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1871년 요코하마항에서 증기선 아메리카호는 부총리 이와쿠라 도모미를 비록하여 일본의 정관계의 실력자, 지식인 100여명을 태우고 미국을 향해 출항했다. 그들의 평균나이는 32세에 불과한 젊은피였다. 국가예산의 2%를 투입하여 꾸려진 이화쿠라 사절단은 미국을 비롯한 영국, 프랑스, 벨기에, 독일 등 유럽의 발전된 대부분의 나라를 방문했다.
사절단은 3년여간에 걸쳐 샅샅이 선진국의 문명을 시찰해 100여권의 보고서 “특명전권대사 구미회람실기”를 발간했다. 그리고 일본의 근대화 모델로 유럽제국 중 독일을 선택했다. 독일의 국가시스템과 헌법, 제도를 도입했다. 유럽에서 산업화에 뒤쳐진 독일이 압축성장을 통해 유럽의 패자가 된 경험을 벤치마킹하여 공업화의 모델로 삼았다.
독일은 루터의 종교개혁의 본고장이었다. 일본은 그렇게 기독교 문명의 일원이 되었다. 일본의 상징인 사무라이의 상투는 잘렸고, 사무라이의 정체성, 몸에 찬 두자루의 칼은 천황의 패도령으로 무장해제 되었다. 서구세계를 동경하며 쓴 후쿠자와 유키치의 “서양사정”은 100만부가 팔렸다.
일본은 14세기부터 세계의 뱃길을 지배하고 있는 포루투갈과 교류했다. 그러나 포루투갈을 통해 일본에 천주교가 전래 되어 봉건 질서에 도전이 된다. 도쿠가와 막부는 혹독하게 천주교를 탄압했다, 교역을 위해 일본을 찾은 네덜란드에게 개신교를 일본에 전파하지 않고 교역만 한다는 조건으로 특별 무역지대 인공섬 데지마를 만들어 서양과 교류를 이어갔다.
데지마 섬을 통해 네덜란드의 학문과 기술이 일본에 들어왔고, 그것은 난학(蘭學)으로 발전했다.
난학의 꽃은 의학에서 시작 되었다. 네덜란드 상인으로부터 들어온 서양의 해부학서를 번역하고 연구하여 일본 최초의 해부학서 해체신서가 발간 된다. 한의사였던 스키다 겐파쿠는 중국의 오장육부설에 의문을 품었고 해체신서를 번역 발간하면서 서양의 앞선 의술에 경탄을 마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지금 쓰는 대부분의 의학용어가 해체신서에서 비롯된다.
난학자이며 의사였던 하나오카 세이슈는 통선산이라는 마취제를 이용해 세계 최초의 전신마취 수술(유방암 수술)을 성공시켰다. 그 때 조선의 영조는 중국에서 들여온 망원경을 요망하다며 부숴 버렸다.
에도시대 난학이 만개하며 급격한 과학기술의 진보를 이룩한다. 출판 번역이 홍수를 이루고 학문은 꽃을 피웠으며, 일반 백성까지 교육이 확대되어 절반 이상의 백성이 글을 쓰고 읽을 수 있었다. 현미경과 시계가 만들어지고 국가 생산성은 비약적 발전을 거듭한다. 17세기 겐로쿠 시대가 열리며 단위 면적 당 농작물의 생산은 조선을 2배나 능가했고, 여행 열풍이 일본열도에 일면서 에도는 매년 수백만의 여행객이 북적거렸다,
에도는 당시 세계 최대의 도시가 되어 번성했고, 바쁜 도시인을 위하여 세계 최초 인스탄트 식품인 초밥(스시)가 개발되어 지금도 일본을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으며, 도시민은 도시락(벤또)을 싸서 나들이 다닌 것을 즐겼다. 미쓰이 가문은 포목점을 열어 정찰제를 도입하여 상거래 질서가 잡혔고, 지금 굴지의 재벌이 된 미쓰이 그룹이 그 시대 생겨난 포목점이었다.
고래잡이 어장 확보를 위해 일본을 강제적으로 개방시킨 미국의 페리제독이 전해 준 증기기관차에 충격 받고 1870년대 일본열도는 증기기관차가 달렸다.
일본의 진보는 눈부셨다. 봉건질서는 혁파 되었고, 경제는 발전했고, 군대는 강해졌다. 사무라이 중심의 군대는 국민병제로 바뀌며 사무라이는 사라졌고, 국민의 인권은 향상 되었으며 민주적인 정치시스템도 발전했다,
청일전쟁은 우리의 문명사에서도 엄청난 큰 의미가 있는 전쟁이다.
청일전쟁에서 가장 큰 전투로 기록 된 평양전투 결과는 중국에게 너무나 참혹했다. 2,000명이 전사하고 4,000명이 부상 당한 중국에 비해 일본은 102명의 전사자와 433명의 부상자가 전부였다. 한반도에서 완전하게 중국 세력을 몰아낸 압록강 전투에서 중국은 2,000명이 전사했으나 일본은 고작 4명만 전사했다.
청일전쟁에 사용 된 일본군의 무기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무라타 소총이었다. 무라타 쓰네요시는 프랑스의 샤스포 소총을 본따 독창적인 볼트액션식 소총을 개발한다. 유럽에서 조차 그 시대 가장 성능이 뛰어난 소총으로 인정 받았다.
청일전쟁의 지휘관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평양전투에 나풀레옹 전법으로 승리했다. 소부대의 신속한 기동을 통해 적 본진을 흔들고, 본대는 측면과 배후를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는 전술의 핵심은 속도였다. 속도의 위력을 갈파한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속도를 군대와 무기를 무장시켰다.
일방적으로 일방적 패배를 당한 중국의 섭지초는 중국이 일본에 일방적으로 승리하고 있다고 거짓보고를 했다. 청의 군기대신 옹동화는 일기를 남겼다.
“25일과 26일 아군이 승리를 거둬서 적군 2천명을 죽이고 한성 80리 지점까지 진격해서 주둔한다고 하니 매우 기쁜 일이다.”
유학이 근본이 된 사회는 거짓이 판을 친다. 조선시대 그 지독한 거짓말 잔치가 중국에도 다름이 없었다. 유교 공산주의 북괴의 가공할 거짓말은 당연한 것이다. 타락하고 부패하여 끊임없이 썩은내를 풍기는 중화질서는 그렇게 한반도에서 사라졌다.
한반도의 중화질서의 패퇴는 새로운 문명의 씨앗이 뿌려 졌음을 암시했다. 조선을 사랑한 선교사들은 아낌없이 기독교 문명의 씨앗을 한반도에 뿌렸다. 그 축복된 씨뿌림 그렇게 하나님은 이 땅을 역사했다. 중화질서의 패퇴함은 하나님께서 중국식 공산세력이 한반도에 들어 올수 없음 언약한 것이다.
일본은 국가와 사회, 학문과 기술, 군대와 무기 등 모든 것을 기독교 문명으로 혁신했다. 그 혁신을 일본을 불과 몇십년만에 기독교 문명의 일원이 되는 축복을 주었고, 세계의 열강의 한자리를 차지하게 했다.
그러나 일본은 정신은 기독교 문명을 거부했다. 화혼양재(일본어: 和魂洋才)를 부르짖은 일본은 자신의 것은 혼(魂)이고 서양의 것은 재(才)로 삼았다. 즉 머리는 일본, 몸은 기독교 문명을 선택했다. 서양의 하드웨어에 일본의 소프트웨어가 장착 된 기형국가를 선택한다.
주자성리학은 일본의 국학(国学) 발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국학에서 미토학(水戸学 미토가쿠)이 파생된다. 새로운 학문적 사조가 생겨난 것이 아닌 천황을 위한 시녀로 변질 된 것이다. 미국 페리제독의 강제개항으로 일본은 두려움이 덮졌고 한편, 새로운 문명에 대한 기대에 술렁였다.
이토 히로부미의 스승 요시다 쇼인은 문명개화의 길을 찾고자 했고. 국학자들은 외세에 대한 반발로 맞섰다. 미토학은 천황을 받들어 외세를 배격하자며 존왕양이(尊王攘夷)의 길을 제시한다.
미토학의 존왕양이는 200여개로 분열한 번을 통합하고, 천황으로부터 권력을 위탁 받았다는 막부시대를 끝내고, 권력을 찾은 천황의 통치, 폐번치현(廃藩置県)과 대정봉환(大政奉還)을 통해 하나 된 일본을 건설하는 사상적 토대를 만들어 주었다. 미토학은 “대일본사” 402권을 만들어 메이지 천황에 바치며 절대권력을 확인하여 주었다.
절대권력을 쥔 천황은 인간을 넘어 신이 되고 싶었다. 군국주의자들까지 천황을 신으로 만들고 싶었다. 무당을 모시는 일월성신교에 불과한 일본 전통종교에서 최고의 신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는 천황의 조상이 되었다. 마침내 천황은 만세일계의 권위 즉, 온 세상은 천황의 한 핏줄이라며 교만의 바벨탑을 쌓았다.
천황이 문명시대에 신으로 모셔지는 어리석음을 택한 일본은 활짝 피어 오른 문명개화의 꽃을 꺽어 버렸다. 국부 이승만이 예언한 태평양전쟁의 원인 미카도이즘(Mikadoism, 침략적 천황주의)은 그렇게 완성 되었고 광기의 우상숭배는 그렇게 시작 되었다.
청일전쟁의 영웅 노기 마레스케 일본 육군대장은 뤼순공방전에서 두 아들을 잃고, 많은 병력을 사지로 몰아 넣은 죄책감에 할복하려는 자신을 말린 메이지 천황을 위해 순장을 선택한다. 사망한 메이지 천황 영정에 큰절을 올리고 천황의 장례식 종소리에 맞추어 동행하려는 부인의 목을 단도를 찌르고, 자신은 할복했다. 그는 자살 직전 황태자 히로히토(裕仁)에게 충성을 위한 미토학 관련 서적을 바쳤다.
1945년 2월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 패전의 검은 그림자가 일본 열도를 덮고 있었다. 미 해병대는 일본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태평양의 이오지마섬에 상륙한다.
그 때 일본열도는 미군이 본토를 진공할 때 일본국민은 신이 된 천황을 위해 결사옹위하며 옥처럼 아름답게 부서지자며 1억옥쇄(一億玉砕)의 묻지마 죽음잔치를 준비하고 있었다.
연전연패의 수렁에 빠진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은 반자이 돌격으로 맞섰다. 모든 전투에서 전략과 전술은 실종 되었고 천황의 군대는 시체가 산을 이루어도 천황폐하 만세만 외치면 되었다,
이오지마섬에 상륙한 미해병대는 경계의 눈을 놓치지 않으며 긴장했다. 상륙군이 상륙 때가 방어에 가장 취약한 때이며 가장 많은 공격을 받는 순간이다. 어디서 출몰할지 모르는 일본군의 반자이 돌격에 대비했다. 상륙이 끝났음에도 일본군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오지마 주둔군 구리바야시 다다미치 부대장은 승전 가능성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한명의 미군이라도 더 죽이겠다는 광기를 품었다. 일본군은 이오지마 섬 중앙부에 요새를 구축하고 깊숙이 땅굴을 파고 들어가 결사항전을 준비했다. 죽음의 광기가 토굴 속을 지배했다.
토굴 속에서 미해병대에 집중 된 화력은 일제히 불을 뿜었고 예상하지 못한 공격에 미해병대 2,500명에 달하는 전사자가 발생했다. 소식을 들은 루스벨트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렸다.
성난 11만명의 미해병대는 막강한 화력으로 반격했고, 화염방사기를 동원하여 땅굴을 남김 없이 태웠다. 22,000명의 일본군은 전멸했고 마지막 전투에서 부대장 쿠리바야시도 돌격하다 죽었다.
태평양전쟁 마지막 전투로 기록 된 오키나와 전투는 이오지마 전투에서 얻은 교훈으로 54만명의 병력과 2000여척의 군함이 오키나와 바다를 덮었다.
태양신 천황을 위해 죽어 신이 되고자 수천대의 카미카제 특공기가 날아 올랐고, 오키나와 현지인에서 징집한 소년병까지 전선에 투입했다. 일본의 민간인 10만명을 포함하여 20만명이 사망한다. 일본의 야마토 전함의 승조원 3,000명 중 200여명만 살아남고 전원이 사망했다.
일제는 미군과 영국국은 귀축영미라고 국민에게 선전했다. 아귀축생, 즉 사람을 잡아 먹고 닥치는데로 강간을 하는 귀신과 짐승이라고 세뇌시켰다. ”귀신에게 잡혀 여자는 능욕당하고 남자는 사지가 찢겨 죽느니 차라리 깨끗이 죽어라”라며 미군의 열도 진공 시 천황을 위해 한명의 미군이라도 죽이고 죽으라고 했다. 민간인 집단자결도 명령했다. 광기의 일제는 결호작전, 즉 일본 열도 방어 작전을 위해 1억 일본국민이 모두가 전선에서 죽어야 하는 1억옥쇄 작전에 돌입했다.
오키나와 섬 주민은 미군이 상륙했다는 소식을 듣고 집단자살을 시작했다. 영예로운 죽음을 위해 소년이 어머니와 여동생을 죽였고, 미군의 욕을 피해 먼저 딸을 살해한 노인은 미군이 준 식량과 약품을 받고 죽은 딸의 시신 앞에서 오열했다.
열도의 광기를 본 미국은 충격과 두려움에 떨었다.
처칠은 미군 100만명과 영국군 50만명이 전사할 것이라고 트루먼을 압박했다. 독일 나치는 항복 했고, 일제는 마지막 숨을 가쁘게 쉬고 있음에도 전쟁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트루먼은 원폭투하를 명령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두방의 핵폭탄은 불지옥을 만들었다. 추가 공격이 이어지면 태양신 천황의 머리 위에도 불지옥이 펼쳐질 수 있었다.
일본을 때린 두방의 원폭은 20만명을 그 자리에서 즉사 시켰고, 수십년간 원폭 피해와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다. 천황이라는 우상, 그 우상을 숭배한 심판은 너무나 혹독했다. 기독교 문명의 중심으로 들어간 일본 그들이 문명의 껍데기만 선택한 죄의 댓가였다.
구한말을 보낸 우리는 일제에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능가하는 것이 없었다. 도덕성은 타락하여 시궁창과 같은 냄새를 피우는 조선사회 였으며, 가치의 근간이 된 성리학은 너무나 타락했고 지독한 위선의 탈을 쓰고 있었다. 조선은 이오지마 전투와 같은 죽기를 각오한 결기도 없었다. 하와이를 공습한 항공모함과 제로센 전투기 같은 물질과 기술도 없었다.
착취와 수탈, 도덕성의 실종, 타락한 사회 봉건시대를 지나며 일제가 구축한 법치와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 조선시대 보다는 나았다.
그런시대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다고 또는 생존을 위해 일제에 동화 되었다고 친일파로 부르는 것은 또 다른 위선일 뿐이다. 독립운동가들의 집안은 나름 뼈대 있는 집안 출신이 많았다. 그 좋은 집안의 아버지 할아버지가 어찌하여 그렇게 무능하고 타락하여 나라를 일본에 팔았는지 대답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식민지가 되는 것은 나라와 나라의 문제이고 나라와 국민의 문제이다. 식민지 지배를 자초한 것은 당신들의 조상이고 당신들의 자신이다. 그들이 생존을 위하여 동화 되어 살았다고 친일파로 단죄하는 것은 결국 죄인이 죄인을 단죄하는 것이다.
간음한 여인을 두고 예수님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라고 하셨다. 돌로 치려는 무리 중에 간음한 죄인이 없었을까?
친일파 단죄 전에, 반일불매운동 하기 전에 문재인처럼 자신의 아버지가 일제의 농정계장을 하였는지 조상 내력부터 살피는 것이 우선 일 것이다.
일제 시대 조선이 일본을 능가한 것은 단 한가지 복음이었다. 수 많은 선교사들이 일본에서 복음을 전했고 가장 많은 물량을 투입했다. 일본인은 기꺼이 복음을 위해 조선의 순교자보다 수십배 수백배에 많은 순교자가 생겼다. 그러나 복음은 실패했고 복음의 꽃은 조선에서 피어 올랐다. 복음의 전초기지가 된 일본, 그 복음이 일제 시대를 극복하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를 생각하게 한다.
그 지긋 지긋한 중화문명을 한반도에서 몰아낸 일본, 이 땅에서 기독교 문명을 전해 준 선교사, 식민지배로서 기독교 문명의 하드웨어를 준 일본이 있었다. 조선으로부터 주자 성리학을 받아들인 일본, 성리학을 미토학으로 변질시켜 살아있는 신 천황을 만들었고, 천황과 군국주의 우상에 경도 된 일제를 쫒아내준 미국, 그 역사의 순환고리는 오로지 이 땅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섭리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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