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든 것도 없이 입으로 혹 세 무 민 하는 자이다.
어제 저녁 우연히 휴대폰의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다가 보니, 황 현 필 인지 하는 젊은 사람이 오일 팔 역사에 대한 지 만원 박사가 오일 팔 폭동 당시에 북한군이 광주에 내려왔다는 얘기에 대하여 조목조목 북한군이 광주에 내려온 사실은 전혀 없었다고 하면서, 지 만원 박사의 논리를 반박하면서 오일 팔은 성스러운 광주 민주화가 맞다. 라 고 교단에서 심지어는 대중들을 불러 모아서 일 장 연설이 아닌, 북한 식 주입 쇠 내 식 방법으로 장시간 지 만원 박사가 북한 특수 군이 광주에 내려와서 광주 민주화를 촉발 시켰다고 한 소리는 거짓말이라고 쉰 소릴 해 되었다. 그래서 내가 그 사람의 인적 사항이 담긴
내이 버 지식 백과 사전에 들어가 보았더니, 그의 출생지는 어디인지 나오지 않았고, 그의 출생 년도가 1972 년에 태어났더란 것이다. 그런데 그가 하는 말을 자 세히 들어 보니, 황 현 필 이가 젊은 시절에 광주 오일 팔 당시 현장에서 광주 시민들을 동원해서 최 규 하 정부에게 총 질을 하도록 지도자 급에 속한 것 같이 모든 내용들을 잘 알고 있더란 것이다. 광주 오일 팔이 발생한 것은 바로 박 정 희 대통령이 권력 서열 제 2 위 자리인 중앙 정보 부장인 역적 김 재 규 에게 1979 년 12 월 26 일 새벽 1시에 궁 정 동 안 가 에서 권총으로 사살되어 서거하신 후, 그 당시 국무총리인 최 규 하 씨가
대통령 유고 시에 국무총리가 대통령 직을 수행한다는 헌법 규정에 따라서 최 규 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 대행 직을 맡은 것이고, 그 당시 군 수사 기관의 수장인 보안 사령관 전 두 환 중장이 최 규 하 대통령 권한 대행의 명령을 받고 박 정 희 대통령 시 해를 한 김 재 규 와 그의 일당들을 철저히 조사 하라는 명령을 받고서, 김 재 규 가 궁 정 동 안 가 에서 박 정 희 대통령을 시 해 할 적에 그 당시 계엄 사령관 직에 있던, 정 승화 육군 참모총장이 궁 정 동 안 가 에서 김 재 규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첩보를 받았고, 국가 통 수 권 자인 대통령이 권력 서열 2 위인 김 재 규의 흉 탄에 서거하신
박 정 희 대통령을 시 해 한 주동자를 색출하기 위해서 최 규 하 대통령 권한 대행은 전 두 환 보안 사령관에게 사건 조사를 시킨 것이다. 최 규 하 대통령 권한 대행은 지위 고 하를 막론하고, 철저하게 사건 조사를 지시함에 따라서 정 승화 계엄 사령관이 김 재 규를 궁 정 동 안 가 주변에서 기다리게 한 것에 김 재 규 와 같은 공모자로 의심을 하였고, 전 두 환 보안 사령관은 최 규 하 권한 대행에게 그대로 보고를 했고, 그에 따라서 최 규 하 권한 대행에게 재 가를 받고, 그 당시 군 권을 가진 계엄 사령관인 정 승화 육군 참모 총장을 육 본으로 수사 하러 가서 임의 연행하는 과정에 상대방과 총격전이 벌어진 것은 사실이나,
좌 파들이 조작한 "서울의 봄" 영화에 나온 것처럼, 그 영화는 사실이 아닌 엉터리 역사 극으로 조작된 것이다. 그 당시 수도 경비 사령관인 장 태 완의 얘기도 거짓 픽션으로 영웅 화 한 것이다. 그런데 황 현 필 이가 강연하는 내용을 조목조목 들여다보니 그의 강연 스토리는 거의 북한군이 한국으로 내려와서 광주 오일 팔을 선동하고 선량한 주민들을 꼬 두 겨서 광주 유혈 사태를 만든 것은 아니라고 우겼다. 나 역시, 지 만원 박사 님이 광주 오일 팔 당시 북한군의 일개 대대 병력 600 명이 남한에 내려와서 광주 사태를 일으켰다는 것에는 나 역시 직접 현장에 가서 보 질 않아서 진실인지는 모른다.
허지만, 지 만원 박사께서는 오랜 시간 노숙자 담요란 분과 같이 연구했고, 그분은 명석 한 두뇌와 과학적 지식이 출중 하고 안면 인식 프로그램에는 대단한 식견을 가진 분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지 만원 박사 님 역시 육군 대령으로 예 편을 하셨지만, 군사학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그분을 딸 아 갈 분이 없는 명 석 한 과학 지식과 군 정보 계통에 달 통한 분이시다. 그렇다면, 폐 일언 하고 황 현 필 인지 하는 강사는 좌파 들의 강 단에 돌아 다니면서 광주 사태에 대한 달변을 토할 것이 아니라, 그 당시에 최 규 하 대통령과 이 희 성 계엄 사령관의 명령을 받고서 이미 광주는 저들만의 해방 구가 된, 마당에 광주 경찰과
전남 경찰 광주 위 수 부대인 00 사단장 정 웅의 군인들 역시 수습하지 못한 급박한 상태에서 그래도 강 군인 공 수 특전 사 부대를 광주에 급파하여 북한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 광주로 내려 보낸 것이다. 광주 사태 당시에 광주 오일 팔 폭동 자들은 이미 군 경의 무기고를 급습해서 수천 명이 현역 군인들처럼, 완전 군장을 하고 방산 일 급 업체인 광주 아 세 아 자동차 공장까지 난입하여 군용 자동차와 탱크 장갑차까지 탈취하고, 티 엔 티 수만 발을 광주 도청 지하에 자동으로 폭발하도록 뇌관을 설치하고, 난 다음에 공 수 특전 사가 최 규 하 정부의 진압 군으로 출동한 것이다. 이미 광주는
대한민국의 영토가 아니고, 저들만의 해방 구로 반란군들이 자기들 스스로 광주를 통치 하는 정부의 치 외 법 권 지역이었다. 그런데 황 현 필 이가 강의 하는 도중에 여성들이 군인들에게 0 0을 당했고, 하는 소리는 모두 개소리다. 광주 오일 팔 민 관 군 합동 조사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반란군들이 광주의 젊은 여성들을 강간하고 유방을 대검으로 도려내었다는 그들의 선전 선동도 합동 수사 과정에서 전혀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고, 무고한 양 민 들을 공 수 특전 사 군인들이 대검으로 찌르고 임산부의 배를 갈랐다는 말도 모든 것이 거짓임이 밝혀졌다. 그리고 민간인들의 시체도 공 수 특전 사 들이
소지한 엠 16 이 아니라, 반란군이 소지한 칼 빈 총에 대다수가 희생되었다는 것이 수사 기록에서 생생하게 기록으로 남아있다. 황 현 필 에게 내가 한번 물어 보겠다. 모든 쿠데타는 성공했을 적에만 그것이 혁명으로 간주하고, 대법원 판례 역시 성공한 쿠데타는 혁명이 맡다. 라 고 적시 되었다. 그런데 광주 오일 팔은 성공한 쿠데타가 아니라, 김 대중 한 사람을 대통령 만들기 위하여, 김 대중의 추종자들이 대한민국 최 규 하 정권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킨 것이고, 그것은 한 달 만에 최 규 하 정부 군에 의하여 진압이 되었기에 혁명도 아니고, 민주화도 아니란 것이다. 민주화란 ?
맨손으로 시위를 하거나, 비 폭력적 시위나 데모를 했을 적에 그것을 민주화라고 역사는 말한다. 역사를 가르치고 근대사 책을 낸 사람이고, 강 단 에서 역사를 강의하는 사람이 심지어는 경찰 교육 장에서 강의하는 사람이 쿠데타와 혁명의 정의도 모르고 함부로 씨 부리는가 말이다. 광주 민주 항쟁은 역적 김 대중을 대통령 만들기 위해서 발생한 폭동이고 내란인 것이다. 민간인들이 군 경의 무기고를 탈취해서 수천 정의 총과 수십 만 발의 총탄과 수류탄 티 엔 티 폭약을 가지고서 선량한 광주 시민들을 죽음으로 몬 것이 어떻게 민주 항쟁인가 말이다. 그리고 폭동을 일으킨 자들이 민주화 일꾼이고, 영웅이고 열사인가 말이다.
그것도 최 규 하 정부 군에 한 달 만에 진압된 무리들이 말이다. 역사 학자라면 그래도 사리 분별을 할 줄 알아야지, 자기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인다고 그것이 올바른 역사관인가 말이다. 광주 민주 항쟁은 최 규 하 정권에 의하여 불발로 끝난 쿠데타이고,폭동일 뿐이다. 그렇게 자네가 말 한 정의의 역사가 맞다 면, 지 만원 박사께서 그렇게 대형 언론 매체에서 전 국민들이 보는 방송에서 막장 토론까지 하자고 해도 반응조차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자네 말처럼, 광주 민주 항쟁이 맞다 면 정정당당하게 그 당시 광주 진압 군으로 출동한 예비역 군인들과 직접 토론을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신문과 방송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현장을 보고 들은 국민들과 같이 직접 막장 토론을 해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투표에 부쳐서, 민간인들이 군 경의 무기고를 탈취하고, 관공서와 방송국을 불 지른 그대들의 선배들이 성스러운 광주 민주 항쟁이 맞는지 판 가름 해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 유공자 예우 법에는 국가 유공자로 선정이 되면, 국가 보 훈 부에서 모든 제반 업무를 총괄 지원하는 것이 원칙임에도 무엇이 두려워서 아직도 성스러운 광주 오일 팔 유공자들을 전남 도청과 광주 시청에서 관리하고 숨기고 있는 가 ? 말이다. 자네의 출생 년을 보니, 광주 사태 당시 자네는
만 일곱 살의 어린애 시절인데, 어떻게 광주 사태를 그렇게 귀신같이 알아서 맞추는 가 ? 그 당시 억울하게 돌아가신 무고한 광주 시민들의 영 령들이 자네에게 빙의라도 된 것인지 아리송하다. 지금이라도 무고한 지 만원 박사를 감옥에서 석방하고, 광주 오일 팔 유공자 협회에서는 직접 전 국민들이 보시는 방송에서 막장 토론을 해보자는 것이다. 그 자리에는 나도 역사를 쓰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동참 할 것이다, 무어라 해도 광주 오일 팔은 미 완 의 역사이고, 반듯이 그 진실이 밝혀져야 할 것이다. 광주 사태의 현장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무슨 근대사가 어떻고, 현대사가 어떻고 하는가 ?
-- 안동 촌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