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 회담 전 장개석과 단 둘이 만난 루스벨트의 비망록에는 ''장개석은 코리아를 재점령하고 싶다“라는 기록을 남긴다. 그리고 카이로 회담이 끝난 후 회담장을 빠져 나와 장개석을 다시 만난 루스벨트는 장개석의 확고한 의지를 확인하고 외교 문서로 남긴다. 외교문서는 미국무부 극비문서로 보관 된다. 비밀이 해제 되어 세상에 공개 되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장제스와 회담을 가졌는데 토의 내용에 매우 만족한 것으로 말했다. 중국은 만주와 한국의 재점령을 포함한 광범한 야욕을 갖고 있다는 것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장개석은 일본 패망 후 조선을 다시 재점령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런 장개석에게 김구는 몇 푼 되지 않는 돈을 받아 쓰며 주종의 굴욕적 관계에 있었다.
1943년 11월22일부터 26일까지 카이로 근교 메나 하우스에서 미국 루즈벨트, 영국 처칠, 중국 장제스가 비밀회의를 열고 일본 패망 후 영토처리를 논의한 합의문 ‘카이로선언(Cairo Declaration)’을 12월2일 발표했다.
“위의 3국은 한국인민의 노예상태에 유의하여 적당한 시기에 한국이 자유롭고 독립되게 할 것을 결의하였다” 영어원문은 아래와 같다.
“The aforesaid three great powers, mindful of the enslavement of the people of Korea, are determined that in due course Korea shall become free and independent”
김구는 신문보도를 접하면서 환호성을 질렀고 즉시 “대한민국임시정부 공보” 호외를 돌렸다. 김구는 자신과 임정간부들이 카이로회담이 있기 직전 장개석을 직접 만났을 때 “임정을 승인해주고 독립을 보장해 달라”고 요청한 것을 장제스가 넉달 뒤 11월 카이로회담에 가서 반영했다며 의기양양 했다.
지금도 좌파 사학자들은 김구의 노력으로 장개석이 카이로회담에서 영향혁을 행사하여 한국독립을 약속했다며 온갖 거짓말을 하고 있다.
카이로 회담을 추진한 미국 루즈벨트의 비망록과는 전혀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장개석은 일본이 항복한 1945년 8월15일 김구가 “이제라도 임정을 승인해 달라”고 간청하는데도 끝내 거부한 자였다.
김구가 기뻐서 펄쩍 뛸 때 국부 이승만은 한국독립이 “적당한 시기(in due course)”로 표현 된 것에 분노했다. 그렇다면 위 문구가 삽입 된 과정을 살펴 보아야 할 것이다.
1943년 루즈벨트는 카이로선언이 있기 9개월전 미국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 대통령 탄생일을 기념하여 전국 중계 라디오 연설을 했다. 이 연설에서 “일본의 가혹한 압제에 한국 국민이 당하는 노예상태”를 적시하며 처음 한국 독립을 공개거론하며 “한국인의 노예상태(the enslavement of the people of Korea)”에 동정심을 드러내며 전후처리 구상의 복선을 깔았다.
루스벨트의 라디오 연설에서 카이로 선언에 명문화 된 “한국인의 노예상태(the enslavement of the people of Korea)”의 구절이 루즈벨트의 라디오 연설에서 적시 되었고 루스벨트 머리에는 이미 저장 되어 있었다.
몇일 후 백악관 인근 라파예트 호텔서 열린 한인자유대회 개회사에서 국부 이승만은 루스벨트의 라디오 연설에 감사함을 표현한다.
“오랜 기간 미국 관리들의 연설 가운데 미국 최고지도자의 입에서 처음 ’한국‘이 언급된 연설이며, 우리에게는 가장 고무적인 것입니다.”
국부 이승만은 한미협회 이사장 프레데릭 해리스 목사, 변호사 스태거스, 언론인 윌리암스와 연명으로 루스벨트에게 친서를 보냈다.
“지금이야 말로 미국이 지난 38년동안 한국민에 대하여 저지른 잘못과 부정의를 시정할 때라는 사실을 환기시키고자 합니다....(중략)....진주만 사건 이후 우리는 미국무부를 향해 역사상 가장 오래 존석한 망명정부인 충칭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승인할 것을 요구해 왔습니다. 우리가 받은 대답은 아주 대수롭지 않은 변명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소련이 종전후 한국에 소비에트 공화국을 수립할 것이라는 보고를 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보고가 근거없는 것이기를 바랍니다. 동시에 우리는 40년 전에 미국이 우려했던 러시아의 극동진출 위협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명실해야 할 것입니다. 대일전쟁에 박차를 가하고 나아가 태평양의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간청하는 바, 임시정부를 승인하여 우리의 공동의 적 일본과의 싸움에 한국인들의 몫을 감당함으로써 미국에 실질적인 기여를 할수 있도록 원조와 격려를 베풀어 주기시를 바랍니다.“
친서의 서두에는 ”지금이야 말로 미국이 지난 38년동안 한국민에 대하여 저지른 잘못과 부정의를 시정할 때“ 라고 적시하며 루스벨트에게 너희 미국이 조선에 잘못한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갚으라고 호통을 치고 있다.
국부 이승만이 루스벨트에게 따지고 있는 ”너희 잘못“은 조미수호통상조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미수호통상조약에는 “조선이 다른 나라와 분쟁 시 미국이 중재에 나서고, 반대로 미국이 그런 상황을 맞을 경우 조선이 도움을 주어야 한다” 거중조정 조항이 삽입되어 있다. 일본이 조선을 침탈하고 식민지를 삼았음에도 거중조정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미국은 죄인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조미수호통상조약의 체결과정은 참으로 부끄러운 역사이다.
일본과 러시아 세력이 밀고 들어오는 조선을 바라보고 있는 노쇠하고 무너진 중국은 조선에 대한 영향력이 지속할 수 없게 되자 궁여지책으로 일본과 러시아 세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미국을 끌어들여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게 한다.
이홍장은 미국의 미국의 로버트 슈펠트 제독을 천진으로 불러 자신의 수하 마건충과 조약문을 작성하게 한다. 마건충은 당시 유일하게 수억명의 중국인 중 프랑스 변호사 자격증을 따고 국제법을 전공한 재원이었다. 그리고 슈펠트와 마건충은 각자 군함을 타고 제물포에 왔고 조선에서 신헌, 김홍집이 전권대사가 되어 미군 군함에 올라 북경에 있는 광서황제에게 삼궤구고두례를 올린 후 한문 조약문을 받아 서명한다. 참으로 국가적으로 창피한 조약 체결의 과정이다.
당시 거중조정조항은 국가간에 맺는 모든 조약에 관용구로 들어가다시피 관습적, 형식적으로 포함되는 조항으로서 현실적으로 사실상 효력이 없는 조항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부 이승만은 끊임없이 독립운동을 한며 미국을 향해 기독교 국가가 조약을 지키지 않느냐고 괴롭혔다. 루스벨트의 라디어 연설을 두고 거중조정을 들어 일본의 조선침탈에 대하여 침묵한 미국을 책망하며 대한독립을 생객내고 있는 루스벨트에게 한방 먹이며 가시 돋힌 치하를 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약소국이 세계 최고의 강대국을 국격을 긁어가며 미국을 책망하는 국부 이승만의 배짱과 배포는 하나님으로부터 은사로 받은 것 같다.
친서를 받은 루스벨트는 이승만에게 답장을 보낸다.
”친애하는 이 박사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나는 귀하의 서한을 잘 접수했음을 알려드립니다. 귀하의 서한이 ’섬세한 주의‘를 받았다는 사실은 표명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후 국부 이승만은 루스벨트에게 한미협회 해리스 목사와 한국에서 활동한 선교사 무어(John Z. Moore) 목사를 앞세우고 기독교 국가로서 하나님의 의를 앞세워 루스벨트를 압박하는 서한을 보냈다.
국부 이승만의 외교독립활동은 한미협회를 통해 얼마나 정교하고 집요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국부 이승만은 태평양전쟁 발발 후 자신이 위원장으로 있는 주미외교위원부의 자금과 인적자원으로는 활동에 있어 외교력의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고민 끝에 국부 이승만은 미국 각계를 망라한 주요인사로 한미협회를 만들고 위원장으로 미국 상원 원목인 프레데릭 해리스 목사를 지목하여 취임하게 한다. 한미협회는 목사와 문화계 인사, 유명작가, 상원의원, 외교관, 법률가, 정치가 언론인 등 미국사회를 흔들 수 있는 인사를 모아 루스벨트와 의회를 공격하는 효과적인 수단을 마련한다.
그 당시 김구와 안창호가 미국 땅에서 그만한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었을까?
워싱턴에 사무실을 둔 한미협회는 해리스 목사를 비롯한 법률가들은 백악관에 편지를 보내 압박하며, 한편으로 언론을 동원하여 한국 독립을 이슈화 시켜나갔다. 특히 기독교 국가 미국에서 종교계의 압력은 대통령이라도 거부할 수 없는 형벌과도 같았다. 그런 압력은 루스벨트가 라이오 연설과 카이로 회담 선언문에 “한국인의 노예상태(the enslavement of the people of Korea)”를 담기게 된다.
김구가 장개석을 움직여 카이로 선언에서 한국인의 노예상태가 담기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일부 좌파 또는 무식한 학자의 무지에 소름이 돋을 뿐이다. 솔직히 루스벨트가 당시 김구가 누구인지 알고나 있었을까?
백범일지 조차도 이광수가 써준 윤색한 기록일 뿐이며 어쩌면 가공의 책 아니던가?
국부 이승만은 미국 언론의 속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언론을 다루는데 천재적이었고 미국 언론은 손바닥에 올려 놓고 이용했다.
6.25 사변이 일어나자 국부 이승만은 미국 언론을 통해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의 사정을 알리며 첫문장에 이렇게 쓴다,
“한국에는 기독교인 70만명이 있습니다”
기독교 국가 미국인에게 저 한마디 보다 강력한 호소력은 없었다.
장기전으로 돌입한 6.25 사변에 피로해 하는 미국인의 표심을 읽은 아이젠 하워는 대한민국 전쟁을 단번에 끝내겠다는 공약을 했고 당선이 된다.
국부 이승만은 반공포로석방을 전격적으로 단행하면서 한반도에서 철수하려는 아이젠하워와 휴전에 목마른 참전국과 중공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아이젠 하워는 자신을 즉 이승만 제거하려 했다. 그러나 국부 이승만은 그것읋 들여다 보았다.
반공포로 석방 후 국부 이승만에 대하여 비난여론이 세계적으로 일어나자 또 다시 미국 언론을 움직인다. 미국의 주요 일간지에 국부 이승만의 발언과 기고는 톱뉴스로 지면을 장식한다.
”미국도 본래 가난한 이민자의 나라였다. 이민자들이 교회 짓고 학교 짓고 예배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최강 대국이 되었다. 한국은 일본 제국주의하에서 고생하다가 겨우 나라를 되찾았다. 이런 한국을 도와주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미국의 사명 아니겠는가? 그런데 조금 도와주다가 힘들다고 한국을 버리고 도망을 쳐. 갈테면 가라! 비겁자는 가라! 미국에 하나님이 저주가 있을 지어다! 우리 한국인은 끝까지 공산당과 싸우다 죽지 겁쟁이 미국처럼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한국민은 마지막 한사람까지 공산주의에 맞서다가 장렬하게 전사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국부 이승만께서 미국 언론에 올린 위 기록을 보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개인적으로 해석하면 대충 이렇게 될 것 같다.
”유럽에서 쫒겨난 미천한 너희들이 미국에 와서 굶어 죽어가다 하나님을 진실되게 섬겨 하나님의 은혜로 세계 최강 대국이 된 미국 아니냐. 그런 미국이 하나님의 의를 버리고 공산주의에 고통 받는 아시아의 나약한 기독교의 나라를 도와주다 조금 힘들다고 버리고 도망 가는 짓을 하나님이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미국 너희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망할 것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끝까지 공산주의와 싸우다 죽을 것이다. 비겁한 미국은 한반도에서 당장 떠나라“
4만명에 이르는 미국 젊은이가 전사하고 미국경제가 휘청거릴 정도로 돈을 쏟아 부은 전쟁 당사국이 엄청난 희생을 치루고 있는 미국에 대해 오히려 비겁한 미국놈들은 가라고 했다. 그러나 미국은 미국이었고 정의로웠다.
하루 아침에 여론이 뒤집어져 아이젠하워를 비난하는 여론이 온 지면을 덮었다. 아이젠 하워에게는 그의 재임기간 중 가장 큰 정치적 위기를 맞이한다. 아이젠 하워는 반공포로 석방 소식을 듣고 ” 미국은 이승만이라는 적을 만났다“라며 분노한했다. 미국 언론을 국부 이승만 편이 되자 아이젠 하워는 정치적 정무적 결단을 하며 꼬리를 내린다.
"우리는 한국으로부터 절대 퇴장하지 않는다 공산주의자들이 한국을 차지하도록 결코 방치하지 않는다. 우리는 물러나지 않고 끝까지 싸운다. 이승만의 불굴의 의지를 미국이 끝까지 지원할 것이다.“
아이젠 하워는 굴복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는 역사상 가장 불평등한 조약을 맺었고, 국부 이승만을 국빈으로 초청하여 미국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현직 외국 대통령을 뉴욕시내를 관통하는 카퍼레이드를 열어주며 극진한 대접을 했다. 외국인 카퍼레이드는 현직 대통령은 전례가 없었고, 유일하게 퇴임한 처칠 외에는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극진한 대접에도 불구하고 국부 이승만의 미국에 대한 괘씸함은 풀리지 않았다. 국빈방문 첫날 백악관을 두들겨 팬다.
"만약에 우리가 조금만 더 용기가 있었더라면 압록강까지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일부 사람들이 조금 겁을 먹어(a little cold feet) 우리는 다 차려 놓은 밥상을 차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가 한국, 미국, 유엔 그리고 모든 자유국가에 절호의 기회였는데 말입니다.“
국부 이승만은 언제나 미국을 압박할 때 기독교 국가 미국의 하나님의 의에 대한 의무를 요구했다. 국부 이승만은 미국의 기독교 세계관을 존경했고, 한편 이를 절묘하게 이용하고 대한민국을 지켜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기독교 세계관을 지키고 있는 국가로 발전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세운 나라 미국의 도움이었다. 미국은 버려도 될 한반도를 여전히 안고 있다. 육해공군의 기동력은 상상을 초월하게 발전하여 한반도가 아니어도 일본 정도면 극동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충분히 견제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말도 되지 않는 온갖 어거지와 부당한 주장을 받아주며 하나님이 돌보고 있는 한반도를 지켜 주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성경적 가치가 살아 있는 나라이다.
기독교적 정의 보다 앞선 가치가 지구상에 있을까?
소음이 심해서 환풍기를 장식품으로 쓰시는 분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소음 없이 실내를 쾌적하게 만드는 환풍기로 변신하는 마술
게시물 삭제요청방법
Copyright(c) www.nongak.net
tapng97@hanmail.net
연락처 : 010-4696-7177