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슨과 치열한 논쟁과 회담을 이어 가는 어느날 이승만은 경회루 연못에 낚시바늘을 던져 놓고 있었다. 비서가 가져다 주는 회담 관련 문서를 무심하게 훑어 본 후 낙시대만 응시했다. 경무대 밖에는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휴전을 반대하는 국민들은 시위가 시끄러웠다. 그 카오스의 혼돈 속에 이승만은 무심하게 경회루에 던져 놓은 낚시대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전쟁을 잊으려는, 전쟁터에서 도망가려는 미국, 유엔참전국들, 중공, 북한 등 20여개 국가들은 휴전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전세계가 이승만을 포위하고 “그만 휴전하라” 윽박 지르고 있었다.
경무대로 향하는 로버트슨의 발길 옆에는 수천명의 군중이 같이 했고 “통일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한미방위조약 빨리 체결하라” “단독북진 남북통일” 등의 사나운 구호가 로버트슨의 귀에 파고 들고 있었다.
세계의 모든 언론의 기자들은 경회루에 흐르는 숨막히는 정적을 타전하고 있었다. 로버트슨은 한가롭게 낚시를 하고 있는 이승만을 생각하며 본국에 보고할 말귀를 떠올리며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대통령 특사로 방한한 로버트슨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어 보였다.
“그는 우리를 궁지로 몰아 넣었고 그리고 그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본국에서 로버트슨에게 보낸 훈령도 떠올랐다. 그렇다고 떠날 수도 없는 처지였다.
“다 포기하고 한국을 떠나도 좋다.”
본국의 사정이 좋지 않았다. 아이젠 하워를 공격하는 여론은 날이 갈수록 공격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었다. 정치권도 요동을 쳤다. 결사항전을 외치는 이승만의 용기에 감명 받은 주의회는 “한미동맹의 결성을 지지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하여 승인한 몇몇 주가 생겨나고 있었다. 당초 3~4일이면 이승만과 회담을 결판 지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로버트슨은 자신의 상대가 그저 약소국의 지도자로 생각했던 교만과 무지에 고개를 떨구었다.
로버트슨은 많은 생각을 했다. 이승만의 카리스마에 압도 된 한국의 정가였다. 이승만과 대적시킬 정적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의회까지 만장일치로 북진통일결의안을 채택하여 이승만을 돕고 있었다. 이승만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 절대적이었다. 미국의 힘으로 이승만을 제거한다는 것은 불가능 함을 깨달았다. 이러한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 한가롭게 낚시를 하는 이승만에게 분노가 끓어 올랐다. 시시각각 연전연패하고 있는 로버트슨의 보고를 받고 있는 아이젠 하워의 속도 검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이승만은 전쟁 중에 낚시를 한다며 자리를 비우곤 했다. 부산에서의 임시정부시절도 낚시를 가곤했다. 이승만은 배를 띄우고 몇시간씩 기도를 했다. 평생 단 하루도 기도가 끊어지지 않는 이승만이었다. 국모 프란체스가 여사는 이승만의 얼굴 보다는 돌아서 기도하는 뒷모습을 더 많이 보고 살았다고 회고록에 남길 정도로 이승만은 많은 기도의 삶을 살았다.
경회루 연못에서 몇시간을 보낸 이승만은 경무대로 돌아와 밤늦도록 손수 타이프라이터를 치며 무엇인가를 작성하고 있었다. 다음날 이승만은 경무대를 찾은 로버트슨에게 밤새도록 타이핑한 비망록을 전해 주었다.
비망록을 읽는 중 로버트슨은 떨리는 목소리로 “큰 장애물 하나가 사라졌습니다.”라며 감사 인사를 연발했다.
이승만은 회담의 가장 큰 걸림돌인 “휴전조인 전에 중공군이 꼭 철수해야한다”는 조건을 철회한 것이다. 결단코 양보하지 않았던 중공군 문제를 양보하여 준 것이다.
이승만은 로버트슨에게 미국 상원의 비준에 대한 요구를 했다. 아이젠 하워는 상원 회기가 끝나는 7월 말까지 비준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었다. 이승만은 아이젠 하워의 주장에 동의한다며 다음 회기 안에 조약을 비준 한다는 아이젠 하워의 각서를 요구했다.
“그렇다면 다음 회기 안엔 조약을 반드시 비준하겠다는 아이젠하워 방침도 문서가 필요하오. 정치회담 기간 90일도 매우 짧은 시간이요. 우리의 통일노력에 유엔군이나 미군의 참여가 어렵다고 한다면 우리 국군 증강에 정신적, 물리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이 문서 약속을 그 기간에 지킬 수 있겠소? 분명한 보장을 대통령의 결재로 갖다 주기 바라오.“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강경한 이승만을 넘을 것 같지 않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귀국해도 좋다는 미국무성의 명령까지 받고 있었던 로버트슨 이었다. 로버트슨은 비망록을 받고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며 귀국길을 재촉했다.
다음날 국부 이승만은 무거운 침묵을 지키며 앉아 있었고, 나란히 앉은 로버트슨은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기자를 향해 발표 했다.
“우리는 금명간 공동성명을 발표할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
마침내 기다리던 공동성명이 12일 아침10시 발표 되었다.
“지난 2주일간 우리는 여러번 만나서 솔직하고도 간곡한 의견교환을 하여 나아가는 사이에 현재 한미 양국간에 존재하고 있는 깊은 우의를 특히 강조하였으며 정전절차, 포로교환 및 장차개회될 정치회담 등에 관하여 일어난 여러 가지 곤란한 문제에 대하여 상호이해에 도달하는데 상당한 진전을 보았다”
이승만은 90일간 휴전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받아 들였고 로버트슨은 이승만이 요구하고 있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한반도내 미군주둔, 군사원조. 경제원조, 한국군 육성 등 대부분을 미국이 수용하기로 합의 했다.
국부 이승만은 중공이 한반도에 영향력을 가지는 것을 극단적으로 싫어했다. 그것은 분단 된 한반도에서 통일을 방해하는 가장 큰 세력이 될 것을 내다 보고 있었다. 아울러 냄새나는 중화문명 흔적을 한반도에서 지우고 싶었다.
이러한 이승만의 생각은 적중했다. 지금 한반도 통일의 가장 큰 방해세력은 중국이다. 지금도 남한에 중공이라는 이름만 다른 봉건시대 중화질서에 대한 향수를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세력이 있고, 북한은 국명만 바뀐 중화질서 속 봉건 조선일뿐이다. 일세기 앞을 내다 본 이승만의 선경지명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승만은 로버트슨과 공동성명 발표 후 다음날 미국을 향해 분명하게 경고하고 나섰다.
"다수의 신문기자들과 해외 친구들이 우리회담에서 나온 결론의 성질에 관한 각종질문을 나에게 보내고 있다. 모든 우리의 친구들이 한국국민과 한국정부의 입장을 이해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므로 나는 이러한 관심을 대단히 고맙게 생각한다. 우리는 현시점에서 발표할 수 있는 것들만 명백히 한 것이다. 앞으로 연구를 요하는 문제가 약간 있다. 이것이 최후적으로 결정될 때까지 우리는 공동성명에 만족해야 된다. 친구들은 내가 지금까지 전한국의 재통일과 독립을 위하여 또 공산침략을 좌절시키기 위하여 지켜온 입장을 오늘날에도 견지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함에 틀림없을 것이다. 방법의 변경은 있을지 모르나 목적의 변경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뒤이어 미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90일간의 휴전의 묵인이지 동의 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밝히며 아이젠 하워에게 경고 했다.
“우리는 휴전을 수락하지는 않으나 적어도 3개월간은 휴전에 방해를 하지 않기로 동의하였다. 미국은 3개월내로 한국을 통일하고 중공군을 철퇴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반공포로 석방으로 세계에 휘몰아친 비난은 이승만을 지지하는 여론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아이젠 하워의 육사 동기이며. 미8군 사령관을 역임하며 국군의 아버지로 불리는 전쟁 국군을 육성한 밴 플리트 장군은 훗날 인터뷰에서 ”반공포로 석방은 이승만 대통령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며 찬사를 보냈다. 맥아더를 위시 한 퇴역 장성들 또한 반공포로 석방을 찬성하며 이승만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강력한 반공주의자였던 빌리 그레이엄 목사를 비롯한 기독교 지도자들은 공산주의를 규탄하고 반공여론을 주도하며 이승만에게 힘이 되고 있었다.
6.25 사변을 통하여 미국사회에 본격적으로 공산주의 위험성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정가에서도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은 점차 확대 되면서 반공 기류가 강력하게 형성된다. 반공주의 선봉에 선 매카시 상원의원은 이승만을 극찬하며 옹호에 나섰다.
”왜 반공포로가 미국에 의하여 감금 되어야 하는가? 전세계 자유애호 인민들이 이 대통령의 행동을 찬양할 것이다“
대통령 공약으로 내세웠던 휴전은 하루 아침에 좌초 될 위기를 겪게 되면서 아이젠 하워의 무능을 성토하기 시작하였다. 한편에서는 공산주의와의 대결에서 대책도 없이 물러나려 한 겁쟁이 아이젠 하워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아지고 있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이승만의 계산 속에 있을을지 모를 일이다.
결국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한국측 대표는 불참한 가운데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이 조인되었다. 휴전협정이 조인 된 날 국부 이승만은 북한동포를 향해 참담한 심경을 발표한다.
“공산 압제하에서 계속 고생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 우리 북한 동포여, 희망을 버리지 마십시오. 우리는 여러분을 잊지 않을 것이며 모른 체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한국 민족의 기본 목표 즉 북쪽 우리의 강토와 동포를 다시 찾고 구해내자는 목표는 계속 남아 있으며 결국 성취되고야 말 것입니다. 유엔은 이 목표를 위하여 협조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휴전협정이 조인 된 후 8월 4일 미 국무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기 위하여 내한한다. 덜레스 국무장관은 장로교 목사였던 아버지로부터 신앙심을 물려 받은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1920년대와 1930년대 다수의 국제 신자 회의들에 참석할 정도로 신앙심이 깊었다. 존 포스터 덜레스의 이름을 딴 공항이 지어질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갖춰 미국의 역대 국무장관 중 가장 존경을 받는 인물 중 한명으로 손꼽히며, 그의 집안은 할아버지와 삼촌이 모두 국무장관을 지낸 명문가이기도 했다.
누구 보다도 덜레스를 잘 알고 있었던 이승만은 그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비서관을 시켜 애완용 참새 몇 마리를 사다 새장에 가둬 관저 정원 나뭇가지에 걸어 놓게 했다. 프린스턴 대학교 동문인 두사람은 회포를 풀며 정원을 거닐다 이승만은 새장을 가르치며 참새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은 새장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자 덜레스가 답했다.
“새장안의 길들여진 새는 새장을 떠나지 않는 것이 아니냐”
그러자 이승만은 어디 그런지 보자며 새장의 문을 열어 주었고 참새들이 새장을 빠져 나와 모두 날아가 버리자 이승만은 덜레스에게 한마디 했다.
“보라 길들여진 참새도 저처럼 자유를 갈구하는 것이 아니냐”
새장 속 참새를 두고 기세 싸움으로 전쟁을 준비 한 두 사람은 자기 나라를 대변하는 대표로서 전사보다 냉혹한 승부사가 되어 싸운다.
덜레스가 가져온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초안을 이승만에게 건네자 이를 보고 대노한다.
한반도에 미군을 주둔하기로 했던 당초 약속이 빠져 있었던 것이다. 대한민국이 다시 북한군의 공격을 당할 경우 미국은 군사 원조의 의무만을 가지는 것으로 당초의 약속은 변질 되어 있었다.
치열한 공방 속에 2번의 회담이 열렸지만 서로의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세 번째 회담이 시작 되자 덜레스는 UN 핑계를 앞세운다.
“이미 UN 참전국들이 입장을 결정해 놓았으므로 그것을 변경시킬 수는 없다”
화가 치민 이승만은 자리에서 일어난 덜레스를 몰아부쳤다.
“그렇다면 당신은 무엇 하러 여기 왔는가? 나와 함께 조건을 의논할 의사가 없다면 이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다. 그 조건을 내게 電文으로 통보만 하면 되었을 것이다,”
덜레스도 물러서지 않았다.
“우리들의 목표는 당신의 목표와 똑같다. 차이점이 있다면, 당신은 전쟁으로 목표를 달성하기를 바라고 있고, 우리는 평화적 방법으로 달성하려는 것뿐이다. 왜 당신은 우리가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고 고집하는가?”
이승만은 공격을 이어갔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은 단 한 가지이다. 당신들이 평화적 교섭으로 우리들의 공통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때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이다. 공산당이 전쟁터에서 쟁취하지 못한 것을 회담 테이블에서 양보해 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가?”
이승만의 공격에 할 말을 잃은 덜레스는 침묵했다. 이승만의 공격은 계속 되었다.
“정치회담에서 90일 이내에 한반도 통일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미국이 전투를 재개하겠는가? ”
전투를 재개하지 않겠다고 대답한다면 당장 이승만은 전투를 재개하고 “남한만의 단독북진”을 발령 할 것 같고, 전투를 재개 할 것이라고 약속하는 것은 미국의 뜻이 아니었다.
이승만의 공격은 계속 되었다. 이승만은 책상을 치며 미국이 펼치는 정책이 틀려먹었다고 언성을 높였다. 미국이 한국을 극동 방위권에서 제외해 놓고 군사원조 조차 제대로 안 해 주고 있으며 미국이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앞으로 크게 후회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진퇴양난에 빠진 덜레스는 당초 이승만과 약속한 한반도의 2개사단 미국 주둔(in and around Korea)을 받아 들일 수 밖에 없었다. 이승만은 또 하나를 요구했다.
“인계철선(引繼鐵線, tripwire)에 미군이 들어 가야 한다”
패권국 미국 외교의 수장 존 포스터 덜레스는 반공 지도자로서 이승만의 카리스마와 치밀함에 패배를 인정해야 했다. 크레모어, 부비트랩 같은 폭탄 뇌관과 연결 된 선, 즉 뇌관을 뽑는 선을 인계철선 이라고 부른다. 군사분계선의 북한군이 침투할 수 있는 모든 길목을 미군이 지키게 된 것이다.
당초 이승만은 미국에 북한으로부터 대한민국이 공격을 받을 경우 미의회 승인을 거치지 않고 즉각적인 자동참천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자동참전”을 “의무를 가진다”로 애매하게 빠져 나가려 했다. 전쟁이 터졌을 경우 미의회의 승인을 받고 참전을 결정하면 몇 개월의 시간이 흘러갈 수 밖에 없고 어쩌면 미의회의 승인을 받지 못할 수도 있었다.
이러한 위험성을 갈파한 이승만은 인계철선에 미군이 들어 갈 것을 요구하여 관철 시킨 것이다. 미군이 공격을 받을 경우는 미의회의 승인 없이 대통령의 결정으로 참전을 할 수 있는 미국의 국내법을 이용하여 인계철선을 미군이 지킴으로서 미군의 자동참전 효과를 얻은 것이다. 이러한 치밀한 계산은 감히 이승만 아니면 어느 누구도 계산할 수도 요구할 수도 없는 문제였던 것이다.
한미상호방위 조약 체결 소식을 들은 트루먼은 라며 화를 냈다.
“이승만 그 날강도에 또 당했어! 도대체 한국이 무슨 힘이 있다고 미국에 전쟁 나면 한국이 도와줄 테니 한반도에 전쟁 나면 한국 병력의 9배 이상을 의무적으로 보내야 하는 거야? 또 인계철선(tripwire)은 뭐야. 우리 젊은이들을 북한이 내려오는 길목에 박아 놓고 공격받으면 미국이 자동 참전 해야 된다니 그리고 한국이 제자리 잡을 때까지 한국 국방비를 미국이 전액 대라는데 아무리 스탈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무슨 이런 조약에 사인을 하고 온 거야?”
한반도에 대한 모든 이해와 탐욕이 집결 된 가장 약한 나라의 휴전선을 가장 강한 미군이 지키게 됨은 어느 나라도 한반도에 군대를 보낼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이승만 혼자서 도망가려는 미국을 붙잡아 한반도에 가두었다. 그러나 그러한 이승만의 의로운 선택의 은혜는 한민족에게만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한반도는 세계 공산화와 맞서 싸우는 전선이 되었고 인계철선을 미군이 지킴으로서 더 이상 공산세력이 태평양으로 뻗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세계 공산화를 막아내는 방파재가 되었다.
대한민국은 선사 이래 가장 폭발적으로 발전하며 번영을 이루었고 휴전선 이북은 인류가 만들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지옥이 되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체제전쟁 승리의 상징이 되었다. 한반도는 많은 것을 증거했다. 유신론과 무신론, 기독교 문명과 반기독교문명, 민주와 독재와의 전쟁에서 승리의 전장이 되었다.
가장 강력한 반공 지도자 이승만의 또 다른 세계적 업적은 공산주의와 싸우는 전략을 남겨 주었다.
아이젠 하워는 이승만과의 싸움에서 처절하게 패배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 하였음에도 불안했다. 그는 런닝메이트였던 부통령 리처드 닉슨은 이승만에게 보냈다. 1953년 11월 이승만의 “남한만의 단독 북진”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재차 확인하기 위하여 방한한다.
“남한만의 단독 북진”을 포기하겠다는 약속을 요구하는 닉슨에게 이승만은 다음과 같이 약속했다.
“만일 모든 일이 한국민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전개 돨 경우에는 일방적인 행동을 취할 수 밖에 없겠지만, 그럴 경우 미국에 사전 통보를 하여 주겠다.”
이승만은 “남한만의 단독 북진”이 협상을 위한 레토릭이 아닌 실천적 행동임을 재차 확인하여 주었다. 다만 “사전통보”라는 양보를 하면서 닉슨의 체면을 살려 주었다.
그리고 평생을 봉건독재와 공산주의와 싸운 혁명가 이승만은 막대아들뻘인 리처드 닉슨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미국에 대한 애정을 밝혔고, 공산주의와 싸우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한국의 단독 행동에 관한 나의 모든 말들은 미국을 도와주기 위함이었다. 미국이 나를 마음대로 조종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순간에 당신은 당신이 가진 가장 효과적인 협상수단을 잃게 될 것이며, 나아가 우리 모두의 희망을 잃게 될 것이다.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에 대해 모른다는 두려움이 공산주의자들에게는 항구적인 견제가 된다“
공산주의를 관통하고 있는 이승만의 통찰력은 공산주의와 싸움에서 ”예측할 수 없게 하는 두려움“이 공산주의와 싸우는 최선의 방법 임을 리처드 닉슨에게 가르쳐 주었다.
리처드 닉슨은 이승만으로부터 배운 ”공산주의자가 예측할 수 없는 두려움“을 회고록에 남기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음모자인 동시에 미국의 지원 없이는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아는 현실주의자의 모습을 지닌 복잡한 인물이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이 이대통령의 일방적인 행동을 두려워 한 그들은 제네바 회의 협상테이블에서 그것에 따라 행동할 수 밖에 없었다“
미국과 약속한 정치회담을 통한 남북통일을 위해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 된 이후 UN참전국가와 공산진영이 제네바에 모여 회담을 한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조인하기 위하여 방한한 덜레스 국무장관이 이승만에게 제안한 평화적인 방법이 제네바 회담이었다. 처음부터 불가능한 정치회담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국부 이승만은 회담 직전 서구언론을 통해 미국을 경고하고 나선다.
”한국을 팔아넘기는 행위는 곧 미국을 팔아넘기는 것과 같다“
한국대표로 참석한 변영태 외무장관은 서두발언을 통해 ”중공군의 한반도 철수“, “UN 감시하 북한만의 총선거”의 실현불가능한 조건을 제시한다. 공산 측은 남북한의 국회대표들이 전한혼성위원회(全韓混成委員會)를 구성하고, 이 위원회가 국제감시 또는 중립국 감시 하에 남북한에서 동시 선거를 하자고 나섰다. 미국은 완강한 한국측의 주장과 공산 측 의견을 들어 이승만을 설득했지만 거절했고 결국 제네바 회담은 무산 된다. 리처드 닉슨은 이승만의 거절을 “제네바 회의 협상테이블에서 그것에 따라 행동할 수 밖에 없었다”라고 술회하고 있는 것이다.
리처드 닉슨은 강력한 반공 지도자였다. 이승만의 가르침을 받은 리처드 닉슨은 베를린 장벽을 무너트린 3대 영웅으로 반공 대통령으로 미국인 가슴에 남는다. 닉슨은 모스크바의 박람회장에서 흐루쇼프 서기장과 마주친다. 흐르시초프는 전시 된 가전제품을 닉슨에게 보여주며 미국을 조롱하려고 했다.
"미국 노동자들이 모두 이런 사치품을 살 수는 없겠죠?“
닉슨은 맞받아쳤다.
"우리 철강 노동자들이 현재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서, 파업 중인 걸 아시겠지요? 그런 노동자들도 누구나 이 정도는 살 수 있습니다“
이승만에게 공산주의와의 싸움을 배운 리처드 닉슨은 자신의 회고록에 이승만을 존경함을 고백하고 있다.
”나는 이승만의 용기와 뛰어난 지성에 감명을 받고 한국을 떠났다. 나도 역시 공산주의자들을 상대할 때 예측할 수 없게 하는 것( breing unpredicable)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승만의 통찰력에 많은 생각을 했다. 그 후에도 내가 여행을 하면 할수록 그 노인의 현명함을 더욱더 높게 평가하게 되었다.“
6.25 사변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 제네바 회담에 이르기까지 이승만은 전세계의 공산주의자와 싸웠다. 패권국 미국과 많은 강대국 지도자들은 공산주의와 타협을 시도하였으나 오로지 이승만은 고독한 싸움을 벌렸고 승리했다.
“우리의 후손들이 앞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이 조약으로 인해 많은 혜택을 받게 될 것이며, 이 조약은 앞으로 우리를 번영케 할 것이다 - 이승만 -”
이승만 개인 혼자서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미국과 싸웠고 나아가 세계와 싸웠다. 그러나 그 역시 연약한 한명의 인간에 불과했다. 반공포로석 석방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조인 될 때까지 표현할 수 없는 극단적 긴장과 압박감을 80먹은 노구를 이끌고 이겨내야만 했다.
이승만은 그 긴장감과 두려움을 장택상에게 남기고 있다.
'내가 오늘은 솔직한 고백을 할테야. 일생을 통해 감옥을 드나들고 사형 선고를 받아도 눈 하나 깜짝 안한 나야. 그런데 이번 반공포로 석방 후엔 사흘 밤을 꼬박 새웠어. 들어봐, 내 개인으로서야 설혹 불행해진다 하더라도 관심 밖의 일이야. 무엇보다 국운이 풍전등화인데 나라가 망하지나 않나 해서 실은 무척 초조했어⋯'
또한 피말리는 로버트슨과 회담 중에 견뎌야 하는 긴장감을 기도로서 극북하고 있음을 고백했다.
”사람들은 지난 몇주간의 이 끔찍한 시기(로버트슨과 회담기간)에 내 자신이 바친 기도의 시간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승만의 기도는 기적을 만들었다. 가나안 공격을 받는 기브온을 구하기 위하여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달려온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한복음 15장 7절)“
이승만은 한민족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지도자이다. 미국을 손안에 쥐고 흔들었던 용기와 지략, 국민에 대한 한 없는 사랑은 어느 누구도 범접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지도자를 매도하고 손가락질하는 패배의 역사는 반드시 다시 쓰여져야 할 것이다.
“이승만은 위대한 한국의 애국자, 강력한 지도자, 강철 같은 사나이, 카리스마적인 성력의 소유자로 자기 체중만큼 다이아몬드에 해당하는 가치를 지닌 인물이다. 군생활 마지막 9년 동안 세계 각국의 쟁쟁한 정치가를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그 중에 이승만 박사가 가장 뛰어나다 -한국군의 아버지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
“이승만은 미국인보다 미국 정치, 역사를 더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미국 역사를 이야기 하면 넋을 잃어 가면서 들었다. 그는 아주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고, 45년간 한국의 독립이란 하나의 목표를 위해 달려운 의지의 인간이었다. 그는 아주 고차원적 시각에서 복잡한 세계 정세를 정확하게 이해했다. 그의 영어는 글과 말 무엇이든지 유창했고, 그의 레토릭은 미국인들을 사로 잡았다. - 첫주미대사 존 무초- ”
“이승만은 위기와 가난의 심연에서 한국민을 끌어 올린 위대한 지도자였다 그런데도 한국인들은 이박사에 대한 긍지를 느끼기 보다는 악의적인 비난에 오히려 솔깃해 하고 있다. 왜 한국인은 한국이 키워낸 위대한 지도자를 모르는 것일까. 우리시대이 가장 걸출하였던 위대한 인물 중에서 그는 아마도 가장 덜 알려진 인물일 것이다. 이승만은 참으로 위대한 인물이다. 그는 조직력과 지도력, 그리고 예언자의 비전을 두루 갖춘 인물이었다.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 언론한 교수 로버트 올리버-”
“이승만은 강대국 소련에 대한 미국의 편법적인 방법을 버리게 했다. 동시에 약소국 한국에 정당하고 의로운 태도를 취하게 했다. 이승만은 미국을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이는 위대한 십자군 운동이었다. - 미국무부 차관보 존 힐드링-”
“한국의 이승만 같은 지도자가 베트남에 있었다면, 베트남은 공산군에게 패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8군 사령관 맥스웰 테일러-”
“이승만 박사가 없었더라면, 한국민중은 쉽게 우리(미국)의 의지대로 움직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박사의 명령에 따라 그들은 우리의 의견을 따르지 않았다. -종군기자 플리쳐상 수사장 짐 루카스-”
“이승만은 결단성 있고 타협할 줄 모르는 당대의 영웅적인 항일투사 이다. 그는 대한민국 보다 크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이승만이야 말로 과거에도 위대했고 지금도 위대한 인물이다. 그는 한국이 배출한 세계적인 위인 중의 하나이다. -이승만의 상투를 잘라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장 올리버 에비슨-”
“그는 우수한 능력과 고결한 성품을 지녔고 조선의 현상황과 동양의 정세에 놀랄만큼 정통하며 이를 청중들에게 성공적으로 개진한다. 그는 애국심이 열렬한 일꾼으로서 장차 미래 조선의 구원자가 될 것이다. - 28대 미대통령 우드로 윌슨-”
“이승만 대통령은 강인한 반공 투쟁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미국에 대해서도 서슴없이 주장을 내세우는데 결코 비굴하지 않았다. 그는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처럼 허수아비 지도자가 결코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강력한 지도자였으며 그에게는 빛이 있었다. 요컨대 그는 ”아시아의 별“이었던 것이다 – 마크 클라크 UN군 총사령관-”
“이승만은 공산주의에 대한 증오에서는 타협을 몰랐고 자기 국민에 대한 편애가 심했고 불가능한 일을 끈질기제 요구했으나 마음속에는 깊은 애국심으로 가득했고 애국심에 의지해 오랜 망명생활을 보내고 귀국한 이후 눈뜬 시간이 거의 전부를 나라를 위해 바쳤다. - 미8군 사령관 매튜 리지웨이-”
“그는 여전히 자기 나라의 국부 이시다. -34대 미대통령 아이젠 하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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