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는 울 안에 갇힌 후기 조선인가.
자칭 진보라는 종, 친 북, 주사파 아류들 그들은 죽은 자식 불 알 만지며 살아나기를 기도하는 원시인보다도 더 어리석고 시대를 역행 하는 사기꾼과 다름없는 자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사고로 대중을 현혹하고 세뇌 하니 나라가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사기꾼이 어리석은 자의 재물을 탐하듯 이들이 나라의 곳간을 털어 자기들의 배를 불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선거에서의 매표 행위와 다름없는 아주 지능적이고 교활한 수법이다. 나라를 건국한 이승만과 근대화를 이루고 한강의 기적을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박정희 전두환을 독재자로 매도하는 희대의 사기꾼 노릇을 하고 또 이들과 한 패를 이뤄 이 거짓 선동에 놀아난다. 북조선 서조선이 합세하여 자유 대한민국을 쥐새끼가 곡식을 갉아 먹듯 야금야금 시나브로 나라를 갉아 먹고 있으니 그 흠집이 언제 화로 돌아올지 모르는 형국이다.
북조선은 해방과 함께 파르티잔이란 새로운 사조와 함께 등장했다. 그러면 서 조선은 언제 등장한 것일까.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나는 북방 정책이라며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전두환을 배신한 노태우가 그 시조가 아닐까 생각한다.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온갖 이유를 붙여 백담사로 유배를 보냈으니 일제로부터 망한 그 조선이 자유 대한민국에서 다시 후기 조선인 서조선이 탄생한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왜 그런가. 노태우의 북방 정책과 함께 등장한 것이 자신의 오늘을 있게 한 있게 한 동료이자 선배인 친구의 뒤통수를 친 것이다. 이후 등장한 김영삼은 한 수 더 떠 전두환과 노태우를 일타쌍피로 골로 보냈다. 김영삼 또한 몰락하는 정치적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일타쌍피 전술을 구사하고 또 특히 전임 정권이 최소한의 희생으로 잘 수습한 518 폭동 반란을 민주화 운동으로 뒤엎었으니 이는 서조선의 등장을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서조선의 등장은 전 정권이 잘 수습한 518 폭동 반란 사태를 민주화 운동으로 헌법을 위반하면서 까지 특별법을 제조하여 핵폭탄을 자유 대한민국에 퍼부은 것과 다름없게 된 것이다. 이승만의 건국에는 비할 바가 못 되는 전혀 새로운 나라가 등장했으니 총 한 발 없이 새로운 나라 서조선을 등장 시켰다. 요즘 말로 가성비 꿀 팁인 전략인 셈이다. 총 한 발 쏘지 않고 자유 대한민국을 북조선에 이어 그들의 조공 국인 후기 조선을 건국 했으니 그렇지 아니한가.
과거 중국에 조공을 바치던 그 습성을 그대로 따르며 충성을 맹세하고 납작 엎드리고 있다. 여기에 모든 언론은 이들의 선동은 애써 모른 척하며 진보 권력으로 나팔을 불어 대고 있으니 속칭 개 돼지들도 덩달아 깨 춤을 추고 있다. 이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와는 애초부터 담을 쌓고 격리된 민주주의를 사칭한 것이 맞다. 다른 주장으로 혹세무민 하면서 누구의 주장이 옳은지 공개 토론을 제의해도 응하지 않는다. 직접 민주주의 즉 인민 재판을 고집하는 것이니 어찌 이들을 서조선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518이 폭동 반란인지 민주화 운동인지 공개 토론을 제안한 지만원 박사를 오히려 감옥에 가둔 세력이 바로 그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자들이니 이 한 가지 사실 만으로도 518은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와는 다른 인민 민주주의에 의한 민주화 운동 즉 인민 재판의 다른 이름이며 대중을 속이는 사기 수법인 것이다. 이는 논리와 합리적 방법으로 해결할 의지가 전혀 없음을 잘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의 민주주의와는 애초부터 그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다. 그들은 출발부터 대중을 속이고 자신의 오늘을 있게 한 동료이자 선배인 전임 대통령의 뒤통수를 내려 갈긴 대가로 등장한 자들이기 때문에 그 태생은 속일 수가 없는 것이다. 김영삼에 이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이들에 대해서 여기에서는 재론할 필요도 없을 만큼 이들은 북에 현대 판 조공을 바친 인물들이니 그렇지 않은가.
망한 조선의 이름을 빌려 자유 대한민국의 뒤통수를 치는 사실상의 서조선도 겉으로는 자유와 민주를 외치고 있으니 개. 돼지로 불리는 추종자들은 조선 인민이니 그렇다 해도 국민의 힘이란 당 애들이 이들을 근본적으로 내치지 못하는 이유를 생각해본다. 내각제로 자손 대대로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 그들도 자신의 오늘을 만들어 준 박근혜 뒤통수를 그들과 손뼉을 마주치며 친 원 죄가 있기 때문이다.
서조선이 북조선의 지령을 받아 부정 선거 사전 투표로 숫자를 조작하든 모른 척 할 수밖에 없다.
그 좋은 예가 하태경과 이준석이 조사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부정 선거는 없다고 확정 적으로 말한 것이다. 유명 통계 학자 등이 나올 수 없는 수치가 나왔다고 언론에서 떠들어도 무조건 부정 선거는 없었다고 하는 것이야말로 부정 선거가 있었다는 반증이 될 것으로 본다.
이후에 중앙 선거 관리 위원회 직원 의 특혜 채용 등이 불거지고 국정원은 북한이 선관위 컴퓨터를 해킹한 단서로 조사하겠다고 했으나 감사원의 감사와 국정원의 조사도 거부함으로써 그들 역시 북조선을 섬기는 서조선의 면모를 유감 없이 보여준 것이다. 다른 선진국에서 우리보다 못해서 선거 사무를 컴퓨터에 의하지 않고 수작업으로 하겠는가. 컴퓨터는 사람이 조작하는 대로 작동하는 기계 일 뿐이다.
기계가 가리키는 수치는 조작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수치라고 여러 학자가 지적해도 선관위와 더불어 민주당이야 그러려니 하겠지만 국민의 힘 애들마저 부정 선거는 없다고 하는 것을 보면 이놈들도 한통속으로 믿을 수가 없다. 내년 총선에서는 기필코 사전 선거 제도 폐지는 물론이고 모든 투.개표를 수작업으로 하지 않으면 기존에 똬리 틀고 곳곳에 박혀있는 북, 서조선 주사파 아류 놈들에 의해 자유 대한민국 전체가 집어 삼켜질 것이다.
2023.6.24
추신: 조선일보 박정훈 칼럼은 중공을 서조선이라고 봤지만,
나는 서조선을 7시 지역을 기반으로 한 못 말리는 특정 세력으로 봤다는 것을 밝힌다
<참고자료>
[박정훈 칼럼] 북조선, 서조선, 우리 안의 ‘후기 조선’
좌파의 前근대성이
대한민국의 현대성과
곳곳에서 충돌해
타협 불가능한
진영 갈등을 낳고 있다...
‘현대 한국’ 안에
’후기 조선’이 있다
박정훈 논설실장
입력 2023.06.24. 03:20
조선이 망한 지 한 세기도 더 지났지만 숨 가쁘게 돌아가는 지금 세상에도 이씨 왕조의 전(前)근대성을 빼어 닮은 ‘변형된 조선’이 세 곳 존재한다.
첫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자칭하는 ‘북조선’이다. 북한이 조선 왕조의 진정한 후계자임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혈통 세습, 1인 숭배, 사상 통제, 민중 탄압, 신분 차별 등 북한 체제를 움직이는 전근대적 구성 원리는 조선 시대의 그것과 한 치도 다르지 않다. 주체를 빙자한 ‘우리 민족끼리’는 바깥에 빗장을 걸어 잠갔던 19세기 ‘쇄국양이’와 동의어다.
그 서쪽, 시진핑의 중국은 역사의 진보를 거스르는 역주행 코스를 달리기 시작했다. 시진핑 영구 집권 체제의 완성과 비례해 독재와 반민주, 권위주의의 색채를 더해가고 있다. 개인 숭배가 만연해지고, 인권이 억압받고 있으며, 체제 비판 인사들이 행방불명되고, 의문사가 잇따르는 나라가 됐다. 절망한 중국 네티즌들은 자기 나라를 ‘서(西)조선’으로 부르며 자조한다고 한다. 북한 같은 전체주의 유사(類似) 왕조 사회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한말 위안 스카이를 방불케 하는 주한 중국 대사의 폭주는 서조선화(化)되고 있는 중국의 전근대성을 드러내는 일화일 뿐이다.
21세기 첨단을 달리는 대한민국에도 조선의 후예들이 있다. 함재봉 전 아산정책연구원장, 철학자 임건순 같은 이들은 야권을 장악한 운동권 좌파가 ‘현대판 위정척사파’이자 ‘양복 입은 사대부’라고 규정한다. 조선을 지배했던 성리학 원리주의의 정신 세계를 오늘날 좌파 세력이 이어받았다는 것이다. 과학을 부정하는 이념 위주 관념론, 자기만 옳다는 도덕적 우월주의, 사물을 선악으로 가르는 이분법, 생각이 다르면 적으로 모는 당파성, 글로벌 세계에 눈 감는 폐쇄성 등 두 그룹의 집단 형질은 수백 년 간극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정확한 싱크로율을 보이고 있다.
그중에서도 놀라운 공통점은 친중 사대의 DNA다. 베이징에 간 문재인 대통령은 ‘혼밥’ 굴욕을 당하면서도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로 치켜세웠다. 중국을 높이려 한국을 “작은 나라”로 낮추는 자기 비하까지 서슴지 않았다. 문 정권의 첫 중국 대사 노영민은 시진핑 접견 후 방명록에 ‘만절필동(萬折必東)’이라 썼다. 조선조 송시열 등이 명(明) 황제를 향한 충절을 고백할 때 썼던 글귀였다. 박원순 서울 시장이 중국을 ‘말[馬]’, 한국을 ‘말 궁둥이에 붙어가는 파리’에 비유한 일도 있다. 21세기의 상식으로는 이렇게까지 비굴할 수 있는 이들의 의식 구조를 설명하기가 불가능하다.
전략적 친중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좌파의 친중은 합리성을 넘은 맹목적 추종에 가깝다. 그 말 많은 운동권 좌파가 단 한 번이라도 중국에 싫은 소리 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일이 없다. 중국이 ‘대만 침공’을 협박해도, 홍콩 민주화 시위를 무력 진압해도, 소수 민족 인권을 유린해도, 심지어 시진핑의 “한국은 중국의 속국” 발언이 전해져도 한 마디 항의도 없이 침묵했다. 중국의 경제 보복 앞에서도 한국 정부를 탓하고 일부 단체는 피해자 롯데로 몰려가 시위했다. 그러면서도 일본에 대해선 약간의 꼬투리만 나오면 호통치며 ‘죽창가’ 운운한다. 성리학의 화이론(華夷論)처럼 일본을 ‘변방 오랑캐’쯤으로 여기기 때문일지 모른다.
주한 중국 대사가 야당 대표를 앉혀 놓고 일장 설교하는 광경은 사극(史劇) 속 한 장면과도 같았다. 중국 대사의 오만함은 눈 뜨고 못 볼 지경이지만 더 기막힌 것은 이재명 대표의 저자세였다. 인내심과는 거리가 먼 독설가 스타일의 이 대표가 이날은 묵묵히 자리에 앉아 15분에 걸친 설교를 경청했다. 일본 대사, 미국 대사였다면 결코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참담하다.
19세기 위정척사파는 바깥 세상의 현실을 부정했다. 서구 열강의 침탈 앞에서도 세계가 중국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다. 21세기 좌파도 글로벌 질서의 흐름을 오독하고 있다.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자유·민주의 주류 진영이 아니라 독재·권위주의를 향하는 중국 편에 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국주의 팽창 욕구를 담은 ‘중국몽’에 동참하겠다는 말까지 주저하지 않는다. 시대를 거스르는 이들을 향해 소장파 중국 연구자 최창근(중국전략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후기(後期) 조선’ 사람들이라고 일갈했다. 한국(Korea)에 살면서도 ‘조선(Chosun) DNA’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 한국’ 안에 ‘후기 조선’이 있다. 나라는 글로벌 첨단을 달리는데 거대 야당은 ‘양복 입은 사대부’ 세력에 지배당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겪는 끝없는 진영 갈등은 이 기이한 이중성에 기인한다. 좌파의 전근대성이 대한민국의 현대성과 충돌해 도저히 타협되지 않는 균열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박정훈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