사과를 집어 들고 싶다는 욕구를 행동으로 옮길 경우 정신이 육체에 직접 작용하는 게 아니고 그가 행위 하려는 의지를 기회로 삼아 神이 그의 팔을 뻗게 한다. 또한 그의 손이 사과를 집을 때 사과는 그의 정신에 직접 작용하지 않고 그와 사과의 접촉을 기회로 神이 그에게 사과의 맛과 향기 등에 관한 생각을 준다. 데카르트에게 육체는 수동적이고 사유思惟thinking하지 않는 연장延長인데 반해 정신은 능동적이고 延長을 갖지 않은 사유思惟이다. 문제는 이들이 어떻게 상호작용 하는가,즉 어떻게 연장延長을 갖지 않은 정신의 생각들이 육체에 영향을 끼치며 육체적 충동이 어떻게 생각을 만들어 내는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데카르트는 생시에 뇌 속 송과선松科腺에서 이일이 일어난다고 했지만 어떻게 상호작용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답변일 수는 없었다(송과선 이론은 당시 해부학이 덜 발달된 때의 추론이었을 뿐)
기회원인론자들은 설사 우리가 정신과 육체가 어떻게 상호작용 하는지 모른다 해도 神이 정신과 육체를 직접 상호작용 하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창조되지 않은 실체인 神이 양자를 매개하여 상호작용이 직접적인 것처럼 나타난다. 이들은 정신적 실체인 神이 어떻게 물질적 실체인 스스로 작용할 수 있냐는 질문에 神이 상호작용 자체를 창조했다고 답한다. 신의 피조물인 물체와 정신이 스스로 작용력을 가진 게 아니고 그 작용 원인으로써 운동변화의 기회가 오직 神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의 대표자 격인 말브랑슈Malebranche1638-1715는 프랑스의 가톨릭 사제였는데 데카르트학파로 불린다. 데카르트의 철학을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의 사상과 신플라톤Neoplaton철학과 종합을 시도했다고 알려진다. 그는 척추질병으로 평생 고생하면서 ‘神안에서 모든 것을 본다.’는 주의였고 인간은 오직 神과의 관계에서만 내적외적 세계의 전모를 알 수 있으며 물리적 대상들의 위치나 개인적 사고가 변하는 직접적 원인이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하나님이라는 주의였다. 흔히 원인들causes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神이 어떤 결과를 낳기 위해 활동하는 기회occasions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모든 개별적인 원인은 진정한 원인이 나타나는 하나의 기회에 불과하며 그 진정한 원인은 하나님에게만 있다는 이론이다.
말브랑슈는 우리가 자연적 인과관계라고 생각하는 것도 사실은 모두 기회원인의 결과에 지나지 않으며 모든 순간에 神의 개입介入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이상 기회원인론을 스쳐봤지만 우리 인식엔 한계가 있고 세계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도 난해하기만 하다. 딱딱한 이런 이론을 통해 하나님이 만유를 주관하시는 은혜에 조금이나마 도움될지 의문이다. 우리는 내가 생명 만들어서 나온 것 아니고 내가 남자 또는 여자되겠다 거나 내 감정 욕망 의지 성격 내가 선택한 것 아니다. 모두 받은 것들이다. 또 받은 것들을 사용하고난 후 반납해야 한다. 그게 죽음의 날이다.
이모든 것을 설계하시고 나를 존재케 하시며 이시간 숨쉬게 하신, 퍼스트이고 궁극적이며 절대적 원인자이신 분에 의해 존재행위를 하는 것이다. 이 기회원인론은 궁극적 원인주체이신 분의 만유 경영에서 특히 인간의지를 관리 , 사용하시는 프린시플을 사색해 본 것이지만 여전히 어렵기만한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의지는 자유하는가? 이 의지를 주신 절대자의 뜻을 구현하는 도구에 불과한가? 아니면 협업관계인가?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 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시15:1)
안티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