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단체 관 변 단체 99% 가 빨갱이들이다.
나는 어저께 역학 사 중앙 총회를 참석하면서, 내가 어깨 너머로 배운 역학을 육십 년 간 전공하면서 무료로 남의 사주를 봐주고는 잊지 만, 그래도 한국 역 학 사 협회라는 단체에 속해 있어서 일 년 마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전국 총회에 경상북도 도 지부 대의원으로서 이틀 간 서울에서 열리는 총회에 참석을 해 보았지만, 무언가 내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지 않는 가 ? 하는 속죄의 마음에 이 글을 올려 봅니다. 지금 자유 민주 대한민국에는 작고 큰 사회 단체가 무려 2,850 개나 존재하고, 사회 단체라는 이름 하에 지난 종 북 정부로부터 엄청난 지원금을 받으면서 좌파 선전 선동의 매개체로서 활동하고 있다고 바야 합니다. 윤 석 열 대통령이 선출 되면서,
그나마 종 북 주사 파들이 운영하고 점령하고 있는 저들의 전위 대인 사회 단체와 관 변 단체에 지원되는 엄청난 지원금을 축소 내지는 지원금 전체를 삭감하는 정책을 지금도 펼치고는 있지만, 사실 우리나라 사회 단체와 관 변 단체는 사실상 종 북 주사 파들이 거의 99% 를 점령하고 있다고 바야 합니다. 한 가지 비 근 한 얘를 들더라도 파월 장병 전우 회나 빨갱이 이 종 찬 이가 회장으로 있는 광 복 회, 새 마을 운동 협의회 리 통 장 협의회 같은 경우에는 회 장단 들이나 간부들이 거의 특정 지역 사람들로 채워져 있고 말인 즉, 저들은 정치와는 중립적이라고 하면서 저들의 행사 때 마다 행사장 정문이나 행사장 주변에는 더불어 민주당의 이름 있는
전 현직 국회의원들과 심지어는 전 더 불 당의 국무총리의 이름이 크게 쓰인 화 환들이 행사장 중요 위치에 버젓이 전시되어 있고, 자유 우파를 신봉한다는 빨갱이 이 중대 국 힘 당의 국회의원들과 그 지역의 국 힘 당 시군 구 의원들의 이름이 쓰인 화 환 들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행사장 진행자들의 말을 들으면 우리 단체는 정치와는 별개이고, 그 어떤 정치적 발언을 해서도 아니 된다고 하면서 저들 종 북 주사 파들의 전 현직 국무총리와 전 현직 국회의원들이 행사장에 참석해서 심지어는 자기들의 이름이 쓰인 표창장과 감사 패를 증정하면서도 우리 단체는 정치적으로
어느 쪽에도 줄서기를 하지 않는다는 괘 변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이번 모 행사에 대의원으로 참석한 것을 후회 스럽게 생각합니다. 더욱이 오늘이 어떨지 ? 내일이 어떨지 모르는 중증 환자가 그것도 노 무 현 문 재인 빨갱이들에게 육신이 갈기갈기 찢어진 나의 몰골을 가지고서 저들에게 반갑게 인사까지 나누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 역시 천기를 알고 인기[人氣]를 안다는 역학을 60 년 세월 동안 배운 내가 참담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번에 모인 사람들은 그래도 역학을 하고 있다는 20 만 명의 사람들 중에 그나마 우리나라에서는 날고 긴다는 사람들이 국 운에 대하여 전혀 입도 벙긋 하지 못하는 속 물성 근성을 가진 자들이
엄연히 세상사의 어려운 철학의 세계를 안다고 전국에서 대표로 각 지역에서 모인 인재들인데, 그래도 버젓이 철학 관이란 간판을 걸고, 생업에 매진하는 생계형 술사들임에도 역학을 수십 년 배우면 무얼 하는 가 ? 단 일 초의 자기 앞길도 모르는 꽁 생 원들이 말이다. 운영자들이 한다는 말이 우리 단체는 절대적으로 정치와는 결별해야 하고, 오직 삶의 고통을 받고 있는 국민들에게 무거운 삶의 고통을 지워주는 단비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하는 우리 역학 사 들이 자기들 밥그릇 챙기기에 몰 심 한다면, 그것은 역학 사의 도리가 아니고, 소위 철학을 배웠다는 선지자들이 아니란 것이다. 그리고 철학이란 워낙 광범위한
학문의 세계에서 천지창조를 하신 하나님도 그 방대한 학문을 이해하지 못하실 것이다. 철학은 인문 철학에서 부 터, 정치 경제 사회 예술 천문 지리와 우리 인간들의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코 에 냄새가 나는 모든 천지 만물의 운행을 연구하는 광대한 학문이다. 그런데 그것을 자기들은 마스터 했다. 라 고, 철학 원이란 간판을 내어 걸고 철학 박사라고 우 쭐 대는 거시기 들을 보면 헛웃음이 나온다. 2011 년 2, 7 일 안동 촌 노 김 성 복 이가 조선 닷 컴 천 자 토론 마당에 올린 국운에 대하여 그해 12 월 20 일을 못 넘기고, 김 정일 이가 죽는다. 그리고 그는 여자의 배 위에서 복 상 사를 한다. 라 고 예고의 글을
김 정일 이가 죽기 전, 10 개월 전에 신문에 글을 올린 적이 있고, 그것이 사실 정확하게 맞아 떨어져서 김 정일 이가 2011 년 12 월 18 일 오전 8 시 25 분에 사망했다고, 12 월 20 일 정오 뉴스에 속보로 북한 평양 방송에서 이 금 희 북한 아나운서가 방송을 하자, 우리나라 전체 언론들이 김 정 일의 사망을 대대적인 특종으로 방송을 했다. 그래서 나는 12 월 20 일 집에서 사진 작업을 하다가, 전 안 기부 1 차장을 했던 박 일 룡 형님이 나에게 긴급하게 전화를 하시면서 “동 생" 지금 어디에 있는 가 ? 지금 빨리 티브이 방송을 켜 보라고 하시면서, 지금 김 정 일 이가 죽었다고 북한 평양 방송에서
이제 방금 속보로 뉴스가 송 출 되었고, 우리나라 방송들이 지금 난리 낫다고 하시길 레, 집에 있는 티브이를 틀자 ~ 전 언론이 김 정 일의 사망을 일제히 보도하고 있더란 것이다. 그래서 나 역시 놀랐다. 역학이란 학문이 이렇게 오묘한 것인 지를 말이다. 그런데 며칠 지나서 미국 정보 당국의 한국 책임자가 우리 집을 방문해서 나에게 물었다. 자기들이 김 정 일의 신상을 유심히 살펴보면서도 김 정 일의 생명은 삼 년 이상 살 것이라고 자기들은 알고 있었는데, 어떻게 선생님은 김 정 일의 죽음을 하루도 틀리지 않고 그것도 복 상 사로 10 개월 전에 신문에 올리신 것입니까 ? 하고 질문을 하길 레,
저는 웃으면서 우 족 쥐 살이라고 했지요. 소의 뒷발에 쥐가 밟힌 격이라고 웃으면서 얘길 했고, 더 이상의 얘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소위 우리나라에서 이름난 점쟁이들과 역학을 조금 한다는 사람들이 한다는 말인 즉, 자기들은 이미 삼 년 전에 김 정일 이가 죽을 것이라고 예언을 어느 신문에 올렸다고 뻥 을 치길 레, 나는 그분들이 올렸다는 신문을 수십 번 찾아 보았지만, 모두 거짓말이었던 것입니다. 우리 역 학 사 들은 정직해야 합니다. 천기를 알고 지기[地氣]를 알더라도 신중하게 글을 써야 합니다. 우리들이 쓰는 글은 그야말로 나라를 병들게 할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입으로는 정치적 색깔이 없는 단체라고 하면서 행사장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빨갱이들의 화 환을 설치하는 집단들이 과연 올바른 우 국 충 정의 발로 입니까 ? 나는 그들에게 물어 보겠습니다. 특정 지역의 전 현직 국무총리와 교육감의 화 환을 즐겁게 받고, 상 석에 설치하면서 어째서 ? 박 근 혜 전 대통령의 동생이신, 박 근 령 육 영 재단 전 총재의 방문을 처음에 거절한 이유가 저는 궁금합니다. 그리고 국 힘 당 정치인 개 쇅 귀 들아 ! 제발 정신 좀 차려라 ! 어째서 너 그 놈들의 화 환 은 단 한 개도 보이지 않는 가 ? 말이다. 종 북 주사 파들은 솔선해서
자기들을 알리려고 야단 법석 난리를 치고 들 있는데, 소위 자유 민주 대한민국을 신봉한다는 놈들이 빨갱이들의 화 환 은 차고 넘치는데, 너희 놈들은 한 달에 1,400 만원의 월급을 받고 특활 비만 해도 월 300 만원을 받는 놈들이 전국의 중요한 단체의 행사에 화 환 하나 보내지 않으니 어떻게 국민들에게 호응을 받을 것이며, 의석 수를 기대할 것인가 말이다. 허기 사, 빨갱이 김 영 삼 김 대중 놈들의 졸개들이니 이해를 할 만도 하지만, 천 리 길을 차를 타고 달려가서 행사에 참석을 했는데 그래도 같은 역학을 한 동지여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면서 저는 필명 안동 촌 노 김 성 복이라고 하면서, 이제는 상 놈의 고장인
안동에서 왔다. 라 고 떳떳하게 이름까지 밝히고, 명함까지 건넸음에도 상대방은 처음에 서울에 산다고 하더니, 말소리가 이상해서 내가 먼저 나의 사돈들은 고흥과 담 양이 고향인 오리지널 전라도 분들이라고 얘길 했더니, 그 다음에는 자기의 고향이 전남 광주라고 했다. "왜" ! 전라도 분들은 무엇이 캥기 길 레 자기들의 고향까지 속이려 하는 가 ? 참으로 요 상한 세상에 살고 있는 내가 부끄럽다. 나는 이 재 명 개 잡 놈의 고향이 안동이 아님에도 안동이라고 해서 이제는 양반의 시골 도시 안동이 개 쌍 놈이 되었지만, 그래도 조 상 님들이 수백 년을 사셨고 내가 여든까지 안동에서 살았는데 무엇이 두려운 가 ?
그런데 나도 떳떳하게 밝히는데 “왜” 전라도 분들은 신성한 오 일팔 유공자 수천 명을 배출한 열사의 고장에서 자기들의 고향을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그리고 안동 촌 노 김 성 복은 노 무 현 이와 문 재 인의 졸개들이 위장한 교통사고 테러로 인해, 왼 쪽 무릎 밑이 신경이 전혀 통하지 않는 숟가락 대 만큼의 쇠가 열 네 개나 박힌 의족이다. 그리고 허리는 일곱 마디가 부셔 지고, 뒤틀려서 50 도의 각도로 굽어진 허리이다. 그리고 50 미터만 가도 지팡이에 의지해야 한다. 그런데 어제 모 호텔에서 점심을 먹는데, 이미 자기 자리를 잡아둔 곳이 많아서 몇 번을 여러 식탁을 돌다가
한 곳에 자리가 비었길 레, 여기에 앉아도 됩니까 ? 하고 젊은 친구들에게 물었더니 여기 앉으셔도 됩니다. 라 고 하길 레,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아 밥을 먹으려는 데, 나와 정면으로 바라보는 자리에서 나보다는 조금 어려 보이는 여자 분이 나를 쏘아보면서 여기는 행사장 간부들이 앉는 곳인데 하면서 ... 나를 보면서 인상을 쓰길 레, 기분이 더럽게 나쁘지만 그래도 나는 참고서 소식[小食]을 하는 내가 몇 분 간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지팡이를 짚고서 밥을 먹기 위해서 앉을 자리를 찾았고, 젊은이들이 앉아도 된다고 해서 그 자리에 앉았는데 참으로 밥이 목구멍에 넘어 가지를 않았다.
이제는 내가 그곳 행사장을 찾을 필요도 없지만, 소위 행사장 주최 측의 수석 부 이사장이란 사람이 그 정도이면, 그 단체의 명성을 알고도 남음이 있다. 오 호 라 ~ ~ ~ 통 제 여 !
-- 안동 촌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