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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역사 대한민국(75)
작성자: 정문 조회: 14738 등록일: 2024-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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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곤은 아버지와 아내와 함께 죽창을 들고 빨간 머리띠를 두른 수십명의 조선민주청년동맹(朝鮮民主靑年同盟, 민청)과 조선민주여성동맹(朝鮮民主女性同盟, 여맹) 단원에게 인근 삼한봉으로 끌려 같다.

김준곤은 포박 된 채 울부짖으며 아버지는 농토를 가졌다는 이유로, 아내는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 였다는 이유로 돌과 몽둥이에 맞아 죽는 것을 지켜 보아야 했다. 그 순간 집에 있는 어린 딸 은희의 우는 소리가 들려 밧줄에 묶인 채 산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6.25 사변이 터지고 파주에서 전도사 활동을 하던 김준곤은 전쟁의 포화를 피하여 고향인 전남 신안으로 내려 갔으나 이미 공산당이 장악한 후 마을 사람은 빨갱이로 돌변하여 인민재판으로 수십명을 죽였다. 그 섬의 인구는 18,000명에 불과 했으나 아버지와 아내가 맞아 죽던 밤 60명이 죽었고, 섬에서는 2,000명이 학살 당했다.

때 마침 경찰과 해병대가 상륙하여 김준곤 목사는 구출 되었다. 그날 밤 인민재판을 벌린 120여명의 공산좌익들은 경찰에 의해 체포가 되었다. 400여명의 유가족들은 체포 된 120여명의 공산좌익을 보기 위하여 신안경찰서로 모였다그 자리에서 김준곤 목사는 강력한 성령의 임재를 받으며 400여명의 피해 유가족 앞에서 120여명의 공산폭도를 용서하겠다고 선언했다.

썰물 밀물에 몰려다니는 고기떼처럼 이 비극이 이쪽에서 죽고 저쪽에서 죽고 이 치하에서 살았더라면 누구라고 부역을 안 하고 살아남을 사람이 없을 거예요. 여러분이 유가족이라고 살아남았으면 죄 없는 자가 돌을 들어 쳐보시오. 다시는 보복이 없어야 합니다. 용서해야 합니다.”

120여 명 모두를 계엄사령부로 올려 보내면 사형을 당할 수밖에 없는 중죄인들이었다. 이튿날 김준곤 목사는 어미를 잃은 젖먹이를 데리고 경찰서에 와서 용서를 부탁했고 주동자급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사람답게 살라고 훈계를 하고 놓아줬다고 한다. 풀려난 사람들은 훗날 대부분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고, 그중에는 장로까지 된 사람도 있었다.

증오와 분노를 성령과 신앙의 힘으로 극복한 김준곤 목사는 민족복음화를 위해 평생을 바치며 한국대학생선교회(Campus Crusade for Christ) 조직, 국회조찬기도회, 전군신자화운동(1969), 춘천성시화운동(1972), 엑스플로 ’74대회(1974.8.13~18, 여의도광장), ’80 세계복음화대성회(1980년 여의도광장) 등을 통하여 대한민국 개신교 복음의 역사를 썼다.

한민족의 골고다 언덕 한성감옥에서 이승만은 백만의 그리스도인을 달라고 기도 했다. 하나님은 국부 이승만이 소천할 때 그 기도를 들어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리스도인 1,000만 복음을 김준곤 목사에게 소명을 주었고 평생의 사명으로 완수했다.


5.16 혁명의 혁명동지였던 김종필은 박정희 대통령을 찾아 국가조찬기도회 참석을 부탁했다. 대구상모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하며 교회 웅변대회에서 명성을 날렸던 박정희는 흔쾌히 수락했다. 조찬기도회는 김준곤 목사가를 중심으로 김종필, 김영삼 등 40여명의 개신교 국회의원이 모여 시작한 후 2번째 해를 맞이했다.

매년 조찬기도회를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은 어느날 김준곤 목사를 불러 군 내 좌익 침투에 대한 걱정과 군인들의 사상 무장과 정신 무장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김준곤 목사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신앙 전력화를 통한 반공운동과 정신무장을 제안한다.

건국 후 공산당과의 대결에서 언제나 최전선에서 싸웠던 기독교를 알고 있었던 박정희는 즉석에서 흔쾌히 수락하여 전군신자화운동(全軍信者化運動)”이 시작 된다. 김준곤 목사는 중령 이상의 영관급 및 장성까지 수천명에게 복음을 전했으며 전군신자화 운동을 통하여 매년 20만명 이상이 복음을 듣게 된다.

군의 신자화 운동은 반공전선에서 신앙전력화운동으로 승화되면서 군내 폭발적 복음으로 이어진다. 197010만의 군내 신자수는 1971154명이 병사와 지휘관이 첫 합동세례를 받은 후 3년만에 28만명으로 증가하며 3배이상 증가했고, 해마다 신자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1958민족의 가슴마다 피 묻은 그리스도 를 심어 이 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 라는 구호와 함께 한국대학생선교회(한국CCC, Campus Crusade for Christ) 조직하여 복음을 시작한 김준곤은 기독교를 통한 민족복음음화의 길을 걸었다.

김준곤 목사의 복음은 무너지고 찢긴 조국을 근대화로 이끌어야 할 청소년, 대학생, 군인 등 젊은 세대의 복음에 매진했다. 1971년 대전충무체육관에서 1만명의 청년·대학생 모아 전도강습회를 개최 하는 등 단순한 복음의 전도에 그치지 않고 그들을 복음의 군사로 훈련시켰다. 그는 무일푼으로 거지전도여행을 보내는 등 실전적이고 실천적으로 가르쳤다.

김준곤 목사의 민족복음화의 꿈은 전군신자화운동으로 시작한 후 197351일에 열린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민족복음화의 원대한 꿈을 밝힌다.

전군 신자화 운동이 종교계에서는 이미 세계적으로 자랑이 되고 있는데 그것이 만일 전 민족 신자화 운동으로까지 확대될 수만 있다면 세계 정신사적 새 물결을 만들고 신명기 28장에 약속된 성서적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김준곤 목사의 민족복음화의 꿈을 구체화 시킨 것은 1972년 미국 달라스에서 열린 Explo72였다. 1972년 미국 달라스에서 열린 Explo72에 한국대표로 참석한 김준곤 목사는 한국에서 30만 명이 모이는 Explo74를 개최하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의지에 대하여 대학생선교회(CCC) 간사들부터 시작하여 모두들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나 국내외에서 몰려든 30만명이 몰려와 합숙 훈련을 시작했고 훈련 받은 그들은 민족복음화를 위한 하나님이 전사가 되어 EXPLO’74가 시작 되었다.

EXPLO’74 첫날에 150만명이 넘게 몰려 들었고 매일밤 100만명 이상이 모여 민족복음화와 남북통일을 기도했고 6일동안 658명이 대회에 참가했다. 한국 민족사와 정신사를 기독교 세계관으로 인도하는 일대의 사건이었다.

처음으로 1972년 텍사스 달라스(Texas Dallas)에서 열린 를 개최한 것은 국제대학교 선교회(CCC)의 빌 브라이트(William Rohl Bright)였다. 문화막시즘의 미혹에 타락한 미국 젊은이들은 허무주의에 빠져 히피족, 섹스족, 환각제족, 분노하는 발광족이 되었다. 그들의 구원과 문화막시즘과 싸우기 위하여 빌리 그레이엄 목사를 비롯한 수십만명의 고등학생, 대학생이 모여 전도대회에 참여하여 문화막시즘의 광기와 맞서 싸웠다. 네오막시즘과 싸우는 미국 젊은이들의 용기에 감명 받은 김준곤 목사는 대한민국의 미래세대를 위해 EXPLO’74 개최를 결심했다.

김준곤 목사는 여의도 5.16 광장의 EXPLO’74 대회장에서 기도했다.

젊은이들이 예수의 꿈을 꾸고 인류 구원의 환상을 보며 한 손에는 복음을, 다른 한 손에는 사랑을 들고 지구촌 구석구석을 누비는 거룩한 민족이 되게 하옵소서


폐결핵으로 시한부 인생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17세 소년은 복음을 듣고 새생명을 얻는다. 천막교회를 시작으로 복음을 전한 조용기 목사는 수중의 돈100만원으로 여의도 순복음 교회 건축을 시작하였고 세계 최대의 단일교회가 되었다.

산업화시대를 상징하는 영등포일대의 산업단지에 몰려든 노동자들은 여의도 순복음 교회를 다니며 조국근대화를 위해 일했다. 조용기 목사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직업소명과 물질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라고 했다. 좌익이 산업화 사회에 빈부격차로 증오심을 사회에 뿌릴 때 성령의 능력 안에서 근면성과 성실함으로 열심히 일하여 부자가 되라고 했다. 그는 성령의 능력으로 자신 속에 있는 가능성을 찾아 땀흘리고 미래를 개척하는 자기개혁을 가르쳤다. 이는 막스 베버가 발견한 현대자본주의를 탄생시킨 금욕적 자본주의와 일맥상통한다, 그의 가르침은 산업화 시대를 살아가는 시대정신이 되었다.

조용기 목사가 제시한 물질적 세계관은 한반도에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가치였다. 유교적 가치와 질서가 구축한 위선적인 물질관 그 옹골찬 세계관은 그렇게 허물어지고 있었다.

성령과 함께 하는 삶, 그 속에서 찾은 희망으로 미래를 개척하는 삶은 획일적 평등의 공산주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세계관이며 강력한 반공운동이었다. 북한에 경제력과 군사력이 열세였던 산업화시대 무신론적 유물론의 공산주의와 싸웠던 개신교는 그 어떤 무기보다 강력했다.

김진곤 목사는 반공전선의 최일선에서 외쳤다,

공산당이 증오와 보복의 영으로 혁명한다면 우리는 사랑과 성령으로 인간 자신을 혁명하는 예수 혁명을 일으켜야 하겠다.”

북한 공산당으로부터 피해 월남한 한경직 목사는 그 시대 반공을 설교했다.

나라 없이는 신앙도 자유도 재산도 모두 잃게 되므로 자유 민주국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온 국민이 깨어나 함께 기도하자

산업화 시대 공산주의와의 대결에서 기독교는 또 하나의 영적 전선이었다. 힘들고 지친 산업화의 일상에 미래라는 희망을 던져 주었다.

산업화 시대 민족복음화운동은 기독교문명의 정신적 운동이었다면 새마을 운동은 기독교문명의 새로운 정신과 가치의 실천적 운동이라 할 것이다.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운동은 실생활에 산재했던 유교적 봉건질서와 공산주의, 나태와 구습, 패배주의와 싸웠다.


요즘은 한류가 전세계에 유행하고 있지만 한류의 원조는 새마을운동이다. 동남아와 아프리카 등 46개국에 보급되어 한국의 자랑스런 문화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새마을운동의 수출은 1973년부터 외국인에 대한 교육이 시작 된 이래 65천명의 외국인을 새마을지도자로 육성하여 본국으로 돌려 보냈다. 아프리카 우간다는 새마을운동을 토대로 자생마을이 350개가 넘는다.

19698월 경상남도에 유례 없는 수해가 발생하면서 수해지의 고통을 시찰하던 박정희 대통령은 청도군 신도리를 통과하는 전용열차에서 수해복구로 온마을 사람들이 철로변 근처에서 땀흘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박정희 대통령은 즉시 열차를 세우고 후진 할 것을 지시한다. 박정희 대통령의 단호한 지시에 놀란 비서관은 당황하며 기차를 후진 시켰다.

기차에서 내려 마을을 돌아 본 박정희는 충격에 빠진다. 전형적인 시골마을인 신도리는 뒷산 산림이 우거지고, 마을집은 개량되어 있었고, 마을길은 시원스럽게 닦여 있었다. 더욱이 마을을 가꾼 것은 마을총회를 통한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진 것을 보고 박정희는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 이거다. 농촌이 잘 살려면 농민들 스스로가 일어서야 한다, 그 토대를 정부가 만들어 주고 지원하자.”

머릿속에 낙후 된 농촌개발을 가득했던 박정희는 8개월 후 전국지방장관회의를 소집하여 새마을가꾸기사업을 선포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습니다.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5천년 묵은 가난을 몰아내도록 그들의 의욕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먼서 농촌의 생활환경을 바꾸는 새마을 가꾸기사업부터 벌여보도록 합시다.”

당시 농촌은 너무나 낙후 되어 있었다. 자동차 진입이 되지 않는 마을은 절반이 넘었고 전기가 가설 된 마을도 농촌은 20%에 불과하였으며 산에 나무가 없어 홍수와 가뭄이 빈번했으며 농업생산성은 형편 없었다. 해마다 되풀이 되는 보릿고개는 숙명이었으며 현실의 고통을 잊고자 마을마다 신당을 지어놓고 미신에 의존했고, 게으르고 나태함이 일상이었으며 그것을 달래려는 음주와 도박, 아편이 만연했다.


새마을운동의 결과는 기적이었다, 새마을운동 초기인 1971년의 농촌의 월평균소득은 3만원인 반면 도시근로자의 월평균 소득은 38천원으로 도시가구가 역 1.27배 높았다. 그러나 새마을운동이 한창부흥을 이루었던 1974년부터 1977년 까지는 오히려 농촌가구의 월평균소득이 도시가구의 월평균소득을 앞질렀다. , 1974년에는 농가의 월평균소득이 56천원인 반면 도시가구의 월평균 소득이 54천원, 1975년엔 전자가 73천원, 후자가 72천원, 1977년엔 전자가 119천원, 후자가 117천원이다. 그러나 1978년 이후 도시의 산업화에 따라 다시 도시가구의 월평균 소득이 농촌가구의 월평균소득을 앞질렀다. 산업혁명 이 후 짧은 기간이었지만 근현대 산업화 사회에서 농가소득이 도시근로자 소득을 앞세운 전례는 세계적으로 유일한 기록일 것이다. 새마을운동이 남긴 유일무이한 기록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청송군 신도리에서 감명받고 1970년에 새마을가꾸기운동으로 시작된 후 1972년 정부가 주도 된 대통령령 제6104를 공포하여 새마을운동으로 개칭하고 본격적인 농촌개발에 들어간다. 그러나 범국민적 공감대 형성 및 참여를 이끌어내야 하는 문제는 별개의 문제였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그리고 자발적 참여를 통한 자생적 국민적운동으로 이끄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1970년 시멘트 과잉생산으로 시멘트가 남아 돌자 박정희 대통령은 전국의 시골마을에 시멘트 350포대, 철근 0.5톤을 전국의 34,000여 농촌 마을에 배포했었다. 시골에서는 귀한 시멘트를 구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으며 시멘트 한움큼씩 소량을 사다가 쥐구멍을 막는데 사용할 정도로 시멘트는 고가의 건설재였다. 각 마을에 배포한 시멘트와 철근은 마을에서 자율적으로 사용하였으나 그 결과와 생산성은 천차만별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각마을의 사업을 평가하여 사업실적에 따른 서열을 정하고 앞선 곳은 더 많은 지원을 해주었고 뒤쳐진 곳은 지원을 끊어버렸다. , 잘살아보려는 의지와 더 잘되려는 노력을 하는 소위 잘되는 집안만 도와 주었다. 이것이 경쟁이 되어 각 마을마다 정부의 더 많은 지원을 받기 위해 경쟁을 하여 더 많은 생산성을 올렸다.

성경에는 달란트 비유가 나온다. 먼 길을 떠나는 주인이 종에게 맡긴 후 돌아온 주인은 재산을 많이 불린 종에게 게으르게 재산을 보관하기만 한 종의 재산을 빼앗아 부지런히 재산을 늘린 종에게 준다, 어찌보면 매우 비성경적으로 보이지만 성경은 일관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게으름을 죄로 규정하고 있다. 새마을운동에 이러한 원리는 새마을운동에 그대로 적용되어 전국의 농촌은 잘살아보세라는 열정과 땀방울로 가득찼다.

박정희 대통령은 새마을운동을 단순한 잘살아 보려는 물질적운동에서 벗어나 전국민의 정신개발운동, 정신혁명운동으로 민족정신개조운동으로 확대시키고 싶었다. 여전히 대한민국에 뿌리 깊게 박힌 유교적 낡은 사고방식과 폐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러한 박정희의 생각은 설날(구정)폐지” “음력폐지와 같은 봉건잔재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에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머슴의 아들로 태어나 일제 시대를 거치며 절대빈곤의 가난에 허덕인 류태영박사는 해방 후 18살의 늦은 나이에 중학교를 졸업했고 구두딱기와 신문배달을 하며 건국대학교에 진학했다.

대학졸업 후 유태영은 가난한 덴마크가 농촌운동으로 특히 그룬트비 목사의 농촌개발운동, 국민운동으로 세계적인 부국이 된 것에 감명을 받고 덴마크 국왕 프레데릭9세에 편지를 써서 답장을 받는다.

"당신이 원하는 기간,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분야를 공부할 수 있도록, 우리 정부가 책임을 지겠다"

수중에 80달러를 가지고 덴마크로 간 류태영은 2년간의 유학생활을 시작한다.

덴마크는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해 독일에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주고 유럽대륙 북부의 곡창지대인 슬레스빅 홀슈타인 지역을 넘겨준다. 남겨진 스칸디나비아 땅은 북해와 발트해의 바닷바람에 시달리며 돌과 모래, 잡초만이 무성한 황무지였다.

중앙은행도 파산했고 국가경제는 파탄상태였다. 스칸디나비아 추운 땅의 국민들은 뜯어먹을 풀이 없어 뼈만 앙상한 젖소와, 배고픈 돼지들을 몰고 바닷가로 나가서 파도에 밀려온 해초나 죽은 생선을 주어 먹었다. 여인들은 프러시아와 오스트리아 병사에게서 몸을 팔아 연명했다. 덴마크 국민은 좌절과 실의에 빠졌고 알코올 중독자들이 넘쳤다. 전쟁의 패배와 가난은 덴마크를 절망케 했다. 그런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덴마크 국민을 깨운 것은 한명의 루터교 목사였다.

178398일 덴마크의 우드비에서 태어난 그룬트비는 외쳤다.

"힘이 아니라 국민성으로 위대한 국가를 건설하자

그룬트비는 하나님과 이웃, 땅을 사랑하자 3애정신(3愛情神)으로 '국민의식구조개혁' 운동을 시작했다. 무너진 국가경제와 피폐해진 국민의 삶을 일으켜 세우자며 농촌운동을 시작했다. 스킨디나비아의 기후와 풍토에 맞는 낙농업 육성을 시작했다.

그는 경견한 신앙운동을 일으켰고 교회마다 학교 건립운동을 벌렸고 종교개혁의 정신 루터정신을 덴마크에 심었다. 교회에서는 성인들을 상대로 낙농업교육을 비롯한 직업교육과 성경수업을 했다. 수업 시간의 절반은 성경교육이 채워졌다. 그렇게 세워진 성인기숙하교는 세계 최초의 성인기숙교육학교가 되었고 덴마크의 국민 고등학교가 되었다.

구룬투비로부터 감명을 받고 성령을 받은 달가스는 밝은 덴마크의 미래를 보았고 황무지를 비옥한 땅으로 개간하는 일에 헌신한다. 황무지를 개간하여 초원을 만들고 소들이 뛰놀게 했으며 나무를 심어 스칸디나비아의 차거운 바람을 막았다. 유틀란트 반도가 목초지가 무성하게 된 것에는 엔리코 달카스의 용기와 열정이 있었다.

그룬트비와 달가스에 감동한 국민들은 모래땅에 나무를 심었고 초원을 가꾸었다. 전쟁에서 배배하고 실의에 찬 덴마크 국민은 그룬트비의 국민운동에 동참하며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채워졌다. 스칸디나비아의 거친 국토는 푸른 초원으로 바뀌었고 덴마크는 개신교인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낙농업을 일으켰고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덴마크를 낙농부국으로 만든 것은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국토를 빼앗긴 패전의 멍에를 딛고 일어선 자신감이었다. 미국의 값싼 곡물이 유럽으로 밀려 들어올 때 유럽은 높은 관세로 미국산 곡물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덴마크 농민은 미국산 곡물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반대했다. 값싼 미국산 곡물이 밀려들 때 그들은 위기를 기회로 삼았고 값싼 미국산 곡물을 가축을 먹여 낙농부국이 되었다.

어머니로부터 신앙을 받은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던 류태영은 덴마크에서 그룬트비의 정신을 공부하고 배웠다. 덴마크에서 다시 이스라엘로 유학을 떠난 류태영은 사막을 옥토로 만든 이스라엘의 농업혁명을 공부했다. 농촌개발을 통한 부국의 꿈을 품고 귀국한 류태영은 건국대에서 축산학과 교육자로 근무하게 된다.

새마을가꾸기 운동을 전국적으로 펼치던 박정희 대통령은 농촌잘살기 운동, 국민의식개조운동으로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확대하려 했다. 그러나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때마침 류태영을 알게 된 박정희는 그를 청와대로 불러 조언을 요청했다.

류태영은 청와대로 가서 직접 박정희 대통령 앞에서 본인의 농촌 경험 및 선진국의 발전 모델을 소개하며 대한민국 농촌을 위한 비전을 제시하였다. 즉석에서 류태영을 학교에 사표를 내고 내일부터 나오라는 제안한다. 류태영은 가르치는 학생들을 위해 거절하였다. 다음날 건국대학교로 출근한 류태영은 재단이사장과 총장이 기다리고 있었고 아무런 걱정 말고 청와대로 들어가라고 건국대에서 쫒아냈다.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은 류태영을 새마을운동 담당자로 임명한다. 류태영은 덴마크와 이스라엘에서 배우고 연구하며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철저하게 성경적 세계관의 토대에 새마을운동의 기본 정신 "근면, 자조, 협동"을 제시한다. 박정희는 즉시 근면, 자조, 협동을 휘호로 써서 새마을운동본부 현판으로 걸었다.

박정희의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는 철학은 국민철학이 되었다.


새마을운동은 마을단위의 자발적 국민운동으로서 공동체의 목표를 향해 달렸지만 참여자 개인에게는 새마을운동을 통해 소득이 증대되고 주거가 개선되고 삶의 질이 향상되는 기적을 맛보게 된다. 더욱이 그것은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낸 것이었다.

새마을운동은 아무리 심한 가뭄이 들어도 하늘에서 언젠가는 어차피 비는 내릴 수 밖에 없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사하라 사막에도 비는 내린다. 그런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우제를 지내는 전근대성에서 벗어나 댐과 저수지를 건설하고 물을 끌어다 가뭄을 극복하는 지혜와 자신감을 새마을운동을 통해 배웠다. 한반도가 땅을 지배하고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비로서 깨우치게 된 것이다.

새마을운동은 녹색혁명을 가져다 주었다. 비닐, 농약, 비료로 대변되는 농업혁명은 비약적인 생산성의 증대를 가져왔다. 농촌과 도시가 동시에 성장하는 세계사의 유일한 동반성장이 일어났다. 단군이래 처음으로 한반도에서 보릿고개가 퇴치 되었다.

보릿고개를 퇴치 한 새마을운동은 한반도의 역사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혁명이었다. 국가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정책으로 언제나 압도적 1위가 새마을운동이다.

새마을운동이 국민운동으로 한반도 변혁의 중심에 있게 한 것은 류태영 박사와 배고픈 소년 박정희였다. 그들은 덴마크 중흥의 아버지 그룬트비 목사와 이스라엘의 키부츠에서 모든 것을 배웠다.

류태영 박사는 청와대에 불려가 농촌운동에 대한 특강을 한 첫날을 기억했다.

내가 청와대 특강을 한 그날 저녁 오후 6, 육영수(陸英修) 여사 초청으로 본관에 올라가서 대통령 가족들을 만났고, 11시가 넘도록 대통령 내외분과 함께 대화를 한 것이 일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대통령은 밤늦도록 피곤한 줄도 모르고 나라의 발전과 농촌, 농민들을 진심으로 걱정하며 어떻게 해야 우리나라 농민들이 가난에서 벗어나 잘살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선진국의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질문하는 데 한도 끝도 없었어요. 나는 이때 처음으로, 그분의 인간성과 지도자적 자질, 그리고 국가 지도자로서의 집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경제는 본격적인 산업화시대가 열린 1972년부터 1980년대 초까지 15년동안 1,000%가 성장했다. 25개년 계획(1967-1971) 기간 중 11% 성장, 35개년 계획(1972-1976) 기간 중 9.6% 성장했다. 1961년 한국의 1인당 소득 82달러에서 19791,546달러가 되었고, 국민총생산의 경우 196120억 달러에서 1979630억 달러, 수출은 같은 기간 중 4100만 달러에서 150억 달러로 증대했다. 부자는 더 큰 부자가 되었지만 낙수효과는 장마철 소나기처럼 쏟아져 두터운 중산층이 만들어지는 홍수가 났다. 배고픔과 절대빈곤은 모두 사라졌고 전염병, 영양실조, 유아 사망률이 급감하며 수명이 급증했다.

김준곤 목사의 민족복음화 사명이 구체화 된 엑스플로74 이후 한국교회 또한 폭발적 성장을 했다. 그리스도인 100만의 시대를 열은 국부 이승만의 서거 후 15년이 되어가는 1980년초 1000만의 그리스도인 시대가 열렸다. 엑스플로74 이후 한국교회는 매년 20%씩 성장했다. 여의도 5.16광장에 개최 된 80’ 세계복음화대성회에서 10만 선교사를 파송 결의까지 하였다. 복음을 위해 수많은 선교사가 세계로 퍼졌다. 한반도는 세계 복음의 중심에 섰다.


대한민국 경제의 폭발이 대한민국 복음의 폭발로 이어진 것인지, 복음의 폭발이 경제의 폭발로 이어진 것인지는 섭리의 주관자 그분만 알 수 있을 것이다.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복음이 들어간 곳,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국가가 통치 되는 곳은 여지 없이 폭발적 경제성장이 일어났고 사회는 건강해졌다. 공산주의가 전파 된 곳은 모두 지옥이 되었다. 대한민국 민주화 원년이라는 1987년부터 시작 된 대한민국의 좌경화는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복음은 멈추고 경제는 저성장의 그늘에서 신음하고 있다. 희망을 잃어버린 시대가 되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같이 날개치며 달릴 것이요 달음질하며 피곤치 아니하며 걸을 것이요 힘들어하지 아니하리로다(이사야 4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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