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목을 부추기는 사람들
성경은 여자목사를 인정하지도 않고 오히려 금하고 있는데 이를 부추기는 인사들이 있다. 김세윤 교수는 독일서 바울 연구로 유명한데 공부하다 바울의 도그마를 잃어버렸는지 여목을 인정하는 말을 하고 다니는 걸로 알려진다.
또 요즘엔 보수 자칭하는 데서도 뭐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백석대의 최갑종 교수도 여목 인정하는 글을 날렸다.
그가 2017년에 쓴 여성 안수 찬성론을 보면 그가 보수인지 의문케 한다. 이를 정당화 시키면서 제도와 법을 과감히 개선하고 새 창조를 열어야 한다는 등 이상한 주장을 한다.
그는 성경속 여성들의 역할이 많았던 사례들을 인용하면서 그게 여성 사역자들을 들어 쓰신 게 아니냐는 투로 말한다.
하지만 여성들 활동 많았던 것을 직임으로 연결하는 건 잘못된 논리다. 자세히 보면 활동일 뿐 그 자체가 바로 헤드리더십을 말했거나 여성 안수를 열어주는 컨텍스트(context,전후 맥락)가 아닌 게 보일 것이다.
구약 제사장에 여자가 없었고 주님의 사도들 중 여자가 없었다.
최교수는 브리스길라 순두게 뵈뵈 등을 언급하고 롬 16장의 가정교회들을 언급하며 이를 여성 안수의 근거로 삼으려 들지만 어림없다. 12사도 외의 넓은 의미에서 사도들이 아니었겠냐는 투의 논리는 전후 택스트를 디테일로 보지 않고 그냥 끌고 가려는 일방 통행이다.
특수 여건서 열심히 충성했던 것과 직임과는 다른 것이다 . 부활의 첫증인이 여성이고 십자가 현장을 여성들이 지켰느니 하는 건 임직의 명분이 되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베드로가 아닌 막달라 마리아가 수사도 돼야 했을 것이다.
여성들이 은사를 행하고 드보라 미리암처럼 특수 사명을 한 때 감당했던 것과 제도 자체에서 공인된 최종리더십과는 다른 것이다. 그 여성 활동가들에게 기름부어 안수 했던가?
성경은 문화가 아닌 계시이다. 교회는 세상과 다른 하나님의 법(神律,jure divino)에 의해 운행되는 곳이고
이 하나님의 법이 성경인 것이다. 세상의 문화나 흐름을 가지고 교회를 보려고하면 오산이다. 시류에 아부하는 포퓰리스트들의 행태가 교회신앙과 공존할 수는 없다.
여성 안수를 주장하면 세상에는 칭찬 받겠지만 성경에는 안티하는 행위이고 성경의 저자이신 하나님의 질서 지우심을 무력화하려는 행위다.
종말에 가까울수록 창조질서 파괴가 유행 한다. 지금의 차별금지법도 창조질서 파괴를 법제화 하자는 것이다.
그냥 둬도 각종 직분으로 충성하고 봉사하는 여인들을 끌어다가 안수랍시고 해 대는 행위가 얼마나 영적 질서를 교란시키는지 숙고해 봤는가?
학자들처럼 간사한 존재들도 흔치 않다. 학자들이 제 하고픈 말을 정당화시키려 둘러대는 썰들이 공해인 경우가 허다한데 여목관련 건에서 더욱 노골화 된다.
고전 12장13절의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가 다 성령 안에서 한 몸이 되었다고 말씀한 것이나,
갈라디아 3장 28절의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가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고 말씀하신 것은 구원과 인권, 존엄성에서 차이가 없다는 말씀이지 여자 목사 만들라는 말씀이 아니다.
성경 신앙에 견고한 사람은 성경, 즉 하나님의 법에 여목이 허용되지 않음을 알고 성경 도그마 자체에 충실 한다.
그렇다고 여성을 비하하거나 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 세우신 질서에 충실하고 각자 맡겨진 역할에 충실하자는 것이다.
군소 신학교나 종교 영업가들, 자유주의 교단이나 신학교에서 마구 여자들을 안수해 놓은 결과 그 고통과 영적 손해가 얼마인지를 아는가?
그들은 가정에서부터 언밸런스가 일어난다. 남편은 부인을 종님으로 모셔야 하는 괴상한 변형이 일어난다.
전광훈교는 6개월 교육시켜 안수하겠다는데 6개월짜리 목회자가 나올 판이다. 게다가 마구 여성들 몰아다가 6개월 안수 해 대면 교계의 공해일 것이다. 무법천지가 따로 없을 판이다.
여성들은 누가 나타나 사명자라느니 주의일 안 하면 치신다는니 기도해보니까 어떻다느니 하거든 사기인줄 알고 즉시 피하거나 물리쳐야 한다.
여목 인정하는 잡설가도 그의 간판이 어떻든 물리쳐야 한다. 세상에 성경을 이길 권세는 없다.
여목이란 걸 하는 영혼들은 성경에 반하는 행위 한 결과 평생 심적 부담과 모종의 정신적 통증을 앓게 된다. 성경이 하지 말라고 한 걸 억지로 행세하다보니 하나님과 사람 앞에 그리고 자신의 영혼에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속히 걷어내고 자유해야 영육간 복되다.
여성을 높여 주는 듯 하면서 여성을 해치고 곤경에 빠뜨리는 행사가 바로 여목이란 것이다.
데살로니가 후서 2장 3절 말씀에 적그리스도체제가 나타나기 전 먼저 배교하는 일이 일어날 것을 말씀하시대로 이 여목이란 것이 배교의 흐름을 반영하는 그림판이다.
여목 주장하는 인사들은 계시록 13장11절부터 나오는 새끼 양 같은 두 뿔 가진 짐승, 즉 거짓선지자의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성할 필요가 있다. 특히 신학자란 인사들 헛소리 조심해야 한다.
여성의 은사가 특별하고 한 때 대단한 능력이 나타난다고 해고 어디까지나 한순간 은사일 뿐 제도권 교회의 목회자로 인정해선 안 된다.
이런 질서는 인간의 이해득실이나 어떤 주장이 아니고 성경 계시에 순종하자는 것 뿐이다. 이 문제는 고전 14장 34절의 권위가 그 답이다. 딴 소리 할 주제가 못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마24:4)
안티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